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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בֹא 보" : 1월 셋째 주 토라포션 in 5784
출10:1-13:16(To) , 렘46:13-28(Haft), 눅22:7-30,고전11:20-34(Brit), 막6:14-10:52(신약)
1부 예배 유니스 목사님
< 하바이타 >
출10: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하나님의 놀라운 손이 생생하게 나타나는 주간이다. 10장부터 13장까지에 걸쳐서 지난 주 우리가 다뤘던 일곱 가지 재앙의 본격적인 머리를 치시는 메어장의 세 가지 재앙이 찾아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그 모든 것의 결론, 유월절을 제정하시는 일이 있는 것이다. 정말 높은 차원에 해당하는 토라포션이다
이 토라포션이 진행되면서, 쉐밭월의 달이 차오르고 있다. 벌써 반달이 지나고 보름을 향해 가고 있고, 특별히 쉐밭월은 두 가지 에너지로 이루어져있는 달이다. 첫 번째 에너지는 지난 주 유대인 교육 기관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전쟁 이후에 키워야할지에 대한 안경을 보여드렸는데, 왼쪽의 안경이 바로 딘, 심판에 대한 에너지가 첫 번째 에너지였다. 15일 보름을 기점으로 이 뒤는 바로 헤세드, 사랑의 에너지로 전환되는 달이다. 15일이라는 것은 투 베 쉐밭, 쉐밭월의 15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아브월의 15일은 투베 아브라고 하는데, 그것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날이다. 아브월 15일은 사랑의 날이었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의 날, 이스라엘의 발렌타인데이라고도 불리는 날이었는데, 정확하게 반대되는 절기는 투베 쉐밭이다. 이 날은 이스라엘의 식목일로 나무들의 새 해라고 불린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나무의 새 해이다.
하나가 태어난 달이 쉐밭월인데, 그때 목사님께서 태어난 그 아기를 위해서 나무를 심으셨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투베 쉐밭이었다. 나무의 새해를 기점으로해서 분위기가 완전히 전환되는 달이 또 이 쉐밭월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이, 15일이라는 투베 쉐밭이 나무의 새 해라고 했는데, 이 나무는 근본적으로 선악의 지식나무를 뜻한다. 그래서 이 지식나무가 이제 생명나무로, 이 딘, 심판에 속한 것이 생명에 속한 것으로 바뀌는 새 해, 나무의 새 해라고 이야기한다. 또 쉐밭월은 먹는 것을 티쿤하는 달이다. 그래서 이번달은 좀 먹는 것에 집중하기 바란다. 나는 어떻게, 무엇을 먹고 있느냐? 나의 식습관은 어떤 것인가? 이렇게 집중해서 나의 먹는 행위, 먹음을 통해서 무엇을 티쿤해야하는지에 집중하시면 좋을 것 같다
이번달의 문자는 צ 짜딕이다. 기본적으로 의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번달은 특별한 달이다. 모세가 이번달에 신명기 말씀을 마지막으로 전하고 하나님께 간 달이다. 우리 교회에 바다 목사님께서 쉐밭월에 태어났다는 것은 우리 교회의 그 모든 것을 다 아주 특별하게 감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쉐밭월은 특별히 메세지를 전하는 데스티니를 가진 사람들이 태어난다고 한다. 특별히 물병자리를 이야기하는데, 유대인들은 열두 지파 중에 이 물병자리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특별히 문자, 의인에 대해 깨달은 자, 메세지를 실어나르는 자에 대해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물병은 물을 붓는 역할을 하는데, 아쉘 지파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메세지를 실어나르는 데스티니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한 가운데에 보 토라포션이 있다.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바로는 우리의 원수인데, 원수에게로 와라. 내가 거기 있다고 이야기하신다. 대적, 원수, 하나님이 같이 계신다는 신비스러운 이야기이다
욥1장에 보의 아주 중요한 인물이 나오고 있다. 욥이라는 사람을 한번 보겠다. 욥기는 42장이나 되는 아주 긴 성경이다.
욥1
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이 사람이 우스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짜딕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3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5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이 좌측의 세상에서 끝까지 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욥이 얼마나 짜딕인지를 하나님이 묘사하고 계씬다.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탄이 보 하고 있다. 하루라는 말은, 나무의 새 해라고 했다. 새 해, 로쉬 하샤나는 심판의 날, 나팔절인데, 여기에도 이 하루, 심판의 날이 나오고 있다. 이때 엘로힘의 아들들과 사탄이 보 하는 일이 일어난다.
사탄도 천사, 메신저 중의 하나인데, 하나님 앞에 사탄이 왔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나님은 그냥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꼭 메신저들을 통해서 일을 하신다. 하나님이 직접 하시면 될텐데, 꼭 출애굽기에서도 모세와 아론이라는 메신저들을 통해서 일을 하신다. 하나님이 설정하신 셋팅 자체가 이렇다. 하나님은 직접 뭔가를 하시지 않고, 사람의 행동에 의해서 제한을 받으신다. 그래서 여러분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아셔야 한다. 여러분들이 땅에서 묶으면 하늘에서도 묶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할 정도로 엄청 강력한 사람들이다
힐송의 as you find me라는 찬양에 부족함 없으신 그분이 나를 원한다는 신비스러운 가사가 있다. 하나님은 완전하심에도 여러분을 필요로 하신다는 것이 믿어지시는가? 사실 잘 믿기가 어렵다. 그런데 사람의 행동에 의해서 하나님은 능력과 파워를 얻으신다고까지 이야기하신다. 왜 사탄은 보를 해야만 했는가?
