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년 1월, 추고천황 서거후 9개월만에 서명천황이 즉위한 것은 백제 개로왕의 아들인 계체천황계에서 백제 무왕의 아들인 서명천황계로 교체가 저항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元年春正月,癸卯朔丙午,大臣及群卿共以天皇之璽印,獻於田村皇子.
630년 1월 세농황제의 딸인 보황녀(寶皇女; 594~661)를 대화조정 황후로 세웠다.
보황녀는 뒤에 황극천황(皇極天皇)로 등극하고 제명천황(齊明天皇)으로 다시 등극했다.
보황녀는 서명천황과 결혼하여서 갈성황자(葛城皇子 = 天智天皇 614~671)와 간인황녀(間人皇女; 618~664), 대해인황자(大海人皇子; 天武天皇 622~686)를 낳았다.
二年春正月,丁卯朔戊寅,立寶皇女為皇后. 后生二男一女.
一曰,葛城皇子.近江大津宮御宇天皇. 二曰, 間人皇女. 三曰, 大海皇子. 淨御原宮御宇天皇.
보황녀의 존칭은 천풍재중일족희(天豊財重日足姬)다.
다카라왕(寶王)은 다리백제의 황후 칭호다. 그래서 서명천황의 모후인 누가데 황녀도 역시 보왕이라 칭했다.
족희(足姬)는 다리백제(帶日, 足日) 출신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그녀의 부왕인 지누왕(茅渟王)은 당연히 다리백제의 인물이며 세노황제(泉皇帝)다.
제명천황(齊明天皇 天豐財重日足姬天皇)
655년 제명천황이 아스카(飛鳥) 이다부키궁(飛鳥板蓋宮)에서 다시 한번 즉위했다.
元年春正月,壬申朔甲戌,皇祖母尊即天皇位於飛鳥板蓋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