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받은 식탁' 탐방일지 - 집으로 먹으러 간다③
아들의 미래에 종자를 마련해주고픈 이경호 씨
비마이너가 가난한 사람들의 ‘차별받은 식탁’을 찾아갑니다. 수급자 가구의 식탁을 찾아 최저생계를 보장하지 못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봅니다. 또한 중증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맛집을 찾아 함께 밥을 먹으며 모두에게 공평한 식탁은 무엇인지 묻고자 합니다. |
▲ 근육병이 있는 이경호 씨가 무릎을 지지대 삼아 식사를 하는 모습. |
의정부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의정부장차연)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이경호 씨(지체장애 1급)는 중학생 아들과 함께 의정부시 신곡동에 있는 69.4㎡형(21평형) 국민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이 씨는 2년간 함께 살았던 아내와 결혼 초기에 헤어졌다. 그 후 이 씨는 아파트에 앉아서 요리와 설거지 등을 할 수 있는 싱크대를 마련해 직접 식사를 챙겨주며 아들을 키웠다. 그러다 의정부장차연 활동을 시작한 후부터는 밤늦게 들어오거나 아예 귀가하지 못하는 날들이 잦아지면서 현재는 인근에 사는 전처가 잠시 아들을 맡아서 키우고 있다.
그 뒤 이 씨는 수급비를 쪼개 전처에게 다달이 48만 원씩 생활비와 학원비를 보내고 있다. 이 씨는 현재 수급비 62만 6400원, 장애인연금 17만 8600원, 도 장애수당 4만 원, 희귀·난치성질환협회 간병비 30만 원 등 월 114만 5000원을 받고 있지만 이 중 40%는 아들의 양육을 위해 써야 한다.
여기에 고정적으로 나가는 관리비, 통신비, 장애인단체 후원비 등을 빼면 한 달에 식비로 쓸 수 있는 돈은 30여만 원, 하루 1만 원 정도이다. 그런데 장애인단체 활동으로 밖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할 때가 잦고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면 술값도 내야 하니 적자일 때가 많다. 적자는 고스란히 아파트 관리비 연체로 이어진다.
이 씨는 보통 아침은 먹지 않고 점심, 저녁만 먹는다. 근육병 때문에 활동량이 적어 세 끼를 모두 챙겨 먹으면 소화를 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전에는 잠자리에 누웠다가 용을 쓰면 간신히 일어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일어나지 못해요. 근육병으로 움직이지 못하니까, 세 끼를 다 챙겨 먹으면 속에서 감당하지 못해 탈이 나요. 그래서 아침에는 주스 한 잔 정도만 마시고 있어요.”
▲ 큰 냉장고 문을 열 수 없어 갖다놓은 작은 냉장고. 활동보조 시간이 부족했을 때에는 이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을 꺼내 직접 밥상을 차려 식사를 하곤 했다. |
이 씨는 17살 때 처음 근육병 증세를 느꼈다. 전과 달리 뛰고 나면 근육이 땅기고 쑤시며 아팠다. 종아리가 퉁퉁 붓기도 했다. 이 씨는 근육병으로 잘 걷지 못하던 큰 누나에게 “나도 이상해”라고 말했다. 누나의 권유로 고대 의과대학부속 우석병원(현 고대 안암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받았다. 누나와 같은 근육병이었다.
근육병 판정을 받은 후 이 씨는 자신이 얼마 살지 못하고 곧 죽을 거로 생각했다. 다섯 명의 형제자매 중 이 씨를 포함해 세 명이 근육병이었는데, 의사들은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모르다고 했다. 그저 유전적인 요인으로 발생했을 거로 추측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 씨의 윗세대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던 병이었기에 유전적인 요인일 것이라는 추측도 막연하기만 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는데 근육병 판정을 받고 나서 ‘나는 얼마 살지 못하고 죽겠구나’라는 생각에 공부는 멀리하고 술을 마시러 다니며 되는 대로 살았죠. 그런데 근육병이 생각보다 천천히 진행되었어요. 지금처럼 쉰네 살까지 살 줄은 꿈에도 몰랐죠.”
이 씨는 걸어 다니고 운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장애가 심하지 않았을 때에는 직장 생활을 하기도 했고 직장을 나와서는 보험설계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 여파로 벌이는 줄어들고 빚만 쌓여가는 바람에 십여 년 전 수급 신청을 했다.
이후 이 씨는 장애가 심해져 집 안에서는 앉아서 생활하고 밖으로 나갈 때에는 전동휠체어를 탄다. 식사는 팔꿈치를 지지할 밥상 같은 것이 있으면 혼자서 먹을 수 있다. 무릎에 팔꿈치를 대기도 한다. 그러나 집회에 나가서 김밥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려면 활동보조인의 식사보조를 받아야만 한다.
