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할 이유있네 시 100:1-5 강문호목사
옛날에 사단이 하늘로부터 지구에 내려 왔습니다. 그리고 노르웨이에 사단이 창고를 지었습니다. 그 창고안에는 각종 마귀 씨들을 보관하여 두었습니다. 미움의 씨, 질투의 씨, 슬픔의 씨, 욕심의 씨등 마귀 씨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지구 이 곳 저 곳에 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씨는 누구의 마음에 뿌려도 싹이 잘 났습니다. 그런데 한 동네에서만은 이 씨가 효력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뿌려도 이 마을에서만은 싹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 마을 이름은 <감사의 마을>이었습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감사하고 기뻐하는 마을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겨도 감사하니까 마귀 싹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속담이 노르웨이에서 생겨났습니다. <감사는 마음에는 사단이 씨를 뿌릴 수 없다> 시편 100편의 별명은 <감사의 시>>입니다. 본문에 <나아갈 지어다>(2) <그 문에 들어가며>(4) <그 궁정에 들어가서>(4) 라는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시는 성전에 올라 가면서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궁중에 들어가고 감사하면서 성전에 올라가는 내용입니다. 무엇을 감사하자는 것일까요? 네 가지를 감사하자는 것입니다. 3절이 핵심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3절에 <그>라는 말이 네 번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1. 그가 창조하셨기에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기에 이 자리에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대만 장 개석 총통은 자기 생일이면 수상인데도 불구하고 생일 파티를 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장 총통은 생일면 늘 이렇게 말하면서 금식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물도 마시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내 생일은 내가 이 세상에 온 날이다. 즐거운 날이 아니라 어머니가 날 낳으실 때 최고로 고생한 날이다. 내가 어머니를 최고로 고생시킨 날인 데 어찌 잘 먹고 지낼 수 있겠느냐냐?> 이런 것을 보면 이 세상을 위대하게 살아간 사람들을 보면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말하는 것이 다르고 행동하는 것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르다> 늘 내가 말하기 좋아 하는 언어입니다. 그러나 낳아 주신 어머니에게 이렇게 감사하는 것도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보다 중요한 깊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어머니 태에서 나왔다고 어머니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어머니 태는 10달 동안 빌린 것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요즈음 말하고 자기가 자기 행동을 하는 로버트가 현대에서 개발되었습니다. 나는 울산 로버트 공장을 가본 적이 있습니다. 고도의 기술자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로버트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 로버트가 만들어진 후 세상에 나와서 이렇게 말한다고 합시다. <나는 현대 공장 은혜에 감사합니다. 현대 공장 덕분에 내가 이 땅에 탄생되었습니다> 과학자를 잊어버리고 이렇게 말한다면서 과학자는 <웃긴다. 본질을 모른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어머니는 공장에 불과합니다. 터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창조하셨습니다. 시편 100편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이렇게 감사하면서 감사한 이유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우리를 지으신 분이기에 감사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그의 것이니
2 둘째로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니 감사하여야 한다고 시편 100편 기자는 감사할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감사하자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땅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합하여진 존재입니다. 영과 육이 합하여 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과 육은 다 내 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내 것입니다. 그런데 내 영과 육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몸은 값을 주고 산 것이라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고전6;19-20) 우리의 영혼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에스겔 선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 것이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함같이>(겔18;4) 우리의 절대 주권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에게 속하여 있습니다. 조로증에 걸려서 일찍 늙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동료들과 같이 공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혼자 집에서 가정 교사를 두고 공부하여야 했습니다. 아이가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나는 왜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늙어야 하나요?> 그 때 가정 교사가 말했습니다. <밤하늘에 별들이 있지? 그 중에 너는 일찍 떨어지는 별똥별이야> <선생님! 왜 나만 별똥별이 되어야 하나요?> 그 때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너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란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무엇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제자중에 베드로와 야고보가 감옥에 갇혔는 데 베드로는 천사를 보내어 살리시고 야고보는 순교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누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불로 멸하시고 니느웨 성은 요나를 보내셔서 구원시켜 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누가 무엇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모세는 120세가 되도록 눈이 흐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젊은 나이에 눈이 흐려서 성경을 제대로 쓸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가? 