사탄의 별명이 참소자이다. 사탄은 여러분의 행동, 사람들의 행동, 인류의 행동을 하나님 앞에 가서 참소한다. 끊임없이 지금도 참소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짜딕, 정의에 합당하면 하나님은 힘을 받으실 수도 있고, 그 힘을 가지고 통치하실 수도 있고, 거기에 제한되실 수도 있다. 여러분들의 어떠함을 통해서 사탄의 참소를 통해서 하나님에게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 또한 신비스러운 것이다. 나 때문에 제한받으신다는 것이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나를 봐서는 믿을 수 없지만, 거기에 성경에 써 있다고 한다. 성경에 써 있어서 믿지, 나를 봐서는 믿을 수가 없는 찬양이다.
성경에 써 있으니까 우리는 믿을 수 있고, 확신할 수 있다. 나를 봐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 신비스러운 말이다.
시68:34 너희는 하나님께 능력을 돌릴지어다 그의 위엄이 이스라엘 위에 있고 그의 능력이 구름 속에 있도다
너희는 하나님께 능력을 트누, give라는 뜻이다. 힘을 들여라. 누가 누구에게 힘을 줘야하는가? 항상 입에 붙들고 사는 말이 힘들다는거 아닌가? 힘이 없으니까 힘든 것인데, 트누 오즈 레엘로힘, 너희가 하나님께 힘을 드려라. 주어야 한다는 소리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준호가 아무리 똑똑해도 하나님이 준호의 스마트함을 필요로 하실까? 북주가 아무리 끼가 많아도, 하나님이 그 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꺼이 사랑 때문에 우리에게 제한받기로 택하셨다. 사탄과 천사들이 하나님 앞에 서서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말씀드릴 때 하나님이 능력을 얻으신다고 되어있다
욥1
7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감찰사이다. 여러분에게도 지금 와서 우리에게 참소할 거리를 가지고 하나님께 가려고 준비중이다. 사탄은 이스라엘을 참소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서 있다. 이 땅을 두루 다녔다는 말은, 전통적으로 땅은 이스라엘 땅이고, 우리의 마음을 가르친다.
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의인, 짜딕, 이 아쉘의 달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 그 의인을 하나님은 사탄에게 이야기하신다. 하나님은 왜 갑자기 사탄에게 욥을 주의하여보라고 긁어부스럼을 만드셨을까?
창22
20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리어 이르기를 밀가가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밀가가 자녀를 낳았다고 한다. 이 일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삭의 아케이다 사건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서 주님을 드린 이후에 자녀를 낳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삭을 드리는, 하나님의 제물을 바치는 사건 이후에 아브라함에게 이런 소식이 들려온다.
21 그의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형제는 부스와 아람의 아버지 그므엘과
바로 우스 사람 욥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스 땅에 욥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욥을 등장시키고 계신다. 아브라함과 같은 가문에 태어나서, 하나님이 욥을 특별히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이 일 후에 특별히 욥을 기억하라
사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정의를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사탄도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 정의, 짜딕을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무엇을 가지고 이야기하는지 보자.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정의의 법도, 기준이 있다.
레27
9 사람이 서원하는 예물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 가축이면 여호와께 드릴 때는 다 거룩하니
10 그것을 변경하여 우열간 바꾸지 못할 것이요 혹 가축으로 가축을 바꾸면 둘 다 거룩할 것이며
제물을 함부로 바꾸면 안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준이다. 그런데 이삭을 바친 사건, 그 일은 어떤 사건이었는가? 제물을 바꿨다. 이삭이었는데, 걸린 양으로 바꾸는, 변개하는 일을 한다. 사탄은 그것을 따진 것이다. 하나님 정의롭지 못하십니다. 왜 제물을 교체하십니까? 이때 바로 사람의 행동에 의해서 하나님은 힘을 일으신 것이다. 사탄의 목적은 멸망이다. 사탄이 달콤한 것으로 우리를 유혹하지만, 사탄의 궁극적인 목적은 멸망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욥이라는 의인을 두신 것이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을 내어주셨다. 