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고 반성하는게 있었으면 알마나 좋을까?
Subject: [가슴으로 읽는 글 ]밥을 얻어다 주인을 섬기는 개 (실화) 外
신지애의 홀로 서기
▶ 신지애가 몇 년 전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주변 사람 중에 하루만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있다면 누구를 보내겠느냐." 그는 "아버지"라고 답했다. "시키는 게 너무 많아서"라고 했다. 신지애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5년 가까이 20층 아파트 계단을 한 시간 만에 일곱 차례씩 오르내렸다. 가난한 목사 아버지가 고안한 체력 단련법이었다. 골프화가 맞지 않아 발가락이 아프자 발가락을 누르는 부분을 도려내고 퍼팅 연습을 했다.
▶ 아버지는 관사 마당에 10m 폭으로 10~120m 금을 그어놓고 샷 훈련을 시켰다. 딸이 그 열두 구간에 차례대로 공을 열 개씩 떨어뜨릴 때까지 한없이 치게 했다. 그렇게 해서 신지애가 얻은 별명이 '초크 라인(Chalk line)'이다. 분필 선처럼 똑바로 공을 날린다는 얘기다. 그에겐 '미소 천사'라는 별명도 따라다닌다. 멋진 플레이를 하고 나서는 물론이고 엉뚱한 실수를 해도 웃는다. 함박웃음을 머금으면 안 그래도 작은 눈이 더 작아진다.
▶ 신지애의 '스마일 페이스'엔 세계 골프팬과 언론도 반했다. 그는 "억지로 웃는 건 아니고 잘될 땐 좋아서, 안될 땐 어이없어서 웃는다"고 했다. 워낙 강심장이고 승부욕과 집중력도 강해서 "곰같이 생겼는데 여우"라는 말도 듣는다. 엔간해선 사람들 앞에서 울지 않는 신지애가 작년 말 눈물을 떨궜다. 혼자 사는 노인들께 쌀과 라면을 드리러 갔다가 차디찬 방바닥을 만져보고서였다. 그는 '꼬마 천사' '기부 천사'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해마다 1억원 넘는 돈을 내놓는다.
▶ 신지애는 고교 때 프로에 데뷔한 뒤 국내 대회 절반을 휩쓸며 '지존'으로 불렸다. 딱 4년 전 브리티시오픈을 제패하고 세계로 나간 뒤엔 LPGA 상금왕·신인왕·다승왕 3관왕에 올랐다. 그러다 재작년 말부터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그가 올봄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중학교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가족을 위해 골프를 했고 프로가 된 뒤엔 팬과 미디어를 위한 골프를 했다. 지쳤다." 그는 "이젠 나를 위해 플레이하고 싶다. 남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더니 마음이 편하고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 신지애가 지난 17일 영국 리버풀 로열 리버풀 링크스(파72·6657야드)에서 열린 올 시즌 LPGA 투어 마지막 메이저대회 브리티시여자 오픈에서 정상에 등극했다.
이번 대회 우승은 지난주 킹스밀 챔피언십(9회연장 프레이오프 끝에) 우승에 이어 2연승을 달성한 것으로 신지애의 완벽한 재기를 뜻해 더욱 의미가 크다.
. 그가 제일 좋아하는 별명 '파이널 퀸(역전의 여왕)'답게 2년 슬럼프를 떨쳐내고 확실하게 돌아왔다. "모든 것이 안정을 되찾았다"고 했다. 그는 올 들어 코치 없이 혼자서 스윙을 가다듬었다. 스윙보다 정신적으로 홀로 서는 과정이 훨씬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신지애에겐 이제 앞만 보고 질주하는 일만 남았다.
1만명 젊음 앞에선 110cm 작은 거인의 한마디는
지난번에도 올렸지만 9-18일(어제) 잠실체육관에서 1만여명의
젊은이 앞에서 열정樂서에서 한 강연내용의 요약입니다.(설봉)
이지영 삼성테크윈 대리가 18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삼성그룹의 토크콘서트 '열정락(樂)서' 시즌3에서 110㎝의 작은 키라는 '다름'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이뤄 가는 이야기를 들려줘 1만여 청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대학 3학년 때 어학연수 바람이 불어 호주 시드니에 갔을 때 첫 장벽이 언어가 아니라, 홈스테이하는 집에 처음 들어갈 때 마주한 출입문 손잡이었다."