우리는 모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속에 살고 있기에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분의 것을 빌려 쓰고 있는 것이기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만일 100 억원을 10 년 공짜로 빌려 썼다가 갚으라고 하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 몸은 100 억원이 아닙니다. 100 억원 줄 터이니 죽으라고 하면 죽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몸은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3. 그의 백성이니 감사할 이유가 또 있습니다. 시편 100 편 기자는 우리는 그의 백성이기 때문에 감사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개개인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느 나라 백성이냐가 중요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중에 특별히 이북에서 피난온 이들이 미국 이민을 많이 갔습니다.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북한 고향 한번 가고 싶다는 소망이었습니다. 미국 시민권을 가지려고 얼마나 애를 씁니까? 미국은 속지주의입니다. 미국 땅에서 어느 나라 사람이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에게는 미국 시민권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원정 출산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아이 낳을 때그 되면 몰래 미국으로 들어가서 그 곳에서 아이를 낳고 돌아 오는 출산입니다. 지금 한미간에 문제입니다. 어느 나라 백성인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이를 감사하여야 합니다. 마귀가 손못 대게 하나님께서 다스려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마크 트웨인이 책을 썼습니다. 그것은 1800 년대 후반에 쓰여진 책입니다. 그는 오스트리아로 휴가를 갔습니다. 그 것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난 후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이런 글을 썼습니다. <많은 문명이 이 땅에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였다. 잠깐동안 문명은 횃불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사라졌다. 페르시아, 메데, 바벨론이 그 예다. 그들의 고대 문명은 어디로 갔는가? 그런 문명들은 잠시 횃불을 치켜 들었을 뿐이다. 그들은 유대인을 지배하였다. 그리고 세계를 지배하였다. 그리고 우주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우리 곁에서 사라졌으나 유대인들은 아직 여기에 함께 있다> 유대인을 짓밟은 문명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모든 것을 견디어 냈습니다.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짓밟았으나 결코 멸망시키지는 못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언젠가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물었습니다. <유대인의 이 불멸성의 비밀은 무엇인가?> <왜 유대인은 계속 살아 남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졸라 신학의 세이프 학장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트웨인의 질문에 내가 대답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4. 그의 기르시는 양이기에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이기 때문에 우리를 기르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개도 누가 기르느냐에 따라서 행복감이 다릅니다. 나는 파리에서 개 레스토랑을 가본 적이 있습니다. 옷도 잘 입혔습니다. 양장점에 가서 맞춤복으로 입혔습니다. 개 레스토랑에 가면 메뉴가 나옵니다. 그리고 털을 더럽히지 말라고 턱받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개 식성에 따라서 먹입니다. 의자에 편안히 앉고 주인이 옆에서 먹입니다. 가난한 집 아들보다 낫습니다. <개 팔자 상팔자구나>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누가 기르느냐에 따라 얼마나 신분이 달라집니까? 대통령이 양아들로 기른다면 거지가 양아들로 기르는 것보다 더 큰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입니다. 하나님이 길러주신다는 말씀은 완전하게 복되게 길러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동물에는 세 가지 종류의 동물이 있습니다. 싸워서 이겨서 약한 동물을 잡아 먹는 강한 동물입니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동물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노력하고 먹고 사는 동물이 있습니다. 소같은 동물입니다. 열심히 풀을 뜯어 먹으면서 삽니다. 다른 동물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양같은 동물도 있습니다. 양은 남을 잡아 먹지도 않습니다. 자기 노력을 풀을 뜯어 먹을 수도 없습니다. 양의 시력은 2-3 m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풀을 찾아 갈 수 없습니다. 목자가 풀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그렇기에 양은 목자가 없으면 굶어 죽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이시고 우리는 그의 양입니다. 그렇기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길러 주시고 보호하여 주셔야 제일 안전합니다. 남편도 아내도 하나님만큼 안전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받지 않고 다른 여자가 받더니 말했습니다. <저는 파출부입니다> 주인 아주머니 좀 바꿔달라고 말했더니 파출부가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남편 분하고 침실로 드셨는데요? 들어오지 말라고 했는데 누구시죠?> <헥! 남편이라고 했습니까?><예, 야근하고 오셨다던데...> <이백, 아니 오백, 드릴 테니 좀 도와주세요. 부탁입니다. 몽둥이 하나 들고, 몰래 침실에 가서 남편 뒤통수를 사정없이 내리쳐서 기절시키세요. 만약에 마누라가 발악하면 마누라도 같이 때려 눕히세요. 뒷 일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부탁입니다> 파출부는 잠시 망설이더니 한번 해보겠다고 하였습니다. 전화도 그냥 내려 놓았습니다 전화를 통하여 으악 윽 아이구 소리가 요란하였습니다. 잠시 후 파출부가 다시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시키는대로 했어요, 둘 다 기절했는데... 이젠 어떻게 하죠?> <잘했습니다. 두 사람을 묶어두세요. 거실 오른쪽 구석에 다용도실이 보이죠? 그 안에 끈이 있으니 가져오세요> 파출부는 한참 찾았습니다. 다시 전화기를 들고 말했습니다. <이 집엔 다용도실... 없는데요?> 남편이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습니다. <거기 532-37XX 아닌가요?> 파출부 대답은 <아닌데요>였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우리는 그의 양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좋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확실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4) 감사하는 자가 그 문으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서론 이야기로 결론을 내립니다. <감사는 마음에는 사단이 씨를 뿌릴 수 없다> 마지막으로 주석가 매튜 헨리 목사님 이야기로 마치려고 합니다. 헨리 목사님이 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 가던 중에 강도를 만났습니다. 매도 맞고 돈도 다 빼앗기고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세 가지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첫째는 맞았으나 죽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감사합니다. 셋째는 돈은 잃었으나 믿음과 영생을 잃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
