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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처:경주최씨 옻골 종중 ■ 발행인:최 윤 돈 ■ 편 집:최 용 식 ■ 인 쇄:대 보 사 |
• 종중사무실:중구 동산동 297 동산빌딩2층 (053)983-1380 • 발행일:2010년 12월 31일 제 2 호 |
百弗古宅 달빛음악회
2010. 7. 23(금) 오후 6시에서 9시까지 종가 마당에서 2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영남체험관광연구소 주최로 제1회 百弗古宅 달빛음악회가 성황리 개최되었다.
음악회가 열릴 무렵 세찬 바람과 함께 폭우성 소나기가 내렸으나 비가 그쳐 음악회를 개최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또한 저녁식사와 과일 차 등이 방문객에게 제공되어 음악 감상외에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였다.
고택에서 열린 연주회는 다른 연주회장에서 맛 볼 수 없는 색다른 음악회를 경험하게 하였다.
2부행사에서 한원씨의 구수하고 재치넘치는 사회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사물놀이 민요 농요 팝송 색스폰 연주 시낭송 가요등 다양한 레퍼토리로 관객을 즐겁게 하였다. 특히 TBC 고향별곡의 진행자 단비가 출연하여 우지마라, 또 만났네요 가요를 부를 때는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았다. 종손 내외의 특별출연 삼포로가는 길을 열창할 때는 관객과 모두 하나가 되어 百弗古宅 달빛음악회를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연주회에 참가한 모든 연주자는 수준 높은 음악을 선 보였고 모두 자원 봉사를 하였다 한다.
이번 달빛 음악회는 400여년 백불고택에 스며있는 문화적 가치를 알리고자 올해 처음으로 시민과 함께하는 음악회이지만, 내년 8월에는 세계육상대회 기간 중 대구시민과 대구를 찾는 국내.외 방문객들에게 멋진 이벤트로 백불고택을 관광 명소화 하는데 목적을 두고 계획하고 있으며 백불효행길 트레킹, 전통음식 만들기, 대구문화 알리기 등 많은 체험관광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한다.
내년에 열리는 제2회 달빛음악회가 성공하여 우리가문, 우리고장 대구의 전통문화를 전세계에 알리는 큰 행사로 자리매김 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대학생 연수
2010. 8. 21(토)~22(일) 이틀간 우리문중 대학생 15명을 대상으로 대학생 연수회가 개최되었다.
이번에 윤돈씨가 득성유래 및 우리의 가계, 진돈씨가 제의례, 병림씨가 기본생활예절,, 수돈씨가 Workshop, 언돈씨가 백불암 선조의 생애와 업적에 대하여 강의 및 수고하여주셨다.
대학생 연수는 격년제로 실시한다.
농연정 전기시설 설치
금년 8월 동구 용수동 소재 농연정에 단독 전기시설이 설치되어 그간의 불편사항이 해소되었으며, 야간에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농연정은 병삼씨(010-4025-5436)에게 신청하면 종중원 누구나 수시로 이용할 수 있으니, 지인을 대동하여 많이 이용함으로써 옻골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종가포럼 참석
경상북도가 주최한 “2010 종가포럼”이 11.16 서울코엑스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종가문화 세계와 소통하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종가포럼에 전국 종손, 종부, 유림단체 등 1천여명이 참석했는데 우리 종중에서는 최진돈 종손내외와 최윤돈 종중회장이 참석하였다.
公山 三賢 顯揚碑 제막식
2010. 11. 23 오후3시 동구 미대동 체육공원에서 백불암선조를 위시하여 팔공산을 빛낸 충절, 효행, 청렴의 표상이 되시는 세분의 업적을 기리는 헌양비 제막식이 열렸다.
이날 선현 헌양비 건립에 노고가 많으신 분과 지역 의원, 기관단체장, 동민 그리고 우리 문중원 20여명이 참석하였으며, 최윤돈 종중회장이 3문중 대표로 인사하였다.
삼현 현양비에는 광해군때 충신 양전헌 채선견 선생, 정조조 효자 백불암 최흥원 선생, 명종조 청백리 괘편당 이영 선생의 행적과 사상을 각인하였다. 백불암 할아버님에 대한 기록으로
<비의 전면>
百弗庵 崔興遠 先生(1705~1786)
백불암 최흥원 선생
戒弟及兒 계제급아
백불암
世事紛紜日覺危 세상일 어지러워 날로 위태 함 알겠는데
幾人危處保天彛 몇 사람이나 위태할 때 천륜 을 보전할까
各私妻子兼私貨 처자식과 재물을 각각 사사 로이 한다면
私意起時恐孝衰 사사로운 뜻 일어날 때 효심 쇠할까 두렵네.
<후면>
높고도 우뚝한 공산 아래 길고도 그윽한 정기 받아 어질고도 큰 효孝 행하셨도다.
절개는 쇠처럼 굳었으며 품은 생각은
오직 실천에 있었도다.
