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29]어느 패밀리의 지x같은 ‘불뚝 성질’
시안(겨울)에 날씨가 봄같이 푹하고 추적추적 봄비같은 비가 연사흘 내리고 있다. 눈을 특히 좋아하는 나는 눈길을 걷지 못해 안달이 났다. 괜히 심란하고 기분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어머니가 소천召天하신 지 어느새 5주기를 맞아, 서울에서 형이 떡 등 제사음식을 싸오고, 논산에서 막내여동생 부부가 왔다. 그리고 우리 대가족의 코어core인 여동생이 광양에서 올라와 새벽부터 서너 종류의 전을 부치느라 부산했다. 산소에 갈 수 없어 거실에다 제상祭床을 차렸다. 급히 지방과 축문을 쓰고, 어머니를 기리는 소행사를 가졌다. 어머니와 72년간(72년이라니, 이게 어디 보통 세월인가?) 해로하시다 헤어진 지 5년 된 98세 아버지는 한켠에서 울고 계신다.
원래 제사는 돌아가신 날의 전날 자시子時(오후 11시-익일 01시)에 지내는 ‘헛제사’가 원칙이다. 오전에 돌아가셨으면 돌아가신 당일에 지내 고인의 식사를 거르지 않게 하는 것이라 했지만, 유교문화가 몽땅 망가진 마당에 누가 그런 걸 따질 것인가. 산 사람들의 편의대로, 낮이나 초저녁에 지낸들 누가 흉을 볼 것인가. 또한 부모 합제合祭도 예사이고,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은 또 무릇 기하인가. 따질 것이 전혀 못된다. 성인聖人도 여세출如世出이라고 세상 따라 사는 수밖에 없는 일. 어떻게든 부모의 돌아가신 날을 기억하여 총생(슬하 자식)들이 한자리에 모여 절을 올리고, 음식을 노놔먹는 행사만큼은 아직까지는 미풍양속美風良俗이라 할 것이다. 당신의 제사는 절대 지내지 말라는 아버지도 말씀은 안해도 틀림없이 흐뭇해 하셨을 것이다.
돌아가는 길 운전 때문에도 이제는 음복飮福도 맘대로 할 수 없다. 술 한잔 자실 줄 모르던 어머니를 위해 준비한 식혜를 나눠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오늘은 그 이야기 중의 하나. 우리 형제들(흔히 ‘동구간’이라 하나, 어원은 ‘같은 기운이 흐른다'는 ‘동기간同氣間’이 맞다) 피 속에 흐르는 유전자遺傳子 이야기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유전자가 심히 불량不良하다는 것에 이구동성異口同聲. '심히 불량한 유전자'가 무엇인가? 옆지기(아내와 남편)들을 대하는 성질이 못됐다는 것. 제대로 원활한 대화對話 능력이 절대적으로 부족, 옆지기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많이 준다는 것. 세련된 말로는 언어폭력言語暴力이겠다. 사랑하는 것은 확실한데, 배려하지 못하고 주제가 무엇이든 얘기하다 불쑥 ‘큰소리’를 낸다는 것. 본인은 너무나 이무러운 상대이기에 평상시처럼 얘기한다 하는데, 상대방이나 제3자가 들으면 영락없이 크게 화를 내는 것으로 보이는 것.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거의 하나같이 우리 형제자매도 모두 이런 ‘못된 성질’을 타고난 것인데, 지적을 하면 절대로 ‘인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 말하자면 꼬이고 서운한 마음을 쉽게 풀어주지 못한다는 것.
어떤 사람을 ‘성품性品이 좋다’거나 ‘성품을 본받을 만하다'고 하면 최상급 칭찬이다. ‘성격性格’은 호오好惡가 관계없는 객관적이 용어일 듯하다. 반면에 ‘성질性質’이나 ‘성깔’은 부정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러니 ‘성질머리’라는 말이 있을 것이다. ‘성질 한번 더럽다’ ‘성깔이 보통 아니다’ 등은 어떤 사람을 낮춰 말하는 흔히 쓴다. 나는 성품, 성격, 성질 중 어느 것에 해당할까? 가족이 아닌 친구나 선후배 등 제3자에게서 ‘성질이 엿같다’느니 ‘성깔이 지랄같다’는 말은 이제껏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성격이 좋은 편이고, 나아가 약간의 성품이 있다면 있을 것이다. 친구를 비롯해 남들에게는 칭찬을 듬뿍 맞는 성품(?)인데 말이다. 그런데 왜 유독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만 말로써 상처를 주는 것일까? 애정을 밑바탕에 듬뿍 깔고 있으면서도 불쑥불쑥 화를 자주 내는 것일까.