그리고 그 변개한 기준에 대해서 교체하신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지극한 행복을 주고자 하시는데, 이스라엘에 대한 사탄의 참소가 요만큼이라도 있으면 정의롭지 못하며,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능력이 제한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욥이라는 의인을 대신해서 사탄에게 넘겨준다. 이것은 마치 아사셀 염소와 비슷하다. 욤 키푸르 때 아사셀 염소에게 안수하고, 광야로 내어준다. 그 죽음, 사탄에게 내어준다. 그리고 거기에 사탄이 집중하는 동안에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시고, 그 숫염소를 다시 구원하신다는 유대인들의 사고가 있다. 이 사고는 나니아 연대기에서도 잘 볼 수가 있다. 셋째가 하얀 마녀의 터키 젤리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얀 마녀가 악한 존재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동족들을 배신하고 하얀 마녀에게 간다. 분명히 의롭지 못한 죄인의 행동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아슬란이라는 사자가 자신이 그 목숨을 대신하여 내어주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때 마녀와 아슬란의 대화를 찾아보았는데, 굉장히 재밌다. 마녀가 이런 말을 아슬란에게 한다. 당신은 심오한 그 마법을 잊으셨나요? 아슬란이 대답한다. 한번 말해보거라. 바다 황제의 홀이 뭐라고 새겨져 있나 말해보라는 것입니까? 적어도 당신은 황제께서 나니아에 내린 마법쯤은 알고 계실 것이다. 모든 죄인은 나에게 속하며, 죽일 권리도 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법대로 이 피를 거두지 않는다면 온 나라가 뒤집혀 망하게 될 것이다. 이 마녀는 하나님 앞에 보 해서 정의를 가지고 참소하고 있다. 결국에 이 아슬란은 사자의 갈기가 다 깍이고, 돌탑 위에서 죽어간다. 그런데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 것이다. 하얀 마녀가 더 이상 에드문드의 피를 요구하지 않는다. 넘겨준 의인의 생명은 죄인의 생명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 토라포션에서 욥을 왜 거룩하는지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욥이라는 의로운 자를 하나님은 사탄에게 넘겨주심으로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기 원하신다. 그리고나서 하나님은 부활한 욥에게 일곱배나 더 축복하신다.
이 아사셀이라는 염소의 의미가 아주 재밌다. 의미적으로 이런 말이 있다. 완전한 제거, 그리고 내어주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아사셀 염소가 왼쪽의 세상, 좌측, 심판의 세상, 아쉘의 달, 쉐밭월의 처음을 담당하는 에너지, 이 좌측의 끝을 담당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the other side의 포션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얀 마녀의 몫이다. 사탄의 몫이다. 아까 대사 중에 나는 이 나니아의 반역자들을 합법적으로 포로로 끌어올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욥을 그 사탄에게 내어주신다.
유다가 바이가쉬하면서 내가 기꺼이 담보물이 되겠다, 기꺼이 내어주는 자가 되겠다고 이야기한다. 사랑이라는 것이 뭘까? 아기들이 아프면 엄마들이 그런 말을 한다. 그 아픈 것은 엄마를 주고, 너는 나아라. 기꺼이 내가 너 대신에 넘겨준 바 되기 원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장애우의 아픔을 같이 느낀다는 것은 동정심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내가, 하나님이 지금 그 역할을 감당하고, 그 몫을 담당해주고 있는 저 사람 대신에 기꺼이 내가 저 처지에 놓인다면 내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아픔을 같이 느끼는 것이다.
롬5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욥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이 내어주는 사랑, 기꺼이 넘겨주는 이 사랑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확증이다. 그런데 보에서 나타난 세 가지 재앙, 메뚜기, 어둠, 장자의 재앙은 여기에 대해서 철퇴를 날린다. 나는 절대로 내어주는 사랑 하지 않을거야. 담보물이 되지 않을거야. 너 처럼은 되지 않을거야. 난 살아남을거야. 이것이 메뚜기, 어둠의 재앙이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같은 재앙으로 보고 있다. 메뚜기가 온 땅을 덮어서 어둡게 된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 나온다
출10: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표징을 오토라고 한다. 알렢부터 타브까지, 나의 에트, 알파요 오메가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너희 중에 주기 위함이다. 레마안 슈티 오토타이 엘레 비크레보, 내가 알렢부터 타브이신 그 의인을 너희 가운데 슈티, 두겠다. 슈티는 아벨 대신에 주신 아들 셋이다. 아벨, 헛되고 헛된, 육신의 side에 속한 사탄의 몫을 다 넘겨주고, 새로운 부활 생명을 슈티,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끝에 가면 베키르보라고 되어있다. 내가 너희 가운데에 두겠다고 번역은 되어있지만, 사실 3인칭 단수이다. 하나님께서 바로 안에 이것들을 행하신다라고 되어있다.
