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에게 답하는 편지[答緻書(답치서)] 二書來(이서래)。知爾有悔悟之萌(지이유회오지맹)。過而能改(과이능개)。聖人所與(성인소여)。況余之於爾(황여지어이)。苟其能悔(구기능회)。安有吝閉其自新之路乎(안유린폐기자신지로호)。前日(전일)。余之責爾(여지책이)。所謂操之爲己(소위조지위기)。急使汝奮發捍格(급사여분발한격)。而遽形於語言(이거형어어언)。此余之咎也(차여지구야)。豈終怒汝哉(기종노여재)。嗚呼(오호)。先君之服(선군지복)。而翁(이옹)。喪主也(상주야)。余從而居廬(여종이거려)。今先妣之服(금선비지복)。爾乃喪主也(이내상주야)。余又從而居廬(여우종이거려)。二十有五載之間(이십유오재지간)。前後同人之父與子(전후동인지부여자)。跧伏草土于玆山(전복초토우자산)。其於人世(기어인세)。何如也(하여야)。余之戀戀於爾(여지련련어이)。而欲其遄歸者(이욕기천귀자)。以此也(이차야)。然其懇惻痛切之不能已于懷者(연기간측통절지불능이우회자)。不徒是也(불도시야)。汝在此(여재차)。則饋奠也(칙궤전야)。吾從爾焉(오종이언)。對弔賓也(대조빈야)。吾從爾焉(오종이언)。余獨居(여독거)。則人疑余於喪主(칙인의여어상주)。不可也(불가야)。患是(환시)。而空堊室不守(이공악실불수)。亦不可也(역불가야)。賓客來(빈객래)。輒問爾之處(첩문이지처)。縱語之以寧其孀疾之母(종어지이녕기상질지모)。一二遭則已(일이조칙이)。久而四五至而問之(구이사오지이문지)。內所不足者(내소불족자)。其何以辨之(기하이변지)。如爾之年芳途遠(여이지년방도원)。而一行之虧(이일행지휴)。衆謗之歸(중방지귀)。其可不慮之耶(기가불려지야)。抑又有重是者焉(억우유중시자언)。吾宗(오종)。起自和義(기자화의)。已百餘年于玆(이백여년우자)。良醞公以後(량온공이후)。諸宗子姓(제종자성)。亦已衆矣(역이중의)。而仕爲公卿者(이사위공경자)。絶無矣(절무의)。登科第者(등과제자)。唯吾先君及先君再從兄諱從理及而翁與余耳(유오선군급선군재종형휘종리급이옹여여이)。嗚呼(오호)。百年之旣久也(백년지기구야)。而得第者纔四人也(이득제자재사인야)。而吾家有其三(이오가유기삼)。往年(왕년)。康甥又捷甲科(강생우첩갑과)。玆亦吾家之學也(자역오가지학야)。由是而觀之(유시이관지)。祖先積累之業(조선적루지업)。似將發於吾家也(사장발어오가야)。余昔命爾諸從名(여석명이제종명)。俱從絲聲者(구종사성자)。冀能繼續家業(기능계속가업)。以傳于永久而不替也(이전우영구이불체야)。綬(수),紘輩(굉배)。仲氏自敎之(중씨자교지)。必將有成(필장유성)。余僅有一子(여근유일자)。而今爲廢疾之人(이금위폐질지인)。無復有可敎之望矣(무복유가교지망의)。汝二人(여이인)。嶄然已出頭角矣(참연이출두각의)。然學之博以奧(연학지박이오)。則猶未也(칙유미야)。貍辨之始免(리변지시면)。而刻鵠之尙未成也(이각곡지상미성야)。苟少弛於溫習藏修(구소이어온습장수)。則日月逝矣(칙일월서의)。其將乃何(기장내하)。余雖薄於德(여수박어덕)。而媿於學(이괴어학)。出身以來(출신이래)。猥蒙主恩(외몽주은)。常不離於金馬玉堂之上(상불리어금마옥당지상)。以故(이고)。雖在山中(수재산중)。遠方之士(원방지사)。或有相從問學者(혹유상종문학자)。忘哀講誦(망애강송)。無所逃於名敎之罪人(무소도어명교지죄인)。姑以跫然之喜(고이공연지희)。不甚拒之也(불심거지야)。爾若能朝夕在我側(이약능조석재아측)。讀禮之暇(독례지가)。日求知所未知(일구지소미지)。博學之(박학지)。審問之(심문지)。愼思之(신사지)。明辨之(명변지)。以隆他日篤行之基(이륭타일독행지기)。則三年之間(칙삼년지간)。庶幾稊秕之有秋(서기제비지유추)。以無墜祖父之緖(이무추조부지서)。不亦可乎(불역가호)。其與繭足負笈而來學者(기여견족부급이래학자)。寧不倍簁焉(녕불배사언)。此余所以望汝擺落世累而遄歸也(차여소이망여파락세루이천귀야)。嗚呼(오호)。今之世(금지세)。無而翁矣(무이옹의)。而翁(이옹)。孝友忠信(효우충신)。出於天性(출어천성)。昔在高靈(석재고령)。膝下嘗患㿈癤以臥(슬하상환옹절이와)。余侍疾(여시질)。一日(일일)。先試蚯蚓汁(선시구인즙)。余時年少(여시년소)。不覺其汁之惡(불각기즙지악)。而偶一啜焉(이우일철언)。兄謬以爲德性相肖(형류이위덕성상초)。而友愛之篤(이우애지독)。終始無間(종시무간)。悲夫(비부)。今日(금일)。雖欲再飮蚓汁(수욕재음인즙)。胡可得耶(호가득야)。同居此山(동거차산)。三載茹哀(삼재여애)。每夜半(매야반)。蹴覺晤語(축각오어)。耿耿尙在耳傍(경경상재이방)。念至于此(념지우차)。肝腸如割(간장여할)。兄旣不可見矣(형기불가견의)。兄之遺體(형지유체)。汝二人在焉(여이인재언)。吾之欲提撕成就(오지욕제서성취)。使之立揚於世(사지립양어세)。此心烏可量已(차심오가량이)。