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32414 충남 예산군 삽교읍 두리학교길 19 ☎(041)337-3407 기독교대한감리회 삽교교회 원로목사 박 한 응(朴 漢 應)H.P 010-5452-4865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43ch E-Mail : park43kr@hanmail.net ***************************************************************************** 2023.10.22. 주일오후예배 설교문 본 문 : 시편 119 : 69 - 72 제 목 : 고난이 내게 주는 유익 찬 송 : 214, 272, 273, 279, 300, 337, 365. 복음송 : 고난은 유익이라(채수련 작사, 김동국 작곡) 할렐루야!! 오늘도 은혜 주시기를 기뻐하시며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시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한 은혜를 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아 멘!> 우리 하나님은 말세에 남종과 여종에게 모든 육체에게 물 붓듯 성령을 부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욜2:28-30)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또한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사모하는 성도들에게 주시려고 예비하신 은혜가 있습니다. 그 은혜를 충만하게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오늘 저녁 말씀은 낮 시간의 연속입니다. 오늘 낮 시간에는 「나를 단련하신 후에 주시는 축복」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면서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만복의 근원이 되시며, 우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왜 고난을 당하는가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시간에는 오늘의 주인공인 욥이 어떻게 시험과 환난을 이겼으며 또 환난과 고난을 이기면 어떤 축복을 받는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모두 마음 문을 열고 은혜 충만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다 같이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이 내게 주는 유익」 오늘 저녁 설교 제목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낮 시간에 말씀을 드렸듯이 낮 설교의 연속입니다. 다 같이 낮 시간에 부른 복음 성가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고난은 유익이라 1.네 짐이 무겁고 힘이 드냐 주를 보라 고난이 유익이라 주님 말씀하시네 나의 가는 그 길을 오직주가 아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 오늘의 아픔은 내일의- 소망이요 쓰라린- 아픔 뒤에 축복이 있다네 2.고난은 인생의 참의미를 알게하고 예수님 한분으로 만족할 수 있어요 나의 가는 그 길을 오직주가 아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 고난이 크면은 영광도- 크-는법 장차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네 3.고난의 십자가 보배이며 능력이라 주님을 따르는 자 십자가 져야만하리 나의 가는 그 길을 오직주가 아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 좁은 길 가는 자 영생 길- 영광의길 십자가- 진-후에 면류관 있으리 2. 그러면 고난을 당한 욥이 어떻게 믿음을 지켜 승리하였는가? 욥의 신앙 태도에 대하여 상고해 보겠습니다. (1) 욥은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을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으로 깨달았습니다.(10절) 욥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불가해(不可解)한 고난을 하나님의 시련과 연단으로 인식하고 처세하였습니다. 사람은 시련을 받은 후에 더 강해집니다. 이는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나무가 강한 바람에 시달린 후에 나이테가 생기고 아름다운 무늬를 갖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욥에게 있어서도 시련은 죄에 대한 심판이라기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연단(鍊鍛)이었습니다. 특히 욥은 육체의 고통보다도 더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버림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소외감과 단절감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시련을 만났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해결해 주신다면 우리에게 시련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오히려 의존적이고 나약한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섭리 적으로 고난 받는 자에게 더디 나타나사 연단의 기회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단 가운데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소망하는 가운데 강한 신앙을 몸에 익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벧전1:8-9)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으시며 우리에게 믿으라고 하십니다. 이는 곧 우리에게 믿음의 연단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께서도 도마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난받는 욥에게 비록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시지만 결코 욥을 버리지 않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욥은 비록 자신의 고난에 대해 알 수 없었지만 고난을 연단으로 확신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이는 욥의 신앙이 참으로 우리가 본받을만한 믿음인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겼습니다(12절) 하나님의 계시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시대, 계시의 황무지와 같았던 시대에 욥은 이미 하나님 앞에서 순전한 자, 정직한 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1:1,8) 비록 욥이 고난 중에 하나님을 원망한 바도 없지 않지만 그것은 극한 고통 가운데서 터져 나온 탄식이었을 뿐 적극적인 불신앙은 아니었습니다. 이점은 욥이 자신의 고난을 연단으로 인식하고 하나님의 연단을 인내하기로 다짐한 후, 그의 고백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본문 11-12절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곧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되 말씀을 따르는 것이 곧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이론이나, 학설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그대로 드러나야 할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또한 욥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뜨거운 가슴'으로, '뜨거운 열정'으로 대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누구나 기쁨이 넘쳐야 하고, 소망이 넘쳐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지 못하는 데 현대인의 문제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딤후 4.3-4), 또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고 힘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욥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마치 다윗이 (시119:71)"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라고 고백한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타락한 세상의 뭇 사람과 다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하는 성도는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의 도(道)를 배우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성도가 된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찌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고난 받는 중의 욥도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겼는데,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며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 하면 되겠습니까? (3) 욥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복종을 하였습니다(13-15절) 고난 받는 욥, 극한 고통 속에서 탄식하는 욥이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기로 다짐했다는 사실은 욥의 신앙이 강건해졌음을 의미합니다. 