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굴의 삶' 눈물의 軍人 아파트 軍人가족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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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파트단지의 이름이 ‘보라매마을’이었다. 주민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집값 떨어지게 왜 군인아파트 같은 이름을 짓느냐.”
결국 이 아파트는 이름을 바꿔야 했다.
軍紀로 버티라고 하기에는 너무 낙후한 군인아파트.
민간의 개념으로는 벌써 철거했어야 할 건물이 태반이다. 세계 10대 군사대국 대한민국 군인가족의 거주 실태를 살펴봤다.
갈수록 취업난이 가중돼 ‘사오정’이니 ‘이태백’이니 하며 실업자가 속출하지만, 소위 3D 직종은 여전히 구인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아무리 돈이 없고 궁핍해도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일은 하지 않겠다는 세태가 만연한 까닭이다.
그런데 최근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 이른바 ‘4D 직종’이 생겼다. 바로 직업군인이다.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데다 멀쩡한 가족이 이산(Dispersion)의 아픔까지 겪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려면 군인의 가족 된 ‘죄’ 하나만으로 군인가족들은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월간중앙’이 지난 4월호에 소개한 ‘세대를 뛰어넘는 나라사랑 군대사랑’이라는 기사 내용 가운데, 열악한 군인 아파트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가 군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그 내용은 이렇다. 군인아파트 주변을 지나던 한 어머니가 어린 아들에게 “너 자꾸 공부 안 하고 말썽피우면 이 다음에 저런 데서 살게 된다”고 했다는 것. 이 글을 접한 군인과 그 가족들은 “창피하다” 그러나 “현실을 잘 반영했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반응은 또 달랐다. “설마 그 정도까지야…”였다.
사실은 어떠할까. ‘월간중앙’은 이번 기회에 군인과 군인가족의 거주 실태를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지난 김대중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2000~ 2002 군 숙소 3개년 개선 계획’ 이후 달라진 모습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렇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21세기 군의 정예화, 과학화를 꿈꾸는 세계 10대 군사대국 대한민국 군의 현주소는 그 위상이나 이상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면의 한 전방 사단 인근 군인아파트. 택시를 타고 무작정 “부근에서 가장 큰 군인아파트 단지로 가자”고 하자 기사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안내한 곳이었다. 그러나 택시에서 내리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5층짜리 5개 동이 들어서 인근에서 제일 크다는 군인아파트 단지는 흉물스럽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했다. 과연 저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을까. 세워진 지 정확히 27년째 된다고 했다. 내부 공개를 기피하는 군인 가족들의 조심스러움을 뚫고 가까스로 한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13평 공간의 그곳에는 군인 가족 4명이 살고 있었다. 방문 당시 대위인 남편은 부대에서 근무중이었고 여섯 살짜리 큰아들은 인근의 유치원에 가고 없었다. 집에는 아내 김모(33) 씨와 두 살배기 딸이 있었다. 저런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까 김씨는 거실 겸 아이들 놀이방으로 쓴다는 제일 큰 방으로 안내하고는 차를 내왔다. 제일 큰 방이라는데, 찻상을 둘러싸고 기자 일행 2명과 김씨가 둘러앉자 빈 공간 없이 꽉 찼다. 중간방은 부부의 침실로 쓴다고 했다. 반쪽을 잃어버린 옷장 한 채가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이사할 때 침대도 웬 사치인가 싶어 결국 내다 버렸다. 