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에 관한 시모음 4)
한글 날 /임종호
장하셨어라
세종 임금
역사에서
역사로
피가 피로
흐르던 세월
설웠어라
괴로웠어라
답답하였어라
면면이 얼
흘렀어도
가슴 맺혔었네
장하셨어라
세종 임금
눈을 눈 되게
입을 입 되게
마음 내 맘되게
이 강산 우리 강산 되게
스믈 여덟
보배 나으셨네
가슴 벅차라
내 산하(山河)여
줄줄이 이어온 역사여
임과 함께 살아 났네
자라가네
꽃이 피네
열매 맺네
훈민정음 3 /송유미
점자 아함경 읽는다 가시손으로 더듬더듬
모래사막 낙타가시풀의 고독을 읽는다
하루가 무섭다 어두워지는 눈이 무섭다
의사의 만류에도 삶의 낙이 이것뿐이라고
어머니 철필로 점자 불경 닥종이에 옮겨 새기신다
해진 열 손톱 끝에 봉선화 꽃물 번져간다
시치미 떼고, 연옥을 찾아가는 단테같이
주문呪文을 하얀 닥종이에 새긴다
어디선가 찌르르 스르르 우는 풀벌레 소리
잘 알아보면, 점자별과 통신을 하는 소리…
제 심장에다 나이테를 나무들이 새기듯이
더듬더듬 감은 눈으로 무얼 쓰고 싶은 것인가
오늘 만나도 내일은 알 수 없는 내 마음이
답답한 마스크 끼고 앉아서 철필로 만다라 새긴다
결국 시작과 끝이 만나서
바람에 털리고야 말
모래 만다라처럼, 빈손은 백지로 돌아온다
그래도 자꾸 점자별이 되고 싶어
만다라 속을 수놓는
오롯한 점자의 시간
10월 9일 한글날이다 /김경희
방송이 국기를 게양하자며
공손한 남자가 나지막히
안내를 자청한다
주섬주섬 서랍 속 봉이 있는
국기를 꺼내 손질 마무리 베란다
바깥 깃대에 단단히 꽂는다
바람이 제법 순풍순풍
하늘은 대놓고 학교 운동장에서
체육회를 하는지 만국기 펄럭인다
오랫만에 국어사전을 펴놓고
얇은 질감 손끝으로
넘길때마다 살짝 반응하는
뚜렷한 글귀들이 코를 자극한다
모음 자음으로 이루어진 두꺼운 겉면에
가늘게 자음 표시를 해둔 낱장을 펼치곤
쓱 한번 닦고 눈으로 훑는다
사전보단 검색을 많이 하다 보니
책꽂이에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전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남겠지
한글 예찬 /조남명
반 천 년 넘는 이전 한반도 조선에
인류사에 우수성이 남을 소리글자
세종임금 삼십 년 고뇌로 빛을 발해
위대한 한글이 창제되었어라
두 획만 그어도 글자 되고
스물네 자 어울리면 못 쓸 말이 없는
민족의 말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이 보배로운 표음문자
세상의 글자 중 말소리를 가장 많이 적으며
감성을 가장 사실 가깝게 나타내니
그 독창성 과학적 우수성은 세계가 아네
유네스코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보존했네
이제, 소중한 민족 자산 긍지와 자부심으로
아끼고 살려 길이 보존해야 하리
글자 없는 소수민족 글눈이 되게 해야 하리
우리 한글이 세계 공통어 되는 날 오리니
세계로 나가자
한민족이여, 한겨레여
우리 미래는 밝다, 희망이 있다.
