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트 영화’의 원조 <인디아나 존스>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인가? 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참 곤란한 질문이다. 난처하다. 무엇보다 한마디로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운 질문이기 때문이다. 우선 영화의 장르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감동의 색깔도 다르고 각자 취향도 다르다. 더 난해한 건 이 취향이라는 것이 시시각각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영화가 ‘재미있는’ 영화인가? 라는 질문은 비교적 쉬운 편이다. 재밌는 영화는 극장의 불이 꺼지는 순간 안전장치를 내린 놀이기구가 서서히 앞으로 전진 하다 어느 정도 높이에 올라섰다싶으면 밑으로 확 하강시키고 그 짜릿한 경험을 채 삭이기도 전에 다시 서서히 상승하는 곡선을 따라 엔진을 발동시켜 올라가다 이번에는 반쯤 비틀어 돌려놓고 밑으로 확 하강시켜 반쯤 정신을 빼 놓은 다음 도착지에 내려놓는 순간 바로 극장에 불이 켜지는 느낌을 주는 영화. 한마디로 ‘롤러코스트를 타는 느낌을 주는 영화’가 재미있는 영화다.
이 롤러코스트 영화의 원조로 손꼽힐 수 있는 영화가 바로 <인디아나 존스>이다. 1977년 <스타워즈>의 개봉직후 흥행으로부터의 스트레스를 피해 하와이의 마우이 섬으로 여행을 하던 조지 루카스가 <조스>(75)와 <미지와의 조우>(77)의 흥행성공 후 <1941>(79)의 흥행 실패로 잠시 주춤하고 있던 스티븐 스필버그를 만나 <인디아나 존스> 일편인 <레이더스>를 기획한다. 영화광이자 새로운 할리우드 시대를 연 젊은 파워였던 그들이 만나 인생의 역작을 만들고자 했다 라기 보다는 영화다움에 충실한 재미있는 오락거리로서의 영화를 구상한 것이다.
그들의 재미있는 영화 만들기 프로젝트는 루카스가 기르던 개 이름으로 딴 인디아나 존스라는 캐릭터 구상에서 시작된다. 인디아나 존스는 ‘페도라 중절모와 가죽점퍼를 착용하고 채찍을 들고 다니는 독특한 고고학자’로 실력은 있지만 강의나 연구보다는 모험을 좋아하는 인물이다. 전통적인 학자라기보다는 사실 도굴꾼에 가까운 인물, 그러나 유물의 발굴보다는 모험 그 자체를 즐기며 최종적으로 자신의 전리품을 박물관에 기증하여 주역으로서의 정당성을 확보해 나가는 인물이다.
이 캐릭터의 주인공인 해리슨 포드는 올해 66세, 아크로바틱한 액션장면이 힘겨워 보이는 나이. 그러나 그는 4편인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에서 잘 나가던 젊었을 때 얘기를 스스로 시인하며 나이가 먹은 것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2008년의 기술로 더 많은 볼거리와 속도를 제공한다.
루카스가 설립한 Industrial Light & Magic(이하 ILM)이 제공하는 시각효과는 아찔한 놀이기구를 타는 것보다 더 스릴 있는 영화를 제공하기 위해 갖가지 첨단 기술을 도입한다. 동일한 회사인 ILM에서 만든 <스타워즈>의 완전한 판타지 세계나 <트랜스포머>와 같은 가상 기계군단의 재현과는 달리 <인디아나 존스>시리즈가 가지는 차별성은 역사적 현실에 바탕을 둔 그럴 듯한 물리법칙과 초자연현상이 공존하는 세계로의 ‘모험’에 있다. <인디아나 존스>가 오락영화의 바이블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한 일등공신은 마치 관객이 직접 ‘체험 어드벤처’를 경험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시각효과에 있다.
잊을 수 없는 <레이더스>의 자동차 추격 장면과 갱도 안에서 롤러코스터 그 자체인 쾌속 질주,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에서 베니스의 물살을 가르며 벌어지는 보트 추격전과 탁월한 기마술로 독일군 탱크를 놀리며 요리조리 피해 다니면서 벌이는 대결, 네 번째 영화인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왕국의 해골>에서 마야 문명의 비밀을 담은 신비한 수정 해골을 들고 쟁탈전을 벌이는 자동차 추격전과 장엄한 폭포 장면은 속도감 넘치고 격렬한 영화를 체험하게 만들어 준다.
여기에 4편 <크리스탈 해골>은 시리즈의 특징대로 이동 경로를 붉은 선으로 표시하며 지도를 따라 이동하는 기법을 구사하지만 몇 가지 변화를 시도한다. 1930년대가 배경이었던 앞선 세 편과 달리 무대를 1950년대로 옮겼고, 적은 나치가 아니라 소련군이며 매카시즘과 로큰롤, 폭주족, 핵폭탄 등 시대를 반영한 새로운 설정과 등장인물, 볼거리를 등장시켜 2008년의 기술로 만들어진 1980년대 복고풍의 느낌을 낸다. 이 중에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존스가 맞서는 상대가 달라진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나치가 악당으로 그려졌던 전편과 달리 이번에 존스가 맞서 싸워야 할 상대는 소련군이다.
지나치게 단순화 시킨 악당의 묘사는 <인디아나 존스>시리즈가 비판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제국주의 시대의 향수에 젖은 시대착오적인 도피성 오락, 제3세계의 귀중한 유물을 도굴한다던가, 원주민을 살해한다던가하는 차별적 묘사 등은 지금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과거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비록 내 생애 가장 좋은 영화는 아니지만 최고로 재미있는 영화로 기억되고 있다.
지금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이 보다 큰 스케일과 화려한 특수효과에 힘입은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끊임없이 토해내는 최근 영화를 많이 접한 젊은 관객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반복 되새김질의 결과 거의 비슷하게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있는 포맷으로, 심지어 결말도 웬만큼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오락과 유사한 경험으로 적이 나올지 알지만 싸우는 순간마다 여전히 짜릿한 느낌을 주는 <크리스탈 해골>편은 스필버그, 루카스 그 이름만 들어도 기대가 되는 역전의 용사들이 뭉친 오락영화의 바이블이라는 명성에 큰 오점은 남기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영화 역사에 획을 긋는 작품도 올해 최고의 영화도 아니고 관객을 정신적으로 고양할 걸작은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조지 루카스와 스필버그의 가장 뛰어난 작품도 아니다. 이미 되새김질을 몇 차례나 끝낸 오락 시리즈물은 새로운 영상 충격을 주기보다는 ‘그때 그 느낌’을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하려는 태생적 목표가 있다. 그러니까 최고 잘 만들었을 때 그때 그 느낌을 다시 느낌, 우수정도가 그때 그 느낌과 비슷한 정도를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다. 작년에 나온 <다이 하드 4>가 그랬고, 내년에 나올 <터미네이터 4>도 시리즈물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리라고 보기 어렵다. <인디아나 존스 4 : 크리스탈 해골>도 그저 역전의 노장들이 모여 그때 그 롤러코스트를 타는 느낌을 비슷하게나마 팬들에게 선사하려는 시리즈물의 목표에 충실한 오락영화이다.
영화평론가 서성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