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7일 청림회
세상에서 보통, 삶을 사는 데도 그렇고 우리가 차를 한 잔 마셔도 그렇고, 또 물건을 하나 사도 그렇듯이, 한 가지 일에 어떤 경중의 차이라 할까, 또 좀 더 좋고·덜 좋은 그런 차이가 다~ 있게 되죠. 그래서 뭐, 과일을 하나 사도 돈 많이 주면, 좋고·깨끗한·맛있는 과일을 사고, 돈을 좀 적게 들이며는 같은 사과라도 좀 덜 좋은 과일을 사고 그렇습니다. 불교도 우리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법화경> <비유품(譬喩品)>이, 우리가 불교를 접하는 그런 입장도 세상에 사물을 접하는 그런 입장과 똑~같이, 어떤 불교를 우리가 접할 것인가?, 이런 문제가 여기, <비유품(譬喩品)>에 잘 나타나 있다, 이렇게 이제 볼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교설(敎說)은 중생들의 근기와·수준과·또 어떤 상황들을 이렇게 잘 감안을 해서 거기에 맞추고, 어떤 하근기(下根機) 중생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그야말로, 참, 별별 방편을 다~ 베풀어 가지고 제도하려고 하는 그런 입장이다 보니까, 이야기의 차원이라고 할까·질(質)이 아주 다양하지요. 그래서 크게 나누며는 삼승(三乘) 또는 불승(佛乘)까지 이야기하면 이제, 사승(四乘), 그렇게 이제 말하는데. 그것이 비단 삼승(三乘)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상태라든지·근기라든지·취향이라든지·성격이라든지·뭐, 살아 온 업(業)이라고 할까·생활습관이라든지 이런 데 따라서 아주 다양하게 분화될 수가 있는데, 크게 나눠서 이제, 삼승(三乘)으로 그렇게 이야길 하죠. 그걸 수없이 이야길 해 왔는데도 또 여기 <법화경>에서 불교를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그런 입장이다 보니까, 여기서 아주 간단한 비유를 들어서, 이해하기 쉽~도록, 한 번 들으면 더 이상 잊어버리지 않도록, 아주 재밌는 그런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서 비유를 통해 가지고 우리에게 아주 확실하게 이해시키려고, 그렇게 이제 하죠. 그게 이제 유명한 “삼계화택(三界火宅)”이라고 하는, 그런 그 비유고, 화택(火宅) 안에서 사람들이 이제 고통을 받고 있는데 그 고통에서 건지는데 어떤 방편을 쓰는가? 덮어놓고 불승(佛乘)을 이야기하며는 한 사람도 믿을 사람도 없고, 근기에 안 맞으니까 따라오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중생들을, 그야말로 철없는 아이들로 보아서, 아이들을 유혹해 내는 데는 아이들 수준에 맞는, 그런 장난감이라야만 유혹할 수 있다, 이렇게 이제 보는 거죠. 그래서 소위, 삼승(三乘)이라고 하는 것을 펼치게 되는데 그것을 비유에서는 ‘양거·녹거·우거(羊車鹿車牛車).’ 양이 끄는 수레·사슴이 끄는 수레·소가 끄는 수레. 아이들 수준에 맞는 그런 수레들이 있으니까 나가서 실컷 가지고 놀고 타고 그렇게 장난치도록 그렇게 하자, 이거예요. 유혹을 하는 그런 이야기가 이 “삼계화택(三界火宅)”의 비유입니다.
“삼계화택(三界火宅)”의 비유는 이 세상이 불난 집과 같다고 하는 그런 비유도 되고, 또 거기서 이제 벗어나는 데는 그런 여러 가지 방편이 필요하다고 하는 거. 또 취향 따라서 어떤 수레를 좋아할 것인가? 정 철든 사람이라며는 벗어나기는 벗어나야 되지마는 그까짓 것, 아이들 장난감 같은, 그런 그 수레 가지고 벗어날, 생각이 없는, 그런 철이 아주 제대로 든 사람도 있을 것이고. 뭐 이 “삼계화택(三界火宅) 비유”를 가지고 다양하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고, 불교 전반을 이야기 할 수가 있도록 그렇게 이제 짜여져 있어요. 이 “화택(三界火宅) 비유”, 이것만 가지고도 뭐, 얼마든지 불교 설명하고 많은 이야기꺼리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지난번에 강의가, 84쪽 밑에까지 했는데, 여기 우리 교재 번호로는 83번이 되죠. 번호 순은 83번이 되는데.
83. 復作是言(부작시언)호대
부처님이 다시 이런 말씀을 하시되
汝等(여등)은 當知(당지)하라
그대들은 마땅히 알아라.
此三乘法(차삼승법)은
이 삼승법(三乘法)은. 삼승(三乘)이라고 하는 게 이제, 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菩薩)이죠. 이 삼승법(三乘法)이라고 하는 것은
皆是聖所稱歎(개시성소칭탄)이며
다~ 성인(聖人)들이 칭탄(稱歎)하는 바다. 칭찬하고 찬탄하는 것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참으로 훌륭한 가르침이다, 이런 말이죠. 모든 깨달은 분들이 다~ 칭찬하는, 그런 가르침이다.
自在無繫(자재무계)라
그 삼승법(三乘法) 어디에 가서 공부를 하더라도 아주 자유자재하게 되고, 또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무계(無繫). ‘얽힐 계[繫]자(字)’죠. 계박(繫縛). 속박을 받지 않는 그런 자유의 길이 있다, 이런 이야깁니다. 자재무계(自在無繫)하는 그런 가르침이다.
無所依求(무소의구)니
그래서 그 어디에도 더 이상은 의지해서 구할 것이 없는 것이다. 뭐 이것만 자기 살림살이로 만들면, 자기 것으로 만든다면 더 이상 구할 게 없다, 이런 내용인데.
