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제주도 여행기(2001년 8월19일-8월21일 :윤은숙(28))

[선우호(28)]

제주 여행기

제주공항에 와 닿았다. 눈앞에 펼쳐진 야자나무에서 제주특유의 남국의 정취를 잠시 느끼고 렌트카 문제로 한시간 여를 공항에서 기다리다.
첫 출발지는 용두암. 그 옛날의 여행의 기억에서 본 용두암보다 상당히 작아져 있었다.
침식의 결과인가 아님 십년전보다 내 마음키가 더 커져 그 바위를 보는 세월의 눈이 달라졌단 말인가.
바위아래서 해삼멍게 먹는 사람들의 입맛이 부러워보이고 한사라 하려다 포기.

자연사민속박물관. 엄청난 큰 갈치에 압도당하고... 생활사를 엿볼수 있는 장면들 접하고 목석원. 여기도 옛날의 감동에 비하면 빛바랜 느낌이 많이 들었던 곳. 갑돌이의 일생을 묘사한 돌작품을 보며 인간사 다 그렇고 그런 것인데... 밀려오는 허무. 가끔씩 만나 가슴앓이하는 이 썰렁하고 허무한 고독.......
도깨비 도로를 잠시 접하고 중문 근처에서 민박을 정한다. 걱정했던 민박분위기보다 너무 좋아 황송함. 주인님의 인자하신 얼굴, 친절, 손님을 맞는 깔끔한 정리상태. 삼면이 바다라 밝고 환한 실내
이 정도라면 오히려 콘도나 호텔보다 더 비싼 가치를 부여해줄 수 있겠다.
저녁준비로 잠시 부산하고, 아이들 일기와 체험학습기록을 좀 봐주고.... 그와는 별 분위기도 잡지 못하고... 너무 피곤해 잠의 늪속으로 빨려들어간 모습
초행길에 운전까지 해서 몹시 긴장하고 긴장이 풀리니 몸은 바로 천국행...
민박집 다른 것은 원더풀이었는데 밤의 실내온도는 거의 지옥!!
뒤치닥거리다 새벽녘에 잠이 들고 벨소리에 아침을 열다. 눈 앞에 펼쳐지는 남쪽 끝바다.
아침에 잠시 그와 마을을 산책한다. 동난드르라고 했던가.

짐을 꾸리고 중문관광단지로 향한다.
퍼시픽 아일랜드 입장시간이 좀 남아 바로 옆 중문해수욕장으로 눈길을 돌린다.
우와 멋지다. 태풍으로 인해 파도가 거세니 더 멋진 장관인 듯 하다. 멀리 쉬리의 언덕으로 보이는 벤치가 보이고.. 중문관광단지 안에 들앉은 하이야트 호텔...
더도 덜도 아닌 1박 2일만 호텔에서 머물면서 이 중문 바닷가를 맘껏 봤으면....
그에게 10년 뒤에 오자고 농을 걸어본다. 과연 가능한 일인지....
퍼시픽에서 잠시 동심을 느껴보고 불볕더위를 받으면서 주상절리로 오른다.
꼬맹이들 엄청난 더위를 잘 이겨내고 걷고 있다. 기특하다. 제법 키워서 자립이 어느정도 가능한 나이가 되었군.
저 멀리에 보이는 엄청난 물보라. 주상절리에서 부딪힌 파도의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파도가 왔다 간 뒤에 얼굴로 싸하게 떨어지는 물보라. 한번씩 연출하는 장관을 보려고 기다림을 배운다. 아이도 어른도.
자연이상 멋진 것은 없다. 아무리 인간의 조형물이 대단하다 하더라도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매력에는 쫓아갈 수가 없는 모양이다.
눈보라 같기도하고.... 지리산 자락의 쌓인 눈을 태풍이 휘몰아치듯 흩뿌리는 눈보라 아니 물보라..
천제연 폭포에서 발이 시리도록 찬 물에 바지 버리면서 몸 담그고.
지나가는 길에 잠시 들른 외돌개, 멀리 범섬을 마주하고.....
성읍 민속마을에 들러 우리가 멀리서 바라본 해녀의 낭만적인 모습과 다른 삶의 고뇌를 이해한다.
유배지 땅에 사는 여인네들의 설움. 수적으로 귀한 남편은 왕처럼 떠받들어 왕발이라 했던가.
물질, 집안일.. 억척스럽게 해 내며 살아낸 그들이라!! 냉대받으며 엄청난 일에 시달려온 그녀들이지만 어찌보면 참으로 주체적으로 살아낸 삶이란 생각이 든다.
좀 빡빡하게 성산 일출봉을 오르고 민박을 잡기로 결정한다.
어스름이 제법 깔린 성산일출봉 아니 일몰봉을 아이들과 오른다. 오히려 오후라 서늘한 게 오르기는 그저그만이다. 십여년 전 한복을 입고 뒹굴던 그곳인가? 처음이라는, 첫경험이라는 체험은 엄청난 감동을 불러 일으키면서 장면이나 상황을 눈멀게 만들어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으나 재체험은 그것들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큰아이둘은 말타고 작은 아이들은 지레 겁먹고는 승마를 거부한다.
늦은 시간이라 재촉해서 성산일출봉을 부지런히 오른다.
작은 두아이, 그 고사리 같은 발바닥으로 또박또박 걸어올라 곧 정상에 발 내디디려 한다.
또 한번 기특한 모습.....
어둑어둑 아니 거의 깜깜한 내리막을 맨발로 하산한다. 어두워져 일출봉의 장관이야 아쉬웠지만 아이들의 지치지 않는 기운을 느끼기에 좋았다.