유일한 부계父系 친척인 숙부도 그랬다. 전주 중노송동에서 30년이 넘게 통반장을 하면서 이웃들에게는 천하에 없는 호인好人인데, 숙모에게만은 불쑥불쑥 말로 성질을 부려 돌아가시는 날까지 숙모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 비단 숙부만이 아니다. 아버지도, 큰형도, 작은형도, 셋째형도, 나도, 내 여동생 셋도 ‘한 성질’을 안고 태어났다. 솔직히 말하면 ‘더러운(천박한) 유전자’. 우리는 이를 ‘불뚝 성질’이나 ‘팩 성질’이라고 한다. 타고난 것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런 못된 말버릇을 지적하면 솔직히 인정하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겠다고 하면 좀 나을텐데, 그러지 못해 우리 부부를 비롯한 형제들의 부부싸움을 많이 봐왔다. 여럿이 있어도 눈치조차 안보니, 미칠 노릇. 분위기가 졸지에 싸해지고 민망해 눈돌릴 곳을 찾기 바쁘기도 했다.
어제 제상을 철거하고 점심을 먹으며 나눈 주제가 바로 이 ‘불뚝 성질’이었다. 유난히 부드러운 셋째형은 그렇지 않을 것 아니냐?고 했더니 '육십이 넘어 더 심해진다'며 형수가 요즘 속앓이를 많이 한다고 해, 씁쓸하게 웃었다. 네 오빠만 그런 게 아니고, 세 여동생도 그런 경우를 봤다. 그런데, 전혀 그러지 않을 것같은 작은집 네 자매도 그런 성질이 있다는 것이다. 두 제수씨로부터 그 말을 듣고 ‘절망’했는데, 나의 두 아들도 생각해보니 그런 것같다. 이게 ‘환장’할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 무슨 천형天刑인가? 문제는 (우리 성질꼬라지를 우리가 알기에) 노력한다고 하는데도 잘 안된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우리 할머니가 언젠가 나에게 말했다. “너그 아부지는 다 좋은데, 성질이 개x같다”고 했을 것인가. 27세 청상 어머니를 50년 동안 ‘진짜 효자’로 잘 모신 양반이 이런 말을 들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가정교육이 문제의 발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숱하게 부부싸움을 했지만, 손찌검 등 물리적인 폭력은, 고백컨대 나를 비롯해 형제 모두 없었던 듯하다. 그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자라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투를 의식하든 안하든 보고 배워진 것일 수도 있다. 유전자 탓만 하기에는 할 말이 없다. 둘째아들은 고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해병대 자원입대를 했는데, 22개월 동안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고참들의 언어폭력이었다고 한다. 크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온갖 쌍욕에 질린 아들은 (고참들이 무식해서 그런가하고) 대학을 꼭 가야겠다고 결심, 스스로 약속을 지키고 출세를 했다. 일상을 살면서 지근지처에 있는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에게 가족이고 이무럽다는 이유 하나로 말을 함부로 툭툭 뱉아 상처를 주는 것은 분명히 '죄악罪惡'일 것이다.
하여간 어제 점심엔 모처럼 ‘우리의 (더러운) 유전자(DNA)’가 우리 대代에서 근절돼야 한다는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동기간(동구간)에 이런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눠보라는 의미로 수백 년 제사를 지내는 전통과 의식이 내려왔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몇몇 양반만 빼놓곤 모두 다 못먹고 살 때였으니. 1년에 한두 번 부모의 기일에 만나서 맛있는 것 한번 제대로 먹으라는 의미로 제상을 거하게 차렸을까.'입은 화의 문이요(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혀는 몸을 베는 칼(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이라는 성어도 알고 있고, '오래된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예의를 차리자(구이경지久而敬之)'는 게 내 좌우명이건만, 부끄럽다. 그대 반성할진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