乘是三乘(승시삼승)하야
이 삼승(三乘)을 타서. 삼승(三乘)에 올라서, 이런 말이죠. 삼승법(三乘法)을 통해서
以無漏根力覺道禪定解脫三昧等(이무루 근력각도선정해탈삼매등)으로
무루(無漏). 이제 출세간법(出世間法)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법이죠. 그래, 세상법은 유루(有漏)라 그러고, 또 이제 출세간법(出世間法)을 무루(無漏)라 그러고. 또 세간법을 유위(有爲)라 그러고, 출세간법(出世間法)을 또 무위(無爲)라 그러고. 유위(有爲)·무위(無爲), 유루(有漏)·무루(無漏). 뭐 그게 꼭 맞는 말은 아니지마는 편의상 이렇게 이제 나눠 놓고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전에도 있었죠. 법수(法數)에도 아마 한 번 이야기된 적이 있을 것 같은데. 오근(五根)·오력(五力)·칠각지(七覺枝)·팔정도(八正道)·선정(禪定), 그 다음에 해탈(解脫)·삼매(三昧). 이러한 것으로서
而自娛樂(이자오락)하면
즐긴다, 이 말이예요. 우리는, 뭐 요즘 세상에 즐길꺼리 많~죠. 저기, 내가 아는 사람이 해인사 밑에 여관을 하고 있는데. 옛날에 일주문 앞에 마을이, 쪼그만 마을이, 그, 집이 몇 채 있었어요. 그 때부터 절에 다니면서 절에 일도 해 주고, 조그마~한 가게, 구멍가게, 가게라 할 것도 없어. 그냥 자기 한 칸 오두막집에 벽 쪽에다 이렇게 필요한 물건들, 쪼~끔 떼어다 놓고 팔았어요. 노트 같은 것도 팔고, 뭐 그랬는데. 하루에 큰 절이나 이웃에 사는 스님들이 그저 한 두 사람 오며는 손님이 있는 것이고, 그것마저 안 오면 없는 것이고. 그렇게 이제 살던 집인데. 마을이 전부 철거 돼 가지고 그 밑에 이제 한 쪽으로 몰아 가지고, 여관을 짓고 사는데. 우리 어릴 때만 하더라도 참 그 관광객이 많았어요. 근데 요즘은 관광객이 거의 없어요. 거의 없다기 보다 옛날에다 비하면 아주 숫자가 줄어들어 버렸어요. 그래 가지고 그 동네 여관업을 하던 사람들이 전부 빚 투성이가 돼 있어요, 지금. 그, 왜 그래 없나 그랬더니. 그 명산(名山)에 왜 그래 사람이 없나, 그랬더니. 놀러 갈 데가 많아서 그렇다는 거야. 그 전에는 놀러 갈 데가 없어 가지고 오직 간다는 게 절 뿐이었어, 사실은. 우리 어릴 때만 하더라도 수학여행 가면 의례히 절에 가는 것이고 그것뿐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갈 데가 얼마나 많습니까? 수십 배로 불어나 버렸어요. 수십 배로 갈 데가 불어나 버리니까, 특히 또 외국까지 가지요. 외국길이 트여 놓으니까 걸핏하면 외국 나가고, 국내에서도 어디 뭐, 사찰이, 여기 오락(娛樂)이라고 했는데, 오락(娛樂)이 아니잖아, 사찰은. 가서 아주 신선~한 공기 마시고 스~윽 이렇게 문화재 탐방하고·공부도 좀 하고 그야말로 수학(修學) 여행이야. 수학(修學)차 가는, 그런 곳이야. 학생이 됐든·일반인이 됐든, 대개 이제 사찰에는 그런 마음으로 가는데. 지금 그런 마음으로 가는 사람들, 거의 없다고요. 그래서 사람들 전부 다른 거, 즐기러 간다네. 오락(娛樂). 그래 세상에는 오락(娛樂)거리가 많아. 그래, 유루(有漏)의 세상, 유위(有爲)의 세상에는 오락(娛樂)거리가 많은데 여기 오락(娛樂)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마는, 여기 출세간(出世間), 무루(無漏)에는 오근(五根)·오력(五力)·칠각지(七覺枝)·팔정도(八正道)·선정(禪定)·해탈(解脫)·삼매(三昧), 이걸 가지고 오락(娛樂)거리로 삼는다, 이런 말이예요.
사람이 무얼 가지고, 자기가 즐길꺼리로 삼는가? 이거 보면 그 사람 수준을 알 수가 있는 거죠. 물론 뭐,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좋아할 수는 있는데, 그래도 정말 진정으로 자기가 마음 쓰고·돈이 들어도 하고·시간이 들어도 하고·힘이 들어도 하고, 하는. 진정으로 좋아하는 그런 “꺼리”가 있어요. 그런데, 칠각지(七覺枝)·팔정도(八正道)·선정(禪定)·해탈(解脫), 또 불교의 어떤 경전 공부·어디 가서 기도하고·무슨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우고 하는 등등. 그런 것이 즐겁고·그런 것이 신심이 나고·환희심이 난다고 하는 건, 이건 참 희유(稀有)한 일이죠. 그게 무어야? 그런 게. 그게 이제 비세간(非世間)적인 것이고·비세속(非世俗)적인 것이죠. 그 참, 신통한 일이지,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들은. (웃음) 참 신통한 일이야, 그게. 세상에 아주 즐길 꺼리가 너무 많은데 그래도 그런 데, 빠지지 않고. 뭐, 간혹은 빠지겠지. 그렇지만 그걸 일삼아 하지 않고, 어쩌다 인연되면 가서 한번씩 즐기지마는 그래도 평소에는 그래도 불교 공부하고·기도하고·좌선도 한 번 해 보고·뭐, 3천배도 한번씩 하고·그래, 다라니도 외우고...이렇게 하면 그냥 마음이 흐뭇~하고...그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한 맛을 느끼는 거, 이거 아주 희유(稀有)한 일이예요. 또 사람이 그런 면이 좀 있어야 되거든요. 그런 것으로서 이자오락(而自娛樂)할 거 같으며는.
便得無量安隱快樂(변득무량안온쾌락)하리라
곧, 무량(無量). 한량없는 편안함과 한량없는 쾌락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뭐, 24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루에 한 8시간 정도, 8시간만 뭐, 불교적인 일로 단체에 불교 봉사를 한다든지·아니면 스스로 경전을 읽는다든지·사경(寫經)을 한다든지·하다못해 인터넷에 들어가 가지고 법문이라도 듣는다든지·글이라도 검색 한다든지,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 한 구절이라도 얻고 뭔가 신심이 나고·환희심이 나고...그것만 해도 아주, 이 시대에는 상당히 기특한 일일 것 같애요. 정말 기특한 일이고, 아주 상당히 훌륭한 일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사찰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너무 고맙다는 거야, 그래서. 해인사에 그, 놀러 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그래도 어쩌다 오는 사람들은 그렇게 고맙게 보인 다는 거야. 그, 보통 세상에 즐길꺼리, 지금 많이 즐길꺼리. 도시 주변에 즐길꺼리가 지금 얼마나 많이 생겼습니까? 그 전에 하나도 없었거든요. 부산 주변도 많지만 서울 주변에 가면...내가, 저기...삼보사 스님이, 강북에서 포교를 해 가지고 크게 성공한 스님이 있어요. 