지난 주에 바로에 대해서 심도있게 살펴보았는데, 바로에게는 없는 문장이 있다. 너의 병을 나에게 주고, 네가 살아라. 기꺼이 내가 너를 대신하겠다. 내가 넘겨준 바 되겠다. 바로의 인생에서, 계산기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다. 베키르보, 그 바로 가운데 주님은 그것을 두겠다고 하신다
참 아이러니이다. 나 같은 사람을 당신이 필요로 하고, 당신이 제한받고, 내 안에 주님이 거하신다니? 알렢부터 타브이신 그분은 바로 안에 내가 너를 두겠다. 그리스도는 다른데서 발견할 길이 없다. 내가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약하다고 인정하는 자들만이 그리스도를 발견한다. 저 인간이 왜 저렇게 사는지, 너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를 가진 자는 할 수 없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제주도에 가면 힐링이 되는가를 알았다. 고 아버지와 유 어머니의 대화를 보면 재미있다. 주고받으시는게 없다. 뭔가 이야기를 하면 핑퐁이 되어야 하는데, 그냥 유 어머니가 이야기하시면 말 끝났냐고 하고 아버지가 이야기하신다. 전혀 서로를 변화시키겠다는 의도가 없다. 어떤 분별심도 의도도 없다. 지난 주에 에너지체에 대해서 배웠는데, 머리, 말로는 도와주겠다고 하며 사랑이 나가는데, 내 마음 깊은 곳의 에너지체는 미움이 나가는 우리의 바로의 모습 중에, 고 아버지와 유 어머니의 에하드의 사랑, 서로를 절대로 변화시키려는 의도가 없는 사랑, 분별심이 없는 사랑, 그 에너지체 자체가 순수하고 깨끗하기에, 그냥 그분들과 있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되는 것 같다.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십자가를 너가 좀 지라고 한다. 거듭남에 대해서 배우면 너가 좀 거듭나라고 한다
이것은 가장 강력한 바로됨이며 가해자이다. 보 토라포션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는 토라포션이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고자하는 딘, 판단의 에너지로는 어떤 구원도 얻어지지 않는다.
2024년이 시작되었는데, 선거의 해이다. 전세계적으로 표를 행사하는 인구가 42억명에 해당된다. 11/5일에 미국 대선, 러시아는 3월, 우크라이나도 3월, 유럽은 6월, 방글라데시 대만 1월, 인도 4-5월, 줄줄이 선거가 예정되어있다. 선거철이 되면 이 딘, 심판, 분별, 의도가 아주 최고조를 찍는다. 내가 문제를 좀 해결해주겠다. 내가 변화시켜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 세상의 문제는 더 커지고 있다. 더 어둠 속으로 우리는 빨려들어가고 있다. 그것을 어둠의 재앙이라고 한다
출10: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어둠이 만져진다는 것이다. 요새 뉴스를 틀면 어둠이 막 만져진다. touchable한 흑암이 우리를 덮고 있다. 히브리어로는 더 무시무시하다. 주어 자체가 어둠이다. 어둠은 호쉐크라고 하는데, 아끼다라는 뜻이다. 나를 아끼는 것이다. 나를 너무 아끼기 때문에, 나를 내어준다!? 기꺼이 내가 너의 담보물이 되겠다!? 내가 사탄의 몫을 담당하겠다!? 내가 the other side로 넘겨지겠다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이다.
베야메쉬 호쉐크, 호쉐크가 끌어당긴다. 어둠이 우리를 빨아들인다는 뜻이다. 지지난 주에 많이 아프면서 내가 질병의 늪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주 보를 보면서, 내가 어둠에 빨려들어갔구나. 야메쉬라는 말이, 모세가 나왔는데, 모세는 물에서 죽을뻔 했는데, 빠져들어가는 어둠의 재앙에서 건져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마쉬아흐라는 단어가 나왔다. 아무리 일어서려고 해도,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어둠이 우릴 끌어당기는 상태, 온 인류는 어둠에 끌려다니고 있다. 어둠 속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부활하지 못한다고 되어있지만, 우리의 구원자, 알렢이요 타브이신 그분, 아슬란으로 대표되는 이 부활의 생명은 우리에게 지금 구원을 펼치시기로 작정하고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계신다
나니아에서 그 사자가 부활하게 된다. 두 자매가 부활의 장면을 목도하면서 자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마녀는 심오한 마법에 대해서, 정의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심오한 마법이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지. 마녀는 태초, 이후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 하지만 마녀가 케뎀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태초 이전의 고요와 흑암이 존재하던 그때를 조금이라도 더 내다볼 수 있었다면, 또 다른 마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거야. 의인이 반역자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면, 돌탁자가 깨지고 죽음 자체는 원상태로 돌아간다는 마법이지.
우리에게 정의보다 더 오래된 사랑의 마법이 존재하고 있다. 여러분에게는 주님의 궁극적인 일어섬, 쿰, 부활의 하나님의 plan이 존재한다. 욥은 그 이후에 엄청나게 많은 부활의 복을 받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우리의 가슴을 부활의 소망으로 열어야 할 것이다.
출10
2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복음을 위하여, 전하기 위하여, 이 모든 것이 다 복음을 위함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는 증인이 되지 않고는, 우리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는, 자기 부인을 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에다, 증인, 교회로 서라고 이야기하시는 것이다
3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
여기에 핵심이 있다. 바로는 끝까지 겸비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온통 교만한 자들로 가득 차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류를 치셨어도, 우리는 바로의 보좌와 영광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AI, 우주여행, 이 모든 자신감, 그런데도 이 땅에 학살과 미움, 사고, 죽음은 끊이지 않는 상태, 바로 메뚜기의 재앙이다.
5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 메뚜기가 네게 남은 그것 곧 우박을 면하고 남은 것을 먹으며 너희를 위하여 들에서 자라나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이며
메뚜기는 우박 재앙, 일곱 가지 재앙까지 초토화된 그 땅에서 살아남은 그 하나까지도 다 갉아먹어버린다고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이 메뚜기가 굉장히 재미있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ארבה 아르베 : 메뚜기
중간에 라브가 보인다. 내가 많다라는 뜻이다. 내가 많이 가지고 있다. 예쉬 리 라브, 나는 많이 가지고 있다.
