⑼ 장흥고
돗자리, 유둔(油芚:기름먹인 두꺼운 종이), 지지(紙地) 등을 관리하고 궐 안의 여러 관청에서 쓰는 물품을 공급하던 곳이다. 장흥고가 새겨진 그릇은 1419년-1437년 사이에 만들어졌으리라고 보이는 '분청인화 집단연권무늬 곤남군장흥고명접시', 정통 3년명 태지와 함게 출토된 '분청 인화국화무늬 장흥고명 대접' 등이 있다.
⑽ 사옹원
왕의 식사와 궁궐의 연회에 관한 일을 맡은 관청으로서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는 사옹방으로 존속되어 오다가 세조 13년(1467)에 사옹원으로 개칭된다.
4.분청사기의 시기구분
분청사기의 발생에서 소멸까지를 문양과 기형의 변화를 중심으로 구분해 보면 대개 크게는 전기와 중기, 후기의 3개의 시기로, 그리고 각각을 다시 제 1기와 제 2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⑴ 초기 (발생기) 1360-1420
1392년 이후의 분청사기는 상감청자와 비슷해서 구별하기가 어렵다. 시대만 조선시대이지 거의 상감청자와 똑같다. 14세기부터 대접내면의 중요한 문양소재로 등장하는 연당초문과 S자형 병이 출현한다.
제 1 기 태동기, 1360-1390
고려 상감청자 쇠퇴기와 중복되며 태토(胎土)가 조잡하고 기벽이 두텁고 투박하며 유조(釉調)는 암록색을 띤다. 운학문(雲鶴紋)의 경우에는 운문(雲紋)이 우점문(雨點紋)으로 변형되어 고려상감청자의 명맥을 유지하지만 대접의 경우에는 몇줄의 선만을 돌려 무문(無紋)의 경향을 보이기도하며 매병에 있어서는 굴곡이 심한 기형의 변화와 더불어 저부에는 간략한 卍자문, 연판문 정도가 상감시문된다.
이 시기에 속하는 요지는 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미산과 당전부락 일대의 14세기 말 청자 가마터이이며 자료로는 '靑磁象嵌蓮唐草紋正陵銘대접', '靑磁象嵌蓮柳紋德泉銘甁', '粉靑象嵌義成庫銘甁' 등이 있다.
제 2 기 발생기, 1390-1420
조선 왕조의 기반이 다져지는 시기로 분청사기에서도 새로운 방향이 모색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고려청자의 퇴화된 상감무늬의 여운이 남아있는 한편, 기형, 무늬, 유태가 재정비되어 조선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분청 인화문이 발생한 시기로 연당초무늬, 풀무늬, 重圈무늬, 빗방울무늬, 성긴 인화무늬가 많고, 여의두무늬, 연판무늬, 卍무늬, 방사성 파상무늬 등이 시문되었다. 기형은 대접의 경우 안으로 휜 투박한 모양이 주종을 이루며 대마디(竹節)굽이 많다. 제작방법은 태토비짐받침을 사용하여 포개어 번조했으며, 유약은 청자유 계통의 투명유이지만 태토가 짙은 회흑색을 띠고 있어 유조는 암록색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가마터로는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쌍동리, 광주직할시 충효동, 경남 사천읍 구암리, 상청군 신등면 장천리, 경북 상주군 화동면 어산리 등이었고, 주요 자료로는 '청자상감연당초무늬정릉명대접'에 근원을 둔 '粉靑象嵌蓮唐草紋恭安銘대접'과 '粉靑印花菊花紋恭安府銘대접'을 들 수 있다.
⑵ 중기(발전기) 1420-1480
상감기법이 1480년대에 가까워지면 거의 자취를 감추고, 인화기법도 차츰 쇠미해 가다가 1480년 이후 귀얄기법이 크게 유행한다.