이지영 삼성테크윈 창원사업장 인사팀 대리(28세, 여)는 110cm의 작은 체구다. 두살 때 '가연골 무형성증 장애'라는 유전자 이상질환을 앓아 가족들과는 다르게 뼈에 문제가 생겨 키가 자라지 않았다.
이 대리를 걱정하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4개월간의 '투쟁(?)' 끝에 어렵게 오른 유학길에 그를 가로막은 것은 자신보다 15cm 높은 문고리였던 것. 그는 18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열정락(樂)서' 시즌3의 임직원 강사로 나와 1만여명의 젊은이들 앞에서 "호주 사람들의 평균 신장이 큰 것을 간과했다"고 웃으며 자신의 스토리를 풀어나갔다.
◇작은 키로 놀림 당하는 자신이 미웠던 아이
이 대리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평범하게 길러줬고, 주위에 키가 작은 사람이 없어서 다르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110cm 정도 될 때 자신은 80cm 정도밖에 키가 커지 않자 친구들의 놀림이 시작됐고, 그때부터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신을 안으로 가뒀다고 한다. '땅꼬마' 등 각종 별명이 붙으면서 놀림이 싫어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도 가지 않았고, 그로 인해 방광염에 고생한 적도 있다고 한다. 친구들이 놀리면서 돌을 던져 눈썹 위가 찢어져 아직도 그 흉터가 남아 있는데 그 때부터 자신의 다름이 '불행'으로 느껴졌다는 것.
주변에서도 그를 다르게 대하면서 열등감을 부추겼다. 가고 싶었던 소풍은 "오늘은 소풍날이니 하루 집에서 쉬어라"라든가, 체육시간에는 "밖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등의 선생님의 배려 아닌 배려는 그를 더욱 열등감과 불행으로 몰아넣었다.
이지영 삼성테크윈 대리가 18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삼성그룹의 토크콘서트 '열정락(樂)서' 시즌3에서 110㎝의 작은 키라는 '다름'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이뤄 가는 이야기를 1만여 청중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못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편견의 탈피
이 대리가 생각을 바꾼 것은 중학교 입학 후였다. 체육시간 친구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팔이 없는 것도, 다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못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내 편견이 날 이렇게 만든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내가 못하는 것은 내 방식에 맞게끔 바꿔서 하자"며 "체육복을 줄여 입고 무작정 운동장으로 나가서 친구들에게 말을 걸고, 선생님에게 여러 운동 방법을 물었더니 알려주셨고, 친구들이 테니스를 칠 때 그것보다 가벼운 채로 하는 배드민턴을 했고, 남들이 배구공을 네트 위로 넘길 때 저는 아래로 튕기면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때부터 성적도 오르고 삶이 행복으로 바뀌었다는 것. 창원이 고향인 그는 고등학교 때도 열심히 공부했고 라디오PD가 되고 싶어 한양대 신문반송학과에 몰래 원서를 냈다. 장애를 가진 딸자식을 멀리 떠나보내기 싫은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지만 결국 등록금 납부 마지막 날 은행문을 닫기 1시간 전에 부모님은 자식에게 졌다고 한다.
입학해서는 1학년 때 방송학회에 가입하고 뮤직비디오도 찍고 활발히 활동했고, 2학년부터 2년간의 친구들의 권유로 과대표를 맡아다가 떠난 호주 어학연수에서 첫 걸림돌인 출입문 손잡이를 만난 것.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홈스테이 집에 들어가기 전에 동네 세바퀴를 돌아 자신의 디딤돌이 될 박스 3개를 구해 첫 호주생활을 시작했다.
◇60장의 이력서와 여섯번 면접의 실패
호주 어학연수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와 4학년이 된 그는 60장의 이력서를 썼고, 그 가운데 일곱번의 면접 기회가 있었다. 현재의 삼성테크윈에 오기 전까지 면접 과정에서 느낀 것은 치욕이었다고 한다.