汝勿以吾前日之責大蹙迫而恨我也(여물이오전일지책대축박이한아야)。妻孥若露處(처노약로처)。無地可托(무지가탁)。則經始之事(칙경시지사)。須粗完而後還(수조완이후환)。可矣(가의)。雖然(수연)。子朱子有云(자주자유운)。君子將營宮室(군자장영궁실)。先立祠堂於正寢東(선립사당어정침동)。冠之家禮之首(관지가례지수)。爾其知也歟(이기지야여)。不一一(불일일)。 두 통의 편지를 받고 나서 너에게 회오(悔悟)의 싹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허물이 있어도 능히 고치는 것은 성인도 허여하는 바인데, 더구나 내가 너에게 대해서야 참으로 능히 뉘우치기만 한다면 어떻게 자신(自新)의 길을 막을 수 있겠느냐. 전일에 내가 너를 책망하면서 이른바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 마음을 가지라.는 말은 급히 너로 하여금 막힌 것을 분발하게 하려는 것이 문득 언어에 노출된 것이니, 이것은 나의 허물이다. 그런데 어찌 끝내 너를 노엽게 생각하겠느냐. 아, 선군(先君)의 상복(喪服)을 입을 적에는 너의 아버지가 상주(喪主)였는데 나는 따라서 여묘살이를 하였고, 지금 선비(先妣)의 상복에는 네가 바로 상주인데 나는 또 따라서 여묘살이를 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25년 동안에 전후로 같은 사람의 아버지와 아들이 이 산에서 초토(草土)에 엎드려 있었으니, 그 인간 세상에 대해서 어떻겠느냐. 그래서 내가 너에게 연연하여 속히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 속에 그지없이 간측(懇惻)하고 통절(痛切)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네가 여기에 있으면 궤전(饋奠)을 올리는 데에도 내가 너를 따라서 할 것이고, 조빈(吊賓)을 대하는 일도 내가 너를 따라서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혼자만 있으면 남들이 나를 상주(喪主)인가 의심하게 되니 이것이 우선 안 될 일이고, 이것을 걱정하여 악실(堊室)을 비워두고 지키지 않는 것 또한 불가한 일이다. 빈객들이 와서 문득 너의 처소를 물을 경우에는 내가 비록 병든 홀어머니를 문안하는 중이라고 말을 하지만, 이것도 한두 번이면 그만이겠거니와, 오래되어 네 번, 다섯 번씩 와서 물어보고 마음 속으로 뭔가 부족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그것을 변명하겠느냐. 꽃다운 나이로 앞길이 창창한 너 같은 사람은 한 가지 행실만 흠이 있어도 뭇 사람의 비방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니, 염려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또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 종족(宗族)은 화의(和義)에서 일어난 지 이미 백여 년이 지났고, 양온공(良醞公) 이후로 제종(諸宗)의 자손들 또한 많아졌다. 그러나 벼슬하여 공경(公卿)이 된 사람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그리고 과거(科擧)에 급제한 사람은 오직 우리 선군 및 선군의 재종형인 휘 종리(從理), 그리고 너의 아버지와 나뿐이다. 아, 백 년의 오랜 세월 동안에 급제한 사람은 겨우 네 사람인데, 우리 집에서 세 사람이 나왔고, 왕년에 강생(康甥 김종직의 생질 강백진(康伯珍)을 말함)이 또 갑과(甲科)에 올랐는데 이는 또한 우리 집의 가학(家學)에서 나온 것이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살펴본다면 조선(祖先)들께서 인덕(仁德)을 쌓으신 공업이 장차 우리 집에서 발현될 듯하다. 내가 이전에 너의 여러 종형제들의 이름을 지을 적에 모두 사(絲)를 좇아 소리를 내게 한 것은 바로 우리 가업(家業)을 계속 이어서 막힘이 없이 영구하게 전해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수(綬), 굉(紘) 등은 중씨(仲氏)가 스스로 가르치고 있으니 반드시 장차 성취됨이 있을 것이다. 