제 1 기 발전기, 1420-1450
세종대왕의 치세 연간으로 민족문화가 융성하던 시기로 상감(선상감, 면상감), 인화, 박지, 음각 등의 기법상 다양한 발전을 보인다. 태토는 밝아지며 유약은 잡물이 없이 투명해지는 등 분청사기의 특질이 뚜렷해진다. 기법은 상감기법과 인화기법이 우세하며 인화기법은 대접의 경우 그릇 內側面 듬성듬성하게 찍던 무늬에서 그릇 전체를 가득히 채워져 문양구도의 짜임새가 잡히는 시기이다. 인화기법의 도장으로는 국화, 톱니바퀴, 원, 육각판 등이 있고, 集團蓮圈紋이 기면 전체에 압인되어 인화문의 새로운 특징이 정착되는 시기이다. 대접외면에는 고려 상감 청자의 무늬가 다시 나타나기도 하고, 변형된 운학무늬가 상감되어 고려청자의 환원기라고도 하며 이때의 유조는 밝은 회청을 띠며 태토는 정선되어 잡물이 거의 없고 대접의 경우는 대개 태토비짐받침으로 포개어 번조한 것이 많다.
이 시기의 가마터는 전국에 골고루 분포되어있다. 주요 자료로는 '분청상감초화무늬네귀항아리(정소공주 무덤에서 출토)', '분청인화집단연권무늬(集團連圈)네귀항아리', '분청박지연물고기무늬 공봉화상뼈항아리'와 '분청상감 선덕 10년명 묘지', '분청인화집단연권무늬곤남군장흥고명 접시', '분청인화국화무늬장흥고명 대접', '분청상감연물고기무늬정통5년명반형묘지', '분청상감경태원년명 묘지', '분청상감전라도관창사조항지묘명 묘지'가 있다.
제 2 기 성숙기, 1450-1480
세조와 성종 치세의 전반부에 해당되는데, 분청사기의 모든 기법의 성숙함을 보이는 한편, 무늬가 헤이해지고 유태에 잡물이 많이 섞여 막그릇화 하는 경향이 짙어진다. 귀얄기법이 현저하게 증가한다. 인화기법은 무늬 짜임새, 압인 상태가 고르지 못하고 얕게 압인되어 백토의 감입의 상태가 지저분하게 나타나 제작의 소홀함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분청사기가 중기 제 2기 후반부터 쇠퇴의 기운을 띠기 시작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경기도 광주를 중심으로 세조 연간에 사옹원의 분원이 성립되어 관장제 수공업 체제의 관요적인 성격을 띈 사옹원이 백자생산의 중심지가 되므로 토산공물로서의 분청사기의 생산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문양에 있어서는 집단연권무늬의 경우 고도의 기술이 습득되어 그릇의 면에 골고루 시문되고 여백 없이 압인된 곳에 백토가 고루 감입된다. 박지와 음각 기법이 특색을 이루어 전라도 지방에서 크게 유행한다.
가마터는 충남 연기군 전동면 달전리,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사기막리, 광주광역시 충효동, 전남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 경북 사천군 곤양면 송전리, 경북 월성군 현곡면 내태리와 남사리, 고령군 기산동 등이 있다. 자료로는 '분청귀얄무늬항아리와 접시(온녕군 무덤 출토:1454)' 이전, '분청 인화집단연권무늬덕녕부명 대접(1455-1457)', '분청인화국화무늬월산군 태항아리(1454-1462)', '분청상감 천순8년명 묘지(1464)', '분청상감성화3년명 묘지(1467)'가 남아있다.
⑶ 후기 1480-1600
제 1 기 쇠퇴기, 1480-1540
상감, 인화기법 쇠퇴하면서 철화기법과 같은 개성이 강한 지방 양식으로 발전하여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전반경까지 유행한다. 유조는 녹색이 짙어지며 태토에는 잡물이 섞이고 백자와 함께 수집된다. 또 담금분장기법(덤벙)이 성행하는 시기이다.
