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쌈이라 하면
원할머니 보쌈과 놀부 보쌈 그리고 항아리 보쌈이 유명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김장후에 갓 담근 김치와 먹는 보쌈도 빼놓을 수 없는 보쌈이다.
잘 삶은 고기에 싱싱한 김치를 싸서 먹거나 방풍 장아치에 돌돌 말아서
먹으면 혀가 좋아서 가만히 있질 못한다.
낼름낼름 오물오물...아마도 혀의 발기리라.
이렇게 먹는 보쌈이 있지만 지난 시절에 난데없이 당하는 보쌈이 있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유속이나 습속의 일종인 보쌈의 유래는 이렇다.
사대부나 반가의 딸이 일부종사 하지 못할 기구한 팔자에 빠졌거나,
태생적으로 열락과 음란을 한없이 갈구하는 여신체에 대해 열기를 삭히는
모종의 방책으로 남자를 몰래 잡아서 하룻밤 합방시킨 것이 보쌈의시작이었다.
그런 보쌈을 당한 남자는 용광로를 소유한 요염한 여인의 품에 안겨
하룻밤을 보낸다.
그 보쌈의 습성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가 있었는데
성종조에 이르러 과부 개가금지법이 생기고 난 뒤부터 변화된 보쌈이 흥행했다.
과부개가금지로 인해 한창 밤에 꽃을 피울 청상과 이미 그 맛을 알아 달빛 교교한 밤이
한스러운 중년의 과부들이 모여서 보쌈계를 만들기도 했다.
저잣거리에 여색을 밝히는 한량이나 과거를 보러 온 청년등을 물색해
보쌈을 하고, 자기들끼리 제비를 뽑아 당첨된 과부는 보쌈으로 끌려온 남자에게,
그간 묵여두고 쌓아두었던 음기를 발산하였다고 한다.
보쌈의 원칙은 당한 놈이나 가한 뇬이 서로서로 신분을 밝히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불문의 규칙이 아니더라도 서로 통간한 남녀이다 보니 양쪽 다 부도덕한 작태를
저지른 건 사실이다.
그러니 이 사실이 두 사람외에 바같으로 나돌기라도 한다면
가문의 수치이자 치도곤과 물볼기를 면치 못할 죄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규칙이 없다 한들 스스로 입방아를 찧어가며
내가 누구인지 밝히기를 꺼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합궁에 기갈이 들었던 여인들이니 여때 자제하고 억제한 성에 대한 해소는
가히 폭발적이고 한을 풀듯 했을 것이다.
기교는 현란했음을 두말할 필요가 없고
수동적이었던 신체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었을 것이니,
평소 주색잡기에 능수능란했던 서생이라 한들 뼈가 녹는 쾌락이 아닐수 없는 탓에
체통을 뒤로하고 감창소리가 삐져 나왔을 것은 물론이다.
주체적인 여인 또한 자지러지고 읍소하는 듯한 교음과 허리질로
온 방을 끈적하고 질퍽함으로 채웠겠지요.
그 순간이 그랬으니 아무리 신분을 밝히지 않은 것이 원칙이었으나
암암리에 그들은 재회했다는 풍설이 있기는 하다.
재수없는 년은(스스로의 표현) 반년이 지나도록 제비뽑기에 낙방해서
애가 끓고 간장이 타는 마음은 걷지도 않았는데 문밖으로 발길이 옮겨졌을 것이다.
문틈으로 삐져나오는 교음은 움직이는 춘화도를 보는듯 격정을 볼러와서
손이 미끄러지듯 치마 폭으로 들어가 수전증 걸린 사람처럼 용두질로
그 미치고 환장할 순간을 달랬을 것이다.
(일하러 나와서 쓰다보니 시간만 자꾸 가고, 쓰면 쓸수록 자꾸 길어지고...급 마무리 함)
나의 이 난잡하고 음탕한 심정으로 생각해 보건데
그 시절의 재가금지법은 악법중에 악법이었다고 사료되나
보쌈이라는 관습은 아름다운 미풍양속은 아니었나 싶다.
향악에 버금가고 품앗이와 진배없는 그 아름다운 풍속은
왜 지금까지 이어지는 유속으로 남아있지 못하고
끊어진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도다.
월하밀회
춘화를 감상하는 여인들.
첫댓글 이런글 올리다
으느인간이 또
신고하먼 으쩔려고~~
지금은 다음에 세이봇이란 인공지능 로봇기계가 좋은글 나쁜글 다 골라서 정지를 먹이고 있다네..
나도 그래서 영구 정지를 먹은건데 다음측에 전화로 사정애기하고 다시는 그런 이미지 안 올린다고 약속 한다고 했는데
그것마져 그 기계가 판단한다는거야..
그런데 내가 그 로봇하고 어떻게 전화통화를 해야 하는지..
이제 이 세상에는 잉간들이 필요 없는 시대가 돼 부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