노인, 노년등에 관한 시모음 10)
노신사의 고독사 /유영서
오랫동안 주차장에 세워둔 차량이
주인 잃은채 어디론가 끌려가고
사물함의 우편물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손길 기다리며 굴러다니고 있다
방안에 숨어살던 온기가 도망치듯 빠져나와
쓰레기 더미속에 섞여 분리수거 된채
청소차에 실려 간다
누구도 관심 주지 않는다
얼마나 외롭고 힘든 싸움 싸웠을까
용을 쓰다 감지 못한 눈동자
노신사가 읽던 책꽂이에 꽂혀있는
서적 나부랭이 찌그러진 금테 뿔 안경
먹다 남은 약들이 할말 잃은 채 애도하며 서있다
가시는길 호송차라도 불러 드려야겠다
꽹과리치고 피리 불며 천국의 문 열어 달라
소원 하나쯤 빌어본다
문득 노신사의 책상 위 사랑한다는 문구가
가슴을 후벼파고 떠나갔다
가을이 노인에게 이르는 말 /김병래
늙어도 늙어도
추하게 늙지 마라 한다
늙었다고 늙었다고
서러워 하지마라 한다
늙음을 늙음을
자랑스러워하라 한다
죽음을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한다
고웁게 고웁게
살다가는 낙엽을 보라 한다
독거노인 /안원찬
독거는 독거다
창틀에는 먼지가 덕지덕지 쌓여 있고
천정에는 알록달록 지도가 그려져 있고
벽 구석구석 갈라진 틈새마다
시커먼 곰팡이가 피어 있다
독거는 독거다
댓돌에는 시퍼런 꽃이 피어 있고
마당에는 잡초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지붕에는 버섯들이 솟아 있고
철 대문에는 붉은 꽃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독거는 독거다
이 모두는 늙음의 꽃이다
어떤 모양으로 피든 어떤 색깔로 피든
말없이 피었다가 말없이 가야 하는 꽃이다
저승꽃이다
노년의 가을 /유종천
늦가을 찬바람에
해가 빛을 잃었다.
새벽부터 세상을 장악한 냉기가
강열한 태양의 숨결을
끊어 놓았다.
나그네 개나리봇짐 주먹밥도
싸늘하게 죽어가고 있다.
언제 코스모스가 피었었던가
언제 푸른하늘과 단풍이
산을 적셨던가.
갈바람 찬바람에 장작더미가
산을 덮었다.
매일 걷던 이길이 왜이리도 먼지
나그네 숨결이 턱에 걸렸다.
노년의 삶 /손계 차영섭
노년을 알아야 한다
- 잘 익은 과일처럼 성숙하는 일
내면을 바라보아야 한다
- 욕심을 버리고 양심에게 묻는 일
너그러워야 한다
- 그대로 받아들이고 매사를 용서하는 일
새로운 삶을 배워야 한다
- 나서거나 끼어들지 말 일
- 노을처럼 사색할 일
- 잔소리 말고 침묵할 일
- 마음이 맑아(明) 건강할 일
잘 살아야 잘 죽는다
굽은 노년 /초랑(超郞) 윤만주
등 굽어
길을 걷는 저 늙은이
땅 물고 해그림자 줍는다.
거친 숨결
고단함을 토해내고
응어리진 삶의 굴곡
폐부 속의 앙금이요
홍안은 간데없고
사고(思考)는 청춘이나
주름살 눈을 뜨니
검은 머리 백발일세.
노을 지는 잎새 위로
각시 볼 새 단장에 굽은 노년
회춘(回春)으로 활기차다.
아름다운 노년 /성백군
늙은 나무뿌리가
흙과 막돌 사이를 헤집고 올라와
계단이 되었다
하루에도 수백 명씩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을 실어나르다 보니
껍질 벗겨지고 진(津) 다하여
하얗게 바래어져 반들거린다
왜 세상에 나왔는지 알 수 없지만
땅속 캄캄한 어둠이 싫어서 열심히 살다 보니
사랑도 하게 되고 자식도 생겨나고
생명 귀한 줄 알아 도중에서 포기도 안 되고
이제는 다 산 몸이라 여겼는데
오늘 산중에서
늙은 나무뿌리를 만나니
아직은 할 일이 남았다
나도 세상 계단 되어 뭇 사람들을 실어나르다가
목숨 다하는 날
너처럼 반들거렸으면 좋겠다.