가마터는 경기도 남양주군 별내면 청학리, 충남 연기군 전동면 금사리, 공주군 반포면 학봉리,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사기막리, 전남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 전북 고창군 부안면 수동리, 아산면 용계리, 경남 양산군 원동면 화제리, 웅산면 주남리, 밀양군 삼랑진읍 용전리, 진양군 수곡면 효자리 경북 고령군 사부동 등 이고, 자료로는 '분청귀얄철화성화23년명묘지명'1487, '분청귀얄철화홍치3년명묘지편'1490, '분청귀얄철화가정15년명묘지편'1536 이 있다.
제 2 기 소멸기,
1540-1600
귀얄, 덤벙이 서서히 백자에 흡수되고, 소멸된다. 백토의 귀얄기법만이 일부 백자에 영향을 주어 백자 태토 위에 백토분장을 한 경우가 있다.
자료로는 '만력15년명묘지편'이 있다.
#.時期區分에의 窯地別 特徵
(도표-자료실, 분청사기연구에서 참조)
마무리말
분청사기는 시기적으로 상감청자와 백자의 중간단계에 해당하지만, 단순히 청자와 백자를 이어주는 과도기적 그릇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1. 기형
분청사기의 기형은 고려말 청자의 기형을 바탕으로 풍만하고 율동적인 변형을 가한 것이다. 이는 조선적 건국이념인 유교를 근본으로 하여 고유의 신앙과 불교의 영향을 가미한 것과 같다.
그릇의 종류별로 기형의 특징을 살펴보면, 매병의 경우 고려말에 비해 구연이 외반되었고, 어깨곡선으로부터 시작하여 굽에 이르기까지 S자형의 굴곡을 이루어 파도와 같은 생동감이 나타난다. 대접은 단순히 구연이 외반 된 것 보다 훨신 늘어난 형태로 동체의 선이 비스듬히 곧게 뻗어 올라가는 것이 분장문에 많고, 굽 위의 동하부(胴下部)를 수평으로 한 번 깎은 것이다. 구연이 외반된 것은 백자와 비교했을때 하동부가 풍만하고, 단정하며 예리한 감을 주는 백자보다 율동감이 있다. 편병은 처음부터 납작하게 빚었던 백자와 달리 둥근 몸체의 양면을 두드려 편평하게 한 것으로 풍만하면서도 자유로운 의지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태항아리의 경우도 같은 15세기의 백자가 홀쭉하게 높은 것에 비하여 풍만하고 비례가 낮은 모습이다.
2. 문양
분청사기에 주로 사용되는 문양은 연화(蓮花), 연판문(蓮瓣紋), 모란(牡丹), 모란엽문(牡丹葉紋), 초화문(草花紋), 버들(柳), 물고기(魚), 용(龍), 파선(波線), 인동, 새, 국화, 당초문 등이다. 그중 연화, 연판문은 불교와 관련된 문양이다. 이 문양들은 고려자기에 등장했었으나 고려말 잠적했던 문양으로 조선시대에 부활하여 시문되었다. 같은 인화문 이라도 시문하는 자세에 따라 다르고, 분장법에 따라 지방마다 다양한 변화를 겪게된다.
호남지방의 분청사기 문양은 선종의 영향으로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것이 특징이다. 개체의 시문이 크고, 인화문 자체가 소략하게 시문 된것에 얇게 분장하여, 표면을 깍아내지 않았기 때문에 표면이 백색으로 화장한 것 같다. 시문할 때도 치밀하게 하는 것 보다는 소략하여서 대범하고, 여유로우며 자유분방한 맛을 살리고 있다. 또한 지방명이 없고, 관사명도 인화로 나타냄으로 문양과 같은 효과를 낸다. 박지, 조화문이 발전하였다.
영남지방은 대의명분과 명리를 내세우는 성리학이 발전하고, 불교에서도 교종세가 강한것의 영향을 받았다. 호남지방의 분청사기와는 달리 치밀하게 시문하고 분장한 후 표면을 깍아내어 시문이 분명히 나타난다. 담청색의 유약과 회색 경질(硬質) 素土가 잘 어우러져 있다. 관사명 위에 번조한 지방명을 각명(刻銘)하였고, 귀얄을 하지만 조화나 박지처럼 자유분방한 분청사기 발전은 눈에 띄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