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이룩한 살수 대첩은 교과서에 실려 있어 초등 학생들도 거의 잘 아는 고구려 시대의 유명한 전투로서 중국 수나라의 백만 대군을 지혜와 전략으로 맛서 승리한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의 하나이다.
그런데 여기서 살수대첩에서의 살수는 고대의 하천을 가르키는 말로서 우리는 교과서에서 살수를 압록강 아래에 흐르는 청천강으로 비정되어 배우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야만 하는 잃어버린 역사는 기록에 나오는 지명에 대한 재인식이다.
먼저 우리 역사에 나오는 강이나 도시 이름은 일제에 의해서 반도 사관에 의거 대부분 우리 민족에게 불리하게 왜곡하게 되는데 역사 유물을 대륙에서 한반도로 옮겨 와 위장시킨 장소를 허위로 거명하거나(예 낙랑군과 대방군의 위치) 혹은 우리 민족이 처음 위치하였던 장소에서 그후 중국 세력에 밀려나 나중에 이동된 지명의 경우에는 그 역사적 시기를 고려하여 처음에 존재하였던 장소를 추정하여 기술하거나 시기에 따라서 이름이 새로 바꾸어진 사실을 파악하여 그 변천된 지명의 역사를 정확하게 기술하여야한다.
예를 들면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평양의 위치가 처음 고조선 시절에는 현 난하 우측 지역인 승덕이었다가 AD 4C 경에는 현 요하 우측 요양에 있었으며 그 이후 AD 5C에는 현 북한의 수도인 대동강 근처 평양으로 오게 되었고 지명의 변천 경우를 살펴보더라도 요수가 현 난하로, 압록수가 현 요하로 후일 명칭이 바뀐 사실을 잘 알아야만 한다.
이는 일제가 우리 역사를 반도사관으로 만들기 위해 역사적 시대별로 변천해 온 과정을 전혀 무시하고 우리 민족에게서 국력이 가장 나빴던 상태에서 도피해와서 맨 나중에 존재했던 지명을 과거부터 그곳에 줄곧 살아 왔었던 것처럼 불리하게 해석한 것이다.
이를테면 과거 중국 대륙에 있었던 지명이 나중에 한반도로 쫓겨 와 새로 형성된 지명이 있을 경우 처음에 형성된 곳을 밝히고 시기별로 변천해 온 것을 알리지 않고 나중에 정착된 곳이 애초부터 우리 민족이 그 자리에서 계속 있었던 것처럼 왜곡시킨 것을 국내 사학계에서 이를 수정하지 못하고 그대로 전수한 부끄러운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여기서 살수가 청천강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 유명한 북한의 살수로 한번 역사 기행을 한번 살펴보자.
북한의 청천강은 자강도 남부, 평안북도 남동부, 평안남도 북부를 서남서류해 서해로 흘러드는 강으로 동신군·희천시, 평안북도 향산군·구장군·영변군·박천군, 평안남도 개천군·안주시·문덕군 등을 지난다. |
길이 207.5㎞, 유역면적 9,522㎢이고 자강도 동신군 동부의 웅어수산(雄漁水山:2,020m) 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흐르면서 백산천(白山川)·장동천(長洞川)·아롱천(我弄川)을 합류하고, 희천시에서 희천강·진면천(眞面川)·명문천(明文川)을 합하여 남서류한다.
예로부터 평안도지방에서는 청천강을 중심으로 그 이북은 청북(淸北), 이남은 청남(淸南)이라 했다. 적유령산맥과 묘향산맥 사이의 협곡을 따라 흐르는 상류와 중류는 유속이 빠르고 강폭이 10~15 미터로좁으나, 하류로 내려가면서 유속이 느려지며 강폭도 넓어져 유역 내에는 안주평야·박천평야 등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했다
위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청천강은 중상류 쪽의 강폭이 매우 좁은 형태라서 수나라와의 전투가 이곳에서 실제로 이루어 졌다면 수나라 군사 30여 만명이 한번에 다 들어가 건널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하천의 유량도 많지 않아서 살수대첩 이야기 처럼 물살을 이용한 강공도 도저히 상상이 될 수 없는 지형인 것이다.
그리고 역사서의 나타난 살수의 위치는 압록수의 동편에 있다고 서술되어 있는데 청천강의 위치는 압록강의 아래쪽에 있어서 위치 설명도 사실과 다르다.
이렇게 살수가 여러 정황으로 살펴 볼때 북한에 있는 청천강과 다를진 데 왜 우리 사학계에서는 살수대첩이 청천강에서 이루러졌다고 주장하고 있는가?
이는 일제 사학자가 한국사를 왜곡하면서 우리 민족의 대륙에서의 용맹을 떨쳤던 자랑스런 역사를 없애기 위하여 모든 우리의 역사적 사실을 유물 이동이나 조작을 통해 한반도 안에서 생긴 일로 추정하게 끔하는 실증 사학에 의거 반도 사관을 무리하게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또한 해방 후 이들 일본인에 의해서 훈련된 친일 사학자들이 이에대한 뚜렷한 역사 탐방이나 학술 조사없이 일제의 실증 사학을 무조건 선진 학문으로 받아드려 아무런 수정없이 그대로 인용하여 교과서를 서술했던 사연으로 일본 사학자의 해석대로 살수를 청천강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잃어버린 역사 지명을 다시 살려야 하는데 현재 중국의 요동과 요서 지방을 나누고 있는 요하(遙河)가 이전 AD 4~6C 고구려 시절에는 압록수로 불려 졌으며 그후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 시절(919-1125)에 하천의 명칭이 압록수에서 요하로 고쳐진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 기록에 의하면 살수가 압록수 동쪽 옆을 흐른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살수대첩에 나오는 살수 지역은 한반도가 아니라 요동 지역에 있었던 압록수(현 요하) 우측을 흐르고 있는 대하(현 혼하)로서 이 정도 크기의 폭과 길이를 갖춘 강이면 수나라 수십만 대군을 한꺼번에 익사시킬 정도의 유량과 유속을 가지고 있게 되어 살수대첩이 생생히 살아날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 될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