지원 스님이라고 하는 이가 있는데, 삼보사라. 절 이름이 삼보사라. 그 스님이 쪼그마한, 처음에 한 여남은 평 되는 그런 건물, 막 지어 가지고 시멘트벽으로, 학교 교실 같이 생긴 한 여남은 평 되는 그걸, 어떻게 하나, 어떻게어떻게 구해 가지고 거기서 이제 스티로폼 깔아 놓고, 아~무 것도 뭐, 텅 빈 그냥 곳이니까. 스티로폼 깔아 놓고 앉아 가지고 거기서 자고, 거기서 걸망 하나 딱 지고 윗목에 하나 갖다 놓고, ‘부처 불[佛]자(字)’ 벽에다 하나 딱 써가지고 붙여 놓고, 거기에다 예불하고 그랬는데. 포교를 내가 한 번 해 보겠다, 이런 생각을 딱 하고. 저어기 불광동인가 하여간 그 쪽이야, 북쪽인데. 그래서 이제 혼자 일이 있어서 들락날락 하니까, 새로 지은 허름한 건물에 스님이 자꾸 왔다 갔다 하니까, 이웃에 살던 어떤 불자(佛子)가 한 번은 이렇게 와서 ‘스님! 거기 뭐 하러 드나드느냐?’고 그렇게 묻더래요. 그래서 ‘내가 여기서 포교 한 번 해보려고 여기 지금 법당을 하나 만들어 놓았다.’고 그러니까 ‘아! 법당 만들어 놓았냐?’고 따라 올라 와서 보더라. 그래 보니까 스티로폼 하나 깔아 놓고 거기서 자고, 걸망 귀퉁이에 하나 놔두고, ‘부처 불[佛]자(字)’ 떠억 써 놓고 거기다 이제 목탁 놓아 놓고 거기다 예불하고 기도하고 있으니까, 이 기존 사찰에 다니던 신도는 기가 막힌 거지. 그래서 그냥 신심이 나 가지고, 그 신도가 이제 도반들 모아 오고, 법회날 정해 가지고 법회하고, 이래 가지고 일으켰는데, 강북에서 제일 포교로 성공한 케이스거든요. 그래서, 범어사 스님이라, 그 스님이. 출신이 범어사 스님인데. 그래 한 번은 이제 법회 해 달라고 연락을 받고 한 번 갔었어요. 갔더니, 한 층이 한 백 평 쯤 되는 그런 건물을, 4층 건물을 지었어. 땅을 아주 근사한 데다 사 가지고 4층 건물 지어가지고 그냥, 굉장해요, 신도들도 많고. 핑핑 돌아가는 거라. 그리고 <육지장사>라고 하는 곳에다가, <육지장사>라고 광고, 혹시 봤는지 모르겠어요. 거기서, 그 절에서 또 북쪽으로 경기도 쪽으로 한 3~40분 거리에 <육지장사>라고 하는 절을 자기가 건립을 했다는 거야, 힘이 남아 가지고. 그래서 거기 가 가지고 하룻밤 같이 자자는 거야. 거기가 막 공사 중이라. 대웅전도 짓고....요사채는 다 지어 놨는데, 대웅전은 이제 늦게 짓더라구요. 그래 가 보니까 어마어마한 거찰(巨刹)을 그렇게, 지었어요. 중국에서 돌을 전부 사 들여 가지고, 전부 돌로 그냥 계단도 하고 그랬는데...그래 이제 낮에 들어갔어. 낮에 들어가면서...여기 이제 “오락꺼리” 이야기라고 하는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는데...여기 지나 가는데 마을이 좀, 이상한 마을이 좀 많더라고요. 그래서 지나가면서 하는 이야기가 그래. ‘여기가 라스베가스다, 라스베가스다.’ ‘뭔 소리냐? 여기가 무슨 라스베가스냐고?’ ‘쪼금 있다가 저녁 되거든 함 보라.’고. 정말 밤 되니까, 절에서 이렇게 내려다보이거든요, 마을이. 라스베가스가 그런지·어쩐지는 모르는데, 휘황찬란하고 막, 서울 시내 한 복판이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서울 변두리가, 거의 서울 변두리가 다 포진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욱 전체.. 잘 아시죠? 그, 강 북쪽으로, 한강 북쪽에 미사린가 뭐, 조경 경기장 있고 하는 그 쪽으로, 뭐요, 거기, 양평인가 거기로 가면서 전!부 오락꺼리라, 전부. 전~~부 오락꺼리, 도시가...서울 시내보다 더 크거든요. 서울을 중심으로 해서 변두리에 그런 도시가 펼쳐져 있는 게 서울 시내보다 더 커. 전체적으로 면적이.
세상이 그렇게 돼 놓으니까, 해인사에 오는 사람들이 그렇게 고맙게 보이고, 아주 상당히 괜찮은 사람들로 보이더라는 거야, 거기 사는 사람들이...그래 가지고 관광객이 없대요. 그런 것들도 우리가 살면서 세태를 공부라고 할까, 하여튼 세태를 참고하는 입장에서 눈 여겨 볼만한 그런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입니다.
변득무량안온쾌락(便得無量安隱快樂). 쾌락(快樂)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습니다마는 이제 편의상 이제, 출세간(出世間)적인 즐거움이라 하더라도 아주 그 환희심과·신심(信心)과·법희(法喜)와·선열(禪悅)과. 이런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죠.
84. 舍利弗(사리불)아 若有衆生(약유중생)이 內有智性(내유지성)하야
만약에 어떤 중생이 안으로 지혜의 성품이 있어 가지고서
從佛世尊(종불세존)하야
불세존(佛世尊)을 쫓아서
聞法信受(문법신수)하고
부처님에게서 법문을 듣고, 그 법문을 믿고 받아들이게 되어서.
慇懃精進(은근정진)하며
부처님 가르침대로, 신심이 난다, 이거여. 그래서 은근히 정진을 하게 되고.
欲速出三界(욕속출삼계)하야
그래서 빨리 삼계(三界)에서 벗어나고저 해서. 삼계(三界)라고 하는 것이 뭐, 죽은 뒤에 어디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속된 어떤 삶으로부터 벗어나 가지고
自求涅槃(자구열반)한 이는
스스로 열반을 구하며. 그런 어떤 세속적인 삶 속에서 모든 변화·시끄러움·시시비비 이런 것이 다~ 사라진 것. 이게 열반이거든요. 마음으로부터 사라지고, 또 내가 그런 상황을 보더라도 아~무 그런 동요가 없고, 오로지 고요~한 마음. 그런 어떤 상황을 아무리 봐도 마음에 동요가 없는, 그런 고요~한 마음. 이게 열반이거든요. 스스로 열반을, 그런 마음상태를 구하는 사람은
是名聲聞乘(시명성문승)이라
성문승(聲聞乘)이라 한다, 성문승(聲聞乘). 이게 세상이 싫어서 저어~기 산 중 깊이깊이 들어가 가지고 조용~히 그냥, 세상 소식 안 듣고·보지도 않고·듣지도 않고·그러면서 조용히 살고 싶어 하는 그런 성문승(聲聞乘)이죠. 신선처럼 살려고 하는.
如彼諸子(여피제자)가 爲求羊車(위구양거)하야
예컨대 저 비유에서 들었던 여러 아들들 중에서 양거(羊車), 양이 끄는 수레를 구하기 위해 가지고서
出於火宅(출어화택)하며
화택(火宅)에서 나오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무슨 이유에서 나왔든지 간에, 나오기만 했으면 일단은 좋은 거죠. 화택(火宅)에 있었으며는 불에 타서 그슬려 죽을 텐데, 그래도 죽지 아니하고 나왔으니까, 뭐, 양거(羊車)야 있든·없든 간에, 나왔으니까 그것만으로도 큰 다행이라는 거죠.
그 다음에 또 한 가지 예는
85. 若有衆生(약유중생)이 從佛世尊(종불세존)하야
만약에 어떤 중생이 부처님·세존을 쫓아서, 불세존(佛世尊)으로부터
聞法信受(문법신수)하고 慇懃精進(은근정진)하야
앞에 하고 똑같죠. 법을 듣고·믿고·받아 가져 가지고.
