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지나치게 문학적이면 그 사람의 문학은 가난하다. 한 인간이 지닌 열정의 양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고, 그것을 삶 속에서 소진한 자는 글을 제대로 쓸 수가 없다. 특히 그것이 소설이라면, 자기 연민이 어린 수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의 삶과 글은 줄곧 이 사이에서 오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다. 발자크의 삶과 문학은 이 명료한 진실을 배반한다. 발자크의 삶은 '치열한 모순'의 연속이었으며 치열한 모순은 극단적인 편집증으로 이어졌다. 극단적인 편집증은 상상을 초월하는 글쓰기로 폭발했으며 발자크에게 많은 부와 명성을 안겨주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끝내 불행했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치열한 모순'과 분열, 그로 인한 편집증은 바로 상처와 욕망에 기인했기 때문에. 부모에게 버림받고 기숙사를 전전하면서 보냈던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그는 자유롭지 못했다. 연상의 여인에게 매달리는 맹목적인 연정은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던 발자크의 어린 시절의 기억과 맞닿아있다. 그에게는 언제나 '작업의 대상'이 존재했지만 그것은 대상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일그러진 결핍에서 비롯된, 일종의 몸부림이었다. 스무 살부터 글쓰기를 시작한 발자크는 19세기 중반 시민세력의 성장이 두드러지던 프랑스의 사회상을 당대의 어떤 작가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해냈지만 그는 자신의 소설과는 달리 평생 귀족을 숭배했으며 자신의 이름에 귀족의 상징인 '드(de)'를 집어넣고자 고심했다. 오노레 발자크가 아니라 오노레 '드' 발자크임을 강조하면서 그는 언제나 귀족의 안락한 삶을 꿈꾼다. 그뿐인가? 사실적이며 흥미 넘치는 소설을 통해서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지만 발자크는 늘 무모한 사업을 벌여서 채권자들에게 평생을 쫓기며 살았다. 하찮은 미술품과 골동품을 사들이는데 엄청난 돈을 낭비하는가 하면, 귀족의 상징인 터키옥이 달린 지팡이를 고가에 구입하여 허세를 부렸고, 사업이 망하면 빚을 갚아줄 귀족부인들을 유혹하기 위해서 연정이 담긴 편지를 쓰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돈이 떨어지면 그것을 갚기 위해 '순식간에' 소설을 써서 넘겼고, 소설의 인세들은 또다시 어이없는 낭비와 사랑놀이에 투입되는 악순환. 이런 인물에게 '전기'의 형식을 띤 평전이라니. 이것은 또 얼마나 어이없는 낭비인가. 하지만 츠바이크의 응시는 위대한 작가의 감춰진 비리와 사생활의 추적에 머물지 않는다. 츠바이크는 발자크의 삶을 관통하는 모순과 분열이 글쓰기에 어떠한 도움이 되었는지를 응시한다. 실제로 발자크의 걸작들은 대부분 가장 '몰린' 시기에 창작되었다.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거나 사업이 망했을 때, 사랑에 실패했을 때, 발자크라는 전대미문의 '속물'은 게걸스럽게 책을 썼다. 때로는 16시간이 넘게 글에 매달리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으며 보통 작가의 10배가 넘는 원고를 단시일 내에 끝마치는 등 삶의 고비마다 천재성이 작열하며 스스로를 구원한다. 그러나 자신의 숙원대로 귀족인 한스카 부인과 결혼하자마자 발자크는 50세를 갓 넘긴 채 사망한다. 발자크의 문학은 천재성의 절정을 보였지만 그는 결국 한 여인의 사랑도 얻지 못했으며, 평생을 결핍감과 강박증에 시달린 불행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굴곡지고 모순된 발자크의 생애와 문학은 이 평전의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의 삶과도 겹쳐진다. 불행한 시대를 살다가 나치의 박해를 피해 조국을 등지고 망명해야 했으며 2차대전의 와중에 망명지에서 자살한 슈테판 츠바이크. 그는 자살하기 전 마지막 작품으로 <발자크 평전>을 남겼다. 츠바이크가 동일시했던 것은 발자크의 속물스러움이 아니라 모순과 억압, 그리고 아픈 기억이 한 인간에게 가하는 고통이 어떻게 글쓰기로 이어지는가, 라는 통찰이었으리라. 아픈 진실이지만 문학은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자양분으로 삼는다. 어쩌면 이 평전은 아픈 삶을 살았던 한 작가가 자신보다 한 세대 앞서 살았던 한 애정결핍증 환자(발자크)에게 보내는 따뜻한 응시이자 불행했던 스스로의 삶에게 적은 처방전이 아니었을까?