작은 방에는 냉장고와 찬장이 들어가니 더 이상 공간이 없었다. 13평의 공간에 어떻게 방을 세 개나 만들 수 있는지도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지만, 좁은 공간을 최대한 이러 저리 활용해 4명의 식구가 살 수 있도록 꾸민 김씨의 손길도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김씨가 남편을 만난 것은 대학 시절이었다. 동기들보다 유난히 믿음직스러웠고 리더십이 강했던 남편이 학생군사훈련단(ROTC)을 선택하고, 이후 복무를 연장해 직업군인을 선택했을 때도 김씨는 전혀 불만이 없었다. 6년 전 결혼할 당시 친정부모는 “왜 하필이면 그 힘든 군생활을 계속하려고 하느냐”며 마땅찮아 했지만, 그마저 김씨에게는 별다른 장애가 안 됐다. 결혼 후 첫 신혼살림을 시작한 곳은 강원도 화천 군부대의 관사. 13평의 공간을 처음 본 순간 김씨는 솔직히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친정부모의 반대를 고집스럽게 뿌리치고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기에 울음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친정에는 군 관사에 기본적인 가전 제품과 세간이 다 마련돼 있다는 핑계를 대고 아예 혼수를 생략했다. 물론 집들이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남편이 훈련이 많아 시간을 낼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기를 9개월여. 남편의 근무지가 충북 충주로 옮겨졌다. 새 숙소도 관사가 아닌 군인아파트이고, 평수도 15평이라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김씨는 너무나 기뻤다. 아무래도 큰 도시이니 조건이 훨씬 낫지 싶었던 것. 그러나 그런 기대도 잠시. 지은 지 20년도 훨씬 지난 그 아파트는 말 그대로 폐허 직전이었다. 15평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공간은 화천의 13평짜리 관사보다 더 좁았다. 그 동네에서 군인아파트는 마치 도시 한복판에 버려진 빈민굴 같았다. 한 마디로 흉물이었다. 무엇보다 인근의 화려한 민간 아파트를 보면 자괴감이 일었다. 도시로 나왔으니 어쩔 수 없이 한번은 친정부모를 모실 수밖에 없었다. 친정어머니는 아파트에 들어서자마자 눈물부터 펑펑 쏟았다. 내심 ‘강원도 산골짜기의 그 춥고 좁은 관사에 비하면 한결 다행’이라며 다잡았던 김씨의 마음도 어머니의 울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결국 두 모녀는 서로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김씨 부부가 이곳 전곡의 아파트로 옮겨온 지 이제 4년째 접어든다고 한다. 6년 만에 꼬박 세 번을 이사한 셈이다. 그나마 이 정도의 이동은 양호한 편이라고 한다. 그 사이 이제 웬만한 열악함에는 눈도 꿈쩍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고통은 역시 추위였다. 전방의 군 부대에는 계절이 두 개밖에 없다고 한다. 그것도 겨울이 10개월이고, 여름이 2개월이라는 것. 오죽하면 전역한 일반인들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괜스레 몸이 오슬오슬 춥고 한기가 느껴진다고 할까. 그러니 군인 가족에게 난방비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바람막이용 비닐이 에워싼 베란다 “예전에는 연탄을 때다가 그나마 이제는 LPG가스로 보일러를 때는데, 보통 30만 원 정도 들어요. 그것만으로는 겨울을 견딜 수 없어 전기 히터와 전기 장판까지 틀어야 해요. 전기료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한 달 월급의 30% 이상이 난방비로 나간다고 보면 돼요” 한 달에 5만 원 정도의 도시가스 요금만 내면 한겨울에도 집에서 반소매를 입고 다닌다는 친구들의 얘기가 김씨에게는 아득한 저 세상 얘기처럼 들려질 정도. 그래서일까. 곳곳에서는 벚꽃 축제를 한다며 한창 들떠 있는 시절인데도 김씨네 아파트 베란다는 여전히 몇 겹의 바람막이용 비닐이 에워싸고 있다. 김씨의 또 한 가지 고충은 아이들의 목욕 문제였다. 목욕탕을 들여다봤다. 조그만 욕조 위에는 세탁기가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선풍기처럼 생긴 전열기가 있었다. 목욕탕에 웬 전열기인가 싶어 물어 보았더니, 전열기를 틀어놓지 않으면 도저히 추워 씻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도 목욕탕에서는 입김이 나온다고 했다. “그래도 여기는 욕실이 좀 큰 편이어서 한결 낫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 “충주 시절에는 욕조가 좁아 머리라도 감을라치면 욕실 문을 열어놓고 엉덩이를 밖으로 빼야 했다”며 웃는다. 예전에는 부대에서의 남편 계급이 군 숙소에서의 아내의 계급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그런 풍토가 사라진 지는 꽤 오래 됐다. 