14 메뚜기가 애굽 온 땅에 이르러 그 사방에 내리매 그 피해가 심하니 이런 메뚜기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라
메뚜기가 온 땅, 이 애굽, 좌측의 온 땅에 미친다. 끝까지 이 메뚜기가 차오른다는 표현이다. 이번 제주 여정에 목사님과 함께 낙천리가 예술인의 마을인데, 미술관을 하나 방문했다. 아버지께서 저희를 부르시더니 아주 심각하게 이야기하시는 것이다. 보 주간에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고 메세지가 있다. 지금까지 본 모든 예술을 통해서, 너희에게 뭐가 느껴지는가? 라고 질문하시면서, 여기에 사랑이 느껴지냐고 이야기하셨다.
미술관은 정말 아름답고, 예술의 끝, 좌측의 끝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고, 그 작가는 굉장히 유명한 작가였고, 제주도의 많은 건축을 디자인한 사람이었는데, 여기에 너희는 사랑을 느낄 수 있니? 여기에서 줌을 느낄 수 있냐고 했을 때 머리가 한대 맞는 느낌이 들었다. 좌측의 정점, 예술의 끝, 애굽 온 땅에 이른 메뚜기 재앙을 눈으로 볼 수가 있었다. 육체의 끝이 있고, 이 육체의 끝, 좌측의 끝이 있고, 사탄의 몫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소망하는 헤세드의 끝, 우측의 끝이 있다. 그것을 Home이라고 한다
제가 오늘 하바이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집으로. 라는 방향성을 나타낸다
단12:13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
우측의 몫에 대해서, the other side의 반대편에 있는 우측의 portion에 대해서 이야기하신다.
레케쯔 하야민, 오른쪽의 끝, 우리의 육체, 예술, 문화, 정치, 모든 인간이라는 활동의 끝이 있다. 고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바로의 끝까지, 세상의 탑까지 올라가서 그것을 다 넘겨주고 오른쪽으로 넘어와라. 이번에 가서 유 어머니께, 어떻게 우즈벡 선교사가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을 들으면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지도교수님의 총애를 받는 제자에서 교수가 되려는 찰나에 주님이 콜링하셔서,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우즈벡으로 감으로, 교수님과 인연이 끊어지고 아픔이 있던 것을 들었다
준호도, 우리 교회에 탁월한 사람들이 많지만, 세상의 끝까지 올랐을 때 그것을 포기하라는 말을 쉽게 저희 리더된 입장에서 제자들에게 할 수 없는 것들을 피부로 느끼면서,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the other side를 사탄에게 넘겨주고, 오른쪽의 끝으로 가기 위해서, 그 날에 오른쪽의 끝에 설 것이라는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모든 육체의 끝은 좌측의 끝을 가르친다
이번에 노량도 보러갔는데, 아버지 덕분에 아주 편하게 봤다. 거기에 저는 가장 인상깊었던 것이, 이 이순신의 불굴의 의지였다. 결코 이 전쟁을 여기서 끝낼 수 없다. 그때 고백했듯이, 여기서 좀 그만하고 싶었다. 테마가 그것이었다. 이쯤 되었으니 할만큼 했다. 그 테마가 저를 휘어잡고 있을 때, 그 메뚜기와 어둠의 재앙에 잠식당하고 빨려들어가고 있는 제가 노량을 보면서 아주 귀한 점핑을 하고 있었다. 이순신이 고 아버지가 환생을 했나 생각을 했다. 한번 물면 끝까지 놓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여기서 전쟁을 멈추면 다시 우리 민족은 왜군에 의해서 잠식당하게 된다. 우리가 이 전쟁을 여기서 끝내면 다시 왼쪽의 끝으로 가게 된다. 우리는 반드시 오른쪽으로, 고향으로 가야한다고 이야기한다.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오른쪽의 끝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사탄이 욥을 하나님께 참소할 때 썼던 표현이 있다. 욥이 아무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했겠습니까? 한번 뺏어보십시요. 아무 까닭없이라는 말이 free hatred. 히남이라고 한다. 그냥 꽁으로 하나님을 경배했겠습니까? 이익이 없는데도 하나님을 사랑했겠습니까? 우리는 어려움에 처하면 엄청 열심히 주님을 찾는다. 토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해석해보려고 하는데, 그 말씀 자체를 사랑해서인가? 아무 까닭없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토라를 멀리하고, 태평성대에는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사탄이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다. 욥이 아무 까닭 없이 하나님을 사랑했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도 아셨다. 그리고 좌측의 끝까지 채운 욥을 사탄에게 넘겨주셨다. 사탄의 portion을 반드시 넘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아보트들을 통해서 그런 고백들을 들을 수 있다. 내가 육신의 끝까지 갔습니다. 내가 은사주의자였습니다. 내가 토라를 이용했습니다. 당신 그렇게 악하다, 음란하다고 하면 네 제가 음란하다는 고백을 듣는다. 수치, 아픔을 그냥 안아버리는 것이다. 네 맞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탄에게 넘겨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진짜로 그 능력을 드리고, 선한 경향성으로 완전히 변혁되기 위해서 벌어지는 일들, 우측의 끝까지 가기 위해서 일어나는 일들이 뭐냐면, 그것을 순관 형제가 상번제 때 아주 잘 표현해줬다
순관 형제는 예술인으로서 좌측의 끝까지 가야하는 데스티니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 그런데 고 아버지께서 거기에 대해서, 그것을 다 넘겨주고, 좌측의 portion에 넘겨주고 그냥 우측으로 와라. 너는 아버지가 되어라. 너는 아버지를 최우선으로 놓아라.
