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환자를 외면할 수는 없죠. 저는 호흡이 붙어있는 한 이 일을 계속 하겠습니다.』
병·의원이 전면 폐업한 요즘도 매주 한 차례씩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김없이 왕진가방을 챙겨들고 오지를 찾는 할아버지 의사 이기섭(88)씨. 이씨는 설악산 자락의 양양군 서면 서림리, 황이리, 갈천리, 영덕리 주민들에게 「인간 종합병원」으로 통한다. 진료를 하고 처방전을 써주는 건 물론, 때로는 간단한 외과시술도 한다. 벌써 18년째. 이씨에게 진료를 받은 주민들은 600여명. 전체 주민이 180가구에 불과해 전 주민이 이씨에게 1회 이상 진료를 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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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동안 1주일에 한 번씩 때묻은 왕진가방을 들고 산간벽촌을 찾아 인술을 베풀고 있는 이기섭 박사.
이성영(83·양양군 서면 서림리)씨는 『이 박사의 진료 덕분에 꺼져가는
목숨을 가까스로 붙이고 있다』며, 「영동의 허준」이라고 극찬했다.
이씨가 이 일을 시작한 건 61년 이화여대 부속병원 원장을 그만두고 속초의료원에 재직할 때 오지마을 주민들이 약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는 걸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 이씨는 83년 정년퇴직과 동시에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만 닿을 수 있는 이곳 오지에서 인술을 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