김씨네 아파트에도 5개 동에 150여 가구가 거주하지만, 서로 얼굴을 트고 지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도 대부분의 군인 아내들은 공감대가 있다. 남편 하나만 바라보고 먼 타향까지 군인의 가족 되기를 자청한 그들은 서로 군인가족으로 지내는 데 필요한 생활정보들을 교환한다. 특히 삶의 노하우가 절실히 필요한 군 숙소에서 먼저 입주한 ‘선배’들의 조언은 절대적이라는 것. 김씨의 경험담. “여기서 지낸 지 어느덧 4년쯤 되다 보니 제법 나도 고참이 되었어요. 지난해에는 서울에서만 지내던 한 새댁이 전화를 해서는 펑펑 울어요. 수돗물을 틀었는데 5분 넘도록 계속 누런 황토물만 나온다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는데, 뭐 별 방법이 있나요? 좀 더 틀어놓으라고 했죠. 한참 지나면 결국 맑은 물이 나오지 않겠느냐고요. 그저 마음 느긋하게 먹고 기다려 보라고….”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김씨가 갑자기 “재미있는 것 하나 보여드릴까요” 하더니 이웃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 후 김씨는 한쪽 벽에 귀를 기울여 보라고 했다. ‘사각사각’ 하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무슨 소리냐고 묻자 김씨는 옆집에서 콘센트에 전원을 꽂는 소리라며 박장대소를 했다. 따라 웃을 수도 없는 처지에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듯싶었으나 민망함으로 굳은 입술은 쉬 열리지 않았다. 이곳 아파트에 드는 비용은 입주금으로 내는 약 60만 원과 월 2만 원 정도의 관리비가 전부라고 했다. 그나마 집값 걱정 안 하는 것이 어디냐는 말에 김씨는 “입주금이나 관리비를 더 올려도 좋으니 집 같은 집에서 한번 살아 봤으면 좋겠다”며 “관리비 2만 원이라면 이런 주택에서 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씨는 “같은 아파트라도 장교 가족이 자주 들락거린 집과 부사관이 사는 집은 확실히 티가 날 정도로 다르다”고 했다. 장교의 경우 1~2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오가다 보니 그만큼 집안의 파손이 심하다는 것. 반면 부사관은 한번 들면 4~5년씩 머무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훨씬 더 안정감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김씨의 소개로 옆 동의 한 부사관 집으로 가 봤다. 결혼 8년째인 조모(31) 씨의 고향은 근처 파주였다. 직업군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해 아파트에 들어온 지 7년째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나이는 김씨보다 두 살 아래였지만 훨씬 안정감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조씨 역시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결혼 초에는 부대 근처 월세방에서 한 1년 지냈어요. 당시에는 그나마 이런 아파트라도 나와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지요. 장교와 부사관의 차별도 없으니까. 그런데 장교들의 경우는 이동이 잦아서 때로는 서울·대전 등 대도시에 부임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솔직히 부럽죠. 부사관은 거의 이동이 없는 편이어서 여기에 계속 머물러야 하는데, 27년 된 다 쓰러져가는 이 아파트에서 계속 살 생각을 하면….” 채 말을 맺지 못하는 조씨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엄마, 군인이 높아? 경비원이 높아?” 조씨의 친정인 파주는 최근 신도시 열풍으로 새로 지은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다. 어쩌다 동창 친구들의 집에 놀러 갔다 오면 상대적 박탈감에 속이 쓰리다고 한다. 어느 날은 공사 현장의 경비원으로 일하는 남편을 둔 친구의 집으로 놀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큰아이가 묻더라고 했다. “엄마, 군인이 높아? 경비원이 높아?” 이런저런 말로 얼버무렸지만 주눅든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조씨는 또 한번 가슴이 미어졌다. 보다 못한 친정부모가 도와줄 테니 파주로 나와 아파트 전세라도 들라고 하지만, 남편의 근무지와 너무 멀어 도저히 불가능하다. 남편은 애들과 함께 나가 살라고 하지만 “우리 좀 편하자고 고생하는 남편 홀아비처럼 살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나마 우리가 따로 나가게 되면 남편은 이 아파트마저 다른 기혼 가정에 내줘야 할지도 모르는데”라며 고개를 젓는다. 조씨의 또 다른 고민은 아이들 사교육이다. 일곱 살, 여섯 살의 아들을 둔 조씨는 다른 군인 가족처럼 전적으로 가정방문 학습지에 의존한다. “이곳에는 학원이 없어 가정방문하는 학습지 선생님들에게 전해 듣는 정보가 크게 작용하죠. 