감옥에서의 감사 구약, 시편 67:1-7 박병욱목사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셀라) 2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3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4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 (셀라) 5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6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7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신약, 골로새서 3:12-17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화룡점정(畵龍點睛) 중국의 남북조 때 남조의 양나라에 장승요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우군장군과 오흥태수라는 높은 관직에 올라서 관인으로서도 출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이 높아진 것은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가 유명해 진 것은 그의 그림 솜씨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붓을 들기만 하면, 온갖 것을 살아 있는 듯 묘하게 그려내었습니다. 그는 중국의 전설적인 대화가였습니다. 어느 날 장승요는 용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고, 벽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검은 먹구름을 뚫고 금방 하늘로 치솟아 올라 가려는 두 마리의 용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그 비늘 하나 하나에도 날카로운 발톱에도 강한 생명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감탄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만 이상한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용의 눈동자가 그려져 있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오직 눈만 퀭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따지기 잘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가만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장승요가 귀찮으리만치 질문을 받은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럴 때면 장승요는 한결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아냐, 눈동자는 그릴 수 없는 거야. 그걸 그려 넣으면 용은 벽을 박차고 하늘로 올라가 버릴 테니까.” 사람들은 ‘거짓말이지. 그럴 리가 있을 것 같은가? 괜히 잘 그린다니까 건방지게 저런 소리를 하는 거겠지’ 하면서 수군거리고 그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눈동자를 그려 넣어 보라고 조르기도 했습니다. 조르는 청을 거절하지 못한 장승요는 드디어 쌍용의 한 마리에 눈동자를 그려 넣기로 했습니다. 그가 붓에 먹을 찍어 용의 눈에 살짝 댔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벽 속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 소리가 진동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비늘을 번쩍이며 용이 벽에서 뛰어나왔습니다. 용은 사람들이 놀라는 사이에 멀리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다시 벽을 바라보니 쌍용의 한 마리는 이미 없고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은 용만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일로 해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란 말이 생겼습니다. 화룡점정이라 하면 어떤 일의 가장 요긴한 곳을 뜻하고, 또한 최후의 마름질을 하는 일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또 ‘화룡점정을 결한다’고 하면 전체로서는 잘 되어 있으나,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다는 의미가 됩니다. 장승요의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고 완성하는 것이 눈동자를 그리는 일이라고 하면, 우리 신앙에서는 이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신앙을 신앙되게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에 생명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앙을 완성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신앙의 마지막은 감사입니다. 신앙은 감사에서 완성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울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말하고 나서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덕목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용납과 용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덕목들의 완성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히 매는 띠니라”(골3:14). 우리가 옷을 입고 허리 띠를 띠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우스운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까? 더구나 과거 성경시대의 옷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당신의 옷은 긴 천을 몸에 두르는 형태의 옷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허리 띠로 몸을 묶지 않으면 옷은 입으나 마나 한 것이 됩니다. 허리 띠를 띠는 것이 옷을 입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사랑이 인간적인 덕목의 완성입니다. 사도 바울은 곧 이어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강조합니다. 