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은 인현왕후와 사이에 자식이 없었고
장희빈이 낳은 경종과 숙빈 최씨가 낳은 연잉군 등 아들 2명을 두고 사망하였다.
숙종이 28세때 후궁 장희빈에게서 아들을 얻었다.
출생100일만에 원자가 되었고 100일만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인현왕후가 폐위되고 궁에서 쫓겨나고 하루만에 장희빈이 중전의 자리에 오른다.
인현왕후는 자식이 없었고 일찍이 3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장희빈의 악행이 밝혀지자 숙종은 장희빈을 등에 업은 남인들을 숙청시켰다. 그래서 남은 서인들이 득세한다. 서인은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나눠서
노론은 숙빈최씨가 낳은 연잉군 (나중에 영조)을 지지하고, 소론은 장희빈의 아들 세자 경종을 차기 왕으로 추대하기를 원한다. 소론의 우두머리는 윤지환(83세) 이였다.
숙종은 1694년 갑술환국으로 인현왕후 민씨를 다시 왕후 자리에 복귀시키고 장희빈을 강등시켜 왕비에서 빈으로 내려앉힌다. 그리고 사약을 내렸다.
장희빈은 1701년 사약을 받기전에 아들을 보고 싶다고 해 아들을 보여달라고 하였다.
장희빈은 이씨 집안의 대를 끈어버리겠다면서 아들의 낭심을 잡아 뜯어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렇게 자란 경종은 34세가 되어도 자식이 없었고 단 한명의 후궁도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숙종은 죽기전 어린 경종에게 대리청정을 시키고
왕의 대리청정을 3년간 이어간다. 이때 경종의 나이는 33세에 숙종이 사망하였다.
경종이 3세부터 세자가 되어 이어온 30년간의 세자 생활을 끝내고 왕위에 올라 숙종의 대를 이어 왕이 되었다. 연잉군의 나이는 27세가 되었다.
비변사, 육조 등 주요자리는 노론 세력이 차지해 왕은 허수아비 신세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한 노론세력은 연잉군을 왕위에 올리기 위한 상소를 경종에게 여러번 올린다. 경종이 왕이 되고 1년이 지난 시점에 동생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하라고 노론 세력의 압박에
경종이 명을 내린 것이다. 동생 연잉군이 차기 왕이 되는 세자가 아닌 동생이 차기왕이 되는 세제로 책봉된 것이다.
노론의 압박에 경종은 연잉군에게 대리청정을 시킨다.
하지만 경종은 1721년 신축년 신축환국을 명한다.
노론이 차지한 4개의 주요 관직을 파하고 소론을 불러 앉히는 신축환국을 행한다. 왕의 권위를 회복 시키는 일을 단행하였다.
1722년 노론세력은 삼급수 역모사건이 발생한다.
삼급수는 왕을 죽이는 3가지 수단을 말한다.
1. 대급수: 칼같은 무기로 죽이는 방법
2. 소급수: 몰래 독약을 타 먹여 죽이는 방법
3. 평급수:
노론세력이 경종을 암살하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4명의 세도자 4흉을 포함한 노론세력을 추포하고 60여명을 사사하는 임인옥사 사건이 발생 하였다.
임이년의 임인옥사는 신임옥사라고 하는데 나중에
2년뒤 영조가 왕이 되고 임인옥사는 묵호룡의 배신과 무고로 밝혀진다. 무고의 주인 묵호룡은 주요 관직에 올랐다가 연잉군이 영조가 되고 바로 구속되었고 옥중에서 사망하였고 죽은 뒤에도 당고개에서 효수되었다.
임인옥사 (신임옥사)가 일어났을때 공포에 떨었고
위기에 몰린 연잉군은 경종을 찾아 자신의 신분을 파해달라고 납작 업드린다. 그러나 경종은 세제의 직위를 유지하라는 명을 내린다.
훗날 연잉군은 영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