그런데 그분들이 그래요. ‘여기처럼 애들 가르쳤다가는 나중에 무슨 원망 들을지도 모른다. 서울 아이들하고 어떻게 경쟁시키려고 그러느냐’고요” 지금 조씨의 꿈은 딱 두 가지다. 열심히 저축해 하루라도 빨리 전세금이라도 마련하는 것과 남편의 근무 연한이 차 파주 근처의 군부대로 전출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내친김에 인근 군부대의 협조를 구해 부대 관사를 방문했다. 30여 개의 관사가 들어선 곳은 처음 방문했던 아파트보다 훨씬 더 산속 깊숙한 곳에 들어서 있었다. 부대장의 양해를 얻어 대위 가족이 사는 한 관사를 방문할 수 있었다. 마침 주인인 중대장 김모 대위는 전날 훈련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김대위는 결혼 5년째로 아내, 어린 두 자녀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이곳 관사에 보금자리를 튼 지는 19개월째라고 했다. 김대위의 아내인 이모 씨는 친정이 인천이었다. 관사의 크기 역시 13평이어서 아파트와 별반 다를 게 없었으나, 방이 두 개이고 가운데 거실을 다소 넓게 두어 그나마 훨씬 넓어 보이기는 했다. 그런데 추위는 아파트보다 훨씬 더 심하다고 했다. 이씨는 “그래도 아파트는 민간인 지역인 데 비해 여기는 군부대라서 그런지 바람이 더 매서운 것 같다”며 웃었다. 그런 만큼 아기 목욕시키기가 가장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관사는 부대와 인접한 곳이어서 교통마저 불편했다. 특히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이라도 다닐라치면 걸어서 마을까지 나가기에 다소 위험하고 버거워 보였다. 그래서 이곳 군인 아내들의 승용차 운전은 필수라고 했다. 김대위는 “관사는 대개 독신자 간부들이 사용하거나 나처럼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이 없거나 아직 갓난아기를 둔 부부들이 주로 이용한다”고 했다. 실제로 이곳 관사에는 7세대만 결혼 가정이고 나머지는 독신이었다. 사단에서는 최근 낙후한 관사부터 부분적으로 리모델링에 들어갔는데, 독신자 숙소 가운데 일부는 이미 공사가 끝났다고 했다. 이씨는 “리모델링한 관사를 방문했더니 그야말로 호텔이더라”며 부러워했다. 이씨는 “군인 가족이니 당연히 그러려니 하고 살아간다”며 “그러나 서울이나 인천의 친구들을 보면 내집마련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던데, 이곳에 묻혀 지내다시피 하니 너무 세상 돌아가는 데 어두워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기도 한다”며 쓸쓸하게 웃었다. 마침 관사를 방문한 대대장과 잠깐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대대장인 신모 중령의 관사도 인근에 있었다. 그렇지만 신중령은 아내와 두 아들이 얼마 전 면사무소가 있는 중심가(?)로 따로 방을 얻어 나가는 바람에 졸지에 홀아비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관사생활을 고집하던 아내도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학교 문제 때문에 결국 6개월 만에 손을 들었다고 했다. 대대장 관사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것은 없었다. 18평이라고 하니 이씨네보다 조금 넓은 정도. 가끔 아내가 들른다고 하지만 혼자만의 생활이어서인지 더욱 궁핍해 보였다. 신중령은 “이 정도 계급이 되었으면 웬만한 전셋집에는 들어갈 정도의 경제력을 마련했어야 하는데, 솔직히 좀 걱정스럽다. 지금 상황에서는 설사 서울이나 대전으로 발령난다고 해도 대도시의 전세 규모를 들으면 겁이 날 지경”이라고 입맛을 다셨다. 김대령이 부부싸움을 한 사연 실제로 대전의 육군본부에서 근무하다 얼마 전 진급해 서울로 보직발령받은 김모 대령은 지난 2월 처음으로 아내와 크게 부부싸움을 했다고 한다. 업무 인수인계 때문에 집을 알아보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아내에게 전적으로 전셋집 마련을 일임했는데, 아내가 덜컥 경기도 고양시의 19평짜리 아파트를 얻었다고 통보하더라는 것. 근무지가 여의도 부근인 김대령은 크기는 고사하고 출퇴근 거리가 너무 멀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불평을 터뜨렸다고 한다. 나아가 아내의 친정이 일산이어서 일부러 그 근처로 집을 정한 것 아니냐고 따지기까지 했다. 그랬더니 아내는 “서울 시내 아파트 전셋값이 얼마인지나 알고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를 하느냐”며 서럽게 울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내가 내미는 신문의 아파트 시세면을 보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더라고 했다. 