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 근처에서 석회수 흐르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린다.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활활 타오르던 모닥불은 어느덧 사그라진다. 대원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하나 둘 자기 침낭을 찾아 들어간다. 하늘을 보니 쏟아질 듯한 별들로 가득하다. 오지 않을 것 같던 끝이었는데 어느덧 산에서 지내는 마지막 밤이다. 그동안의 추억이 사진처럼 한 장 한 장 눈앞을 스쳐 지난다. 꺼져가는 불꽃을 확인하고 침낭으로 들어가는데 눈을 감는 것이 아쉽다. 아침과 함께 끝이 온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불과 석 달 전 나는 등반의 ‘등’자도 몰랐다. 나는 대학산악부도 아니고 클라이머도 아니다. 그저 산 좋아하는 산 아가씨였다. 룰루랄라 콧노래 부르며 두발로 가는 ‘등산’을 했을 뿐이다. 네 발로 걷는 ‘등반’은 낯설고 두려웠다. 짧은 기간에 속성으로 간단한 등반기술을 배웠다. 나의 생존과 팀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하는 것들이기에 긴장하며 따라했지만 미숙한 점이 많았다. 8자 매듭법을 배울 때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이 구멍에서 저 구멍으로 빠지는 자일을 보며 눈앞이 빙그르 돌았다. 하네스를 혼자서도 제법 잘 착용할 수 있을 쯤 탐사는 시작되었다. 산에서의 걸음마를 참으로 거창한 곳에서 시작하게 된 셈이다.
- ▲ 간신히 두 발로 서 있을 자리를 만든 설벽 위 테라스에서 아찔한 휴식을 즐긴다. 서로의 손을 잡아 주는 것만큼이나 안전하고 따뜻한 확보는 없다고 느꼈다.
키르기스스탄의 알아르차국립공원은 등반 초보인 나에게 적합한 등반 대상지라고 했다. 사실 나야 쥐뿔도 모르지만 우리 대장님께서 적합하다고 하시니 그런 줄 알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은 국토의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져 있는 나라다. 아시아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만큼 등반가들이 많이 찾는 듯하다.
공항 입국허가장에서 이중화를 신고 있는 호주에서 온 등반팀을 만났을 정도다. 키르기스스탄의 여러 산악 코스 중 알아르차는 한국에서 접해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자연 환경과 지형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드넓은 초원과 폭포처럼 흐르는 계곡, 너덜지대, 빙하 등 모두 다큐멘터리에서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던 것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자연스럽다’는 말이 이제 어떤 의미인지 분명 마음으로 알겠다. 나와 그것들 간에 낯선 어떤 것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이 모두 하나로 어울리는 데는 전혀 어색함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자연’스러운 곳에서 자연스러움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더불어 나는 여기서 마음껏 자연스러워진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꽃 한 송이에도 “우아 예쁘다”를 연발한다. 뿌옇게 우윳빛과 푸른빛을 동시에 띠며 흐르는 계곡을 보면서 “우아 어쩜” 하며 신기해한다. 베이스캠프 근처에 풀어져 있는 말들 중 백마를 보며 “와 너무 멋있다”며 웃었다. 크게 웃는 웃음이 많아지고 매일 싱그러워지는 듯하다.
ABC에 장비와 식량 일부를 옮기고 베이스캠프로 내려가던 중이었다. 문득 이 모든 것이 너무나 환상적이라 여겨졌다. 걷는 동안 자꾸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군가 나를 찾는 것도 아니고 내가 어떤 것을 찾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내가 걷는 이 길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광활한 이 대자연을 한눈에 담고자 한 것은 내 욕심이었다. 그래서 이쪽저쪽 살핀다.
- ▲ 1 김용현 부대장의 “업혀” 한마디에 여러 대원들이 장난스럽게 업혔다. / 2 로그비넨코 마운틴 정상 공격을 앞두고 장난기가 발동해 재미있는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3 알아르차 패스 등반 중, 밤새 신설이 쌓였다. 아무도 밟지 않은 곳을 가장 먼저 찾아나서는 오지탐사대, 12명의 발자국은 하나뿐이다.