3명 정도가 함께 들어가는 면접장에서 자기소개를 한 후 20여분 동안 면접관으로부터 받은 질문은 하나도 없었다. 남들과 다른 자신의 키를 본 면접관들은 자신을 제외한 두명에게만 질문을 쏟아내고 면접을 끝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단지 겉으로 보여 지는 외모로만 평가받았다.
한 은행권 면접에서는 면접관이 "이지영씨는 그런 몸으로 고객을 유치할 수 있겠어? 우리 직원과 어울릴 수 있겠나?"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는 면접이 진행되는 20분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눈물이 많지 않은 그는 면접 후 주변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셨냐"라고 물을 정도로 서럽게 울었고 그 후 한달간은 우울증으로 사람들을 피하게 됐다고 한다.
그 때 스스로를 우울함에서 건져내기 위해 한 처방이 예능프로인 '무한도전' 20편을 다운받아 웃음소리만 계속 듣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모욕감을 준 면접관들에게 번듯한 명함을 주고 싶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처음엔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컨설팅 업체를 찾아가서 물었다. 첫번째 찾은 컨설팅 업체의 답은 "외모가 보이지 않는 텔레마케터를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말에 상처를 받은 그는 다른 컨설팅 업체를 찾았지만 비슷한 실망감만 안겨줬다. "이력서에 장애 표시를 하지 마세요. 그러면 서류라도 통과될테니"라는 말이 돌아왔다는 것.
↑ 이지영 삼성테크윈 대리가 18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삼성그룹의 토크콘서트 '열정락(樂)서' 시즌3에서 110㎝의 작은 키라는 '다름'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이뤄 가는 이야기를 1만여 청중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일곱번째 면접관에 던진 강펀치..단지 불편할 뿐
이 대리는 면접에서 스스로 부딪혀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15~20분 정도의 면접 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작은 혈투를 준비했다. 칼을 갈고 강펀치를 준비해 면접관이 마지막에 묻는 말인 "더 하고 싶은 말씀은 있습니까"에 대비했다.
일곱번째 면접에서도 이 질문이 자신에게 떨어졌다. 그는 "저는 장애를 가진 사람입니다. 하지만 장애는 불가능이 아니라 불편함입니다.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이 면접이 현재 그가 대리 6년차로 일하고 있는 항공기엔진과 K9 자주포를 만들고 있는 삼성테크윈이다. 그는 현재 인사팀에서 사원들의 교육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무한도전'의 성공비결이 무엇이냐고 1만여 청중들에게 물었다. 그리곤 "여섯명의 캐릭터와 웃음코드가 각각 '다름'에 있다"고 평가했다.
이 대리는 "세상이 자꾸 한 가지 잣대로 여러분을 가두려 할 것이다"며 "여러분은 여러분이 좋아하는 걸 발전시키고 거기에 맞게 세상을 바꾸셔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대리는 스스로를 '도전 중독자'라고 말했다.
"지금은 힘들지만 좌절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세요. 도전하다가 가끔 넘어질 때는 저를 기억해주세요." 이 대리 강연의 마지막 말이었다.
한편, 이 대리는 삼성이 열정락서 시즌3에서 임직원 강사를 모집한다는 사내 공지를 보고 지원해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이날 강연자로 나섰다.
재치있고 사려깊은 부모
미국의 소셜미디어 '레딧(Reddit)'에 과자 봉지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생후 14주 된 쌍둥이 형제와 함께 비행기를
탄 젊은 부부가 다른 승객들에게 일일이 나눠준 것이라고 했다.
비닐봉지에는 쪽지 하나를 붙여 놓았다. 아기들이 비행 중
난리를 피울 것을 예상해 양해를 구하는 글이었다.
만약을 위해 선제 조치를 해놓은 것이다.
과자 봉지 사진과 쪽지 내용을 올린 승객은 "재치있고 사려
깊은 부부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며 "아기들은 기대 이상이어서
승객들에게 아무런 폐도 끼치지 않았고, 부부는 분명히 초조하고
피곤했을 텐데도 주변 모든 사람에게 극히 다정하게 잘 대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쪽지 글은 부모가 아닌 쌍둥이 아기들의 눈높이로 쓰여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처음 비행기를 타 보는 쌍둥이 형제입니다.