한 군인가족의 아내는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친구들은 가끔 알지도 못하고 이런 소리를 한다. ‘어쨌든 군인들은 나라에서 집이 나오니 집 걱정은 하지 않을 것 아니냐? 그동안 꼬박 꼬박 저축해 전셋집이라도 만들어 가면 되지 않느냐’고. 물론 어떤 이는 여자가 발 빠르게 움직여 아파트를 분양받기도 하고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 네 식구 정도가 아이들 교육해 가면서 목돈 모으려면 정말 빠듯할 수밖에 없다. 특히 군인 가족들은 특성상 맞벌이가 거의 불가능하다. 1~2년마다 한 번씩 옮겨다니는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다녀야 하는데, 별거를 작정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직업을 갖겠는가. 부모의 도움을 받으면 좋지만 직업군인의 길을 택한 사람은 대개 도움을 받기보다 드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또 계급사회가 엄연한 군의 특성도 작용한다. 군 관사나 아파트에서 못 살겠다고 홀로 근처의 다른 주택에 들어가는 것도 계급사회인 군의 성격상 상관들에게 눈치 보이는 면이 있다.” 역시 육군본부에서 근무하다 최근 전방 부대의 연대장으로 보직발령받은 장모 대령은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나 혼자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며 지낸다. 지금껏 18년 간이나 고생시킨 아내에게 미안해 이곳에 보직받고 ‘당신은 아이들과 함께 그냥 대전에 남아 있으라’고 했더니 아내가 조금도 망설임 없이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서라도 그래야 할 것 같다’고 말해 조금은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고 씁쓸해 했다. 군사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이나 독일의 경우는 군 특성상 기본적인 가정생활 영위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군인 가족을 위해 ‘별거수당’이라는 것을 마련해, 미국의 경우 대령은 한 달에 약 90만 원, 대위는 약 64만 원에 이르는 별거수당을 별도로 지급한다고 한다. 나라를 지키는 근본 목적이 정상적인 가정생활의 안락인데,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만큼 대신 금전적으로라도 국가가 보상해 줘야 한다는 기본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까닭이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꿈만 같은 이야기다. 전곡의 한 부대에서 주임상사를 맡고 있는 A씨는 “28년째 군생활 동안 15평짜리 아파트에서 3남매를 다 키워 내보냈다”고 멋쩍어 했다. 그는 “방이 세 개라고는 하지만, 하나는 사실 거실처럼 쓰는 곳이어서 거기서 우리 부부가 자고, 두 딸과 아들에게 각각 방을 하나씩 내줬다. 지금은 그래도 아이들이 모두 나가고 없어 우리 두 부부가 궁궐처럼 지내고 있다”며 웃었다. “얼마 전 한 후배가 말하더군요. TV의 한 프로그램에서 낙후한 집을 새 집으로 고쳐 주는 코너가 있었는데, 거기서 소개되는 한 낡은 집을 몇몇 연예인들이 들여다보고 이런 데서 어떻게 사느냐며 눈물을 글썽이더랍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지켜보던 후배의 초등학교 6학년짜리 딸애가 ‘저 집보다 우리 아파트가 훨씬 더 좁고 더 낡았는데 우리도 방송국에 말해 새 집으로 좀 고쳐달라고 하면 안 돼’ 하더라고요.” “집값 떨어지게 왜 군인아파트 이름을…” 마침 아파트 주변을 지나던 한 무리의 어린이들에게 “아빠가 군인이어서 싫은 것 세 가지만 말해 보라”고 물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라는 한 어린이는 너무나 서슴없이 말했다. “우선 친구들과 자꾸 헤어져야 하는 것이 너무 싫고요. 다음은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와 놀 수 없어서 싫어요. 집이 너무 좁아서 엄마가 친구들 데려오는 것을 싫어하세요. 그리고 인터넷도 잘 안 되고, PC방도 없고, 서울에 비해 갈 데가 너무 없어요.” 육군본부에 근무하는 박모 중령의 말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큰애가 하루는 내게 ‘아빠, 지금까지 내가 죽 다닌 학교예요’ 하면서 학교 이름 적어 놓은 것을 불쑥 보여주더라고요. 무려 다섯 학교 이름이 죽 적혀 있더라고요. 갑자기 얘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였을까, 참으로 난감했어요.” 통상 육군에서 20년 정도 근무한 중령의 경우 평균 이사 횟수가 12회라는 통계치가 나와 있다. 이쯤 되면 그 가족들, 특히 자녀가 이사할 때마다 학교를 옮겨야 하는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한 군인 가족의 아들은 너무 잦은 전학이 싫어 아예 한번은 자신이 직접 근처 복덕방에 다니면서 전셋값을 죽 적어 엄마에게 내밀더라는 얘기도 있다고 박중령은 소개했다. 