그 찬란한 빛 앞에서 모든 걸 잊다
방금 전에 보았던 것이 지금 보는 것의 아름다움에 잊혀지는 것 같아 다시 보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걸음 뗄 때마다 달라지는 자연 풍경에 당황스럽고 놀라워 자꾸 주위를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걸음 전의 지난 풍경을 찾기보다는 한걸음 후에 다가오는 자연을 반기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그 현명함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목이 뻐근해져 오며 깨달은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내가 스며들어 하나가 된 이 순간을 한 장의 그림으로 내 마음에 그려본다. 하늘이 유독 푸르고 맑다.
베이스캠프에서 투유크빙하로 가던 길은 마치 초록색 물감을 아끼지 않고 뿌려놓은 한 장의 유화 같았다. 계속 되는 급경사에 헉헉 몰아쉬던 숨을 고르기 위해 고개를 들 때면 누구라도 감동하고 만다. 광활하게 펼쳐진 초록빛 초원에 가슴이 탁 트이는 것이다. 저기 보이는 언덕 너머까지 이어져 있는 이 초원의 끝은 하늘일 것이다. 푸른 하늘과 초원, 두 푸름이 만나 지평선을 이루고 있다.
다들 배낭을 벗어두고 달린다. 푸른 초원에 배를 깔고 눕기도 하고 벌렁 두 팔과 다리를 쫙 펴고 ‘大’자로 드러눕는다. 문득 웃음이 난다. 재미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큰 소리로 “하하하” 웃음이 난다. 그저 좋은 것이다. 다들 신이 났다. 평소에는 ‘핑계(핑크저팔계)’라고 놀리던 여대원을 목마까지 태워 사진을 찍을 정도이니. 얼마나 신이 났는지 알 만하다.
이젠 내가 자연 속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처음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때는 앞뒤로 높이 솟은 봉우리들에 압도되어 기가 눌리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어느새 그 품에 너그럽게 안긴 것이다. 그저 무지막지하게 크게만 여겨지던 것들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다른 것들과 함께 자연스레 어우러지고 있나보다. 처음 보는 것, 광활한 것, 거대한 것, 환상적인 것들에 대한 낯설음이 사라져 가던 중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 또한 오래 전부터 그것들과 함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친근하고 즐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우와!’ 감탄사를 연발하며 온 자연에 감동하는 것은 내가 아무리 친근하다고 우겨도 어쩔 수 없는 것인가보다.
저기 봉우리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는 눈으로 가득한 평원과 하늘을 향해 솟구친 설벽의 빙하에서는 모든 것이 감동이었다. 비록 그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은 등반 도중 테라스에서 피켈로 확보를 하고 뒤따라오는 대원들을 바라보던 순간뿐이었지만 말이다.
- ▲ 1 투유크빙하 탐사를 위한 abc를 구축하러 가는 길, 등반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나와 함께하고 있는 이 사람들 때문이었다. 늘 뒤를 돌아보면 그들이 있었다. / 2 알아르차의 푸르름은 언제나 따뜻하고 찬란하다. 베이스캠프 앞뒤로 푸르름 덕분에 수낭을 들고 물을 뜨러 가는 길이 고되지만은 않다.
무명봉인 줄 알았던 로그비넨코 마운틴을 등정하던 날이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게 보였지만, 그 끝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정상을 내어줄 듯하면서도 좀처럼 그 끝에 서게 해주지 않았다. 한 피치를 올라설 때마다 아쉽고 안타깝고 힘든 마음은 다들 같았다. 게다가 한 대원이 극심한 고소증세를 호소하며 무기력증과 구토로 제대로 걷지도 먹지도 못했다. 예상 등반시간보다 실제 등반시간이 더 길어지면서 다들 다급해져갔다. 자칫, 어둠 속에서 하강을 하고 크레바스가 있는 빙하를 건너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가 지기 전에 등반을 마쳐야 했다. 다들 긴장했고 정상 위에 올라섰지만 즐길 시간은 없었다. 간단하게 단체사진만 찍고 차례대로 한 명씩 하강을 시작했다. 한 피치 하강한 후 간신히 내 발만 디딜 정도의 테라스를 만들고 다음 하강을 기다리고 있었다. 피켈로 자기 확보를 한 뒤 설벽에 살짝 엉덩이를 기대며 뒤를 돌아섰다.
