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사슴의 눈동자
2016. 5. 19 자살로 생을 마감한 서울남부지검 김모 검사. 나이 서른셋의 내 아들 또래의 청년이다.
대한민국 최고수사기관의 엘리트검사가 조직내부의 갑질행위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었다.
"스트레스 탓에 어금니가 빠졌어"
"술자리 끝났는데 부장이 부른다. 여의도에 있는데 15분 안에 오라고 한다. 택시 타고 가는 길"
"와...15분 지나니 딱 전화 온다. 도착하니 부장은 취해서 강남 XXX동까지 모셔다드리고 있다"
"술 취해서 (나보고) 잘하라고 때린다…슬프다 사는 게"
"욕을 먹어도 웃으면서 버텼더니, (오히려) 술 마시면서 나한테 당당하다고 욕을 했다"
"매일매일 부장(검사)한테 욕먹으니 진짜 살이 쭉쭉 빠진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진짜 든다"
"같이 개업할래? 지방에 가서 좀 편하게 살고 싶은 생각도 든다"
"죽고 싶다"
"술 시중드는데, 죽고 싶다"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지 오늘은 자고 일어났는데 귀에서 피가 엄청 많이 났다. 이불에 다 묻었다"
"내가 먼저 나가 있을게. 아무개 때문에 죽지는 못 하겠고"
"너무 울적해서 유서 한 번 작성해 봤는데, 엄마·아빠·XX랑 여기 있는 친구들 밖에 생각이 안 나"
"아 맨날 징징거리게 되네. 살려줘"
"아 죽고 싶다. 자괴감 든다. 부장한테 매일 혼나고"
"슬퍼 사는 게"
김 검사가 목숨을 끊기 전에 친구들과 나눈 언론에 보도된 문자 메시지다.
그는 유서에서 살고 싶다고 적었다한다.
왜 우리는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가!
올무에 걸려 버둥거리는 슬픈 사슴의 눈동자가 어른거려 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먹먹하다.
나는 이 글의 제목을 처음에는 "개새끼들!"이라고 붙였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청년들이여! 자살하지말고 당하지 말고 같이 물어 뜯으라고 적었다가 지금처럼 고쳤다.
개들에게 미안해서이기도 하였지만 폭력적 쾌락을 추구하는 갑(甲)질의 잔인한 새디즘과 그 폭력을 냉소하며 견디는 을(乙)의 슬픈 매조키즘적 저항을 본 때문이다.
이게 지금 내가 그리고 내 아들들이 살고 있는 오늘의 세상이다.
그 아들이 키우고 있는 내 손자가 살아 갈 미래의 세상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내가 만들어 놓은 한심한 세상이다.
알고보면 "갑질"하는 자들은 자기 힘과 자기 능력이 아니라 조직의 위세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는 자들일 뿐이다. 제 손으로는 자기 밥도 지어 먹지 못하는 개뿔도 아닌 것들이다.
계급장 떼고 맞장을 떠라!
죽기를 각오하면 무엇이 두려우랴! 더 이상 죽지말고 더 이상 슬픈 눈동자를 하지말고 엉터리 같은 이 세상을 물고 뜯어 고치라!(2016.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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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알현도>와 슬픈 명자꽃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 교육부 정책기획관이란 자가 언론사 기자들과 저녁 식사하는 자리에서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99%의 민중은 개·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 자신은 상위 “1%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며 “어차피 다 평등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한다(2016. 7. 9.뉴스). 취중 망언이라 하지만 행정고시에다 교육부 장관 비서관, 청와대 행정관 등을 지냈다 하는데 그런 직위에 있었다는 젊은 인사의 의식세계가 놀라움을 넘어서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김득신의 그림 중에 <노상알현도>란 그림이 있다. 조선시대가 사대부 중심의 철저한 신분 사회였음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다.
