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 장판 밑의 봉투
엄동설한이 실감나는 한파가 온날
오랜만에 처가를 방문하였다.
90세를 넘긴 장모가 힘겹게 맞이하며
따뜻한 아랫목을 내 주었다.
아랫목은 장판이 누렇다 못해
거뭇거뭇하게 변해 있었다.
기름 보일러가 설치 되었음에도
늘 땔감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장모다. 뒁구는 땔감이 아깝고, 비싼
기름이 아깝다는 노인의 지론은
누구도 꺾지 못한다.
세월의 흔적 만큼이나 변한 비닐
장판은 장인의 사후에 몇 번 바꾸지
않은 참 오래 된 장판이다.
" 장모님! 혹시 장판 밑에 뭐 넣어둔 것
없어요?"
" 없지"
"혹시 넣어둔 것 있으면 탈까 봐요."
농담으로 건넨 말에 힘없이 대답하는
장모와 아내의 눈빛은 옛날을 생각하 듯
잠시 정적이 흘렀다. 순간 30년도 훨씬
전 일이 문득 생각이 났다.
건설회사 특성상 한 동안 객지생활
하던 때가 있였다.
오랜만에 집에 도착하여 밤 늦도록
아내와 이야기를 하던 날 어느 순간
심야의 적막을 깨트리는 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불길한 예감이 든 전화였다.
수화기 넘어 언듯언듯 들리는 소리는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수화기를 잡고있던 아내는 수화기를
던지 듯 내려 놓더니 빨리 처가로 가자고
하였다. 넋이 나간 모습의 아내는
처가가 가까워 질수록 " 아빠! 안돼!"를
연발하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백열등이 희미하게 밝혀진 현관
밖으로 안방에서 들려오는 통곡이
들렸다. 나는 차마 선듯 들어설 수
없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안방으로
들어서니 잠옷바람에 반듯하게
누워있는 장인을 볼 수 있었다.
장인을 부여잡고 통곡을 하고 있는
장모는 평상 시 말 도 크게 하지 않던
분이었다. 그런 분이 숨을 거둔 장인의
시신을 붙잡고 절규하듯 목놓아 몸부림
치고 있었다.
가슴에 손을 대어보니 따스한 체온이
그대로 전해져 왔지만, 내가 보아왔던
그 분 장인은 이미 이 세상이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병원에서
사망 진단을 받고 도착한 상황이었다.
장인이 담뱃갑 속지 은박지에 쓰다 그친
생활 일기가 옆에 뒹굴고 있었다.
장인은 이 일기를 쓰다가 갑자기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다가 그대로
쓰러젔다고 했다.
그 때 나이가 55세 였으니 요즘으로
보면 한창 때다.
갑작스런 사별의 아픔은 장모는 물론
장녀인 아내와 당시 어린 여섯의 남매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목놓아 울던 장모의 그 슬픔엔 줄줄이
딸려있는 자식들의 장래를 혼자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막막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상하게 종가집의 며느리인
자신을 그림자 처럼따라 다니며 돌봐 준
남편의 빈 자리가 너무 클 것 같은 암담함을
오열로 나타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허무하게 떠난 장인은 정이 많았고
존경 받을 만 한 분이었다.
처음 아내와 첫 만남 후 처가를 방문 했을 때
생각나는 게 있다. 한 밤중에 인사하러 갔을 때
현관에 들어서는 나의 손을 잡으며 웃음으로
맞이하며 아랫목을 내어주던 분이다.
그리고 마실나간 장모를 대신해 따끈한
정종과 푹삶은 족발 안주로 나에게 술잔을
넘치게 따라 주던 그 어른 이었다.
결혼 후 격없이 대해 주었고 과분한
사랑을 주었다. 이 받은 사랑을 갚기도 전에
그 분은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너무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였기에 슬픔을
느낄새도 없이 상을 치루어야 했다.
처가의 뒷산에 모시고 뒤돌아 서는
발길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있었다.
