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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전 사거리에서 기독교연합봉사회관과 상아 아파트 사이 사다리꼴 모양의 나대지는 인근 주민들이 각종 채소를 심고 가꾸는 바람에 거의 대부분 채소밭으로 경작됐다.<사진 위> 이후 이 땅은 ‘대전엑스포93’에대비 서대전광장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중앙은 서대전시민공원 현재 모습·아래는 서대전 사거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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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전 사거리는 원래 사거리가 아니고 삼거리였다. 유성 쪽에서, 현재 계룡로로 불리는 도로를 따라 대전 원도심으로 들어오게 되면 높은 블록 담이 완강하게 막아섰던 때가 있었다. 당연히 유성 쪽에서 차량 등이 진입해오면 직진은 불가능했다. 이곳에서 좌회전하거나 우회전하는 길밖에 없었다. 계백로로 불리는, 도마동쪽 길에서 들어와도 마찬가지였다. 그대로 직진하거나 좌회전밖에 할 수 없었다. 높은 블록 담이 오랜 동안 막아서고 있었던 것은 육군병참학교의 담이기 때문이었다. 보행자들도 높은 블록 담을 따라 걸을 수만 있었을 뿐 담 안으로 들어가거나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육군병참학교가 경남 지역으로 이전하자 이곳은 비로소 서대전 삼거리에서 서대전 사거리로 바뀔 수 있었다. 직진 또는 좌·우회전이 불가능했던 T자형 삼거리가 십자형 사거리로 바뀐 것이다. 길이 삼거리에서 사거리로 바뀌자 대전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서대전 네거리 또는 서대전 사거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서대전 사거리 부근 병참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1981년 11월 대전 기독교연합봉사회관 빌딩에 이어 1982년 11월 대전일보사 옛 사옥이 준공되었는가 하면 대전중구문화원, 농협 충남도지회, KT, 중앙장로교회 등이 차례로 들어섰다. 이와 함께 대덕연구단지 연구원들의 관사인 상아 아파트도 완공됐다. 인근에 대전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였던 삼익 아파트에 이어 1983년을 전후해 길 건너편 오류동에 대규모 아파트단지인 삼성 아파트가 완공돼 주민들의 입주가 이루어지면서 이 지역은 대단위 아파트단지와 각종 오피스빌딩, 재래시장, 중소형 상가, 단독주택 등이 혼재하는 대전의 제1 부도심으로 자리매김 됐다.
하지만 서대전 사거리에서 기독교연합봉사회관과 상아 아파트 사이 사다리꼴 모양의 나대지는 아무것도 지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육군병참학교가 이전하자 대전시가 이 나대지를 미관지구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가로수가 둘러싸 있던 3만3251㎡에 달하는 이 땅은 인근 주민들이 배추, 무, 파, 호박 등 각종 채소를 심고 가꾸는 바람에 거의 대부분 채소밭으로 경작됐다. 그런데 이 나대지는 국·공유지가 아니고 전체의 절반이 넘는 55%가 사유지였고 지금도 이런 소유구조는 변동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유지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모 대기업은 이곳에 대형 오피스빌딩을 지어 개발하려고 했다. 투자를 통해 이익을 남기려는 기업의 속성상 자연스럽고 당연한 발상이었다.
당시 대전시는 1993년에 개최키로 결정된 ‘대전엑스포93’에 대비해 서대전광장(가칭)으로 개발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었고, 상당수 시민들은 대전 도심에 대규모 공원이나 광장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1989년 대전이 직할시로 승격돼 상주인구 100만명을 훌쩍 넘어선 가운데 대전시와 시민들은 뉴욕 센트럴 파크처럼 도심 한 가운데에 시민들이 모여들고 즐겨 찾는 대형 공원이나 광장 같은 명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대전일보는 이 같은 시민여론을 반영한 기사를 주요기사로 내세워 싣기 시작했다.
