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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 미술 거장전- 아름다운 열정, 이중섭`박수근 展
전시일정 및 장소: 2013년 6월 13일 (목) ~ 2013년 9월 8일 (일)
우양미술관 (구 아트선재미술관, 경상북도 경주시 신평동 370)
출품작: 박수근과 이중섭의 유화, 은지화, 드로잉 등 총 30여점
n 전시 소개
경주 우양미술관에서는 6월 13일부터 9월 8일까지 ‘한국 근현대미술 거장전 - 아름다운 열정, 박수근 ∙ 이중섭’ 展을 선보인다.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박수근과 이중섭. 그 동안 회고전이나 단체전 등을 통해 이들의 작품이 소개된 적은 있지만, 이번 전시처럼 이 두 작가만을 집중적으로 조망한 전시는 드물었다.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와 작품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간직했던 두 작가가 자신이 살던 시대를 바라보는 눈이 작품들 속에 담겨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떨어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 등을 각기 개성있는 화풍으로 그려낸 작품들은 이제 우리의 삶과 역사를 대표하는 모습이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근대미술의 양대 거목으로 불리는 박수근과 이중섭의 대표작 30여점을 한 자리에 선보인다.
n 박수근, 삶의 풍경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
박수근의 작품 속에는 삶의 풍경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빨래를 하기도,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길을 걸어가기도, 때로는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그들은 삶의 힘겨움에서 잠시 벗어나 일상 속에서 편안히 살아가듯 보인다. 생활에 매여있는 이들이 아닌, 자신이 생활하는 풍경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삶을 영위하는 이들로서 다시 자리한다. 그리고 그 인물들은 구체적인 어떤 한 인물로 표현된 것이 아니라, 얼굴의 구체적 묘사가 사라진 인물로 그려진다. 특정 시공간에 얽매여 있는 모습이 아니기에, 보편적인 한 시대의 삶의 모습이며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그의 그림을 박수근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마티에르 이다. 그의 그림은 여러 번의 밑칠을 통해 바탕을 쌓아 올린 후 형태를 잡고, 다시 재질감을 만들어 나가면서 형태를 마무리한다. 이러한 재질감의 표현은 후기로 가면서 발전되는데,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을 통해 그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그의 그림 속 풍경은 우리가 사는 어느 곳의 모습이었고, 길에 앉아 물건을 파는 여인들과 아이를 업은 소녀의 모습은 우리가 살았던 일상이었다. 독창적이면서도 가장 대중적인 것, 그 가운데 균형감을 유지한 박수근의 그림 속에는 작가가 자신과 시대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표현을 통해 삶의 내면을 그려내는 작가의 깊이가 담겨있다. 박수근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을, 이번 전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박수근이 즐겨 다룬 소재는 여인들의 생활 양상, 시장 풍경, 나목이 있는 풍경들이다... 시장에 나와 함지를 앞에 하고 물건을 파는 여인들, 한가롭게 둘러앉아 한담에 여념이 없는 중노의 남정네들, 함지를 이고 바삐 돌아가는 여인네들의 모습은 1950년대와 1960년대 한국 서민들의 진솔한 삶의 풍경을 기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어떤 기록물보다도 박수근의 작품이 보여주는 서민들의 생활정경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기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이 지니는 이 시대적 리얼리티가 외국인들로 하여금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한 요인일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박수근의 작품은 시대의 증인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의 화면에 나오는 모티프는 이제는 한갓 빛바랜 흑백 사진처럼 아득한 전 시대의 정경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나 그러한 시대의 정경을 기념화 했다는 점에서 그의 예술은 한 시대 가장 뛰어난 것이자 우리의 정서가 이어지는 한에 있어 가장 오래 남게 될 것이다." - 오광수
n 이중섭, 닿을 수 없는 가족에의 그리움
불우한 삶으로 널리 알려진 이중섭, 그러나 한국과 일본에 각기 떨어져 살아야만 했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전쟁 통의 힘겨운 삶은 그의 천재성을 불태워 최고의 작품들을 이끌어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그의 유화 4점을 비롯해, 크레파스, 과슈, 은지화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을 통해 이중섭의 미술세계를 두루 선보인다.