하지만 국, 탕, 면 종류를 좋아하는 이 씨에게 거리에서 뻑뻑한 김밥을 먹는 것은 즐겁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가끔은 집회 장소 인근의 식당에 가서 식사하기도 하는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장애인이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편의시설을 갖춘 식당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먹는 것을 골라 식당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먹는 것이 결정돼요. 복지부는 설렁탕, 광화문은 부대찌개, 인권위는 굴밥, 새누리당은 반계탕이죠. 요즘 반계탕이 먹고 싶은데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집회가 없으니 통 먹을 수가 없네요. 반계탕 한 그릇 먹기 위해서 없는 집회라도 만들어야 하나? 가끔은 새로운 곳을 개척하러 돌아다니기도 하는데 그런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 혼자서 일어날 수 없는 이 씨가 기상 시에 사용하는 보조기기. 스위치 작동으로 판이 올라가고 내려간다. 기상 시에는 완전히 내려가 있는 판에 머리를 대고 올림 버튼을 누르게 댄다. 판이 올라가면 머리를 포함한 상체가 바닥으로부터 떨어지는데, 이때 이 씨는 몸을 지지할 곳을 찾아 힘을 주고 상체를 세우게 된다. |
인터뷰가 진행된 날 활동보조인이 평소처럼 식사를 차려 준다. 이날 점심으로는 어묵국, 배추김치, 생선조림, 오징어젓과 함께 이 씨가 특별히 부탁한 누룽지국이 식탁에 오른다.
다행히 올해 활동보조서비스의 추가급여 시간이 늘어나 이 씨는 지난 4월부터 월 616시간의 활동보조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낮에는 여성 활동보조, 야간에는 남성 활동보조를 2교대로 쓰는 것이 가능해졌다.
전에는 월 230시간에 불과해서 그 이상의 시간은 활동보조인의 ‘의리’에 기대야 했다. 활동보조서비스 추가급여 사유에 취약가구가 생기기 전까지 이 씨는 추가급여를 받을 수 없었다. 동거인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말이 되지 않았죠. 활동보조를 처음 신청했을 때 아들이 7살이었는데, 어떻게 저를 보조하나요? 그래도 동거인이 있어 안 된다는 거예요. 요즘은 시간이 좀 늘어나서 상황이 나아진 것 같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부문이 많아요. 부모들은 본인부담금 때문에 아이의 활동보조 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반기지 않죠.”
식비만으로도 수급비가 부족해서 이 씨가 옷을 사거나 문화생활에 쓰는 돈은 거의 없다. 옷은 시장에서 가끔 만 원에서 만 오천 원 정도 하는 티셔츠나 바지를 산다. 문화생활은 문화바우처(가구당 연간 5만 원)로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게 전부이다.
“왜 저도 비장애인처럼 문화생활, 여가 생활을 즐기고 싶지 않겠어요? 몇 년 전에 서울시 장애인 무료해변캠프가 열리는 해수욕장에 가서 바닷물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몇십 년 만에 들어간 바다이니까요.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얼마나 즐겁게 웃고 있는지 몰라요. 입이 찢어져요.”
이 씨는 수급자로 살면서 가장 안타까운 점으로 아이의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해줄 수 없다는 것을 들었다. 이 씨는 지난해 아이의 대학등록금 마련을 위해 꿈나래 통장(저축 만기가 되면 저축한 금액의 50% 또는 100%를 지자체 예산, 시민·기업 후원금으로 지원하는 통장)을 월 3만 원씩 두어 번 넣다가 포기했다. 꿈나래 통장에 돈이 쌓이면 수급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아이가 성인이 되면 가족과 친척들이 돈을 모아 종잣돈을 만들어 준대요. 그 돈으로 공부를 하든, 사업을 하던, 유흥에 쓰던 그건 그것을 받은 사람의 마음이고요. 저도 아이의 미래를 위해 목돈을 마련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저축할 여력이 안 되기도 하지만, 수급 탈락을 생각하면 저축을 할 수도 없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재벌들이 하는 것처럼 차명계좌를 만들 수도 없고….”
또한 이 씨는 앞으로 다가올 수급 탈락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아들이 커서 취업을 하게 되면 현재의 부양의무자 기준으로는 수급 탈락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약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이라도 하게 된다면 금방 눈앞에 닥칠 일이다.
“지금의 부양의무제는 말이 되지 않죠. 실제로 부양 여부를 따지지 않고 부양의무자의 소득이 있으면 부양하는 것으로 간주해서 수급에서 탈락시키고 있잖아요. 이처럼 무조건 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누가 봐도 잘못된 것이죠. 만약 제 아이가 취직해서 제가 수급에서 탈락했는데 만약 아이가 부양비를 주지 않으면 제가 아이를 고소해야 하나요?”
이처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이 씨 가족의 ‘현재’는 유지시켜줄 수 있어도 ‘미래’는 준비할 수 없게 하고 있다. 더구나 그 ‘현재’는 문화생활과 여가생활을 포기해야만 지탱이 가능하다. 그리고 앞으로 이 씨 가족은 ‘미래’에 대한 뚜렷한 대비책이 없이 부양의무자 기준에 따른 수급 탈락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가야만 한다.
▲ 현재의 제도에서는 아이의 미래를 준비할 수 없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토로한 이 씨가 점심을 먹는 모습. |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