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83,「상강」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국화주 담그시는 구절초 시린 허리
은비녀 머릿결에 서리 내린 어머니
모두가
잠든 새벽녘
맨발로 오시었네
- 김재용의 「상강」
은비녀 머릿결에 하얗게 서리 내린 어머니, 구절초 시린 허리로 국화주를 담그셨다. 늦은 10월 첫서리 내린 상강, 모두가 잠든 새벽녘 어머니가 맨발로 꿈 속에 오셨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시리도록 절절하다.
상강과 어머니를 동일시했다. 어머니란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지아비를 위해 국화주를 상강날에 정성스레 담그셨던 어머니이다. 이젠 아버지도 어머니도 자신을 세상에서 완성시키고 떠났다. 시인은 상강날 국화주를 담그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시를 썼으리라.
나이가 들어도 어머니 앞에서는 한없는 어린애이다. 내가 없었던 어머니이다. 결혼 전엔 여성으로 결혼해선 엄마, 지어미로 나이 들어선 딸로 그 몫을 다 해내신 어머니이다.
애절하고 애틋한 효심 이것이 시가 아니라면 시는 생명을 다했으리라.
첫눈은
은유로 찾아오는
느낌표다
선녀처럼 내려와
천사같은 마음으로
단 한 번
순결을 주고
사라지는 마침표다
-구충회의 「첫눈」
첫눈은 은유로 찾아오는 것인가. 창을 열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느낌표를 바라보고 있다. 선녀처럼 내려와 천사 같은 마음으로 단 한 번 순결을 주고 마침표로 떠났다.
올 때는 느낌표요 갈 때는 마침표이다. 이런 만남과 이별도 있는가. 그냥 갈 일이지 단 한 번 순결을 주고 가다니, 마침표를 찍고 떠나다니 참으로 야속하다.
노시인은 첫눈 같은 인생을 말하고 싶었으리라. 허무한 인생을 그렇게 표현했는지 모르겠다. 정을 주고 떠나는 것이 인생이 아니더냐. 그렇다. 세상에 태어남은 느낌표요 갈 때는 마침표이다.
인생을 첫눈으로 갈파한 시인의 인생작이다. 시는 첫눈이다.
-주간한국문학신문,202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