求自然慧(구자연혜)하며
자연혜(自然慧)를 구하는 사람은. 자연혜(自然慧). 이, 자기 자신 속에서 저절로 나오는, 저절로 생기는 지혜. 살다보면 저절로 생기는 지혜가 있어요. 뒤에 무사지(無師智)·자연지(自然智), 이런 표현이 나오는데. 자연혜(自然慧)를 구하며.
樂獨善寂(낙독선적)하야
홀로 있기를 즐겨하고. 홀로 있기를 즐겨하고 고요한 것을 좋아해. 선적(善寂). 이럴 때 ‘善’자(字)는 좋아한다, 이렇게... 홀로 있기를 즐기고 고요한 것을 좋아해서
深知諸法因緣(심지제법인연)한 이는
깊이 제법(諸法)의 인연(因緣)을 아는 사람은. 모든 존재의 어떤, 존재 법칙. 그것은 인연(因緣)이거든요, 또 연기(緣起)라고도 하고. 연기(緣起)로 해서·또는 인연(因緣)으로 해서 모든 것이 존재하니까. 제법(諸法)이라고 하는 것. 사물(事物)이든지·사건(事件)이든지·우리가 이렇게 모이고 흩어지고 하는 거라든지·사람이 살아가는 일이라든지·세상에 벌어지는 일체 일들이 전부, 제법(諸法)이라고 하는 말 속에 다 포함돼요. 그런 것들은 전부 인연(因緣)에 의해서 이루어져 가고, 생주이멸(生住異滅)하고·성주괴공(城主壞空)하고·생로병사(生老病死)하고. 또 춘하추동(春夏秋冬)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제법(諸法)의 인연(因緣)을 깊이 알아. 사~알 이렇게 관찰해서, 어디서 배워서 알기도 하고 또 배웠다 하더라도 그것을 깊이 사유하지 아니하면 가슴에 크게 와 닿지가 않죠. 깊이 사유한다든지·아니면 스스로 그렇게 안다든지. 그렇게 된 사람들은
是名辟支佛乘(시명벽지불승)이니
벽지불승(辟支佛乘)이라 한다. 연각(緣覺)이라고도 하고 그러죠. 그래, 성문(聲聞)보다 쪼끔 차원이 높은 게 이제 연각(緣覺), 이렇게 해요. 벽지불승(辟支佛乘)이니.
如彼諸子(여피제자)가 爲求鹿車(위구녹거)하야 出於火宅(출어화택)하며
화택(火宅)에서 건져 낸 경우를 가지고 이야기 하자면, 저 여러 아들들이 녹거(鹿車), 사슴이 끄는 수레를 구하기 위해서 화택(火宅)에서 나오는 경우와 같다. 이런 걸 이제 잘 알아 가지고, 모두 이제 불교를 좀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이래야 돼요. 여기에도 포교사 자격증 따신 분들이 여럿이 계시지마는, 보다 더 적극적으로 불교를 좀, 펴야 되는데 그 펴는 일이 상~당히 값지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아직 안 들어서 그런 거 같애요, 가만히 보면. 다른 종교처럼 품값을 톡톡히 줘야 그렇게 뛰려는지. 그렇게 할 때는 이런 것들을 잘 알아 가지고, 그 사람 근기에·수준과·취향에 맞도록 그렇게 해야 되거든요.
86. 若有衆生(약유중생)이 從佛世尊(종불세존)하야 聞法信受(문법신수)하고
또 예컨대 만약 어떤 중생이 불세존(佛世尊)으로부터 문법신수(聞法信受)해서
勤修精進(근수정진)하야
부지런히 정진을 닦아서
求一切智(구일체지)와 佛智(불지)와 自然智(자연지)와 無師智(무사지)와 如來知見(여래지견)과 力無所畏(력무소외)하야
일체지(一切智)·불지(佛智)·자연지(自然智)·무사지(無師智), 그리고 여래지견(如來知見). 그리고 력(力). 힘. 그 다음에 무소외(無所畏). 이런 것을 구한다, 이거여. 이건 이제 보살의 입장인데, 여기서 보살이나 부처나, 그렇게 뚜렷한 차별은 사실은 없습니다. 저 앞에 보살 이야기를 할 때에도 불승(佛乘), 불승(佛乘), 2번이나 불승(佛乘)이라고 나와 가지고 공부에 조금 혼란이 오도록 그렇게 했는데. 간혹, 사실은 부처나 보살이 크게, 그렇게 뚜렷하게 한계를 그어 놓고 이야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죠, 보면. 조사(祖師)도 마찬가지고요.
이것은 사실은 부처의 경우거든요. 일체지(一切智)·불지(佛智), 불지(佛智)라고 했잖아요? 그 다음에 자연지(自然智)·무사지(無師智). 이게 아주 깨달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지혭니다. 이게 보통, 뭐, 사유에서 나오는 지혜가 아니예요. 대단한 지혜죠, 이런 지혜는. 그리고 여래지견(如來知見)이라고 했잖습니까? 여래지견(如來知見). 여래만이 갖는 지혜를 여래지견(如來知見)이라고 해요. 그리고 힘[力]과 어떤 경우에도 두려움이 없는 것. 무소외(無所畏)를 구해서.
愍念安樂無量衆生(민념안락 무량중생)하며
한량없는 중생들을 어여삐 여기고, 어여삐 생각하며, 편안하게·안락하게 하며
利益天人(이익천인)하야
또 인천(人天)을 이익하게 하며. 천인(天人)을. 천상 사람이나 보통 우리 인간이나. 여기 천(天), 하며는 보통 인간 사람보다 쪼끔 수준이 있는 그런 경우. 나는 이제 이런 경우, 자연을 좋아한다든지·예술을 좋아한다든지 하는 그런 성향의 사람들을 천(天),이라 이렇게 내 나름대로는 해설을 하고 있어요. 그런 사람들에게까지도 이 불교적인 가르침으로서 이익을 준다, 이거여. 그래서
度脫一切(도탈일체)한 이는
일체에게, 일체 사람들을 도탈(度脫)한다. 제도해서 해탈케 한 이는
是名大乘菩薩(시명대승보살)이니
이건 이제 대승보살(大乘菩薩)이다, 이거여. 이 정도 능력을 갖춰가지고서 하는 사람은 대승보살(大乘菩薩)이다.
求此乘故(구차승고)로 名爲摩詞薩(명위마하살)이라
이것을 구한 까닭에 이름을 마하살(摩詞薩). 보살마하살(菩薩摩詞薩), 그러죠. 보살마하살(菩薩摩詞薩). 그렇게 붙이는 이유가 이러한 승(乘)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이런 뜻입니다. ‘求’ 자(字)는. 이름이 마하살(摩詞薩)이라.