이 좌측에 얼마나 아름답고, 애쓰고, 노력했던 모든 것들을 그냥 사탄에게 내어주고, 너는 이 집으로 돌아와라. 라브의 끝까지 간 것을 다 넘겨주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것을 보면서 타이렁과 쿵푸팬더가 생각났다. 순관이가 타이렁이 될뻔 했구나. 쿵푸팬더가, 여우 사부의 비법을 가르쳐달라고 왔는데, 비법을 열어보니 아무것도 안 써있었다. 정말 그것을 타이렁이 그 비법을 얻었다면, 좌측의 바로까지 차올랐을텐데, 순수 갈망을 가진 쿵푸 팬더는 여기에 대해서 순복을 한다.
절대로 놓아줄 수 없는 바로가 드디어 움켜쥔 손을 놓게되는 그런 일이 보 토라포션에서 일어난다. 그냥 수용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형길 형제가 샤밭 때 감사나눔을 한 것을 들어보았는데, 거기에 보면 굉장한 insight가 있었다. 자기 회사가 출퇴근 시작도 flexible해서 굉장히 좋은 조건임에도 지금까지 그것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몰랐다. 감사해버리면 더 이상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깊은 통찰의 감사 나눔을 했다. 감사해버리면 더 이상 피해자 코스프레로 그 아픔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너 수고하네, 짠하다, 대단하다, 불쌍하다,라는 그 위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자기는 거기에 대해서 한번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못했다고 고백했다. 어떤 약자, 수치 짓을 이야기한 것이냐면, 나의 아픔을 이용해먹는 약자를 이야기한 것이다. 이것이 가장 교묘하고 악랄한 바로의 수치짓이다.
나 살자고 뭘 주로 이용하냐면, 형길이는 자기가 짠하다라는 아픔, 나는 지금 피해받고 있고, 고생하고 있다는 약한 마음을 이용한 것이다. 우리는 보통 두려움을 이용한다. 그리고 아픔을 이용한다. 그래서 인정할 수 없고, 내어줄 수 없다. 그냥 내어줘야하고 토해내야 하는데,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
저는 메뚜기와 어둠의 재앙 속에서 계속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사건을 해결하면 저 사건이 벌어지고, 내가 제자들의 어떤 꼴까지 봐야 이것이 끝날까? 계속 사건에 치이면서, 노량을 보면 거북선이 침몰한다. 실제로 역사 고증학적으로 노량 해전에 거북선이 나타났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영화를 보면 거북선이 출현을 한다. 그런데 거북선이 침몰한다. 저는 그 침몰해가는 거북선을 보면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 메뚜기 재앙으로 여기저기서 사건이 터지는데, 치이다가 KO 당하고 있구나. 제발 일이 안 벌어졌으면 좋겠고, 해석할 수 없는, 일어설 수 없는, 통제할 수 없는 늪에 빠져버린 어둠에 빨려들어가는 상태의 거북선에서 제 자신을 투영해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제주도에 갔는데, 몸이 회복이 되어갈 때부터 이상하게 호흡이 안되고, 몸이 답답하고, 사지가 힘이 없는 증상이 있어서, 신랑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 목사님이 급한대로 이 방법을 써보라고 하면서, 허리의 요추로 숨을 쉬라고 하는 것이다. 허리로 숨을 들이쉰 후에 소리내서 입으로 토해내라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런데 제가 그것을 하는데, 제 호흡이 절대로 이것을 내뱉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다. 깜짝 놀랐다. 이것을 해야 사는데, 내가 내어주는 호흡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안 하고 있는 것이다. 형길이처럼 이것을 감사해버리면, 토해버리면, 더 이상 그 아픔을 이용해서 사랑받을 수 없다. 내 안의 그놈을 보면서 정말 놀랐다.