오늘 잠자리를 정하러 다시 성산 근처 신양마을로 향한다. 어제만큼은 아니지만 주방 말고는 별 불편없이 지낼만한 민박집이다.
오늘은 마지막 저녁이니까 그와 소주라도 한잔 기울이면서 10년 결혼생활을 한번 되돌아봐?
으이... 샤워하고 나오니 그는 벌써 꿈쏙으로.....지친 모습.... 생소한 여행지, 책임져야하는 자리라는게 저렇게 힘들지.. 덕분에 난 무척 편한 맘으로 지내지만 그의 마음을 편하게 보조맞춰주거나 위로할 줄을 모른다. 연습이 부족한 탓이다.
그래도 아무 불만 않고 설거지까지 해내고 잠드는 그, 참 착한 사람이다.
아이 넷은 모두 착하고 자기일 자기가 알아서 해내고 빡빡한 여행일정을 잘 견뎌내고 있다.
아쉬운 저녁 눈을 붙이니 어느새 아침 벨소리 운다.

마지막 일정
태풍이 다행히 진로방해하지 않아 무사히 우도로 가는 배에 승선한다. 섬에서 또 섬이라.
우도봉에서 내려다본 우도는 평화 그 자체다. 초지로만 펼쳐진 우도... 멀리 바라다보이는 성산 일출봉... 둘러쳐진 바다.. 또 한번 자연의 모습에 감탄한다.
해안선을 따라 우도를 샅샅히 드라이버한다. 길가에 마구 널어놓은 미역...
자연과 하나되어 미역말리는 작업에 한 폭의 그림을 만드는 냉발이할망....바닷바람과 뜨거운 햇살에 잘 그을려진 그녀들의 살갗, 억척같은 그들의 삶이 느껴진다.
영화 속의 마을을 잠시 돌아보고 산호사 해수욕장으로 향한다.
첨보는 바다, 바다는 많이 접했지만 이런 바다는 정말 첨이다.
저 물빛..... 그 아래 깔린 하얀 말그대로 백사...산호가 조각나 만든 모래....시원한 눈맛...
온몸 가득 담아가자. 일년 내내 생활이 저 색깔로 화사하도록, 저렇도록 투명하게, 복잡한 마음 만들지 말고 투명한 맘으로 욕심버리고 살 수 있게.
아이들은 마구 즐겁고 한낮의 뜨거운 햇살과 강렬하게 만난다.
컵라면으로 점심 때우고 제주본토로 승선하는 배에 다시 오른다.

만장굴에서 서늘함을 즐기고 씩씩하게 걸어 다녀온다.
일정마무리... 부산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고..... 제주는 멋진 곳이다. 낭만이 흐르는 자연,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듯한 온통 새까만 현무암들, 끝없이 보이는 초지, 공장이 보이지 않는 무공해, 초록빛 바닷색, 절벽과 폭포,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고 태어난 듯이 보이는 기이한 모양의 돌들.......
자연이 빚어낸 한 폭의 그림이 곳곳에 감춰진 모습을 담고 있는 비경이 어우러진 곳이다.
그 자연은 해녀들의 억척스럽고 팍팍한 삶의 일상까지도 낭만적인 세상으로 만들어버리는 우를 범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