如彼諸子(여피제자)가 爲求牛車(위구우거)하야 出於火宅(출어화택)하니라
소가 끄는 수레를 구하기 위해서 화택(火宅)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은 이다. 그러니까 아이들을 유혹을 해서, 어쨌든 화택(火宅)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별별 수레로서 유혹을 하잖습니까? 그런데, 거기 양거·녹거·우거(羊車鹿車牛車), 3가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생들의 그런 근기가 여러 가지로 있을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전이니까 이런 수준으로 이야기를 합니다마는 사실에 있어서는 이런 정도가 아니죠. 불교에 어떤 취미를 가진다든지·또는 입문(入門)을 한다든지·또는 출가(出家)를 한다든지·불교에 귀의(歸依)를 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이런 경우 정도가 아니고 어떤 그, 어떻습니까? 우리 뭐, 깨놓고 이야길 하며는 우리가 세속적으로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한 것. 이게 제일 많죠. 세속적인 입장에서 뭐, 예를 들어서. 내가 잘 아는 사람의 그 이야기가 나는 참~, 그 절실하게도 느껴지고, 또 그것이 오늘 우리들의 현실이고, 또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참으로 진정한 불교를 좋아하게 되는 큰~ 매개체 역할도 하는 구나, 하는 그런 느낌에서 아주 가끔 내가 떠올려서 생각을 하는데.
대학교 들어갈 자녀가 있어서 고3이 되니까, 이거 어떻게 해야 되는가? 요즘 젊은 주부들 걱정이 태산 같잖아요? 그 발등에 불은 떨어졌고, 그 아무 들은 정보는 없고. 그래서 무턱대고 이제 자기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부처님한데 가서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덮어 놓고 부처님한데 쫓아가게 된 거지. 그게 이제 불교에 귀의(歸依)하게 된 계기가 되는 거야. 그래 자기 나름대로 불교를 딱, 이렇게 틀을 짜 가지고 가는 거야, 벌써 이 사람은. 그 때는 어떤 훌륭한 법문도 들어오지 않애요. 이거 <법화경>이고 뭐고 이런 이야기가 들어올 텍이 없죠. 자기가 불교를 이미 짜 가지고 갔으니까, 만들어 가지고 갔으니까. 그러니까 우리 자녀, 공부 좀 잘하도록 하기 위해서 부처님은 계시고·불교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고·그래서 내가 거기 가서 빌거나 기도를 하면 된다, 이게 그 사람이 아는 불교야. 그래, 만들어 가지고 가는 거야.
처음에 그렇게 만들어 가지고 절에 와 가지고, 금방 눈을 떠 가지고, ‘아! 그것도 불교기는 하지마는 그거보다 또 다른 불교가 얼마든지 있구나!’ 하는 것을 빨~리 아는 사람도 있고. 10년·20년 가도 아니 죽을 때 까지 그 불교 가지고·자기가 만든 그 불교 안고 평생 마치는 사람들도 아~주 많아요, 상당히 많아. 그래서 이 <법화경> 같은 공부를 자꾸 해야 돼. <법화경>은 그런 모든 것들을 종합적으로, 부처님 입으로 정리한 것이니까~, 교과서 치고는 최고 좋은 교과서인 거야. 이, 경전이나 어록같이 좋은 교과서가 없어요. 근래 사람들이 <불교학 개론>이니 <불교 입문>이니, 뭐, 이렇게 해 가지고 정~말 졸리고~ 딱딱한 그런, 뭐 ‘삼보(三寶)가 무엇인가?’ 해 가지고 이렇게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하는 것. 무슨 감동이 있습니까? 아~~무 감동없는 그런 거. 이 좋은 교과서를 놔두고 그런 교과서를 우정 만들어 가지고 중생들이 자기 상식으로 만들어 가지고 그걸 가지고 가르치고 있는 거야. 학교에서는 그걸 많이 가르치고, 요즘 불교대학에서, 일반 불교 대학에서도 그걸 가지고 또 많이 가르치는 거라. 어째서 그렇게 됐는지 내가 참 모르겠어. 잘못 가고 있는 거지. 정말 훌륭한 교과서가 많고, 그런, 이런 교과서는 사람 가슴을 흔들게 만들고 감동 하게 만들고 하는, 그런 내용이 많은데 <불교학 개론>, 열 번·스무 번 읽어봐도 나 한!번 감동한 적이 없어요. 개론이라는 개론, 나 다~ 사서 봤죠, 다 사서. 여기는 어떻게 썼는가?·이 사람은 어떻게 썼는가?, 아~무리 사서 읽어봐도 그런 게 없는 거야. 뭐, 불교 역사가 어떻고...그래 이런 게 참으로 좋은 교과서예요.
그래서 이제 자기가 만든 불교를 가지고 그렇게 다니다가 평생을 그대로, 불교가 그것뿐인 양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옆에서 아~무리 딴 사람이 뭐라고 해도 귀에도 안 들어오고...같이 다니던 도반(道伴)은 뭐, 강의도 가고·다른 법회도 가고·어디 봉사 활동도 가고 ·뭐 하는 것도 뻔히 보면서도 그게 전~혀 와 닿지가 않는 거야. 사람이라는 게 참 희한해요, 묘한 존재고. 그게 금방 와 닿는 사람이 있고. 그래 가서 같이 봉사하기도 하고·같이 법문도 듣고·뭐, 어디 다니기도 하고, 그래서 자기 견문을 그냥, 순식간에 확! 이렇게 넓히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도 전혀 그게 안 되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 익히 보아 오니까...
그래서 얼른 눈이 열린 사람은, 자기 자식이 너무 고맙다, 이거야. 선지식이다, 그 때부터는 이제 선지식으로. 왜냐? 자기가 불교에 입문(入門)하게 했고, 그 아이가 대학교 갈 때쯤 되며는 대학교 가든지·안 가든지·어느 학교 가든지 그건 별로 관심 없어져 버렸어, 그 다음에는. 그건 인연 따라서 가는 거고·네가 노력한 만치 가는 것이고·마음 비우면 어디든지 들어 갈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이치를 그냥 착! 알아버려. 빠른 사람은 그렇게, 한 1년도 채 안 가 가지고 알아 버린다구요. 어머니가 아~무리 기도한다고 공부 안 하는데 공부 되도록 되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 역할은, 수험생에게 할 역할이 딱 있어. 그 이상은 아무리 해도 안 된다고요. 그, 자기 역할 잘하면 그 뿐인데.
그런데 처음엔 무턱대고 가서 부처님에게 조르게 만들도록 했던, 그 자식이 선지식이고 고맙다는 거야. 그래서 이제 정말 불교를 제대로 공부하게 되고, 더 이제 참 바람직한 불교에 접하게 되는, 그런 원인이 돼 가지고, 빨리 그렇게 가슴이 열리고 또 이런 그, 다양한 불교가 있고, 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런 길도 얼마든지 또 있어요. 그런데 수십 년, 일생을 자기가 처음에 만들어 놓은 그 틀,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도 또 적지가 않고. 그래 이제 자꾸 공부를 해 가지고 포교를 많이 해야 돼요. 선생님들의 책임이라. 한 번 선생은 영원히 선생이어야 되니까. 가나오나 항상 불교 가지고도 선생이니까, 불교 선생하면 얼마나 좋아요? 한 무리 타악 이렇게, 고학년 선생들 모아 놓고, 나 불교 공부 하는데 쉬는 시간에 모여라, 내가 한마디 척, 일러 주겠다. 딱 모아 놓고 칠판에 한 구절 딱 써놓고 소개하고,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거라.