상을 치루고 장인의 흔적을 하나 둘
정리하고 있었다. 매일 쓰던 담뱃갑 속지의
은박지에 쓴 생활 일기는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큰 딸이 처음 발령받아 객지에서
당신에게 쓴 편지들은 물론, 문서들과
모아둔 영수증을 볼 때 소탈한 성격과는
또 다른 삶을 산 것 같았다.
장인이 쓰던 방을 도배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 장판을 들어 내는데 낌새가 이상한
대봉투가 나왔다.
그 봉투 속엔 작은 소 봉투가 8개가 나왔다.
소 봉투속에는 각기 다른 금액의 현금이
들어 있었다. 겉 봉투 애는 당신 마누라
이름도 써 있고 7남매의 이름이 각기
적혀 있었다. 돈이 들어오는 날에 배분하여
각자의 봉투에 넣었을 것이고, 돈 쓸일
있을 때마다 그 여덟 봉투에서 각기
꺼냈을 것이다. 학교 등록금은 각자
봉투에서, 우리 딸 유치원 입학 기념비는
큰 딸 봉투에서 꺼냈을 것이다.
무엇보다 쓸 비용은 각자 여건에 맞게
비중있게 넣어둔 게 합리적인 처세로
여겨졌다.
수십년이 지났지만, 그때 그 현장은
큰 울림으로 다가 왔었다.
색바랜 장판지의 온돌방이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었다. 그 분이 있던 그
자리가 더 뜨겁게 느껴진 어느날
그 무렵에 먹던 고구마에도 목이 메인
날이있었다. 끝.
첫댓글 따뜻한 울림을 주는 글 잘 읽었습니다.
뜨끈뜨끈한 시골 아랫목과 장판 밑에 숨겨진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이 함께 어우러져 이 엄동설한에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글이네요.
시골 아랫목의 추억은 참 많지요. 그 때만
생각하면 아련한 추억이 떠오름니다.
여백님의 따뜻한 댓글도 엄동설한 추위를
데워줍니다. ㅎㅎ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우리 어렸던시절을 생각나게 합니다.ㅎ ㅎ
우리 불쌍한아버지 위암 59세에 별세 ᆢ
그시절 치료도 못하고 드실것도 못드시고 가신 가엾은 아버지.
고생하시고 가신 그분들의일생이 한이 맺힙니다.
간혹 아버지생각 하면 가슴이 찡 ᆢᆢ 합니다.
옛날 어른들 50대이면 요즘 생각하면, 젊은
나이 같이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 때는 상
어른으로 생각했습니다. ㅎ이렇게 좋은 세상
보지도 누리지도 못하고 가신 어른들이 참
불상합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이들면 당신은 힘들어도 쓰지 않고
둘아 가시고 나면 남은 가족을 위해
남겨둔 현금이나 예금있습니다.
사망신고하면 상속재산조회 접수번호 줍니다.
혹여나 하면서 금융조회하면
모르는 금융잔고가 나오더라구요.
대부분 옛 어를들은 당신 어려울 때를 생각해
남모르게 그렇게 비축하고 저축했던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행위는 속이 찬 분들이고
노름으로 재산 탕진 한 사람에 비하면 훌륭한
처세로 보여집니다.날씨가 춥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십시오.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맨 마지막 부분 ㅡ
ㆍ끝ㆍ ㅡ이라는 글짜에 눈물 한 방울 뚝!
떨어트리고 갑니다
왜? 귀한 눈물을 떨어 트리셨나요?
귀한 발걸음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작은등대 달꼼한 눈물은 감동의 눈물이고 슬픈 눈물은 짜다던데 ㅎ ㅡ사실인지는 잘 모름/
저는 사탕보다 더 단 눈물을 떨어트리고 갔는데 아무도 모르셨군요
@별 아띠 감사합니다. 자주오십시오.
비슷한 경험이 있는 저로서도 가슴에 와닿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시군요.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에 유의하십시오.