그런데 노량을 보러갔는데, 거기에 보면 이순신이 북을 치러 가는 그 사이 짧은 시간을 감독이 의도적으로 굉장히 늘려놨다. 그리고 모든 소리를 다 죽인다. 소리도 없고, 막 싸우고 있는 것도 정지를 시켜버린다. 북까지 걸어가면서 이순신은 자기보다 앞서간, 먼저 죽은 의인들, 자신의 동역자들의 모습을 본다. 그 의인들을 보는 것이다. 제가 그것을 이순신과 함께 걸어가면서, 그 의인들의 아름다움에 취하게 되었다. 그 게부라의 용기, 이렇게 이순신이라는 영화를 만드시면서까지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느끼게 되면서, 내가 가슴을 열어야 하는구나. 내가 뱉어내야 하는구나. 더 이상 나의 아픔을 뱉어내지 않고, 가슴을 열지 않고, 그것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내가 살고, 어떻게든 내가 사랑받고, 내가 인정받으려고 하는, 그래서 호흡을 토해내지 못하는 내 안의 바로의 그놈을, 그때 호흡하면서 토해내는 역사가 일어났다. 넘겨주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면서 확신했다. 이순신, 그 의인들은 여전히 살아있구나. 그 늪에 빠져서, 어둠에 빨려들어가게 될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지금도 응원하고 있구나. 고 아버지가 이 목감에서 정말 많이 힘들어하고, 재앙 속에 있는 자들을 다 오라고 하시더라. 아버지 집으로 오라고 하라. 가면 별거 없다. 아버지랑 삼시세끼 먹고, 두분의 티키타카를 보고, 그리고나서 너가 그동안 성취했던 것,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사탄에게 넘겨주어라. 그리고 그냥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라. 하바이타를 이야기하신다.
아무리 세상에서 인정받은 그 모든 것들을 아버지는 하나도 인정하지 않으신다. 그러면 정말 열받아서 가버리는 사람도 있다. 내가 이렇게 세상에서는 알아주는 사람인데, 아버지 밑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린, 돈을 아무리 벌어도 아버지는 인정하지 않으신다. 제가 놀란 것은 순관이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쌓아왔던 그 모든 것들을 넘겨줄줄 아는, 그리고 가슴을 열고, 아버지 집으로, 아버지가 되라는 부르심에 예스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막7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주님이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지금 이야기하신다. 그냥 사탄에게 다 내어주어라. 넘겨라. 너는 개다.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귀신을 축사할 수 있는 방법은 이 말이라고 했는데, 너는 개라고 했는데, 개들도 부스러기를 먹습니다라고 되어있다. 네, 제가 개가 맞습니다. 제가 좌측에서 성취한 모든 것들을 사탄에게 기꺼이 넘겨주겠습니다. 이것을 달렛이라고 한다. 이것을 우리가 그동안 배운 감사라고 한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귀신을 쫓아낼 수 있던 말, 바로 감사의 말이었다. 내가 개여도 좋으니 당신을 원합니다. 인정합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호두라는 말을 알 것이다. 감사로 숨쉬는 것이다. 감사로 내 안에 있는 모든 아픔으로 사랑받으려고 했던, 이용함을 통해서 내가 사랑받으려고 했던 것을 다 토해내는 상태를 호두라고 한다. 고 아버지가 순관이에게 이런 팁을 하나 주셨다. 너가 통제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일 때, 일단 pause해라. 일단 멈춰라. 숨을 한번 쉬어라. 라고 이야기했다.
아쉘의 달에 제일 배워야 하는 것은 호흡이라고 한다. 아쉘의 달에는 호흡, 공기가 요소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배워야 한다. 아주 실제적인 팁을 유대인들은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바로 호흡에서 축복까지 가는 법을 한번 배워보도록 하겠다. 아쉘은 먹는 달이라고 했다. 먹는 음식 앞에서 호흡을 멈춰보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하냐면, 축복문을 외운다. 급하게 먹는 것, 게걸스럽게 먹는 것들을 교정하는 방법이다. 음료를 마시거나 먹는 것 앞에서 바로 점심부터 시행해보시기 바란다. 이 말들을 계속해서 아주 천천히 하는 것이다.
"바룩 아타 아도나이", 나는 주님을 인정합니다. 당신의 토라의 말씀이 실제로 존재함을 믿습니다. 당신과 연결되기를 원합니다라는 갈망을 호흡하면서 되뇌이는 것이다.
"엘로헤이누 멜렉 하올람", 주님은 모든 복의 근원이십니다. 주님은 모든 우주의 왕이십니다. 그것을 의식적으로 호흡하라
"쉐하콜 니흐야 비드바로", 모든 것이 이미 와 있습니다. 우리가 달렛의 사람이 되면, 감사하게 되면, 마음을 열게 되면, 내가 움켜잡았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면, 모든 것이 이미 와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비드바로,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말이다.