나는 나 자신의 주인인 동시에 나 자신의 하인이기도 했다. 나는 열정적으로 디오게네스의 삶을 살았다. (59쪽) "직업을 갖게 되면 나는 지는 것이다. 점원이나 기계가 되고 말 것이다. (79쪽) "곧 중단하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일하는 것은 나로서는 불가능하다. 나는 오직 한 시간이나 두 시간만 일하지는 못한다." (237쪽) 발자크의 최후의 비밀을 모른다면 인간 발자크를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우리가 운명이나 운명의 시련이라고 부르는 그 모든 것에 대해서 무서울 정도의 태연함에서 나온 무관심을 보였다. 그의 내부에 있는 어떤 것은 그의 외적인 삶의 온갖 파국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 이 태풍을, 안전한 육지에서 미쳐 날뛰는 바다를 쳐다볼 때와 같은 긴장된 호기심으로 바라만 보았다. (426쪽) 그가 삶을 진행할수록, 생존이 그를 가혹하게 뒤흔들수록 발자크는 더욱더 사실 주의자가 된다.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점점 더 불신을 품은 눈길로 그는 상황과 관계들을 꿰뚫어본다. 그리고 점점 더 예언자적인 인식으로 전체의 맥락을 조망한다. 마흔 살의 발자크는 서른 살 때보다 오늘날 우리에게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 10년이 우리에게 그를 100년이나 더 가까이 데려다준 것이다. (508쪽)
저주받은 걸작 비슷한 시기에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푸른숲, 1998)이 낙양의 지가를 올렸던 것에 비하면 츠바이크 최고의 걸작으로 칭해 마땅한 이 책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푸른숲, 1998)은 말 그대로 ’저주받은 걸작’ 이 되었다. 더구나 괴테의 책이 그전부터 이미 시중에서 팔리던 책의 겉모양만 작고 예쁜 판형과 장정으로 살짝 바꾸어 내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속사정을 알고 나면 책을 고르는 데 있어서 내용보다는 겉모양으로 책을 선택하는 독자의 눈에 대해서 적지 않은 실망까지 하게 된다. 그에 비하자면 이 책은 츠바이크가 만년을 온통 바쳐서 한 거대한 작가에 대해 써 내려간 방대하고 세밀한 전기일 뿐만 아니라, 안인희 선생이 유려하고도 정확한 한국어로 꼼꼼하게 옮겨놓아서 발자크와 츠바이크의 아름다운 문체를 고스란히 살려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대중에게 외면 당하고 말았다. 이게 어디 될 법이나 한 말인가. 나는 가능하다면 이제부터라도 이 책이 가진 걸작으로서의 가치를 고스란히 살려놓고 싶다. 츠바이크 vs 발자크 이 책은 유명한 소설가이면서 세계 최고의 전기작가라고 불리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남긴 유작(遺作)이다. 그는 오늘날까지도 도이치어 작가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평생 수많은 인물들의 생애를 생생하게 그려냈고, 이미 『세계의 건축가들(Baumeister der Welt)』(우리말 번역본 『천재와 광기』 (예하, 1993))이라는 저작을 통해 발자크를 포함해 9명의 작가에 대한 평전을 다룬 바 있다. 하지만 그렇게 수많은 인물을 다뤘던 그가 유독 발자크에 대한 관심만은 완전히 접어두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후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10년 전부터 다시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작품들을 검토해서 발자크의 삶에 대한 커다란 지도를 그리듯이 이 원고를 써나갔다. 하지만 그는 결국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을 미처 다 끝맺지 못한 채 목숨을 끊었고, 이 원고는 그가 죽은 후 가족에 의해 친구인 리하르트 프리덴탈에게 넘겨져서 그의 정성스러운 검토와 보완을 거쳐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이 책은 생전의 츠바이크가 기대했던 소원대로 그의 인생 최고의 걸작으로 우리에게 남게 된 것이다. 