작은등대님의 처가에 대한 애잔한
이야기이고 자서전이로군요.
이래서 제가 섬세하시다했구요.
옛날로 돌아가 봅니다.
제가 큰 사위로 그 당시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 만큼 저에 대한 기대도 있었고 사랑믈
받았습니다. 생각하면 아쉬운 그 시절입니다.
날씨가 고르지 못합니다.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작은등대 저의 어머님께서도 남편한테 어지간히도 큰사위라 잘 해주셨는데
그것을 봐서 그런지 저도 사위 오면 사위 혼자 찜질방에 불 짚혀주는데
ㅎ 히안한 것은 뉴질랜드 사위가 온돌방을 좋아한다는 것이 이상~하고 빠꼼~하다는 것이지요
@별 아띠 아무리 외국인 이어도 취향에 따라 틀릴 것
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외국 풍속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ㅎ
외국인 사위 취향 마추기도 힘들텐데,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작은등대 가만히보면 전생에 한국인이었나봐요
근디, 10년이 훨~ 넘었는데도 웬~!한국말은 못하는지
자상하고 셈세하신 장인이셨습니다 일일히 봉투를 만드신것은 작은 혜택이나마 골고루 보여 주시겠다는 의지가 들어있고 그런집안의 자녀들역시 성실하게 자라기 마련입니다
그당시 그 행적을 보고 책임감이 있으신 분이라
생각했었지요. 그래서 많은 자식들 가르치고
생활 했다고 생각됩니다. 감기 조심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장인 어르신의 사랑을 더 받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읽는 내내
저희들도 아쉬운데 큰 사위이신
등대님이 어떠했을까 감히 짐작해봅니다.
추억이 깃든 비닐 장판에 얽힌 사연이 아련합니다.
구 순의 장모님께서 아직도
생존하시니 그나마 위로가 되겠습니다.
기온이 뚝 차가워졌습니다.
건안건필 하시기를~~
지금은 제가 장인이 된 입장으로서 가끔
사위에게 나는 어떠한가? 생각을 해 보는 날도
있습니다. 우리 장인 만큼의 인간미를 못 느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참 좋은 분이었고 정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장모께서도 이젠 몸이
성치 않아 힘들어 합니다. 세월은 모든 것들을
변하게 합니다. 늦은 시간에 감사합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에 유의 하십시오.
^^;
뜨끈하다 못해 검게 그을린 아랫목 구들장.
아랫목은 뜨거웠으나
공기는 차가워 콧등은 늘 시렸던 어릴적 방안.
구들방에서 발견한
아버님의 은박지 일기와
꼼꼼히 따로 챙겨 숨겨 놓으신
귀하디 귀한 장판밑의 금일봉.
일찌기 가셨지만
등대님의 기억속에 비친 장인 어른은
정이 많아 따뜻하셨던 어르신.
그래서 등대님도 장인 못지 않게
인간미와 정이 많으실 분~! ㅎ
*
아름답다 못해
마음이 아련한 이야기입니다.
*
예전엔, 개어 놓은 이불속 사이
장롱밑 구석 밑바닥
장판 사이에 돈을 숨기셨전 어르신들.
그리고는 숨겨 놓으셨던 것도 깜박 잊으셔서
결국은 자손들이 찾아 썼다던 웃픈 이야기들.
*
마음이 부자이신
가족의 화목함을 느끼는 고운 글입니다.
잘 읽었어요. 고마워요, 등대님.
처가에 가면 온돌과 보일러 겸용으로 사용하게
된 구조의 방입니다. 아들이 주유소를 하는데도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십니다. 아마 옛 생각은
노인들에게도 그리운 것을 행동으로 실행하는
느끼을 받습니다. 맞습니다. 은행을 몰랐던
어른들은 쌈짓돈 아니면 이불과 장롱 옷섶에
숨겨 두었습니다. 너무 과찬의 말씀 감사합니다.
이곳 한국은 혹한의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행복한 시간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