그래...뭐죠? 불교를 받아 가지는 사람은 “수지신시광명당(受持身是光明幢)” 불교를 받아 가지는 사람은 그 자신이 바로 광명의 깃발이야. 진리의 깃발을 들고 앞으로앞으로 나아가고 리더가 되는 거야, 세상의 리더가 되고. “수지심시신통장(受持心是神通藏)”이야. 그 사람 마음속에는 온갖 신통이 다 들어 있어. 아, 불교 공부 했으니까. 그런 것들을 이제 마음에 새겨서 이 참, 세상에 무슨 언론계나·정치계나·경제계나 어느 분야든지 그 역사가 뭐, 1700년이나 되나? 다 다른 종교, 뭐 2~3백년 밖에 안 되는 종교에 자리 다~ 내 줘 버리고. 특히 정계나 언론계 같은데 뭐, 이런 데 보면은 한 삼십 명 쯤 되며는 불자(佛子)가 하나 있을까말까 해. 비율이 그렇다고요, 그런 정도라. 그래 이것 참, 통탄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좀 적극적으로 이제 나서서 가르쳐야 돼요. 이 참 훌륭한 가르침을 가지고 너무 소극적으로 살다 보니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불승(佛乘) 이야기. 보살승(菩薩乘)까지는 그렇고, 그 다음에 이게 진짜 부처님이 하고자 하는 것이고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수레고, 그런데
87. 舍利弗(사리불)아 如彼長者(여피장자)가 見諸子等(견제자등)이
사리불아! 저 장자(長者)가 여러 아들들이
安隱得出火宅(안온득출화택)하야
화택(火宅)에서 아주 편안하게 벗어나서
到無畏處(도무외처)하고
아무 두려움이 없는 곳. 다치지도 않고 위험성도 전혀 없는 그런 곳에 이른 것을 보고서
自惟財富無量(자유재부무량)일새
스스로 안다. 무엇을? 스스로 사유한다, 스스로 생각한다. ‘惟’자(字)가 된 책도 있죠. 자기는 재부(財富)가 무량이야. 너무너무 부자야.
等以大車(등이대거)로
그래서 평등하게 큰~ 수레. 어마어마한 그런 훌륭한 수레로서
而賜諸子(이사제자)하나니
모든 아들들에게 다~ 골고루 하나씩 나눠 준다. 나줘 줄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거여. 아이들에게 장난감 차 준다 해야, 장난감 하나씩 사 주는 갑다, 이렇게 해서 좋아하지. 처음부터 한 5000cc나 되는 벤츠를 사 준다, 그러면 누가 믿겠어요? 안 믿지. 근데 나중에 다 나오거든, 화택(火宅)에서에서 나온 뒤에는 그 때는 5000cc가 아니라 그냥, 비행기 한 대씩 사 줘도 괜찮지, 그때는. 그래 이 사람은 이제 그런 생각이야. 이 장자(長者)가 그렇게 했다. 처음에는 아이들 수준에 맞는 걸 가지고 유혹을 하고 나중에 줄 때는 그냥, 다 줘 버린 거죠. 전 재산을 다 줘 버리는데. 그 아이들 장난감 자동차 한 대하고, 아주 큰~~ 비행기 한 대하고 비교를 하자면 아마 그 정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입니다. 그래, 큰~ 수레로서 아들들에게 줄 것을 생각했나니. 주었어요. 그렇게 알고는 주었나니.
88. 如來(여래)도 亦復如是(역부여시)하야
여래도 다시 또한 그와 같아서
爲一切衆生之父(위일체중생지부)라
일체중생의 아버지다.
若見無量億千衆生(약견무량억천중생)이
만약에 무량억천(無量億千) 중생(衆生)들이
以佛敎門(이불교문)으로
불교문(佛敎門)으로써
出三界苦怖畏險道(출삼계고포외험도)하야 得涅槃樂(득뎔반락)코는
삼계고(三界苦)에서. 삼계고(三界苦)인 포외험도(怖畏險道)에서. 포외험도(怖畏險道)에서 나와 가지고서 열반의 즐거움을 얻는 것을 보고는.
‘볼 견[見]자(字)’. 불교문(佛敎門). 부처님의 가르침의 문으로써. 그냥 불교문(佛敎門)이라 해도 좋아요. 불교(佛敎)로써 해도 좋고. 불교(佛敎)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으로써. 삼계고(三界苦)인. 삼계(三界)의 고통인. 아주 두렵고 험한 그런 길에서 벗어나서, 열반이라고 하는 편안함을·즐거움을 얻는 것을 보고는.
89. 如來爾時(여래이시)에 便作是念(변작시념)호대
그 때 여래가 곧 이런 생각을 하되
我有無量無邊智慧力無畏等諸佛法藏(아유무량무변지혜력무외등제불법장)하고
나에게는 한량없고 가이없는 지혜와 력(力)과 두려움 없는 등, 제불법장(諸佛法藏)이 있다, 이거여. 그런 제불(諸佛)의 법의 창고[法藏]. 제불(諸佛)의 법의 창고[法藏]. 모~든 깨달은 이들이 가르쳐준 그런 법의 창고[法藏]가 있고.
是諸衆生(시제중생)은 皆是我子(개시아자)라
여러 중생들은 또, 내 아들이야. 개시아자(皆是我子)라. 다 내 아들들이라. 그러니까 나에게 그렇게 어마어마한 것들이 있는데 내 아들들에게 물려 줘야지, 이제 곧 내가 열반에 들어야 할 판이니까
等與大乘(등여대승)이요
그러니까, 평등하게 대승(大乘)을 줄 것이요.
不令有人(불령유인)으로 獨得滅度(독득멸도)니
사람으로 하여금 홀로 멸도(滅度)를 얻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자기 혼자만 열반에 드는, 소승적인 삶을 살도록 해서는 안 된다, 이거여. 부처로서의 삶. 내가 부처니까. 나 같이, 부처로서의 삶을 살도록 해야 된다, 이 뜻입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며는.
皆以如來滅度(개이여래멸도)로서 而滅度之(이멸도지)호리라
다 여래의 멸도(滅度)로서. 여래의 삶으로서, 이 뜻입니다. 여래의 인생으로서 전부 그 인생을 살도록 할 것이다. 여기 경전 표현은, 여래멸도(如來滅度)로서 멸도지(滅度之)호리라[皆以如來滅度(개이여래멸도)로 而滅度之(이멸도지)호리라]. 멸도(滅度)하게 하겠다. 멸도(滅度)라는 이런 소리 해 놓으면, 얼른 가슴에 와 안 닿죠. 부처님의 인생으로서, 자식들도 그런 인생을 살도록 해야 되겠다. 이게 이제 부처님의 생각이죠. 안 그렇겠어요? 부처님은 더 이상 나아갈 데 없는, 인간으로 이르러 갈 수 있는, 최!고봉에 이른 인격자라. 더 이상은 뭐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인격자인데, 그런 인격적인 그런 삶을 자기들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살도록 하는 거, 그게 이제 아버지로서 당연한 욕심이고 또 의무죠. 욕심이고 의무라고요. 그러니까 당신은 이제 수명이 얼마 안 남았고·저 자식들은 철딱서니 없고, 그런 참 딱하고·답답하고·애석하고 그럴 거예요.