이 같은 여론은 관철됐다. 대전시와 기업 간에 오간 협상 끝에 1992년 4월 시민광장으로 조성키로 합의한 것이다. 이후 6개월 동안 공사를 진행하면서 채소밭이었던 광장에 잔디를 깔고 2만1000그루의 조경수와 5만 그루의 화초류를 심었다. 화장실, 음수대, 벤치 등 시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들어섰다. 대전시는 인공폭포와 분수대도 설치하려 했지만 소유주인 대기업의 반대로 이들은 끝내 설치하지 못했다. 아무튼 이 광장은 덤프트럭 등 중장비들이 오가는 공사 끝에 대규모 공원의 모습을 갖추었다.
오진수 사진작가는 “인근 주민들이 각종 채소를 심어 수확하던 서대전광장은 당시 대전 도심, 중심지역에서는 유일한 넓은 공간이었다”며 “계백로 쪽 광장 안에 있는 수령 15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를 가진 이곳은 명실상부한 시민의 도심 휴식처로 탈바꿈됐다”고 말했다.
이후 이곳은 서대전시민광장 혹은 서대전시민공원으로 불리며 오 작가의 말대로 변화했다. 대전엑스포93 이후에도 크고 작은 각종 집회나 공연, 이벤트, 레크리에이션이 단골로 열리는 곳이 됐고 주말과 휴일이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나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햇볕이 뜨거운 여름철이 되면 한낮에는 공원이 비어 있다가도 해가 져 선선하게 느껴지면 인근 주민은 물론 멀리서도 승용차 등을 타고 온 가족단위 나들이객들이 모여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무들이 무성해지고 야생조류들을 수용한 조류사육장도 세워지는 등 공원의 형태로 바뀌어가자 대전 시민들은 이곳을 서대전시민광장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서대전시민공원으로 부르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서대전시민공원 부근은 이후에도 큰 변화를 겪는다. 한국은행 대전지점,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대전지부 등이 둔산 등지를 비롯한 다른 곳으로 옮겨간 대신에 백화점, 대형할인점, 복합상영관 등이 차례로 들어선 이곳 주변에, 육군병참학교 이후에도 굳건히 버티던 ‘제5보급창’이라고 불리던 육군 병참부대가 2001년 이전한 것이다. 제5보급창 부지에는 대형 아파트단지와 주상복합아파트 등이 언뜻 보기에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후죽순처럼 세워졌다. 이 결과 서대전시민공원 주변은 아파트단지, 주상복합아파트와 대형 상가들이 에워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스카이라인이 바뀌었다. 아파트 세대수만 5000세대가 넘을 정도이다 보니 서대전시민공원 주변은 상주인구가 적게 잡아도 3만-4만명이 밀집해 사는 부도심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곳 고층아파트에 사는 시민들은 “코앞에 시야가 탁 트이는, 드넓은 이 같은 공원이 있다 보니 넓은 정원을 가진 아파트에 사는 듯한 느낌을 준다”며 대부분 만족해하는 분위기이다.
그저 넓은 채마밭에서 명실상부한 시민의 공원으로 탈바꿈한 지 만 15년을 넘긴 서대전시민공원은 이제 대전의 대표적인 대형 공원이 됐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나 서울 여의도공원보다는 못할지 몰라도 대전 시민들에게는 시야가 트이고 도심에서 숨 쉬는 듯한 여유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 된 것이다. 비수도권 도시들 가운데 이만한 공원을 가진 곳은 거의 없을 듯싶다. 때문에 서대전시민공원은 대전 시민들에게 공통의, 중요한 자산이기도 하다.
이 공원 부지 소유권의 55%를 갖고 있는 대기업은 재산권이 침해받고 있다며 대전시에 문제제기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재산권을 지켜주자면 공원면적 축소는 불가피해질 것이다. 기형적인 형태로 바뀔지도 모른다. 대전시는 “공원면적 축소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방침에 따라 국비를 지원받아 토지를 매입한 다음 공원을 재정비하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대전 시민 모두의 공원이 혹시 축소되거나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형되지는 않을지 모두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