나는 겨우 자식 하나를 두었으나 지금 폐질(廢疾)에 걸린 사람이 되어 더 이상 가르칠 가망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너의 형제는 우뚝하게 이미 두각이 나타났다. 그러나 학문이 넓고 심오한 데는 아직 미치지 못한 실정이다. 이변(貍辨)은 막 면했지만 각곡(刻鵠)은 아직 이루지 못하였으니, 만일 일과로 배운 것들을 끊임없이 다시 익히는 데에 조금이라도 소홀히 한다면 세월은 가버릴 것이니 장차 어찌하겠느냐. 나는 비록 덕이 박하고 학문도 보잘것이 없으나, 출신(出身)한 이후로 외람되이 임금의 은혜를 입어 항상 금마(金馬), 옥당(玉堂)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었다. 이 때문에 내가 비록 산중(山中)에 있을지라도 원방(遠方)의 선비들로서 혹 서로 찾아와 학문을 묻는 자들이 있으면 슬픔도 잊은 채 강송(講誦)을 해 주곤 하였으니, 명교(名敎)의 죄인(罪人)이라는 것을 도피할 길은 없으나, 우선 찾아온 사람에 대한 반가운 마음에서 심하게 거절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너도 만일 조석으로 내 곁에 있으면서 예서를 읽는 여가에 날로 미처 몰랐던 것을 더 알기를 힘쓰고, 널리 배우고 살펴서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밝게 분변하여 후일 독실히 실천할 기반을 높여간다면, 3년 동안에라도 거의 조그마한 진취나마 거둔 것이 있어 조부(祖父)의 서업(緖業)을 떨어뜨리지 않게 될 수 있으리니, 그렇게 하는 것이 또한 좋지 않겠느냐. 그렇게 한다면 발이 부르트도록 먼 길에 책을 짊어지고 와서 배우는 사람들보다는 성과가 어찌 몇 갑절이나 되지 않겠느냐. 이것이 바로 내가 너에게 세속의 번거로운 일들을 털어버리고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아, 지금 세상에는 너의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 너의 아버지는 효우(孝友)와 충신(忠信)을 타고났었다. 옛날 고령(高靈)에 있을 적에 일찍이 무릎 밑에 악종(惡腫)이 나서 자리에 누워 계셨으므로 내가 모시고 간병(看病)을 하였는데, 하루는 지렁이즙[蚯蚓汁]을 내가 먼저 맛보았는바, 나는 그때 나이가 어린 까닭에 그 지렁이즙의 궂은 맛을 깨닫지 못하고 우연히 한 번 마셔 보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형은 내가 형의 덕성(德性)을 닮았다고 잘못 여기어 우애의 돈독함이 끝내 간격이 없었으니, 슬프다. 오늘은 비록 지렁이즙을 재차 마셔 보려고 한들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느냐. 함께 이 산에서 3년 동안 거상(居喪)을 하면서 매양 한밤중이면 깨워 일으켜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게 남아 있으니,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간장(肝腸)이 에이는 것만 같구나. 형은 이미 다시 볼 수 없으나, 형의 유체(遺體)는 너희 두 사람에게 있으니, 내가 너희들을 이끌어 성취시켜서 너희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 입신양명(立身揚名)하도록 하고자 하는 이 마음을 어찌 한량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 너는 내가 전일의 책망에서 크게 다그친 것을 가지고 나를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처자(妻子)들이 만일 한데 나와 있어 의탁할 곳이 없다면 집짓는 일을 모름지기 대략 마무리지은 다음에 돌아오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비록 그렇더라도 주자(朱子)께서 말하기를,군자가 장차 집을 지으려면 먼저 정침(正寢)의 동편에 사당(祠堂)부터 세워야 한다.하였는데, 이 말을 《가례(家禮)》의 첫머리에 얹어놓았으니, 너는 그 뜻을 알 것이다. 일일이 다 말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