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륙의 오지 제천을 찾아
5월이 가기 전, 봄의 끝자락에 충북 제천 청풍호를 찾았다. 예전에 충주호로 불리던 곳인데 이젠 충청도의 상징인 청풍명월(淸風明月)에서 따온 아름다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56년 동안 우정을 지켜온 ‘도원’(桃園) 친구들과 아내들의 동반 여행이다. 서울과 인천, 전주에서 달려온 10명의 참가자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가볍게 허그를 했다. 여성들은 짐 보따리를 풀어 냉장고를 채우고 가볍게 마실 음료와 과일을 내놓았다.
숙소는 김 회장이 예약한 청풍호반의 E.S 리조트다. 풍광이 이처럼 뛰어난 리조트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고 칭찬 일색이었다.
숨을 돌리고 처음 찾아간 곳은 정향사였다. 호수를 바라보는 벼랑 앞 작은 터에 오밀조밀하게 조성된 천 년 고찰이다. 고요한[靜] 가운데 부처의 향기[香]가 널리 퍼진다는 이름 같이 고적한 곳이었다. 맑은 바람이 스치며 울리는 풍경 소리가 속세의 번민을 잊게 했다. 관세음보살 앞에 자손들의 건강을 비는 합장을 하고, 석간수에 목을 축였다.
귀로에 담양 도담 삼봉을 찾아 그림 같은 풍정을 즐겼다. 가뭄과 농업용수로 물을 뺀 듯 수량이 많이 줄었다. 사공이 떠난 황포돛배는 선창가에 한가롭게 떠있다.
리조트에 돌아와 제각기 집에서 만들어온 성찬으로 포식했다. 밤에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귀농에 성공한 김 회장의 체험은 압권이었다. 모두 그의 세 가지 선행에 귀를 기울였다.
늦은 겨울 살얼음이 낀 농수로에 청둥오리 한 마리가 날지 못하고 파득거렸다. 이게 웬 떡이냐면서 냉큼 잡아 귀가했는데, 아내 권 보살의 지청구를 들었다. 당장 살려 보내라는 엄명이었다. 두 부부는 오래 전부터 불가에 귀의하여 불심이 돈독한 불자였다. 차에 싣고 강물에 놓아주었다. 물속 깊이 잠수한 뒤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봄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다. 광할 평야의 수로에 물고기가 올라왔다. 바다와 강물이 부딪치는 곳이라 물고기가 많은 지역이다. 동그란 시멘트 통 수로 안에서 철썩대던 잉어를 잡았다. 키가 60cm에 3kg이 넘는 대형 물고기였다. 몸보신을 할 수 있겠다 싶어 신나게 집에 가져갔는데, 아내는 용왕의 자식이라며 살려 보내야 한다고 재촉했다. 바듯이 스마트 폰에 찍어 남기고 큰물에 놓아 보냈다. 아쉬운 대로 뿌듯한 보람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세 번째로 70cm가 되는 누런 메기를 잡아갔는데, 이도 역시 방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아깝다는 듯이 혀를 차기도 했지만, 잘한 일이며 복이 되어 찾아갈 것이라고 격려했다.
부처님의 세 번에 걸친 시험을 통과한 김 회장 부부에게 반가운 신호가 왔다. 제비 한 쌍이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알을 품은 것이다. 이미 그 집은 훌륭한 노부부가 사는 곳이라는 소문이 난 것이다.
다음 날 새벽 산책을 한 뒤 조반을 들고 짐을 꾸려 청풍나루에 갔다. 며칠 전 헝가리 다뉴브 강에 유람선이 침몰하면서 우리나라 관광객 다수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들은 바 있어 마음이 무거웠다. 철제 유람선 청풍호는 끄떡없다는 선장의 설명을 듣고야 안도했다. 수면이 잔잔하고 하늘은 푸르렀다. 총무는 캔 커피를 사다가 돌렸다. 호수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배 꼭대기에서 기암절벽을 완상하며 알싸한 커피로 목을 축이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치아∼.’
드넓은 호수는 바다 같다. 바다가 없는 충북 도민의 아쉬움을 이곳 충주호로 달래나 싶다.
맛 집을 찾아 점심으로 일정을 마감하고 차후의 만남을 기약했다. 늙어가는 서로의 모습에서 자신을 확인한 듯하다. 다음 만날 때까지 열심히 살아가자고 약속했다. 귀로는 김 회장 부부와 함께 했다.
천등 휴게소 쌈지공원에서 졸음을 쫓았다. 박달의 전설을 소재로 금봉이와의 스토리가 목상(木像)으로 재현되어 있다. 영남 선비 박달이 고개를 넘기 전에 얼마동안 지체하면서 마을 처녀 금봉이와 사랑을 맺었다. 날이 풀려 천등산 박달재를 넘어 한양에 과거를 보러 떠났다. 금봉이는 고갯마루 서낭당에 올라 한양 쪽을 바라보며 박달 낭군의 급제와 상봉을 애타게 기다렸다. 박달은 과거에 낙방하고 금봉을 찾지 못했으며,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찾아갔으나 금봉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박달은 낭떠러지에 몸을 날려 그녀의 뒤를 따랐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로 시작하는 박재홍의 구수한 노래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랫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70대 중반의 노구에도 끄떡없는 김 회장의 운전 솜씨를 믿는 바지만, 나는 졸음에 시달리는 그 옆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며 커피를 권했다.
(2019. 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