사람을 향한 덕목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완성은 감사로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감사는 무엇이며 감사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감사는 부르심에 대한 응답 먼저 감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격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감사하라는 말은 은혜를 은혜로서 제대로 깨달으라는 말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에게서 우리에게 오는 것이고, 감사는 그 응답으로 우리에게서 하나님을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중에서 가장 소중한 은혜는 우리를 부르신 은혜입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에서 바울은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감사의 가장 큰 조건입니다. 모든 것이 다른 각각의 사람들이, 각각 다른 가정들이, 한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한 백성이 되고, 믿음 안에서 한 형제 자매가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감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은 우리 존재를 용납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먼저 불러주신 것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부르셔서 원수 되었던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렀다는 것은 구원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감사는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찬양 둘째로 감사는 찬양으로 나타납니다. 본문 16절은 참으로 아름다운 시입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마음 속에 감사가 있으면 그 입술에는 찬양이 나옵니다. 찬양은 감사의 표현입니다. 감사하는 방법이 찬양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옥에 갇혔지만 진심으로 찬양했습니다. 그들이 찬양하자 지진이 나고 감옥이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결박이 풀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지진 사건은 이 보다 더 큰 기적을 낳았습니다. 땅이 흔들리는 기적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감옥의 간수가 회개하고 온 가정이 예수를 믿는 기적이 있어났습니다. 감사는 찬양을 낳고 찬양은 기적을 낳습니다. 바울은 고난의 가운데서 찬양했습니다. 참된 감사는 찬양으로 하는 감사입니다.
주 예수를 힘입어 감사 셋째로 감사는 주 예수님을 힘입어 하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은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하십니다. 주 예수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우리의 감사의 이유는 예수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감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감사의 대상과 목표는 하나님이시고, 감사의 이유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보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 알면 감사는 저절로 나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를 바라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예수님의 모든 고통이 우리를 위한 것임을 알기만 하면 감사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만 하면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양할 때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고, 기도할 때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4장 2절은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고 말씀하십니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께 나갈 때도 감사를 가지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고난 중에도 감사 넷째 감사는 어떤 환경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돈은 잘 계산합니다. 부족한 것도 잘 셉니다. 그런데 받은 복을 셀 줄은 잘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의 무능은 바로 감사할 조건들을 계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느 성문 곁에 지혜로운 노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한 청년이 와서 묻습니다. “할아버지! 이곳 살기 좋습니까? 한번 정착해 볼까 해서 와 봤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묻습니다. “자네! 전에 살던 곳은 살기 괜찮았는가?” “네. 괜찮았습니다.” 그 말을 듣고 노인이 말합니다. “이곳도 살기 괜찮은 곳이네.” 얼마 후에 다른 청년이 와서 묻습니다. “할아버지! 이곳 살기 좋습니까?” 노인이 역시 묻습니다. “자네가 전에 살던 곳은 어땠는가? 살기가 괜찮았는가?” “아주 지옥 같은 곳이었죠.” 그 말을 듣고 노인이 말합니다. “이곳도 아주 지옥 같은 곳이네.” 이 노인은 자기가 사는 같은 성을 왜 다르게 말했습니까? 천국과 지옥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으로 갈라집니다. 같은 환경을 어떤 사람은 천국으로 느끼고 어떤 사람은 지옥으로 느낍니다. 같은 환경 속에서 함께 살면서도 어떤 사람은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불행합니다. 행복은 환경이 결정하지 않고 감사하는 태도가 결정합니다. 감사할 일과 불평할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같은 환경도 감사의 눈으로 바라보면 감사할 일이 넘치고, 불평의 눈으로 바라보면 불평할 일이 넘치는 것입니다. 감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고난 중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유교 윤리에서 자식이 부모 앞에서 우울하면 안됩니다. 부모 앞에서 슬픈 표정을 짓는 것 자체가 불효입니다. 부모님 앞에서 기뻐해야 부모의 마음도 기쁩니다. 부모님의 집에서 기뻐하는 것이 권리이기도 하지만 의무이기도 한 것입니다. 골로새서는 옥중서신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 속에서 여러 교회 교인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 안에서도 바울 빠짐없이 감사의 내용을 적고 있습니다. 감옥에서 쓴 편지인데도 짜증과 불만이 아니라, 여유가 있습니다. ‘기쁨의 서신’이라고 별명이 붙은 빌립보서도 역시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하지만 얼마나 기쁨이 충만한 편지인지 모릅니다. 