그때 정말 생각지도 못한 감동이 밀려왔다. 노을이었다. 바로 내 눈앞에 노을이 있었다. 늘 올려다봐야 했던 노을이 그저 눈앞에 저 멀리서부터 물들어 오고 있었다. 고도 4,000m의 설벽에 매달려 붉은빛, 보랏빛 그리고 푸르스름한 빛까지 모두 감싸 온 하늘을 물들이고 있는 노을에 할 말을 잃고 그저 감탄사만 연발했다. 구름과 함께 봉우리 너머로 사라져가는 노을은 찬란한 빛을 냈다. 세상이 온통 신비로운 붉은빛으로 가득해지는 듯했다. 노을이 진다는 것은 날이 저물고 금방 밤이 된다는 것이다. 노을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그 순간만큼은 그저 아름답다는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춥고 긴장하며 두려웠던 것, 그 찬란한 빛 앞에서 모든 것이 잊혀졌다.
그러고 보니 하루 종일 해와 함께 설벽에 매달려 등반을 했다. 해가 가장 하늘 높이 떠 있을 때, 나 역시 가장 높은 곳으로 오르고 있었다. 태양을 좇으려는 나를 막으려는 듯 하얀 눈에 반사된 햇볕은 뜨거웠고 크게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렇게 태양을 좇고 또 좇아 등반을 한 나에게 하강하며 본 노을은 선물과 같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뭉클했다. 처음 겪는 종류의 감동이었다. 이곳에 내가 있음을, 이 광경을 마음껏 보고 감동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러나 늘 황홀하고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다. 황홀하고 즐거웠던 시간은 아주 잠깐뿐이었다. 오지탐사대는 22년간의 내 짧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산에서는 쉽게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없었다. 내가 노력한 만큼 산은 내가 원하는 것을 주었다. 그것조차도 쉽게 얻어지지는 않았다. 잠자리조차 쉽게 얻기 힘들었다. 귀찮다고 텐트 바닥에 돌이라도 덜 골라내는 날에는 편하게 푹 자기 어려웠다.
매일 울면서 산행하던 날들
밤새 결려서 몸을 이리 틀고 저리 뒤척이다가 날이 새고 말았다. 물론 피곤하면 그런 건 아무 문제없다. 단지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목이나 허리가 아플 뿐이다. 하루 종일 산행을 하고 캠프에 돌아와 식사 준비를 할 때면 바람을 막고 물을 뜨러 가는 것도 힘들고 지쳤다. 그러나 캠프에서의 일상은 딱 즐길 수 있을 정도로 힘들었다. 무엇보다 먹고 자는 것은 포기하거나 그만둘 수 없는 일이다.
등반을 하면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나에게 얼마나 자주 찾아왔는지 모른다. 대열에서 이탈해 조금만 쉬었다 가고 싶었다. 저 멀리 정상이 보이고, 그 끝에 대원들이 기다리는 순간에도 모든 것을 놓고 내려가고 싶었다. 훈련 도중 다친 발목은 여전히 내 속을 썩이며 말썽이었다. 발목이 접질리고 아플 때마다 나는 자꾸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는 것은 더 아프고 어려웠다.
하루 산행을 끝낼 때면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우리 팀과 다른 대원들에게 부담과 짐이 되는 것 같아 홀로 산을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장님과 대원들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상상도 했다. 나는 이곳에서 계속 작아져만 갔다. 내가 설 자리는 없었다. 하루에도 수백 번 마음을 다잡았지만 ‘그만 둬야 한다’,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은 너무나도 컸다. 그런 생각을 다른 대원들에게 들킬 것 같아 항상 미안하고 조심스러웠다. 외롭고 무서웠고 두려웠다. 매일 아침 일어나 배낭을 짊어질 때마다 나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몸이 아픈 것보다는 마음이 더 힘들어 매일 울면서 산행 하던 날들이었다.
- ▲ 3 악사이산군 라첵산장 근처에서. 복스 등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라 마음이 가볍다.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에게 기대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다. / 4 알아르차에서의 마지막 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과 함께 치즈와 맥주, 그리고 대원들이 돌아가며 부르는 산노래, 너무나도 훌륭하고 아쉬운 밤이었다.