이것이 먹을 것 앞에서 하는 축복문이다. 호흡하면서 축복까지 가는 말이다. 이것을 왜 할 수 없을까? 나는 감사하고 싶은데, 기뻐하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싶은데 왜 안될까? 그것에 대해서 설명한 것이다. 나는 토해내고, 넘겨지기 싫어하는, 내 안의 아픔을 붙잡고 있는, 그것을 이용하는 그놈이 내 안에 있구나. 그것을 놓으려고 하지 않는 고집을 내가 피우고 있구나. 그것을 내어놓자 모든 것이 있었다는 것을,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구나. 온 세상이 사랑이라는 것이구나
아픔은 절대로 이용당해서는 안된다. 아픔은 아픔이어야 한다. 아픔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안된다. 몇년 전 세월호 사건 때문에 얼마나 그 아픔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는가? 지금은 세월호 사건, 좌파가 이용했던 노래만 들어도 아주 기분이 안 좋아지는데, 아픔을 그냥 아픔으로 느끼지 않고 정치적으로 단독자가 이용한 것이다. 순수하게 두려움을 인정하고, 아픔을 인정하자. 그럴 때, 아파하는 자에게 주님은 오실 수 있다. 아파하는 자에게 주님은 오라, 고 이야기하실 수 있다. 아픔을 그냥 인정할 때 우리는 진정한 예술, 아버지 집의 예술을 이뤄낼 수 있다
먹는 것을 향한 아쉘의 조하르에 이런 말이 있다. 의인은 만족을 위해서 먹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이, 이 말이 진짜 의미하는 것, 만족을 위해서 먹는다는 말은 의인은 만족이 있는 곳으로부터 먹는다는 말인데, 먹는 것을 이미 시작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만족해한다. 먹는 행위는 결핍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완전하고, 이미 성취한 상태에서 먹는 행위이며, 그래서 이미 배부른 상태이다. 이미 배부르게 되시길 축복한다. 이때 진정한 예술의 끝이 나오는 것이다
전쟁이 터진 후의 연설을 기억하는가? 아들이 음악 축제에 참여했다가 한쪽팔을 잃은 어머니가 했던 연설이다. 그때 했던 그 어머니가 최근에 다시 연설을 했다. 이런 시를 쓰셨다. 아픔을 통해서 그것을 이용해서 사랑받으려는 생각이 전혀 없는 의인이 하는 시를 한번 들어봐달라
전쟁은 이미 100일이 넘어섰고, 한쪽 팔을 잃은 청년의 어머니가 한 유엔에서의 연설인데, 시를 읊으셨다. 이 시를 평화 선교사님이 번역했다.
one tiny seed. 하나의 작은 씨앗
어느 한 자장가는 이렇게 노래하죠. 우리가 어른이 될 때까지, 우리의 어머니들은 천개의 눈물을 흘리신다고, 너는 지난 67일 동안 100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랬죠. 그리고 저기, 저쪽 건너편에 나와 같은 한 여인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 여인이 누구냐면 가자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여인을 바라보면서 지은 시이다. 그 여인은 나와 닮았습니다. 우리는 비슷해요. 그리고 그녀도 저 처럼 지금까지 울고 있습니다. 이 눈물의 바다는 왠일인지 다 같은 맛이네. 우리는 이 눈물을 다 모아 소금을 제거하고, 절망의 사막이 된 우리의 마음에 부을 수는 없는 것인가요? 공포, 트라우마, 고통, 전쟁, 그러나 소망으로 쌓인 작은 씨앗 하나를 우리 마음 속에 심어 그 씨앗에서 무엇이 나올지 같이 한번 보시지 않을래요? 50년 후에 저는 저 건너편의 나와 닮은 그 여인과 같이 앉아 맛있는 차를 함께 마시고 있지 않을까요? 달콤한 차를 너무 많이 마셔서 이는 다 빠졌지만, 한바탕 웃음을 나누고 잇지 않을까요? 우리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고, 얼굴은 자글자글 주름 투성이가 되어있겠지요. 아들들은 손자를 안고 있을 것이고, 우리 아들들 중 한명은 팔 하나가 없겠지요. 그러나 무슨 상관일까요 팔이 두개가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 모든 것은 꿈일까요, 환상일까요, 예언일까요?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작은 씨앗입니다.
우리의 땅은 메뚜기, 어둠 재앙으로 덮혀있다. 그래서 우리의 아픔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보다는 그것을 이용해서 내가 살아남기 바쁘다. 그러나 이 시의 진동을 느껴보셨을까? 마음을 연 자, 아픔을 이용하지 않는 의인의 진동 소리를 들으셨는가? 인질과도 같이 우리의 영혼은 잡혀있다. 너무 완강하고 고집이 세서 절대 내어주기 싫은 바로는 늙은 왕처럼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 이 인질을 해방하시지 않겠는가?
오늘 하바이타라는 영상을 보겠다. 가이사랴 원형 극장이라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대규모 콘서트가 있었다. 인질을 아버지가 계신 오른쪽의 세상으로 돌려달라는 진동이 있는 영상이다. 모두 자원봉사로 모인 뮤지션이다. 억류된 인질들을 고향으로 보내달라는 청원을 하고 있다. 이 진동을 느끼기 원한다.
노량에도 북소리가 나오고, 여기에서도 북소리가 나온다. 마지막에 늙은 왕이, 원수의 수령이 북 소리 좀 어떻게 하라고 하면서 북소리를 못견뎌하고 최후에 자결하는 일이 있다. 여러분의 그놈이 있다. 우리 안에서 나를 죽이는 그 원수를 어떻게 죽이실 원하시는가? 여러분이 내는 진동은 어떤 것인가? 아픔을 이용하고 내가 사랑받고자 하는 저질스러운 진동을 다 토해내자. 다 넘겨주고 집으로 돌아가자.
이 북소리의 진동이 이제 나의 소리가 되어서, 늙은 왕을 죽이고, 정말 새롭게 살게하여 주시옵소서. 아픔을 이용하는 수치떠는 짓은 그만하고, 진정한 진동을 통하여 이 땅을 구원하는, 재앙으로 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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