어떤 후배의 자녀는 한 지역에서 2년쯤 지내면 말을 안 해도 “엄마, 우리 이제 이사 안 가요? 이사 갈 때가 된 것 같은데… ”라고 묻는다는 것. 서울 등 대도시라고 해서 열악한 군인아파트의 사정은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서울에서 지내는 군인 가족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더 깊은 상처를 안는 경우가 많다. 군생활 21년째인 육군 이모 대령은 얼마 전까지 서울 용산의 15평짜리 군인아파트에서 아내와 남매 등 4식구가 함께 거주했는데, 사춘기를 훌쩍 지나 버린 남매를 더 이상 한 방에 재울 수 없어 결국 두 방을 자녀에게 내주고, 부부는 거실에서 잠을 자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나마 지은 지 27년이 넘은 이 아파트는 곳곳에 금이 가고 균열이 심해 못조차 박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것. 육군의 현실이 이럴진대 공군과 해군은 다를까. 해군의 한 관계자는 “군인 가족으로 지내기에는 그나마 공군이 제일 낫다는 얘기가 있다. 해군보다 육군이 좀 낫고, 육군보다 공군이 또 좀 낫다는 것”이라는 말로 군 숙소의 열악성은 3군 공통의 문제임을 지적했다. 군인아파트에 대한 이미지가 얼마나 열악한지는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몇 해 전 경기도 용인시의 신도시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한창 들어설 때였다. 그런데 당시 한 아파트단지의 이름이 ‘보라매마을’이었다고 한다. 당장 주민들 사이에 난리가 났다. “우리가 무슨 군인아파트냐? 집값 떨어지게 왜 군인아파트 같은 이름을 짓느냐“고. 보라매라는 이름이 군을 연상시키는 안 좋은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결국 그 마을은 다른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전곡에는 지난해 18~22평 규모의 새 군인아파트가 들어섰다. A씨가 직접 안내해 준 그곳은 인근에서도 단연 두드러질 정도로 세련미를 자랑했다. 자연히 그곳 입주를 놓고 인근 부대 간부들의 경쟁률이 자못 치열했다고 한다. 군인아파트 입주를 위해서는 사단별로 심의위원회가 구성된다고 한다. 거기에서 우선 고려하는 사항은 가족 수. 그 중에서도 특히 노부모를 모시는 가족이 우선권을 갖는다고 한다. 그 다음이 근속년수와 계급 등이라는 것. 28년의 군생활을 한 A씨도 이곳에 들어갈 자격은 아직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육군의 경우 육규에 군 숙소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 놓고 있다. 육군본부에 군 숙소에 대한 규정과 향후 개선 계획, 예산 등의 자료를 요청했다. 육본측은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원론적 답변만 할 뿐, 자료 협조에 난색을 표했다. 군의 낙후성을 지나치게 부각시킬 경우 군의 사기와 대민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인 듯했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한 육군 중령은 “드러내놓기 창피하다고 쉬쉬 하며 덮어두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속으로 곪을 뿐이다. 국민 속의 군대를 지향하는 오늘날 군의 자세와도 맞지 않는다. 부끄럽지만 가슴 아픈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 경로를 통해 얻은 군 숙소에 대한 내부 자료와 현지 관계자의 협조 자료를 종합해 보면 여전히 군 지휘부의 현지 실태에 대한 정확한 인지도는 다소 미약하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당장 군 숙소 입주 기준을 명시한 육규 132조의 규정만 봐도 이는 명확하다. 이 규정을 보면 3인 이하의 가족으로 위관급 장교와 중사들은 19평 이상, 4~5인 가족으로 소령과 상사들은 22평 이상, 그리고 6인 이상 가족을 둔 중령 이상의 장교와 원사 및 준위 등 부사관들은 25평 이상의 군 숙소에 입주하도록 되어 있다. 최소한 취재진이 방문한 경기도 전곡의 군 숙소의 실태 및 취재에 응했던 많은 군인과 군 가족들의 목소리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현실이었다. 그나마 양적으로는 군 숙소의 물량이 크게 모자라지는 않았다. 특히 전방 부대와 같은 오지의 경우 크게 밀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부분 수용 가능한 규모였다. 