발자크는 또 어떤가. 그는 평생을 바쳐서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집중력과 처절한 노동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혹독한 집필작업을 통해서 엄청난 양의 작품을 생산해냈다. 그의 소설 전집인 『인간희극』은 애초에 총 137편의 작품을 포괄할 예정이었고 발자크가 생전에 실제로 완성한 것은 97편 정도였는데 그 중 무려 74편이 장편소설들이었다. 그는 보통의 작가 네다섯 명이 평생토록 해낼 수 있을까 말까한 작업을 혼자서 이루어낸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인간희극』 전체에 대한 계획이 이미 모두 서있었는데 혹독한 노동과 비극적인 사랑의 결과로 인해 자신의 계획을 모두 실현시키지 못한 채 병마에 시달리며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결국 발자크의 『인간희극』은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지만 그는 이 전인미답의 건축물을 통해 우리에게 지금까지 문학의 영원함과 위대함을 일깨워 주고 있고, 츠바이크 역시 『발자크 평전』을 미완성으로 남겼지만 거인 발자크의 발자국을 세밀하게 쫓아감으로써 그 동안 잘 밝혀지지 않았던 이 위대한 작가의 초상을 우리에게 완벽하게 남겨주게 된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의 전기(傳記) 우리는 어려서부터 위인전이나 전기를 무척이나 친근하게 접하면서 자라왔다. 하지만 우리가 배우고 읽어온 위인전이란 게 대개 위대한 인물의 전기라는 뜻풀이에 충실하려는 의도였는지, 한 인간의 삶을 충실하게 재현해내기보다는 그의 특정한 시기나 한 면을 과장되게 표현하거나 주변 사람들을 실제와 다르게 묘사해 사실을 왜곡하면서 한 인간에 대한 엉터리 삶을 지어낸 데 불과한 책들이 많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그에 반해 츠바이크가 그려낸 발자크는 삶으로만 본다면 우리가 전통적으로 알고 있는 위인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는 시민계급 출신으로 혁명과 전쟁의 격동기에 놓인 19세기 전반 시민사회의 시대상을 그 누구보다 사실적으로 소설 속에 담아냈지만, 실제 삶 속에서는 평생 천박할 정도로 귀족을 숭배하고 귀족이 되고 싶어했으며 또한 정치적으로도 왕당파를 자처한 인물이었다. 귀족으로 대접받기 위해 스스로에게 귀족칭호를 내려 ’드 발자크’로 불렀고, 외출할 때는 천박한 황금단추가 달린 연미복 차림에 손에는 늘 그의 소설만큼이나 유명했던 커다란 터키 옥이 달린 지팡이를 들고 다녔다. 하지만 귀족을 꿈꾼 천박한 시민 발자크는 실제로 평생토록 갚을 수도 없는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 있었고, 도망갈 수 있는 뒷문이 따로 달려있는 집에서 집달리와 채권자들에게 늘 쫓기면서 살았다. 어디 그뿐인가.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그는 벌이는 사업마다 혹독한 실패를 겪었고, 보통사람들도 능히 범하지 않고 피해갈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평생토록 벌였다. 그는 누가 봐도 쓸데없는 물건임에 분명한 골동품이나 미술품들을 고가로 수집하는 바보짓으로 만년을 보내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빚을 갚아줄 능력을 가진 귀족 부인들을 한평생 쫓아다녔다. 그런 어리석은 사람에게 전기라니.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창조하는 발자크 - 『인간희극』 "그(나폴레옹)가 칼로 시작한 일을 나는 펜으로 완성하련다." (163P) 위에서 언급한 어리석은 발자크가 실제 삶에서의 모습이라면, 문학가로서의 발자크는 말 그대로 놀라움과 경탄의 대상이다. 그의 위대함은 삶과 그의 문학이 빚어내는 극심한 모순과 대립으로부터 온다. 위에서 대략적으로 언급한 대로라면 그는 개망나니에 불과했지만 사실 남들 앞에 비친 그의 모습은 그의 생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츠바이크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그가 세상에 내줄 수 있는, 하루 중의 단 한 시간’ 동안만 사람들 앞에 나타났고, 남은 시간은 세계문학 사상 가장 지치지 않는 노동의 인간으로 살았다. 