1953년에 그려진 이 작품은 특유의 거침없는 필선과 과감한 생략이 돋보인다. 신화적인 새들과 현실 속의 아이들이 어우러져 놀고 있는 모습은 이상과 현실 어느 쪽에도 구속 받지 않는 자유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는 속도감 있게 그어진 선으로 구성되어 화면을 꽉 채우고 있다. 유화가 몇 점 전해지지 않는 이중섭의 작품 중에서도 양호한 상태로 전해지는 이 작품은 그의 원숙한 필력과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귀한 작품이다.
현재 전해지는 이중섭의 작품 중 대다수는 드로잉이다. 그림을 그릴 재료가 없었기에 유화 작품은 드물기도 하지만, 사실 선으로 구성되는 드로잉은 이중섭 작품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일필휘지로 그어 내린 대담한 선은 간결하면서도 힘이 넘치고, 그 하나로 작가 자신을 대변하기도 한다. 그 중 은지화는 회화에 있어 매우 독특한 재료로, 종이에 펜으로 그리고 부분적으로 채색을 가하거나 혹은 은지에 선묘로 그린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드로잉 작품들 역시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진다. 이는 아마도 이중섭이 선묘 만으로도 충분히 예술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만큼 선의 표현력을 탁월하게 사용할 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예술적 특징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다양한 소재로 제작된 이중섭의 드로잉 작품들을 선보인다. 특히 은지에 그려진 작품이 6점 선보이는데, 비록 그림을 그릴 곳이 없어 캔버스나 종이를 대체한 용도로 사용된 것이기는 하나 은지화는 이중섭을 상징하는 주요 재료가 되었고,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 소장될 정도로 특수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은지화에 그려진 것은 대체로 몸을 서로 얽고 있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다. 일본에 두고 온 두 아들과 사랑하는 부인을 그리는 이중섭은 만날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은지의 작은 화면에 서로 몸을 부둥켜 안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 잊을 수 없는 부정(父情)을 예술혼으로 승화시켰다.
“이중섭의 예술세계는 그의 인간적인 매력과 생애의 비극적인 종말 때문에 오히려 예술성의 추적은 뒷전으로 밀리는 수가 있다. 그러나 그가 뛰어난 예술가이고 한국의 근대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개척했다는 예술적인 의미가 더욱 중요한 점으로 드러나야 한다. 예술가로서의 이중섭은 그의 천부적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으로 남이 도달하지 못한 높은 봉우리에 올랐다. 이중섭의 예술은 다른 천재들의 그것과 같이 개성적이고 독창적이다.. 누가 보든지 일견 이중섭의 그림이라고 식별할 수 있는 구상적인 형태라든가 그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색감의 세계, 기상천외한 착상이나 구도의 묘 같은 것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천생의 소질로서만이 이룩할 수 있는 고유한 것이다... 그린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중섭에게 있어서는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 이경성
n 한국적 모더니즘의 정수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전시
박수근과 이중섭. 불안하고 혼란한 사회 속에서도 예술혼을 담아 한 시대를 살아나갔던 두 화가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화가로 사랑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동시대를 살았던 두 화가가, 자신이 처했던 현실을 어떠한 방식으로 각각 다르게 풀어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관전 포인트를 가진다. 쉽게 만날 수 없는 두 작가의 주요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보는 의미있는 전시를, 새롭게 출발하는 경주 우양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 경주 보문단지에 자리잡은 우양미술관 (구 아트선재미술관)은 1991년에 개관한 미술관이다. 세계적인 주요 거장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고 매해 두 차례 국내외 미술관과 연계된 대규모의 기획전을 통해 세계 근현대미술사의 흐름을 다양한 측면으로 조망해오고 있다.)