본문 13-15절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리라" 욥의 처지를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은 조금만 어렵게 되어도 쉽게 낙심하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에 대해 쉽게 포기합니다. 그런데 욥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섭리로 오는 이러저러한 환경에 온전히 순복 해야 함을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뜻이 있음을 믿고 의지함으로 우리에게 닥친 고난을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진정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고난 가운데서 성장하는 신앙을 이를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아 멘!> 3. 그러면 우리에게 시시때때로 다가오는 고난을 이기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하여 詳考해 보겠습니다.(고난의 유익) 세상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과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하는 고난은 그 결과가 전혀 다릅니다. (1) 고난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해 줍니다. (히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이 말씀은 고난을 통하여 참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딤후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핍박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알게 된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를 값있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고맙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눈물이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가는 징검다리가 된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눈물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참 은혜를 모른다." 고 하였습니다. (2) 고난은 믿는 사람들에게 많은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말씀 세 가지가 있습니다. ① 엘 샤다이 = 이 말씀은 "넉넉하신 하나님" 이란 뜻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홍해를 어떻게 건널까요? 이 백성을 무엇으로 먹일까요?" 하며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엘 샤다이!" 라고 응답하셨습니다. "나는 넉넉한 너의 하나님이다" 라는 뜻입니다. ② 에벤에셀(삼상 7:12) =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도우셨다" ③ 여호와이레(창22:14) =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고난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모리아산에서 아들 이삭을 드리는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떠하였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위하여 양 한 마리를 예비하셨습니다. 모두다 고난을 통하여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고난은 당장은 슬퍼 보이나 결국은 성도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히12:10-11)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3) 고난을 통하여 완악하고 패역한 사람들이 경건해 집니다. 믿음의 사람들, 그리스도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들은 고난과 역경을 통하여 시간마다 순간마다 거룩하여지고 경건해 집니다. 아무쪼록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의 형상을 닮으시기를 바랍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날마다 시간마다 그 형상을 본받아 거룩해지는 성화는 하나님 앞에 가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백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14:22) 고 하였습니다. (4) 고난을 통하여 믿음의 사람들은 더욱 강하고 담대해 집니다. 쇠가 칼이 되려면 달궈지고 두드리고 해야 됩니다. 좋은 기계를 만들려면 훨씬 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고난 가운데 고난을 통하여 강하고 담대해지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통하여 영력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을 통하여 세상을 이길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기왕 믿을 바에는 엑스트라가 되지 말고 믿음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히12:6-8)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신앙은 한층 성숙해지고 깊어져야 합니다. 이 가을이 깊어지듯이 우리들의 신앙은 저 푸른 하늘처럼 맑고, 흰 구름처럼 깨끗해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욥의 친구들처럼 단지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을 놓고 사람들의 신앙이 좋다 나쁘다 를 판단하고 하나님의 축복 여부를 따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세계에서는 나타난 결과와는 달리 역설적인 진리의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참 의인이기 때문에 고난을 받을 수도 있고(딤후 3:12), 믿음을 지키는 참 성도이기에 비록 겉으로는 보잘것없이 보이나 실제로는 귀하고 보배로운 경우가 많습니다(고전1:26-29). 욥의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때문에 욥은 시련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열정을 잃지 않았습니다.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욥의 순전한 믿음과 정직한 행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신앙은 오늘날 환경과 처지를 핑계로 신앙생활에 등한시하는 우리들에게 큰 경종(警鐘)을 울려 주는 것입니다. 실로 우리는 하나님의 연단이 있은 후에 정금같이 귀한 신앙이 이루어질 줄을 믿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고 복종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욥42: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라고 하신 것처럼 오늘의 우리들도 믿음으로 현재의 환난과 핍박과 고난과 역경을 잘 이기면 반드시 하나님이 욥의 말년에 허락하신 축복을 우리들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믿습니다.<아 멘!> 알리는 말씀을 전합니다. 할렐루야!! 부족한 저의 설교를 사랑해 주시는 전국, 세계의 모든 동역자님들과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설교문을 작성함에 있어서 외람된 말씀이오나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맞추려고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 설교는 실명제입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나의 카페를 비롯하여 몇몇 기독교 사이트에 업로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황당한 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나의 설교는 누구나 사용하실 수 있고 인용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설교를 자신의 사이트나 다른 곳에 자신의 설교인양 전제를 하여서 이것을 보신 분들이 내가 그것을 보고 도용을 하였다고 오히려 나를 책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안되겠습니다. 나의 부족한 설교를 인용도 하시고 전문 사용을 하셔도 좋으나 다른 곳에 전제를 하는 것은 삼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만약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또 다시 발생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항상 부족한 저를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과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임마누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