그 이유는 감사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감사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다 잃은 다음에도 찬양했습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서 이방인의 땅에 가서 살면서도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마음 속에 감사가 있었기에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정치적으로 성공을 거두어서 왕의 총애를 받을 때, 사람들은 그를 시기하여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삼십일 동안 왕 이외의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는 사람은 사자 굴에 던져 넣는 내용이 적힌 왕의 조서를 내리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이때도 감사합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다니엘이 구원을 받고 나서야 감사한 것이 아니고, 이 감사로 기도하는 일 때문에 원수의 올무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 올 줄 알면서도 감사한 것입니다. 좋은 결과에 감사한 것이 아니고, 고난을 앞두고, 고난을 자처하면서 감사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 건져냄을 받았습니다. 감사 기도 때문에 고난이 왔지만 하나님께서 고난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고난 중의 감사를 생각하면 한국의 성자 손양원 목사님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1902년 경상남도 함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중학교를 마치고 1934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부산 감만동에서 나환자들에게 전도를 하고 나환자 교회를 세 곳이나 설립하였습니다. 1938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이후 줄곧 나병환자촌인 애향원을 찾아와 나병환자들과 고락을 함께 하였습니다. 그는 신사참배 거부로 6년간 옥중생활을 하고 해방된 이후 풀려 났습니다. 그리고 3년 뒤인 1948년 10월21일 공산당에 의해서 두 아들 동인, 동신이를 잃게 됩니다. 두 아들을 잃고 손목사님은 “감사할 아홉 가지 이유” 로 기도를 했습니다. 1. 나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이 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2. 허다한 많은 성도중에서 어찌 이런 보배를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주께 감사합니다. 3. 삼남삼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감사드립니다. 4. 또한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든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리요. 감사합니다. 5. 예수 믿다가 와석종신하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든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감사합니다. 6. 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7. 나의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하는 마음 주신 하나님께 ... 감사합니다. 8. 내 두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 감사합니다. 9. 이같은 역경 속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신애를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을 주신 우리 ...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 감사 합니다. 그리고 손목사님도 2년 뒤인 1950년 9월 28일에 북한군에 의해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우리 신앙의 조상들은 고난을 앞두고도 감사하고, 고난을 불러오는 감사도 했고, 고난 중에도 감사하고, 고난으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을 감사했습니다. 그리스도를 힘입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가난 중에도 감사 다섯째 고난 중에서도 특별히 가난 중에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남자만 5천명인 많은 군중, 여자와 어린이를 합하여 대략 2만명이나 되는 군중을 놓고서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빌립은 말합니다. “각 사람에게 조금씩만 주어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할텐데, 한 아이가 가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놓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남은 음식이 열 두 광주리가 되었습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말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하박국은 모든 것이 부패한 세상에서 살면서도 그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가 터져나왔습니다. 그는 세상의 악에 대해서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 불평과 불만을 털어 놓기도 했습니다. 절망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감사 속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감사할 때 믿음이 완성되고, 구원이 완성됩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구원의 완성입니다. 아무리 악한 세상 한복판에 살고 있어도 감사하는 사람은 구원을 이룬 사람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범사에,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복을 내려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는 신앙의 모든 덕목의 종결입니다. 모든 덕목의 완성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다가 한 시골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때 나병환자 10명이 멀리서서 소리쳤습니다. “예수 선생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그때 그 나병환자들에게 믿음이 일어났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가는 길에 그들의 병이 깨끗해졌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믿음이요 구원이었습니다. 그들은 나병이 깨끗이 낫게 되자 아홉 사람은 각기 제 갈길로 가버리고 사마리아 사람 단 한 사람만이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예수님께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는 그 감사하러 온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눅17:11-19). 이 나병환자는 이미 병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감사가 그의 구원을 확증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믿음의 완성이요 구원의 완성입니다. 감사함으로 구원이 완성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찰 때 우리 인생은 완전히 치료받고 구원받은 인생이 됩니다. 감사는 완숙한 신앙의 열매입니다. 감사는 완숙한 신앙의 마지막 완성입니다. 존 밀러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톨스토이는 감사하는 사람은 젊어진다고 했습니다. 마틴루터는 마귀의 세계에서만 감사가 없다고 했습니다.