생후 14주밖에 안 됐어요. 얌전히 있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만,
혹시 저희가 귀가 아프고 겁에 질려 침착성을 잃을 수도 있어
미리 사과 말씀을 드리려고 해요.
우리 엄마와 아빠가 챙기고 있는 우리의 휴대용 우유병과 새 기저귀는
여러분이 필요할 경우 이용 가능한 귀마개들로 사용할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습니다. 저희는 좌석 20E와 20F에 앉아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가지러 와주세요.
그럼 멋진 비행기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이 글과 사진에는 3000건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멋진 부모를 닮아 쌍둥이 아기들도 올바르게 잘 자랄 것"
"나도 저런 부모가 돼야지" 등 칭찬 일색이었다.
글과 사진을 올린 승객은 "짐 찾는 곳에서 할아버지·할머니를
만나는 쌍둥이 아기들을 보았다"면서 "갓난 손자들을 처음
보는 할아버지·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기뻐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비록 외국 사례이지만 재미있고 훈훈한 인정과 유머를 느낍니다.
귀머거리 장애 엄마 이야기
나의 아내는 나와 결혼 할 때 부터 벙어리에 귀머거리다.
물론 나도 약간 소아마비지만 벙어리 아내가 여간
답답한것이 아니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아내는
수화를 하는데 나도 수화를 뒤늦게 배우려니
처음엔 보통 어려운것이 아니였다.
문제는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였다.
다행히 아이는 정상적인 아이였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면서 일찍 사춘기가 왔는지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낸다.
"엄마 쫒아 오지마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안들려?
저리 가라고!"
아이는 아내를 밀치며 학교로 간다.
나는 연선이를 붙잡아 따귀를 때렸다.
처음으로 아이를 때린것 같다.
"이 녀석이 어디서 엄마한테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이야?"
아이는 엉엉 울기만하고 아이 엄마는 아이를 부둥켜
안고 나를 말린다.
그후로 아내는 어디가 많이 아팠는지 혼자 병원을 다닌다..
내가 쫒아 가려해도 절대 오지 못하게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도 아내는 어디가 아팠었는지
이야기 하지 않았다.
어느날 연선이가 또 엄마에게 이야기하는것을 들었다.
"엄마.. 엄마 솔직히 난 엄마가 창피해..
아이들이 엄마 벙어리,, 귀머거리라고 놀린단 말이야..
친구 있을 때는 나 모른척 하란말이야..
에효 답답해 소귀에 경읽기지.. "
연선이는 엄마가 안들린다고 엄마 앞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구 하는것 같았다..
나는 듣다가 화가나서
" 연선아 너 이자식 이리와!"
연선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내가 들었는지
알고 화들짝 놀란다..
아내는 또 내가 연선이를 혼낼까봐 말리기만 한다.
나는 화를내며 "이 놈의 기집애야,, 너만 창피해?
나도 벙어리 마누라와 사는것이 창피해!
어디서 엄마가 귀가 안들리다고 함부로 그따위 말을해 !"
아내는 그냥 우리를 말리기만 한다...
그때 벨소리가 울린다...
아내가 일단 싸움을 말리다가 달려가 문을 열어준다..
택배기사가 왔다..
나는 연선이를 혼을 내다가 갑자기 멈췄다..
연선이는 갑자기 얼굴이 빨게지며 엄마 얼굴을 쳐다본다.
벨소리에 뛰쳐나간 아내...
아내는 연선이를 보면서 웃으며 고개만 끄덕끄덕 거려 주었다..
연선이는 엄마에게 달려가 통곡하며 미안해 울기만한다...
그녀는 이미 병원을 다니면서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미안해서 눈물을 흘리는 연선이에게 수화로 말을 한다.
"엄마는 연선이가 부끄럽다고 말 할때도 그 부끄럽다고하는
소리조차 엄마는 사랑스러웠어"
일본인이 한국인에게 쓴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