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산 계곡에 가면 만날 수 있어요/ 한병호 글.그림, 고광삼 사진/ 보림
흔히들 한병호를 도깨비 작가라고 하는데, 제게는 더 많이 기억되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동물 이야기> 시리즈입니다. 꽤 된 일인 것 같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대부분 도깨비를 잘 그리는 사람으로 이야기를 했고, 실재 이 작가가 그린 도깨비 관련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을 고백하자면 저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어요. 제가 이 작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책은 오히려 프뢰벨에서 나온 <동물 이야기> 시리즈였는데, 이런 책을 그리면 좋지 않을까, 이런 그림을 또 다시 볼 수는 없을까 막연히 생각만 했었어요.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났으니 무척 반가울 수 밖에요. 정말 반가와요!
부산 해운대 신도시 살 때 생각도 나는 군요. 바닷가와 장산이 가까워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 가던 그 때가요. 장산에 갈 때면 아이들은 꼭 물고기 잡을 준비를 하고 갔죠. 큰애는 물고기를 참 잘 잡았는데, 『물고기 박사 최기철 이야기』(우리교육)을 같이 읽은 이후에는 '최기철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꼭 너 같았나보다'고 제가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물고기를 잡아놓고도 제게 이름을 물어오면 대답을 못했어요. 뭐, 아는 게 있어야 대답을 하죠. 그래서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이게 가는 돌고기 였구나!", " 어? 이건 모래무지였네!" 하면서 예전에 잡았던 물고기 기억을 떠올린 겁니다. 한 번은 아이들이 미꾸라지를 잡았다며 들고 왔는데, 그때 전 막 헷갈렸어요. '이상타.... 미꾸라지는 논에만 사는 게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것이 미꾸라지가 아닌 참종개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죠. 어쨌거나 강원도 미산 계곡에서 볼 수 있는 민물고기를 부산에서도 봤었다는 사실. 아! 그러나 노파심에 한 가지 부탁드릴게요. 혹시 해운대 사시는 분들 중에 이 글을 보시거든, 장산에서 물고기를 잡더라도 반드시 다시 놓아주세요.
반갑다 보니 서론이 너무 장황했습니다. 어쨌든 이 책은 '준비된 그림책'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작가가 만들고 싶었고, 만들면서 즐거웠을 것이라는 느낌도 많이 들어요. 민물고기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미리 알려 주고 있고, 물고기뿐만 아니라 미산 계곡에서 볼 수 있는 작은 동물들이나 꽃과 열매도 중간 중간 넣어놓아서 미산 계곡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묻어납니다. 또,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이 민물고기에 대한 정보를 주는 책이면서도 그것을 이야기 형식 안에 녹여냈다는 거예요. 면지는 봄으로 시작해서 겨울로 끝이 나고, 이야기 첫머리에서는 아버지와 딸이 미산 계곡에 가서 물고기 만날 준비를 하고, 물고기 잡다가 비를 맞기도 하고(이 장면의 그림은 마치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를 쓰고 그린 지미의 책을 보는 듯), 밤낚시를 하면서 야행성 물고기도 보고, 끝에는 물고기들을 모두 돌려 보내주고, 아버지와 딸도 집으로 돌아간다는 식이죠.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 물고기들의 움직임과 사는 모습, 특징을 알려준답니다.
또 재미난 볼거리는 물고기 모습도 세 가지로 보여주는 거예요. 물고기의 실물 크기 사진과 작가가 손수 그린 그림과 또 하나는 작가의 딸아이가 그린 그림입니다. 아이들은 딸아이가 그린 그림을 재미있다고 보고, 저는 작가가 먹빛으로 간단하게 그려놓은 그림에 눈이 가구요. 생김새가 몹시 비슷한 눈동자개, 미유기, 퉁가리는 앞모습, 전체의 모습을 비교해 그려 놓은 덕분에 저 같이 안목이 없는 사람도 확실히 구분을 할 수 있게 해 두었습니다. 이걸 보고 있자니 다시 아이들과 함께 물고기 잡으러 가고 싶습니다.
표지 디자인도 은근히 튀지요? 알록달록 예쁜 그림과 멋스러운 디자인들을 한 그림책들 사이에서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것이 꼭 열대어들 사이에서 민물고기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아주 깔끔한 것이 돋보여요. 앞뒤표지에 걸쳐 그려져 있는 물고기는 어름치인데, 이 녀석은 웅덩이를 파고 알을 낳고 나서는 밤알 크기의 작은 자갈로 산란탑을 쌓는다고 해요. 이런 특징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탑 쌓는 물고기'로 기억되겠네요.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열목어나 어름치의 사진이 빠진 것인데, 아마 이 물고기들이 천연기념물이라 함부로 잡을 수 없었다든지, 사진 촬영이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어쨌든 꽤 많은 내용이지만 이와 비슷한 기억이 있는 저와 아이들에게는 함께 보는 동안 내내 즐거웠습니다.
<애기풀똥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