다른 사람들이 그의 천박함과 낭비벽을 비웃고 있을 동안 그는 과장 없이 죽도록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발자크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불행한 어린 시절을 기숙사를 전전하면서 보냈고, 공증인사무소에서 편안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될 무렵인 스무 살에 일을 갑자기 그만두고 문학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20대의 그는 가명을 써가면서 싸구려소설들을 끊임없이 생산 해내는 소설공장의 역할을 하면서 보내게 되는데, 한편으로 이 시기에 출판, 인쇄 등의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크게 실패하면서 이후 그를 평생동안 괴롭히게 되는 엄청난 빚더미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실패는 후일 끊임없이 반복될 때마다 그를 진정한 작가로 단련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제부터 삶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믿을 수 없는 낙관주의와 생명력으로 창조하는 작가 발자크의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 이후 발자크는 20년 동안 수많은 희곡, 단편소설, 기고문들을 제외하고도 극히 중요한 74개의 장편소설들을 썼고, 그 소설들 속에서 지상의 온갖 직업과 성격을 가진 2천여명의 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풍경들, 집들, 거리들을 하나의 세계로 창조해냈다. 또한 그중 무려 600여명이 넘는 많은 인물들을 이후의 작품세계에서 계속적으로 등장시키는 ’인물재등장’의 수법을 통해 하나 하나의 작품들을 별개의 작품이 아니라 단계를 올려가면서 전체를 구성하는 연관된 작품들로 완성해 나갔다. 즉 그의 전집 『인간희극』은 자기 안에서 떠돌고 있는 이미 통일되고 완결된 세계였으며, 개별 작품은 뗄 수 없는 전체의 일부일 뿐이었다. 그는 전집이라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사회의 높이와 깊이를 자기 안에 포함한 전체 작품이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통일체라는 것을 알려줘야 했고 그에 걸맞는 제목을 찾아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단테의 신곡(신의 희극)에서 힌트를 얻어 신의 희극에 대해서 지상의 희극, 신의 세계를 이루는 구조물에 대해서 인간이 세운 사회적인 구조물을 마주 세우고자 제목을 찾아냈다. 그것이 바로 <인간희극(Comedie Humaine)>이다.(558P) 그는 1830년대의 프랑스에 살았지만 그가 창조한 다양한 유형과 계급의 인물들은 어느 시대에 집어넣더라도 그 계급의 전형을 보여주며, 그의 세밀한 사회에 대한 묘사는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담겨 있었다. 엥겔스는 그러한 발자크의 작품을 두고 1830년대의 사회를 그리면서 이미 1848년 2월 혁명 이후의 프랑스 사회를 투시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 말은 발자크가 작품 속에서 앞으로의 미래를 직접 내다봤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대에 대한 진지하고 세밀한 관찰, 인간관계에 대한 냉정한 묘사를 통해서 다가올 새로운 세상을 준비할 수 있는 토대와 근저를 그려냈다는 것이다. 그의 초기 작품에 나타나는 달콤하고 감상적인 요소는 낭만주의적이고 비현실적인 시대의 뒷맛을 우리에게 남겨주곤 한다. 그가 삶을 진행할수록, 생존이 그를 가혹하게 뒤흔들수록 발자크는 더욱더 사실주의자가 된다.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점점 더 불신을 품은 눈길로 그는 상황과 관계들을 꿰뚫어본다. 그리고 점점 더 예언자적인 인식으로 전체의 맥락을 조망한다. 