그러한 마음들이 이 <법화경>에 소롯이 다, 잘 담겨 있어요. 그래서 <법화경>은 끊임없이 수기(授記) 주는 일, 너도 나하고 똑같은 사람이다, 내용은. 겉은 조금 다르다 하더라도 정~말 내용은 너하고 나하고 똑같은 사람이다, 라고 하는 보증을, 계속 끊임없이 해 가는 거야. 맨 처음에 사리불같이 훌륭한 사람에게 딱, 그렇게 하니까 다른 제자들이 ‘아! 저 사리불은 원래 우리들의 맏형이고·워낙 뛰어난 사람이고·거의 부처님 수준에 가까운 사람이니까 뭐, 사리불보고 그런 소리 하는 거야, 당연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거야. 차~암, 이 <법화경>이 구성이 잘 되어 있는 게, 처음에 사리불에게 그렇게 하잖아요. 그래 딴 사람들이 별로 안 놀래는 거야. 그 다음에 목건련·그 다음에 수보리..이렇게 아주 훌륭한 제자들에게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이렇게 주다가, 나중에는 어중이떠중이까지 똑~같이 다 줘 버리거든요. 또 저기,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에 가면 부처님 입도 빌리지가 않애. 부처님 입을 빌리지도 않고, 옛날 설화를 하나 딱 꺼내 가지고는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모든 사람에게 전부 수기(授記) 줘 버리는 것. 과거에 죽은 사람·현재에 살아 있는 사람·미래에 태어날 사람에게까지 다~~ 부처라고 하는 그런 수기(授記)를 주고 보증을 하는 그런 이야기로 일관돼 있어요, 이 <법화경>이. 그래서 <법화경>이 아주 위대한 경전이고 “경(經) 중의 왕(王)”이라고 하고, 부처님이 하시고 싶은 최후의 말씀을 여기에 다 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이제, 개이여래멸도(皆以如來滅度)로서. 여래의 인생으로서 인생을 살도록 하는 것, 이게 아버지로서의 꿈이고 욕심이다, 이거여.
90. 是諸衆生(시제중생)의 脫三界者(탈삼계자)에
이 모든 중생들, 삼계고(三界苦)를 벗어나는 사람들에게
悉與諸佛 禪定解脫等 娛樂之具(실여제불 선정해탈등 오락지구)하나니
이렇게 깨달으신 분, 또 수준이 높은 분들은 선정(禪定)이니·해탈(解脫)이니·삼매(三昧)니·지혜(智慧)니. 이런 것들이 즐길꺼리라, 오락(娛樂)꺼리고·소일꺼리고. 그런 것을 실여(悉與). 다같이 주나니.
皆是一相一種(개시일상일종)이라
전부 한 가지 모양이고 한 종류다, 이거여. 전부 부처의 삶이다, 이거여. 그게 뭐, 이름이야 뭐가 됐든지, 선정(禪定)이 됐든·해탈(解脫)이 됐든·삼매(三昧) 됐든, 뭐가 됐든 간에 전부 한 모양이고 한 가지다. 그건 그대로 부처의 인생이다, 이거여. 부처님의 살림살이고 그리고 모든 아들들에게 전부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오롯이 살도록 하는 것이다.
聖所稱歎(성소칭탄)이며
성인(聖人)들의 칭찬하고 찬탄하는 바며
能生淨妙第一之樂(능생정묘제일지락)이니라
능히 청정하고 미묘하고 그리고 제일가는 그런 즐거움을 내는 것이니라, 그랬어요. 제~일, 아주 수준 높은 즐거움. 사람에 따라서 한결같이 어떤 속된 즐거움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야. 아주 속된 즐거움 좋아하다가도 한번씩은 아주 신선한 거 좋아할 때가 있어. 늘 뭐 탁한 음식만 먹다가 한번씩은 아주 맑은 물. 아~~무 맛도 없으면서 그냥 시원하기만 한, 그 물이 참 좋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사람이 참, 속되고, 뭐라고 할까. 쉽게 표현해서 좀 저질적으로 보이더라도 아예, 그렇게 저질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런 거 아니라구요, 사람이라는 게. 아주 고상한 사람도 아주 저질로 놀 때가 있고 아주 저질적인 사람도 아주 고상할 때가 있고, 그래요. 그렇잖아요? 우리 모두가, 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성불(成佛)할 수 있는 근거가 그런 거라. 누구든지 성불(成佛)한다고 하는 게, 바로 어디에서 그런 원인을 찾는가 하면, 그런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설사, 지금은 성격이 좀 편협하고·생각하는 게 형편없고 그렇더라도 언젠가, 또 어떤 계기에 철이 빨리 들고·마음이 열릴 수가 얼마든지 있는 거죠. 정묘제일지락(淨妙第一之樂)을 냄이라.
91. 舍利弗(사리불)아 如彼長者(여피장자)는
사리불아! 저 장자(長者)는
初以三車(초이삼거)로
처음에 삼거(三車). 세 가지 수레로서
誘引諸子然後(유인제자연후)에
여러 아들들을 유인(誘引)한 연후에
但與大車(단여대거)의 寶物莊嚴(보물장엄)이
큰~~ 수레의 보물과 장엄이
安穩第一(안온제일)하나
아주 편안하기도 했고,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가는 것을 주었나니.
然(연)이나 彼長者(피장자)는
그러나 저 장자(長者)는
無虛妄之咎(무허망지구)인 듯하야
허망한 허물이 없는 거와 같이. 거짓말한 허물이 없다, 이거여. 더 좋은 거 줘서 말은 안 맞았지마는 결코 거짓말은 아니라. 장난감 자동차 준다 해 놓고 진짜 자동차 줘 버렸으니까. 거기에 어떻게 뭐 ‘왜 아버지, 장난감 준다 해 놓고 진짜 자동차 줍니까?’ 따지는 사람, 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 거야. 그 아버지 거짓말 했다 할 사람, 아무도 없는 거지. 그 얘깁니다. 그래서 허망의 허물이 없는 거와 같이.
如來(여래)도 亦復如是(역부여시)하야 無有虛妄(무유허망)이니
여래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그 비유에서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여래도 또한 그대들에게 가르칠 때는 이것저것, 가서 기도 잘 하면 합격도 시켜주고·장사도 잘 되고·승진도 하고·뭐, 아~무 인격이 없어도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별별 그냥, 구하는 바대로 전부다 들어준다!, 이렇게 유혹을 일단 해 가지고 그보다 더 근사한 걸 주는 거야. 부처로 만들어 주는 거야. 뭐, 국회의원이 아니라·대통령이 아니라 바로 부처로 만들어 줘 버리니까 그건 거짓말이 아니죠. 처음에는 공부 잘 하게 해준다~, 요렇게 꼬아 가지고는 나중에는 바로 부처로 만들어 주는 거야. 아주 깨놓고 이야기하자면 그 얘깁니다. <법화경> 이야기는 바로 그 얘기예요.