언제나 나의 허물 헤아리고 나의 잘못 깨달아서
실천하지 못한 것은 남에게 권하지 않았도다.
들어오는 것을 헤아리고 나가는 것을 요량함에
근검을 더 하였으니 그로써 풍족해 지셨도다.
향약으로 삼대三代의 세상 다시 보게 하였으니
그 명성 온 나라에 자자하도다.
정조대왕께서 효자를 구하여 사도세자를 추모함에 조정대신들 너도나도 선생을 첫째로 추천하더라.
순암(안정복)도 힘써 행함이 선생께 미치지 못함을 한탄하였으니
아~ 선생의 효도는 나라 경영에 부족함이 없었도다.
안동대학 역사학교수 정 진 영
종중묘사
2010. 11. 27 검덕골 백불암선조의 묘사를 끝으로 금년 종중묘사를 모두 완료하였다.
(2010. 11. 6 대종중, 11. 7 직지동, 11. 8 평전, 11. 9 두레기, 11. 13 남창, 11. 14 달동, 11. 15 수태, 11동, 1. 21 서산)
서산 수위산소 묘사
우리의 조상 알기
1. 선현의 행적
(세 가계를 크게 세우신)
○ 태동공 (1567-1622) 할아버지의 가계
가계도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단(鄲, 匡靖公) -재전(在田) -맹연(孟淵) -한(澣) -자하(自河) -해(海) -종윤/종택/종옥
1자 종윤(宗潤, 秀洞派)/ 2자 종택(宗澤)
3자 종옥(宗沃) -1자 겸(謙, 入室派)-동보(東 輔, 憂樂齋), 2자 인(認, 大明洞派)
3자 계(誡, 台洞公)-1자 동률(東嵂, 茶川, 智妙派)
2자 동집(東㠍, 臺巖, 대암공派) -衛南 -慶涵 -壽學 -鼎錫 -百弗庵
3자 동직(東
태동공 할아버지는 옻골 입향조이신 대암(臺巖, 1586-1661) 할아버지의 부친이시며,1세 광정공 부터는 8세이고, 백불암 할아버지의 6대조이며, 종옥할아버지의 셋째 아들로 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에서 의병을 일으킨 공으로 선무(宣武) 2등 공신으로 봉해지고 곧이어 만경(전북 김제) 현령이 되었으며, 병신년(丙申年)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일본의 산천․풍속․인물 등을 기록한 동사록(東槎錄)이 있다.
○ 당시 가문의 상황
가. 무인 집안으로 삼숙질의 의병장 탄생
태동(台洞) 할아버지는 유종(儒宗, 유학의 우두머리. 서산대사는 승병을 이끈 僧宗)이던 학봉 김성일선생으로부터 임진왜란 때 대구의병장, 중형(仲兄, 崔認)은 공산의병장, 조카(崔東輔, 1560-1625)는 공산 관군장으로 임명되었고, 삼숙질이 함께 의병을 일으키며, 대구․공산․경산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창녕 화왕산 전투에서도 곽재우 장군을 지원하는 등 전공을 세웠다. 한천공(寒川公), 우락재(憂樂齋)와 함께 평천사(三忠祠)에 배향되었다.
나. 당시 가문의 위상
광정공부터 태동공까지는 대부분 무인으로써 요동정벌, 임진왜란(1592-1599)과 병자호란에 참전했다. “1588년에 간재 이덕홍, 여헌 장현광, 동강 김우옹, 지산 조호익 등 18명과 함께 불골사(佛骨寺)에 모였다”는 우락재(憂樂齋)의 동고록이 있고, 또한 “가을에 인재 최현과 가흥사에서 만나 천재지변과 나라에 충성하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일을 의논했다.” 등의 교류 내용으로 볼 때 8세 겸(謙)․인(認)․계(誡) 형제 시절에 이미 무풍(武風)에서 문풍(文風)으로 가풍을 많이 바꾸고, 경상도에서 비중이 있는 집안으로 등장한 것을 알 수 있다.
다. 당시의 가세 : 세 아들과 두 딸에게 분재한 것이 만석이었고, 지역에서 덕망과 상당한 재력이 있는 사람에게 의병장을 임명하던 당시 관례로 볼 때, 태동공 할아버지 삼형제가 덕망과 재력으로 왕성한 족적(族的) 기반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 태동공 할아버지의 공로
가. 임란시 대구 의병장 : 위의 글 참조(의병 1000여명을 거느렸다)
나. 변무위문(變武爲文)과 효제(孝悌)의 가풍을 만듦
1609년 자신이 공신임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잘못도 없이 경질된 이유가 자신이 무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후, 광정공 할아버지로부터 내려오던 가문의 전통을 무반(武班)에서 문반(文班)으로 바꿀 결심을 하였다. 공부하는 집(學舍)을 별도로 만들어 세 아들의 공부를 엄하게 독려하고 한강(寒岡, 鄭逑, 1543-1620)의 문하에 보내는 등의 노력으로 모두 생진과에 합격시켰다. 또한 백불암 할아버지가 태동공을 위해 효제당을 짓고, 효제당명(孝悌堂銘)을 만든 것을 미루어 보면 태동공 할아버지로부터 가풍을 문풍(文風)과 효제(孝悌, 효도와 우애)로 삼은 것을 알 수 있다.