마흔 살의 발자크는 서른 살 때보다 오늘날 우리에게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 10년이 우리에게 그를 100년이나 더 가까이 데려다준 것이다. (508P) 쉽게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는 매일 밤 12시에서 다음날 오후까지 무려 16시간씩 매일 일을 해나갔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말년의 얼마간을 제외하고는 평생토록 그 무서운 노동 속에서 글을 써나갔다. 심지어 여인들을 만나서 같이 여행을 떠나 있는 기간 중에도 밤 12시에 시작하는 그의 일은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그가 밤새도록 작업하는 장면을 마치 옆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묘사하는 츠바이크의 서술은 이 평전의 압권을 이룬다.(235 ~ 255P) 그는 매일 밤 일어나 수도복을 걸치고 - 그는 언제나 작업할 때 수도복을 걸쳤다 - 밤새도록 전혀 성격과 내용이 다른 두세 개의 작품을 신들린 듯이 동시에 써내려 갔다. 다음날 아침이면 일찌감치 온 인쇄소나 출판사의 심부름꾼을 통해 그 원고를 보내는 대신 그들이 인쇄해서 가져온 그 전날이나 그 전전날의 교정쇄를 받아서 다시 수정하는 작업을 해나간다. 그는 그런 작업을 통해 무려 15번이나 16번까지 교정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때마다 그 하나 하나의 교정쇄들에서 글자를 고치고, 글을 덧붙이고, 잘라내고, 풀로 붙여서 도저히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렇게 수없이 많은 작업을 거친 하나 하나의 교정쇄들을 모두 모아서 한데 묶어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런 전리품처럼 선물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창작력이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창조해낸 걸작들이 실제 그의 삶에 있어서는 가장 힘겹고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는 시점에서 쓰여졌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가 겪은 한 두 번의 시련만으로도 견뎌내지 못했을 텐데, 삶이 그를 끊임없이 속이고 가혹한 형벌을 가할 때마다 그는 좌절하고 절망한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창작욕으로 주옥과도 같은 글들을 밤을 새워가며 써나갔던 것이다. 조금 잔인하긴 하지만 츠바이크의 표현처럼 그의 불행이 우리에겐 행복이었던 셈이다. 발자크의 최후의 비밀을 모른다면 인간 발자크를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우리가 운명이나 운명의 시련이라고 부르는 그 모든 것에 대해서 무서울 정도의 태연함에서 나온 무관심을 보였다. 그의 내부에 있는 어떤 것은 -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그의 존재의 가장 내면적인 본질일 것이다 - 그의 외적인 삶의 온갖 파국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 이 태풍을, 안전한 육지에서 미쳐 날뛰는 바다를 쳐다볼 때와 같은 긴장된 호기심으로 바라만 보았다. (426P) 발자크의 여인들 발자크에게서 문학만큼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를 둘러싼 여인들이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그는 평생토록 자기의 빚을 해결해주고 자기에게 안식을 줄 수 있는 귀족부인들을 쫓아다녔다. 하지만 그 중에서 나이가 그의 어머니뻘 되었던 드 베르니 부인과의 첫사랑이나 쥘마 카로와의 사랑은 후일 소중한 우정으로 변했고, 그 둘은 평생토록 그의 지지자로 그를 감싸주면서 한편으로 그의 작품에 대한 가장 충실한 비평가가 되어 주었다. (특히 쥘마 카로와의 관계는 문학사상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남녀간의 우정으로 기록될 만하다.) 그밖에 잠깐씩 의미 없이 스쳐간 여인들은 여럿이지만 결국 그를 평생 사로잡게 되는 여인은 멀리 우크라이나에 살던 백만장자 한스카 백작부인이었다. 발자크는 생전에 이미 전 유럽에 걸쳐서 필명을 떨쳤던 위대한 작가였는데 처음에 익명으로 러시아에서 프랑스의 발자크에게 팬레터를 띄우면서 시작된 이 관계는 발자크의 열정에 불을 붙였고,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불붙은 사랑은 국경을 넘어서 위험하게 지속된다. 