그러니까 불교에 방편이라는 말이 있어 가지고, 부처님도 방편을 잘 쓰셨지마는, 또 그 제자들이 어디서 방편만 배워 가지고는 계~속 방편을 만들어 낸다, 별별 방편을 다 만들어 내. (웃음) 그래 가지고 참, 장사 잘하지, 아주. 방편을 자~꾸 만들어 내는 거야. 그 방편을 통해서 이렇게, 그 화택(火宅)에서 끌어 낼 때, 아버지, 장자(長者)처럼 그렇게 결과를 크~게 회향(廻向)을 해야 되는데 방편을 써 가지고 방편에 주저앉아 있으며는 동타지옥(同墮地獄)가요, 동타지옥(同墮地獄). 내가 이, 지옥 같은 낱말 잘 안 쓰는 사람인데, 한 번 쓸께요. 공갈도 함 쳐야 돼. (웃음) 경전에는 아~주 더 심해요, 그런 공갈이. 위협적인 말이 얼마나 많다고요, <지장경> 함 봐요. 그래 부처님, 여래도 거짓말 한 것이 아니다, 이거여.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무유허망(無有虛妄)이니.
92. 初說三乘(초설삼승)하야
처음에는 삼승(三乘)을 설해서
引導衆生然後(인도중생연후)에
중생들을 인도(引導)한 연후에
但以大乘(단이대승)으로
다만 대승(大乘)으로서
而度脫之(이도탈지)하시니
삼승(三乘)이라고 하는 말 속에는요, 뭐, 장사 잘 된다·집 팔린다·승진한다·공부 잘 한다·사람 된다·술 끊는다·담배 끊는다, 온갖 것 다 들어 있습니다, 이 삼승(三乘)이라는 말 속에는. 절에 와서 기도하면 다 돼. 술도 끊고·담배도 끊고, (웃음) 뭐 원하는 대로 다 돼요, 원하는 대로. 이 삼승(三乘)이라는 말이 그런 뜻입니다. 무한지승(無限之乘)이라, 이 삼(三)이란 게. 무한지승(無限之乘). 내용은 그래요. 여기서는 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菩薩)이라고 의례히 그렇게 말했지마는 부처님 어떻게 세세히 그런 말, 다 합니까? 시대와·상황과·민족과·국가와, 여기에 따라서 이 방편이 완~전히 별별 여러 가지로 나오는데. 그러니까 <법화경>에는 딱, 삼승(三乘) 해 놓고, 설명하는 것은 너희 알아서, 상황 따라서 설명해라 이거여.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이야기하듯이 그런 거, 그런 거 이야기해야 돼요. 우리가 바라는 바의 어떤 그, 소구소망(所求所望). 그러니까 축원할 때 그렇잖아요? 소구소망(所求所望). 구하는 것·바라는 것, 이런 모든 것이 “원만성취지대원(圓滿成就之大願)” 원만하게 다 성취된다. 그렇게 유혹해 가지고는 나중에 바로 주는, 받는 우리 입장이 아니라 주는 부처가 되어 버리는 거야. 주는 부처가 되는 길이라, 이게. 그래, 단이대승(但以大乘)으로 중생들을 인도(引導)한 연후에. 또 여기 뭐야? 어떤 데는 인도(引導)한다는 말도 있고, 유혹한다는 말도 있고 그렇지. 달랜다, 는 말도 있고. 그래서 대승(大乘)으로서 그들을 도탈(度脫)하시니
何以故(하이고)오 如來有無量智慧(여래유무량지혜)와 力無所畏諸法之藏(력무소외제법지장)하야
여래는 무량지혜(無量智慧), 이런 게 있고. 이런 이야기 계속 하잖습니까?
能與一切衆生大乘之法(능여일체중생대승지법)이언만은
일체중생에게 대승(大乘)의 법으로서 주건마는
但 不盡能受(단 부진능수)니라
다만, 허물은 어디 있는고 하니, 다~ 능히 받아들이지 못하나니라. 다만 우리 중생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나니라. 우리 중생들이 그걸 다 받아들이지를 못해. 부처님이 그렇게 크게 주었건마는. 그러니까, “단이대승(但以大乘)으로”, 이 말이 중요해요. 부처님의 본뜻은 그런, 성문(聲聞)이니·연각(緣覺)이니·보살(菩薩)이니·또는 기타 뭐, 우리가 바라는 바의 온갖 소구소망(所求所望)들,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의 본뜻은, 그런 것은 미끼고 유혹하기 위한 하나의 미끼고, 사실은 부처다, 이거여. 부처되는 걸로서·대승(大乘)으로서·또 부처님이 살았듯이 그런 삶으로서 누구나 그렇게 살도록 하는 것, 이게 불교의 목적이고 또 부처님의 본심이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너무 커 가지고 이제 우리는, 못 받아들이죠. 부진능수(不盡能受)라. 너~무 커서 이게. 부처님 주는 게 너무 큰 것이라서 우리는 다 능히 받아들이지 못함이니라.
舍利弗(사리불)아 以是因緣(이시인연)으로
이러한 인연(因緣)으로서
當知諸佛(당지제불)의 方便力故(방편력고)로
마땅히 알아라. 모든 부처님의 방편의 힘인 까닭으로. 방편·방편. 방편이라는 말 잘 쓰잖아요? 방편의 힘인 까닭으로.
於一佛乘(어일불승)에 分別說三(분별설삼)이니라
일불승(一佛乘), 하나의 부처의 삶. 단! 하나뿐인 부처의 인생에서 여러~ 가지 삶을 전개시켜 놨다. 분별설삼(分別說三)이니라. 분별해서, 나누고 쪼개서[分別]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說三], 그랬어요. 그 세 가지는 다 가짜예요. 세 가지는 가짠데, 여타 방편은 더 말할 나위 없이 가짭니다.
이 <법화경>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확실하게 이야기 해야지, 여기서 뭐, 근기 생각해 가지고 자꾸 “아니라” 그러면, “아이, 이렇게 했지마는···” 또 딴 소리 하면 그건 이제 <법화경> 설하는 자리가 아니죠. 분명히 방편을 다 깨!는 자리거든요, 이게. 방편을 다 깨! 제대로 깨야 <법화경>을 잘 설하는 거라. 아~무리 우리가 방편에 목을 매고 있다 하더라도 이제, 방편이 깨져서 어디 올 데 갈 데 없는, 그런 신세가 설사 되더라도 깨 버려야 되는 게 <법화경>의 역할이라.
분별해서 셋을 설했다[分別說三].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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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南無妙法蓮華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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皆是一相一種이라... 전부 한 가지 모양, 한 종류 그대로 부처의 인생이다... 가을햇살님! 고맙습니다... _()()()_
皆以如來滅度로서 而滅度之호리라 ... 다 여래의 멸도로서. 여래의 삶으로서, 전부 그 인생을 살도록 할 것이리라...가을햇살님! 수고하셨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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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