아름다운 한글 /김관호
크고 작은 맞물린 톱니바퀴에
기계는 부드럽게 돌아가듯
ㄱ,ㄴ,ㄷ,ㄹ,ㅁ,ㅂ, 키스하듯 보드랍고
ㅅ,ㅇ,ㅈ,ㅊ,ㅋ,ㅌ,ㅍ,ㅎ, 노래하듯 감미롭고
ㄲ,ㄸ,ㅃ,ㅆ,ㅉ,ㅿ,ㆁ, 포옹하듯 황홀한
갈 봄 겨울 여름 사계절이
가고 다시 또 돌아오듯
ㅏ,ㅑ,ㅓ,ㅕ,ㅗ,ㅛ,ㅜ,ㅠ,ㅡ,l,
파란하늘 한 점 구름처럼
ㄳ,ㄵ,ㄶ,ㄺ,ㄻ,ㄼ,ㄽ,ㅀ,ㅄ,ㄿ,ㅀ,
과학의 꽃 우주의 향연처럼
ㅐ,ㅒ,ㅔ,ㅖ,ㅘ,ㅙ,ㅚ,ㅝ,ㅞ,ㅟ,ㅢ,
너와 내가 하나 된 것처럼
숨 쉬는 우리말
예술혼이 담긴 우리문자
아름다운 우리글
오랫동안 갈고닦아온 합창단
감미로운 화음 맞추듯⋯⋯
지석영 /고은
골똘히
등잔불 밝혀
골똘히
등잔불 손짓바람으로 꺼
긴 밤
풀벌레소리에 잠겨
안공부 하다가
어느 해부터
바깥공부에 눈떠
영국 제너 종두법 익혀
처가 동네사람들에게
우두를 놓아주었다
임오군란 때
우두 놓는 법 배워왔다고
잡혀갈 뻔하였다
양도깨비 되었다고
수군거리고
우두는 독침이라고
내몰리는 동안
전주에 우두국 설치
공주에 우두국 설치
아이들에게 우두를 놓았다
그 뒤로 천연두로 죽는 아이 싹 없어졌다
유배지 섬에서도 우두였다
해배의 몸
뭍으로 돌아와서도 오로지 우두였다
그러다가
우두의 삶 쉬고
주시경과 함께
국문 쓰기 제창
국문 가로쓰기 제창
비로소
세종 훈민정음이
내몰려 썩어 있다가
묻혔다가
백성의 글자로 뛰쳐나왔다
드디어 고종황제의 반포
훈민정음 자모로
나라의 문서 쓰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나라 망한 뒤
백성의 글자 나라의 글자 남아
그것이 나라이고 나라의 산천이었다
지석영
일본의 회유 끈질겼으나
조용히 물러나
여든 살 생애 마쳤다
삶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 풍모 사립짝 안에서도 장중하여
예닐곱살 적부터 장난이 없는 삶이었다
한글날 /이원문
누가 만든 한글이고
어느 민족의 국어인가
가엾어라 어쩌나
우리의 글 말 짋밟혔네
어느 민족이 짋밟았나
우리의 말과 글을
버림 받은 우리의 글
말까지 버렸다네
575 돌 한글날 /천숙녀
아름다운 우리문자 고마워라 우리한글
마음껏 시를 빚어 읽으며 쓸 수 있는
한글은 축복 글이다 멋들어진 좋은 글
세종대왕19년에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創製를 결심
세종25년 완성한 뒤 세종28년 반포頒布까지
단한 줄 남기지 않은 비밀의 숲 꼿꼿했다
삼강행실三 綱行實 효행록孝行錄에 삽화를 추가해도
한문漢文 글 읽지 못해 알아듣지 못한 백성
문자로 배우기 쉬운 언문言文이 간절했다
어머니는 언제부턴가 언문을 깨달으시고
부엌에서 밥 지으며 주기도문을 외우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야생화를 들꽃으로 야채를 채소이름
우리말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글 쓰는 작가들부터 지켜 가는 한글날
한글 사상은 들뢰즈 /백오 이승기
한국에 온 들뢰즈
울타리 안에
둘러앉아서 사유하다
목적어들 모두 곁에 앉치고
문화는
언어를 통해
대상을 하나둘씩 불러
대회장 가운데 앉쳐 묻는다
마지막 서술어는
대상을 가운데로 이끌어
이질적 관계망 리좀 속에서
주체도 대상도 잊고 하나다
아리스토텔레스 4인 설
질료, 형상, 동력, 목적인
어울려 중심으로 향하는
한글 그의 사상이라 하네.