그들은 발자크를 절친한 친구로 믿었던 그녀의 남편을 속여가면서 사랑의 편지를 나누었고 마침내 그녀의 남편이 죽고 나면 결혼할 약속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국경을 넘어선 그들의 사랑이 흔들릴 즈음인 1841년 마침내 그녀의 남편이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고 그녀의 사랑을 온전하게 얻고자 했던 발자크의 꿈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진정으로 발자크를 사랑하기보다는 유명한 작가 발자크와의 편지 교환을 더 좋아하고 영예롭게 여겼던 그녀는 - 용의주도한 그녀는 발자크가 죽은 이후 그녀가 발자크에게 보냈던 편지는 모두 불태워버렸다 - 그와의 결혼을 계속 미루었고, 그 사이 그녀의 허락을 얻고자 추운 우크라이나를 오가던 발자크의 건강은 급속하게 악화되어간다. 결국 끊임없이 창작하는 발자크마저도 그녀와 여행하는 동안에는 단 한 줄도 글을 쓰지 않게 되었고, 마침내 그가 좋아하던 작업복인 수도사 복장도 벗어버리게 된다. 프랑스에 그녀를 위한 저택을 사놓고 온갖 골동품들로 장식해 놓은 채 그녀와 같이 프랑스로 돌아갈 꿈만 꾸던 발자크가 다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병든 후에야 그녀는 마침내 결혼을 승낙하고 남편이 죽은지 9년이나 지난 1850년에야 드디어 발자크는 러시아에서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6개월 후인 1850년 8월 파리에서 위대한 작가 발자크는 숨을 거둔다. 죽기 얼마 전 러시아에서 혹은 프랑스로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와 친구들에게 보낸 병든 발자크의 편지는 생명력이 넘치던 발자크를 기억한다면 차마 볼 수 없는 눈물겨운 기록일 뿐이다. 결혼하고 나서도 발자크의 어머니에게 예의상 하는 단 한 마디의 인사도 편지에 적지 않는 한스카 부인을 위해 어머니에게 끊임없이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는 발자크를 옆에 두고 그녀는 보석상을 돌아다니며 진주목걸이를 산 이야기를 딸에게 보낸 편지에 늘어놓고 있다. 그녀와 평생을 같이 살기 위해 얻은 파리의 집에 발자크는 죽기 위해 들어간 셈이 되었고, 『인간희극』을 마저 완성하려던 작업실에서 결국 그는 한 줄도 더 쓰지 못했다. 한스카 부인이 대필한 것으로 보이는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눈이 완전히 먼 위대한 작가 발자크는 친구에게 단 한 줄의 슬픈 추신만을 그의 필적으로 겨우 엉성하게 쓰고 있다. 나는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다네. (658P) 발자크를 위한 조사(弔詞) 그에게 5년의 삶만 더 주어졌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머릿속으로 이미 『인간희극』의 대부분을 정확하게 구상하고 있었고, 아마도 나머지 50편을 모두 완성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짧은 생애만으로도 그는 이미 위대하고, 지극히 인간답다. 내 생애의 모든 시기에 걸쳐서 나는 언제나 용기가 내 불행보다 더 큰 것을 보았다. (156P) 일생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살다간 위대한 인간보다는 어리석은 삶으로 늘 고통과 시련 속에서 살았으면서도 그 속에서 꺾이지 않는 의지와 쉼 없는 용기로 위대한 작품을 써나간 그를 우리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아니, 뜨거운 가슴 어느 한구석이 언제나 그렇게 한웅큼씩은 무너져 내렸던 그 불완전한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를 생전에 인정하고 존경했던 몇 안 되는 작가였던 위대한 빅토르 위고가 그의 장례식에서 이렇게 조사를 읊는다. 아, 이 강력하고 절대로 지치지 않는 노동자, 이 철학자, 이 사상가, 이 시인, 이 천재는 우리들 사이에서 위대한 사람에게 주어진 운명대로 태풍과 투쟁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 그는 싸움과 증오를 넘어섰습니다. 