다. 세 가계를 크게 세움
위와 같은 결과로 대암 할아버지는 차남으로 대구 도동에서 처음으로 옻골에 입향한 분파조(分派祖)이고, 장남 다천(茶川, 崔東嵂)은 지묘(智妙), 삼남 향암(香巖, 東
[如白 崔彦惇 씀]
2. 가훈
백불암선조께서 친족들과 후손을 위하여 가훈을 정하여 실천하도록 하는 열 개항의 도덕적 덕목을 만들었다..
1. 부모 형제간에는 삼가 착한 일만 하라고 조르지 말고, 종족 간에는 원한이나 노여운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고, 오직 사랑하고 화목함을 으뜸으로 하라.
2. 가난한 친척이 내가 가진 것을 요구하면, 반드시 힘을 다하여 베풀어 주고, 이를 갚는 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그 사람에게 맡기고, 그 사실을 가슴속에 간직하여서는 아니 된다.
3. 친구들과 사귀고 놀 때에는 오직 착한 일을 하도록 권장하고, 나의 잘못한 일의 충고를 즐겨 듣고, 이를 명심할 것이다.
4. 종(하인)들도 또한 사람의 자식인데 어찌 반드시 내가 하고자 하는 뜻을 전력으로 따르게만 하겠는가? 몹시 어리석은 사람이 어찌 그 뜻(義)을 잘 맞춰 주랴? 오직 마땅히 가엾게 여기는 마음으로 잘 부려야 할 따름이다.
5. 부모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얻는 것은, 자식으로서 기쁜 것이다. 형이 올리든 아우가 올리든 말할 것도 없이 똑 같다. 부모가 이것을 얻으면 그것이 형제의 손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기뻐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만약 그것이 자기 손으로부터 나와야만 곧 성의로 생각하고 그로 인해 사이가 나빠지면, 이는 사사로운 생각이라 염려할 점이니, 크게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6. 한 집에서 조상들이 정한 예의범절을 한결같이 지키지 않는다면, 또한 그 집안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비록 책을 읽는 집안의 자손이라도, 소학에서 공부한 행실을 하지 않으면, 그들은 오히려 헛된 글을 배운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7. 책을 읽는 순서는, 반드시 먼저 『효경』과 『소학』을 읽고, 다음에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를 읽을 것이지, 이것저것 마구 읽게 하여서는 안 된다.
8. 자식이나 조카들이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바로 꾸지람을 가하지 말고,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너그럽게 한 뒤(사정을 헤아린 뒤)에 잘 타이르며 잘못을 고쳐 준다면, 마침내 듣는 사람이 스스로 깨닫고 두려워하고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며, 점차로 잘 되어 나가지 않겠는가?
9. 세상의 어린이가 교만하고 게으른 것이 많은 것은 어머니 잘못이다. 부인의 성품은 작은 언덕에 얽매여서, 음식이나 좋아하는 것을,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대로 해줘서, 그 나쁜 버릇을 자라게 하니 이것이 어찌 행실을 기르는 도리겠는가?
10. 자식이나 조카들이, 남이 자기를 비방하는 말을 들으면 알리기에 급한 사람이 있는데, 남의 비방이 어찌 자기에게 해롭기만 하랴? 침착하지 못하고 덤비기만 하는 사람은, 결코 자진하여 일할 만한 재목이 못되니, 마땅히 크게 반성할 것이다.
알 림
1. 종중원 동정
○ 욱돈씨(현대자동차)가 전기차개발 참여
○ 병길씨가 12월 1일 강원산업대표이사장 취임
2. 문중단신
○ 시돈씨(삼성전자근무)가 컴퓨터 일체, 서울종중에서 에어컨을 종중사무실에 기증하였다.
○ 최윤돈회장이 2010. 8. 25 종중사무실에서 박약회 대구지회 여성회원 30명 대상으로 특강(인생의 3대 선택)을 하였다.
○ 동도회 청장년회원 30명이 2010. 9. 11 성주도씨 용호문중 사무실에서 최병환 청장년회장 주제로 동도회의 발전방향에 대하여 협의하였다.
○ 옻골청장년들이 2010. 9월부터 종중사무실에서 진돈씨의 주제로 한문문집연구를 시작하였다.
○ 윤돈씨가 직접 쓴 千字文 책자를 발간 추석때 전체 종중원에게 무료배부 하였다.
○ 2010. 10. 3 박약회 대구여성회 주관으로 영남대 외국인유학생 50명과 회원 40명이 백불고택에서 ‘한국 전통문화 엿보기’행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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