그렇지만 서울·대전 같은 대도시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발령받은 이후 최소한 6개월에서 많게는 1년 가까이 전세나 월세로 일반 주택에 살면서 대기해야 순서가 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렇다면 전세 자금을 위한 군의 대출은 어느 정도일까. 한 육군 중령은 “전방 부대의 경우 연대장(근속 25년 이상)급 정도가 돼야 자녀 교육 등을 위해 전세 융자금 대출이 이뤄지는 정도”라고 소개했다. 어렵사리 지난해 기준으로 작성된 군 숙소의 현황표를 입수했다. 여기에는 ‘세대’로 구분되어 있는 기혼자 숙소와 ‘실’로 구분된 독신자 숙소별로 현재 보유율이 나와 있었다. 우선 기혼자 숙소는 총 4만3,478세대로, 보유율이 103%에 이르렀다. 오히려 1,390세대 정도가 남는 실정이다. 반면 독신자 숙소는 3만8,000여 실이 필요한데 2만4,335실에 그쳐 1만4,000여 실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유율이 63.5%에 불과한 셈이다. 그러니 일부 부대의 경우 규정을 무시하고 한 실에 두 명씩 사용하도록 하기도 하고, 이마저 어려우면 부득불 부대 인근의 월세방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 벌써 철거했어야 할 건물이 태반 보유율 103%에 이르는 기혼자 숙소 또한 단순한 수치에 불과하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 심각성은 훨씬 더 하다. 우선 전체의 99%가 모두 국민주택규모(23.1평) 이하다. 사실상 모두라고 해도 무방하다. 20평도 안 되는 10평형 이하가 전체의 65%며, 그나마 15평도 안 되는 초미니 숙소가 41%에 이른다. 공간의 협소함도 문제지만 그 낙후성은 자못 심각하다. 민간의 개념으로는 벌써 철거했어야 할 건물이 태반이다. 15평 이하 면적에 25년 이상 된 기혼자 숙소가 전체의 46%에 이른다는 통계치가 우리 군의 현실이다. 지난해 자료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과 동떨어진 군 숙소를 개선할 의지는 과연 있는가. 지난 김대중 정부는 군 숙소의 심각한 낙후성에 대한 문제가 지적되자 이를 대대적으로 개선하겠다며 2000년부터 시행할 ‘군 숙소 3개년 계획’을 야심차게 발표했다. 당시 국방부는 총 8,777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기혼자 숙소 1만2,714세대, 독신자 숙소 1만2,323실을 새로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기간의 실적을 보면 순간적으로 군심을 얻기 위한 공염불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실제 기혼 숙소의 경우 약 3,000여 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6,000여 세대를 확보하는 데 그쳤고, 독신자 숙소도 1,000여 억 원을 투입해 6,000여 세대를 개선하는 데 불과했다. 그나마 애초 책정하기로 했던 예산은 해가 지날수록 은근슬쩍 줄어들고 말았다. 기혼자 숙소의 경우 국민적 관심이 다소 높았던 2000년과 2001년 각각 1,200억여 원씩 투입되기도 했으나 이후 680억여 원(2002년), 460억여 원(2003년), 400억여 원(2004) 등으로 예산은 갈수록 삭감되었다. 독신자 숙소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올해 독신자 숙소의 예산은 고작 100억여 원에 불과했다. 육군의 한 관계자는 “정부 방침은 기혼자 숙소의 경우 새로 짓기가 부담스러워 기존 아파트 매입이나 전세를 장려하는 쪽으로 유도하고 있으나, 이 또한 현실적으로 분양 가격 급상승과 군 예산 태부족으로 현실성이 거의 없다. 따라서 축소 매입하거나 전방 위주의 미분양 아파트를 골라 확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나마 매입하는 곳도 열악한 교육 여건 주변 환경으로 군인 가족들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육군본부의 한 관계자는 “주거 문제는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환경이다. 우리야 어차피 직업군인을 선택한 이상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 아내와 자녀가 무슨 잘못인가. 아버지 잘못 만나고 남편 잘못 만난 죄밖에 더 있나? 그래도 이 사회의 엘리트 구성원이라는 자부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일반 사회인들에 비해 갖게 되는 우리 군 가족들의 사회적 박탈감은 이제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수준에 도달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육군의 한 관계자는 더욱 현실적이고 냉정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는 “기혼자 숙소의 경우가 우선 심각한데, 최전방 지역과 대도심권 주변에 지속적인 건립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현재 24평 기준 한 세대에 6,000여만 원의 예산이 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전세자금 지원도 말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더욱 현실적인 방안으로 최소한 60~80% 정도는 지급해야 가능하다. 