탐사 넷째 날 아침, 미션수행일이다. 알아르차빙하의 끝, 패스를 오르는 날이다. 자일에 잠금 카라비너를 통과시켜서 일렬로 등반을 하고 있었다. 앞꿈치로 눈을 퍽퍽 치면서 올라가라는데, 도저히 발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한 발짝 디디며 올라설 때마다 발목이 아프다. 선등을 제외하고 두 번째로 가고 있는 나의 뒤에는 8명의 대원들이 있다. 피켈로 자기 확보를 하고 자일에서 내 카라비너를 뺐다. 더 이상 못 가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은 할 수 없어 조금만 쉬어가겠다고 말했다. 맨 뒤에 있던 대장님은 안 된다며 올라서라고 한다. 내가 아무리 못 가겠다고 해도 요지부동이다.
내 뒤에서 올라오고 있던 대원이 자일에 내 카라비너를 채운다. 뒤를 돌아봤는데 모두 나만 바라보고 있다. 설벽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이 너무 힘들어 보였다. 다시 오를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 모두들 “파이팅!”을 외친다. 가다가 몇 번을 멈췄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걸어서 올라갔는지 기어서 올라갔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힘들게 올라갔건만 정상에서 본 것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감탄하고 사진을 찍는데 내가 그 순간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어떻게 서 있었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패스 끝 좌측의 무명봉을 올라 마지막으로 올라온 대장님의 얼굴을 보는데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눈물이 먼저 나왔다. 그날 내가 기억하는 것은 대장님이 나를 보며 웃던 모습뿐이다.
알아르차 패스를 오른 이후 통증이 더 이상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발목 상태는 어제보다 오늘이 더 아픈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한 대원이 내게 했던 말처럼 그저 ‘아프구나’ 하고 인정하고 나니 모든 것이 쉬워졌다. 운행을 하는 동안 부담이 되었던 마음은 내가 한 번 더 설거지를 하고 캠프에 와서 더 많이 움직이며 조금씩 덜어냈다. 또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지 깨닫고 인정했다. 늘 힘들고 부족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괜찮다며 강한 척했다. 나는 괜찮지 않은 순간에도 늘 괜찮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항상 힘들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헉헉 차는 그곳에서 힘들지 않은 순간은 없다. 그런데 묵묵히 산을 오르다 보면 힘들고 아픈 것이 잊혀지는 듯하다. 정말로 힘들고 아팠던 것이 아니라 단지 힘들고 아프다는 ‘생각’은 아니었을까 하는 자신감이 들기까지 한다. 적당히 인정하고 비워내며 또 내려놓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억지로 우기거나 꾸미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산에서 더 자연스러워졌다.
너무 힘들고 지치던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다시는 산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산행이 끝나던 날 다시 산이 그리워지고 말았다. ‘다시는 오나 봐라’ 하면서도 키르기스스탄의 알싸한 빙하의 바람이 그리워 또다시 찾게 된다는 대장님의 말씀이 이제는 절실하게 와 닿았다. 추워서 어쩔 줄 몰라 빨리 그곳을 떠나고 싶던 그날이 지금 너무 그립다.
- ▲ 푸른 초원을 만나 들뜬 마음에 목마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탐사 개요
-이영옥(대장) 중앙대산악부OB, 서울시연맹 등산의학 이사
-김용현(부대장) 한국교통대 07학번, 교통대산악부YB
-신재민(식량) 원광대 12학번, 원광대산악부YB
-박정기(수송) 울산과학기술대 09학번
-임재열(촬영) 조선대 12학번
-유형곤(촬영) 제주대 10학번
-장지희(의료) 혜천대 12학번
-성경화(회계) 이화여대 11학번
-김진현(장비) 전남대 10학번, 전남대산악부YB
-김민주(행정) 동덕여대 09학번
-신선혜(기록) 서울교육대 11학번
-조재형(자료) 한성대 10학번
탐사기간 2013년 7월 19일~8월 10일탐사 결과
-알아르차 패스 좌측 무명봉(4,098m) 등정
-로그비넨코 마운틴(4,361m) 등정.
-복스 피크(4,236m) 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