사대부가의 양반이 나귀를 타고 길을 가는 중이다. 종들로 보이는 사내 둘이 호종 하고 있다.“말 타면 종두고 싶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가을이 무르익어가자 상것들이 경작하는 토지를 둘러보는 중이라 추측된다. 토지 주인인 사대부 마님의 느닷없는 행차에 혼이 나간 젊은 내외가 노상에서 넙죽 엎드리며 큰절을 올린다. 남편은 황급히 엎드리고 아낙은 막 절을 올리려는 참이다. 생명줄을 그가 쥐고 있음에 동작이라도 빨라야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양반이 탄 나귀의 고삐를 쥐고 있는 종놈의 허리가 꼿꼿하다. “호가호위”란 말이 저기서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종들이 없으면 사대부의 위세로는 나귀 한 마리도 다루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그림을 보고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 되는 미당의 시 <자화상>이 떠올랐다. 내 조상은 저 그림속의 누구일까? 노새를 탄 사대부일까? 노새의 고삐를 쥔 종일까? 아니면 큰절을 올리고 있는 저 백성일까? 그림 속에는 다섯 명이 등장하는데 내가 사대부의 후손일 확률은 20% 다. 그런대도 우리 집 족보에는 내가 당당한 양반의 핏줄이라고 적혀 있다. 이 그림이 오늘의 우리에게 전해주는 자화상은 무엇일까?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는 저 백성은 대갓집 마님의 인격과 학덕과 널리 인간 세상을 구하려는 숭고한 정신에 감복하여 저절로 저런 존경심이 발현된 것일까?
김득신은 1754(영조 30)년에 태어나서 1822(순조 22)년까지 활동한 도화서 화원이다. 신윤복이 1758년생이니까 같은 시대에 그림활동을 한 인물이다. 그는 왜 이런 사실적인 그림을 남겼을까? 김득신과 신윤복이 활동하던 시대인 1784년에는 이승훈과 이벽이 최초의 천주교회를 설립한다. 당시 사람들은 천주교를 천주학 또는 서학이라고 불렀는데 "만인은 천주님 품에서 한 형제자매"라는 평등의식이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이 민중 속으로 번지자 결국은 무부무군의 종교로 낙인찍혀 순조원년인 1801년에 혹독한 탄압을 받아 무려 300여 명의 천주교인이 학살을 당한다. 역사에서 신유사옥으로 불리는 이 옥사가 겉으로는 사람을 참형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대부 중심의 신분사회를 무너트리려는 생각이 더 이상 확대되지 못하도록 생각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번 불이 붙은 만인평등 의식은 소멸 되지 않는다. 1811년 서북인차별을 명분으로 대규모 농민반란인 홍경래 난이 일어나고 1860년에는 동학교가 생기고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사상으로 확산되어 급기야 1894년에는 동학농민혁명의 불길이 당겨진다. 이 시대에 중국은 홍수전의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나게 된다.
신분제의 혁파와 새로운 시대로의 변화를 목말라하던 의식들이 큰 물줄기를 형성하여 도도히 흐르는데도 이 물줄기를 잡아서 나라의 기틀을 새롭게 할 정치세력이 없었으니 마음 만 앞선 개화파 청년들이 일으킨 1884년의 갑신정변은 3일 천하로 끝이 나고 나라는 결국 1910년에 왜놈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만다.
해방이 되고 백성이 나라의 주인인 대한민국이 건국되었지만 내 초등학교 여자 동창생인 명자의 아버지는 우리 마을의 고자(고지기)로 살았다. 마을의 종이라고 코흘리개 아이들까지 명자 아버지에게 반말을 하였고 명자 아버지는 존댓말을 해야 했다. 명자 아버지는 마을에서 주는 땅뙈기를 농사지어 남의 문중묘사를 차려주고 마을의 온갖 궂은일을 도 맡아서 했다. 나는 명자 아버지에게 존댓말을 썼지만 명자는 단 한 번도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봄이 되면 명자 아버지가 비질하던 재실 마당 한 구석에는 해마다 명자꽃이 피었지만 명자의 소식을 아는 친구는 없다.
뒤돌아보면 나귀를 탄 마님이나 고삐를 쥔 종놈이나 무지렁이 백성이나 나나 당신이나 미당이 시(詩) <자화상>에서 표현한 대로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살아온 세월일 뿐인데도 조선 왕조 500년의 사대부 중심의 사회가 남긴 신분제는 우리의 의식에 깊이 뿌리박혀 지금까지 우리사회 곳곳에서“갑질 문화”로 전승되고 있다. 명자꽃이 붉은 것은 코가 땅에 닿도록 엎드리던 백성의 자식들이 새 세상이 왔다고 <완장>을 찬 제 모습에 도취되어 사대부집 마님보다 더 지독한 세도를 부리며 거들먹거리고 그걸 대단한 자기 <자화상>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 명자의 아픈 마음이 명자꽃 속에 녹아있는 때문이리라.