무덤으로 들어가는 날로 그는 명예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는 앞으로는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가는 저 구름 위, 우리 조국의 별들 사이에서 계속 빛날 것입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 모두 그가 부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실을 앞두고 우리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우리는 이 파국을 감수할 것입니다. 그것이 지닌 냉혹함과 슬픔과 아울러 이 파국을 받아들입시다. 섭리께서는 자기가 하는 일을 알고 계십니다. 한 민족을 가장 큰 비밀에 마주 세우고, 위대한 평등이며 동시에 위대한 자유이기도 한 죽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기회를 주십니다. 고귀한 정신이 장엄하게 다른 삶으로 돌아가면, 오랫동안 대중 위에서 눈에 보이는 천재의 날개로 날아다니던 존재가 갑자기 우리가 볼 수 없는 또 다른 날개를 펼치면, 진지하고 성스러운 생각들이 모든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겠지요. 아닙니다. 이것은 몰랐던 일이 아닙니다! 나는 이것을 다른 고통스런 기회에 벌써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말을 지치지 않고 되풀이할 것입니다. 그것은 밤이 아니라 빛입니다. 그것은 허무가 아니라 영원입니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내 말을 듣고 있는 여러분, 그 말이 맞지 않습니까? 이와 같은 관들은 불멸에 대한 증거입니다.....(666P) 비겁하게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조사(弔詞) 평생을 삶에 대한 끊이지 않는 열정과 문학에 대한 끝없이 솟는 샘물과도 같은 창작욕으로 살아온 그의 생애를 온전히 담은 이 두꺼운 책을 덮고 나면 우리는 그의 죽음 뒤에서 비겁하게 살아남은 과거의 삶 앞에 조사처럼 혹은 다짐처럼 발레리의 유명한 시 <해변의 묘지>의 마지막 구절을 바치게 된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작가 소개 20세기의 3대 전기작가로 일컬어지는 평전 문학의 대가, 슈테판 츠바이크(Stephan Zweig) 188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1935년까지 잘츠부르크에서 살았다. 나치의 탄압을 피해 런던, 미국, 브라질 등지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세계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초상화가로 꼽히는 그는 역사 속에 묻혀 있는 인물들을 골라내서 그들의 생애와 행적을 추적하고 깊이 감추어진 내면 세계와 심리적 갈등까지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럽사를 꿰뚫고 있는 깊이 있고 방대한 지식, 이야기꾼으로서의 탁월한 구성 능력, 섬세하면서도 생동하는 힘을 지닌 그의 문체는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아왔다. 제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우울증에 시달리다 부인과 함께 동반자살했다. 추천도서 19세기 프랑스 작가 발자크의 삶과 문학을 생생하게 그려낸 최후의 걸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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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평전 ⓑ프란츠 파농 ⓒ미테랑 평전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이현상 평전 ⓕ카프카의 편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1. Farewell For Now 2. Passage Into Midnight 3. Morning Rain 4. Never Let Go 5. Gypsy Woman 6. Longing 7. A Day With You 8. A Vision Of You 9. Inocence Lost 10. Last Dance 11. Opal Fire 12. So Fair 13. Sugar Coated Love 14. Unity 15. Waves Of Emo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