한글 창제의 첫일 /고은
처음 한글은 조심스러웠다
나라 안의 중신들 유신들
한글
이 새 글자를 능멸할 터
나라 밖의 명나라 황제가
이 새 글자를
불충불온으로 여길 터
근심스러웠다
그러나 이 새 글자로
무엇인가를 해야 하였다
아버지 세종은
‘월인천강지곡’을 이 글자로 지었다
아들 수양은
‘석보상절’을 이 글자로 지었다
등극 직후에는
불교를 배척하여
오직 양종으로 통폐합
거의 절도 없애고
노비와 토지 몰수하고
승려도 내쫓아버렸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궐내에 내불당을 지었다
그런 왕이
월인천강지곡을 지어 펴내고
아들 수양이
석가일대기를 지어 펴내니
이로써
나라글자 한글은 불교의 서사세계에 발걸음을 내디뎠다
아니 효령은 숫제 승려가 되어
한강 수륙재를 주재하였다
시내가 가람 되고
가람이 바다 되어
새 글자는 조심스러이 흘러갔다 흘러 흘러 듬쑥 퍼져갔다
맞춤법 /함기석
한글 맞춤법은 응큼한 입맞춤법이다
수은 가로등 아래 여자가
사랑스런 눈길을 보내며 남자에게 말한다
오빠 가끔 아빠는
두 모음 사이에서 나는 된소리가 있어
응큼하게 입술을 가까이 갖다대며 남자가 말한다
너의 팔뚝과 눈썹엔
자음과 모음 사이에서 나는 된소리가 숨어 있어
쓱싹쓱싹 입술을 포개며 다시 남자가 말한다
너의 뽀뽀는 밋밋 놀놀해
같은 음절은 같은 글자로 적어야 해
남자의 혀의 집을 찾으며 여자가 말한다
체언과 조사는 구별하여 적는 거지? 혀가 집에
처럼, 용언의 어간과 어미도?
음음음, 남자가 계속해서 음음거리며 말한다
음이 붙은 명사는 어간을 밝히어 적어야 해, 너는
너무 밝혀, 뽀뽀할 때 웃음 울음 졸음은 안 됨
두 남녀가 맞붙어 있는 캄캄한 담벼락 위에서
가로등이 격음화현상을 일으키며 키득거린다
쩝쩝 쪽쪽 입술을 떼며 남자 여자가 말한다
우린, 체언과 조사가 줄어든 경우야
입은 응큼한 한글이야 불온하지만 입은 아담해
가로등이 다시 성난 목소리로 말한다
이븐 아담의 애인, 바로 너희 조상이야
죄의 근원이야
죄의 말을 길러 말의 죄를 낳았다
아아, 훈민정음 /오세영
언어는 원래 신령스러워
언어가 아니고선 신(神)을 부를 수 없고
언어가 아니고선 영원(永遠)을 알 수 없고,
언어가 아니고선
생명을 감동시킬 수 없나니
태초에 이 세상은
말씀으로 지으심을 입었다 하나니라.
그러나 이 땅,
그 수많은 종족의 수많은
언어 가운데 과연
그 어떤 것이 신의 부름을 입었을 손가.
마땅히 그는 한국어일지니
동방에서
이
세상 최초로 뜨는 해와 지는 해의
그 음양(陰陽)의 도가 한 가지로 어울렸기 때문이니라
아, 한국어,
그대가 하늘을 부르면 하늘이 되고
그대가 땅을 부르면 땅이,
인간을 부르면 인간이 되었도다.
그래서 어여쁜 그 후손들은
하늘과
땅과
인간의 이치를 터득해
‘•’, ‘ㅡ’, ‘ㅣ’ 세 글자로 모음 11자를 만들었고
천지조화(天地造化), 오행운수(五行運數), 그 성(性)과 정(情)을 깨우쳐
아(牙), 설(舌), 순(脣), 치(齒), 후(喉)
5종의 자음, 17자를 만들었나니
이 세상 어느 글자가 있어
이처럼 신과 내통(內通)할 수 있으리.
어질고 밝으신 대왕 세종(世宗)께서는
당신이 지으신 정음(正音) 28자로
개 짖는 소리, 천둥소리, 심지어는 귀신이 우는
울음소리까지도
적을 수 있다고 하셨으니
참으로 틀린 말이 아니었구나.
좌우상하(左右上下)를 마음대로 배열하여
천지간 막힘이 없고
자모(子母)를 결합시켜 매 음절 하나하나로
우주를 만드는
아아, 우리의 훈민정음.
속인들은 이를
이 세계 어느 글자보다도 더 과학적이라고 하나
어찌 그것이 과학에만 머무를 손가.
그대, 하늘을 부르면 하늘이 되고,
땅을 부르면 땅이,
인간을 부르면 인간이 되는
아아, 신령스러운 우리
한국어,
우리의 훈민정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