어르신의 말씀 /김길남
생각을 조심하라
생각이 말이 되나니
말을 조심하라
말은 행동이 되나니
행동을 조심하라
행동은 습관이 되나니
습관을 조심하라
습관은 인격이 되나니
인격을 조심하라
인격은 운명이 되나니
노인 징조 /송근주
서리가 내리는
서릿발을
장식하는 머리카락
노인이 되는 징조
만족하지 못하고
검은 버섯 만들고
버섯으로 장식하는
노인의 징조가 되고
불만족이 성이 안차
만족하게 하려드는
피부의 거칠어짐
노인이 되어가는 징조
노인이 되는
기억력 감퇴
금방 했던 말도 잊혀지는
노인이 된 징조
노인과 기타아 /박희진(朴喜璡)
죽음에 기대어 노인이 마지막
기타아 줄을 뜯자 아으 소슬한
가을 바람 일어서 백발을 적시네
오른쪽 어깨는 이미 저승으로
기울어 안 보이나 이제 그에게
남은 건 단 하나 낡은 기타아 …
노인과 마음을 더불어 해온
평생의 반려이기 지금은 오히려
주링 먼저 알아 손가락을 튕기나 봐
그가 숨지어 소리는 자더라도
죽음을 넘어선 심장의 고동처럼
줄은 울 것일세 다시 더 한 번 …
어르신 /김근이
어르신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 가요
살아오신 세월이 지루하고
지겹지는 않으섰 는 지요
때로는 살아있는 목숨이
원망스러울 때는 없었는 지요
허구만은 이별 중에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
섭 슬한 미소로 돌아오는
그리움도 있겠지요
없는 것 보다 있는 것이 좋고
아니 하는 것 보다 하는 것이
마음을 달래주는 보람이다 보면
죽어 세상에 없는 것 보다
살아 있는 지금이 그래도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지구위에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은
다 내 땅이요
눈에 보이는 세상 만물을
욕심 없이 바라보면서
즐길 수 있는 권리가 있으니
이 또한
살아 있는 보람이 아니겠습니까
어르신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체여
넘어 지는 사람도 있고
길을 가다가 돈뭉치를 주워
횡제 하는 사람도 잊지요
천을 가지면 천 가지 극정으로
만을 가지면 만 가지의 극정으로
사는 우리 내 인생살이
없는 것 보다 있는 것이 낳다 지만
없는 만큼 마음은 비워져 있으니
다시 주서 담을 수 있는 여유가 있어
또 살아갈 맛이 잊지 않을 까요
돌아누우면 저승인 것을
아직도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아온 사람 없으니
저승의 삶을 기대하지 마시고
이승에 남아있는 세월
잘 챙기시고 비워져있는 마음속에
갖고 싶었던 작은 것이라도
소중히 주서 담아 모아 두셨다가
저승길 돌아 갈 때
머리맡에 풀어놓으시고
그 가치를 저승 노자로 가져가시면........
어르신
이승 삶에 맺힌 한이 있다면
이다음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아오는 길이 열리면
그때 다시 이승으로 돌아와
전생의 삶을 거울삼아
맺힌 일 풀어가며
좋은 일 만이 하면서
멋진 인생 살아 봅시다
손수레와 노인(종이 줍는 노인) /박동수
바람이 굴러 온다.
폐 종이 상자에 갇혀버린
노인과 그의 인생이
수레에 실려
바람과 함께 굴러 온다
낡아 꾸부러진 고철허리
그에게도
봄이 주던 사랑이 있었고
불꽃같은 마음으로
그대 위해 풍선처럼
봄 하늘을 날았지
어느덧
살처럼 꽂혀버린
그 옛 사랑은
털어낼 수 없는 덫이 되었고
종이 상자에 묻혀
도시의 골목 바람에
굴러가야 하는 낡은 생
도장 파는 노인 /이종섶
종일 바닥에 앉아 목도장을 파는
정선 5일장 백발의 노인
손발도 없는 몸통에
화인 같은 얼굴을 달아주면서
평생 외길을 걸어왔다
이리저리 칼을 대는 순간
동그란 평원에 계곡이 파이고 산이 솟았다
물이 흘러가고 바람이 불어오고
벼락에 맞아 부러지거나 폭설에 막히면서도
낯선 이름 새기며
모질게 견뎌왔던 세월
호명되기만을 기다리며
뭉툭한 나무속에서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온
상형문자들의 기지개
구불구불한 길을 파려고
각을 세월 흐르며 깎는 강물을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보았던 것일까
몸 속의 물기를 말려
정갈한 도장목 한 그루가 되어가는
노인의 굽은 등 뒤로
노을이 진다
붉은 인주를 묻혀 찍어보는
마지막 낙관
심장이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