독신자 숙소 역시 현실적으로 병 복무 기간 단축과 병력 감소 등으로 인해 부사관들의 확보가 더 시급한 실정에서는 60%대에 그치는 보유율을 더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 동안 약 1조6,000억 원의 예산을 단계적으로 군 숙소를 위한 곳에만 사용해야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 병사들의 내무반 개선 예산이 약 5,000억 원에 달한다. 군 숙소 등 복지 시설은 병사들의 내무반 개선을 우선적으로 고려했고 또 당연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직업군인과 간부들의 열악한 상황에도 관심을 가질 때가 되었다. 직업군인으로서 갖는 자괴감은 고된 격무와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가족들조차 직업군인인 아버지를 부끄러워하고 멸시한다는 데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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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군인들과 살아온 20년은 당연히 알고 있는 내용이지
만 이 글을 읽고 있자니 갑자기 내 동기인 완균(염소)가
생각나게 하여 이 글 올립니다...
아직도 전후방에는 이런 곳이 너무 많지요....
우리가 30여년 군독재시대를 겪으며 군인의 관념이
안좋지만 이제는 우리를 위한 국민의 군대로 생각해 주세
요....
내 친구 염소야,,,힘내라....
우리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근무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청련 여러분......
못된 군인도 있지만 우리를 위한 군인들이 더 많다는 것을
다 아시죠.....거리에서 군인들을 만나면 형제처럼,가족처
럼 따뜻한 말은 안해도 눈빛만 따뜻하게 보내 주십시다...
.......도자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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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린 아이를 둔 엄마로서 그분들의 고충 이해가 됩니다...우리가 내는 세금은 다 어디에 쓰는지???....그래도 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겠지요...군인의 아내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길 빕니다....
필승! 그나마 군인들의 충성스런 마음이 이나라를 지켜오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도 군인의 아내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비오면 개구리 소리가 그리 엄청난것인 줄 그때 처음 알았고,풍뎅이 만한 바퀴 벌레가 엄청 커서 황소바퀴라 명명 하기도 했었습니다.상하의 규율이 엄한 곳이라 남편이 중령이면 사모님은 장성쯤되는 곳이 그곳이더군요. ~~;;
저도 시누이가 군의관부인으로 근무중인데 사는 곳이 너무도 열악하여 작년 겨울 홍천에서 너무 추워 서울에 와 있는 동안 그만 보일러가 동파되어 아파트 뒷배란다가 물이 고여 녹이기에 애먹는 소식을 접하고는 너무도 환경이 열악함을 실감한적이 있었습니다. 어린자식들과 겨울도 못지내는 심정이야 오죽하겠어요.
이.럴.수.가 ~ 설마 했는데 .. 군인 은 사기 를 먹고 사는 집단 인데.. 이런 환경 에서 꾿꾿히 자기 자리 를 지키는 울 동기 인 염소 가 진정 자랑 스럽다 . 난 너무 실정 을 몰랐다 .대한민국 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는 건지 통탄 ~~ 통탄
너무 오랜동안 하나회 회원들이 잘사는 것만 알고 있었지 이정도인지 몰랐습니다.통탄통탄!
알기로도 군인가족은 이사가 잦아서 살림살이가 제대로 있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환경까지 이렇게 열악하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더군다나 아들까지 군대에 입대하다보니.....
믿음직스런 군인의 생활이 그정도일줄 몰랐네요. 좋은 환경으로 빨리 개선됐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라라야~ 너의아들 정말 군대갔니? 나도 우리 큰애가 신검통지서를 받은지 얼마안됐단다. 마냥 소녀같은 마음인데, 어느새 아이들이 훌쩍 커버렸네...
울아들은 취학통지서 받은지 얼마안됐는데....신검통지서는 얼마나 더키워야 받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