뉴스의 인물이 된 그는 나보다 열다섯 살이나 어리고 김득신 보다는 216살이나 어린 47세다. 최근 뉴스의 초점이 된 후배 폭력 부장검사 48세, 180억을 횡령했다는 대우조선 해양의 차장 46세, 건배사에서 "천황폐하 만세!"라고 그것도 세 번씩이나 외친 환경정책 평가연구원 센터장이라는 자도 47세, 사오서칠을 해서라도 사무관, 서기관으로 승진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가진 자들의 나이도 대부분이 40 중 후반일 것이다. 한 10년 쯤 후면 이들이 전부 국회나 지방의회로 진출할 것이다. 살아오면서 정말 오늘처럼 절망감에 빠져본 날이 없다.
* 명자 꽃(꽃말 : 겸손)
* 김득신의 노상 알현도는 인터넷에서 검색하시면 쉽게 찾으실 수 있습니다.
* 태평천국의 난
우리역사의 동학혁명과 아주 유사한 성격의 민중봉기다. 기독교사상을 접한 홍수전이 1843년 광둥성[廣東省] 화현[花縣]에서 배상제회(拜 上帝 會)라는 종교를 창시한다. 하늘의 주재자인 상제(上帝)를 그리스도교의 여호와와 같은 위치에 놓고, 모세와 그리스도가 여호와로부터 구세의 사명을 받았듯이 세상을 구하라는 사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기독교의 교리대로 만인은 평등하다고 호소하며 내세가 아닌 현세에다 천국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1851년 초 남녀노소 약 1만 명을 거느리고 봉기하여 ‘태평천국’이라는 나라를 세웠으나 실패한다. 그러나 만인 평등사상은 계속 불타올라 중국 전 인민의 가슴으로 확산된다.
왕조정치체제가 붕괴된 중국과 조선이 서구에서 일어난 공산주의 사상을 끌고 와서 동족상잔의 내전을 치룬 그 참혹한 정신의 뿌리가 무엇인지 이해를 해야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 공산주의 사상을 끌어들인 자들은 그들이 새로운 황제가 되었지만 민중의 가슴 속에 남은 불씨를 지우지는 못한다. 그 불씨는 다시 민주화로 타오르게 된다. 정치의 민주화를 통한 사회 모든 곳의 민주화, 자유화, 사랑화, 행복화, 인간다운 삶의 추구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나는 예수가 말한 메시아 재림이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슴 속에 내재해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민중이 깨어나고 국민이 똑똑해져서 위정자(지도자)들이 국민을 속이지 못할 때 비로소 태평천국이 온다고 믿는다. 모든 지도자들은 선한 청지기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첫댓글 잊고 지냈는데 아니 애써 잊으려고 했는데 윗글 읽으며 옛 감정이 부르르 살아납니다. 청춘이 만리 같은 젊은 검사가 죽을 땐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저도 갑질 당해 봤습니다. 18세란 어린 나이에 가장 아닌 가장의 명찰을 달고요. 지금 처럼 인권과 노동자 보호법이 제 자리 잡지 않았을 때 일이지요. 저는 어느 누구한테도 아부 하고 싶진 않았어요. 오직 바른 생각과 함께 바른 길로 가라는 부모님의 막연한가름침 때문에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른 말 하며~~ 그러다 보니 상사 한테 빰도 맞고 발로 차이기도 했습니다. 출근만 하면 힘든 일만 시키고~~ 그 상사는 회사에 생산되는 물건을 훔쳐 팔아 먹는 짓을 자주 했답니다. 그걸 저한테 시켜서 ~~ 말 안들어 준다고 많이 맞았지요. 죽고 싶기도 했답니다. 고마 요기서 ~~
아주 나쁜 X의 시키^^
이춘희 선생님의 그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시니어 매일에 도전해 보세요~. 한국 놈들 중에서 인간성 나쁜 놈들 참 많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