작가 약력
박수근 (Park Soo Keun, 1914~1965)
1914 강원도 양구에서 출생
1927 양구공립보통학교 졸업. 독학으로 스케치와 수채화 공부
1932 제11회 조선미술전(이하 선전) 서양화부에서 수채화 <봄이 오다>로 입선
1936 제15회 선전에 수채화 <일하는 여인>으로 두 번째 입선
1937 제16회 선전에 수채화 <봄>으로 입선
1938 제17회 선전에 처음 그린 유화 작품 <농가의 여인>으로 입선
1940 2월 금성 감리교회에서 김복순과 결혼, 아호로 ‘미석(美石)’을 사용
최영립, 장리석, 황유엽과 서양화 동인그룹 ‘주호회’ 창립
1941 제20회 선전에 <맷돌질하는 여인>으로 입선
1942 제21회 선전에 아들과 아내를 모델로 한 <모자(母子)>로 입선
1951 군산에서 부두 노동으로 생활하면서 작업에 열중
1952 부인 김복순 여사가 10월 남매 인숙과 성남을 데리고 남하하여 박수근과 상봉
미8군 PX에서 초상화를 제작
1953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국전)의 서양화부에 <우물가(집)>로 특선하고, <노상>이 입선.
1954 제4회 국전에 <풍경>, <절구>로 입선
6.25 발발 4주면 기념 대한미협전에 <산>, <길가에서>를 출품
미군 PX에서의 초상화 제작을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작업에 열중
변영원, 이수억, 조병현 등이 참가한 「재경미술가작품전」에 참가
1955 제4회 국전에 <오후>로 입선
1960 제6회 국전 추천작가로 <노상의 소녀들>을 출품
1961 제10회 국전 추천작가로 <노인>을 출품
1962 제11회 국전 서양화부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소와 유동(遊童)>을 출품
일본 동경에서 개최된 국제자유미술전에 <나무>를 출품
1963 제12회 국전 추천작가로 <악(樂)>을 출품
과음으로 간과 신장이 나빠지고, 백내장의 악화로 왼쪽 눈 실명
1964 제13회 국전 추천작가로 <할아버지와 손자>를 출품
1965 간경화와 응혈증의 심화로 사망
1978 문화화랑에서 유작전이 개최되고 「박수근 화집 : 1932 - 1962」이 간행됨
1980 정부에서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추서
이중섭 (Lee Jung Seop, 1916~1956)
1916 평남 평원 출생
1929 평양고보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정주로 내려가 오산학교에 입학
1934 일본제국미술학교 입학, 1년 수료
1935 문화학원 입학
1938 1937년에 창립된 <자유미술가협회>전 2회전 공모에 출품하여 협회상 수상
1940 문화학원 졸업
일본화단의 미술창작가협회에 <소와 소녀>, <불상> 출품해 협회상 수상
1941 동경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조선신미술가협회>전 창립전에 가담하여 작품을 출품
제5회 <자유미술가협회>에 <망월>, <소와 여인>을 출품
1942 제6회 <자유미술가협회>에 회우로서 <소와 어린이>, <봄>, <소묘> 등을 출품
아호로 대향(大鄕)을 쓰기 시작
1945 일본인 처 이남덕과 결혼
1947 평양에서 열린 8·15 기념전에 출품한 작품이 소련의 평론가로부터 호평을 받음
1950 원산에서 <신미술가협회>를 조직하고 회장이 됨.
1951 임시 수용소에서 나와 가족을 데리고 제주 서귀포에 도착.
1952 부인 일본 동경으로 돌아감
1953 동란으로 인해 중단되었던 <신사실파>에 가담, 회원으로 작품을 출품
1955 서울 미도파 화랑에서 개인전
1956 청량리 뇌병원 무료 환자실 입원
9월 홀로 사망
1960 부산 로타리 다방에서 부산의 지우들이 소장하고 있었던 작품들로 최초의 유작전이 열림
1978 건국 30주년 기념훈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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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마나. 경주에서도 요런 전시가 열리는 군요,. 하긴 선재미술관일 때 선재미술과 전시 좋았지요. 서울 사간동의 현대 미술관에서
박수근 전을 오래 했었어요. 그 때 두번이나 서울 가서 봤는데요. 이중섭 그림은 제주도 이중섭 미술관에서 봤지요.
그래도 경주서 전시한다니 너무 좋습니다. 많이들 가 보면 좋겠습니다 나무비님 감사!
좋은 정보 이제야 보았습니다. 전시 기간내에 꼭 가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