은혜와 감사 여섯째 감사는 할수록 커집니다. 감사는 할수록 커집니다. 불평도 할수록 커집니다. 그런데 감사는 은혜를 크게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5). 은혜가 어떻게 더하고 넘칠 수 있었습니까? ‘감사함으로’ 넘쳤습니다. 제가 유학 생활 중에서 대다수의 유학생들이 그렇듯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가 않았습니다. 돈을 벌 시간은 없어도 생활을 위해서 지출할 일은 똑같고 더구나 공부를 위한 지출은 더 많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외식을 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제 큰 아이의 생일날 저녁에 중국집을 갔습니다. 불과 몇가지 안되는 음식을 시켜서 먹으려고 하는데, 아직 어린 제 아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아주 정중하게 저에게 인사합니다. 그리고는 감동섞인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습이 저에게는 참으로 흐뭇했습니다. 저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별 것 아닌 음식에도 저토록 감격해 하다니, 내가 다른 생활비를 줄여서라도 좀 더 자주 외식을 해야겠다’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 제 아이가 불평을 하면서 ‘애개개, 내 생일인데 겨우 중국집이야? 내 친구 아무개는 특급 호텔에서 생일 잔치를 했데’ 하고 말한다면, 제 마음이 어떻했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이와 같을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감사합니다’ 하는 기도가 많습니까? 아니면 부족한 것의 목록을 하나님께 불러주는 기도입니까? 마치 불평의 리스트를 읊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세금 독촉장처럼, 빚 독촉장처럼 하나님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은혜의 결과는 감사이고, 감사는 은혜를 풍성하게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은혜를 풍성하게 누릴 수 있게 해 줍니다. 우리는 어떻게 감사할 것입니까? 모든 것이 끝이 있습니다. 감사하고 싶어도 못할 때가 올 것입니다. 드리고 싶어도 드릴 것이 없을 때가 올것입니다. 몸이 아프고 죽을 때가 되어서 “하나님 내 몸을 산 제물로 드립니다” 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아마 “예야, 나는 산 제물을 원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원한다. 그런데 너는 반쯤 죽은 네 몸을 받으라는 말이냐?” 그렇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그래도 지금이 드릴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더 많이 찬양하고, 더 많이 헌신하고, 더 많이 섬겨야 할 것입니다. 조금이라고 건강할 때, 건강을 다해서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 힘을 다해서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을 때, 지식을 다해서 조금이라도 재력이 있을 때, 드릴 수 있는 재물을 다해서 복음을 위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더 드리기 위해 애쓰고 힘쓰는 삶이 감사하는 신앙인의 삶입니다. 저와 여러분, 이 설교를 듣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로 신앙을 완성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다윗의 감사 시편 21:1~7 피종진목사
시편에 나오는 다윗의 시를 보면 거의 기도와 감사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런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생애에 특이한 것은 그가 늘 하나님께 감사의 시를 읊고 감사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린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감사가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마음속에 불안과 공포, 원망과 불평 이런 것들이 잡초처럼 우거져가는 세상에 살다가 보니까 자신도 모르게 감사한 일은 기억치도 아니하고 어렵고 힘들었던 일, 억울하고 원통했던 이런 것들이 화산처럼 폭발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변신되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은 무엇에 대해서 감사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감사할 조건들이 수없이 많이 있지만 다윗은 첫째, 주의 구원을 인하여 감사했습니다.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며 주의 구원을 인하여 크게 즐거워하리이다”(시 21:1)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께 가장 감사해야 할 일 중에 하나는 주의 구원을 인하여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①죄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사실 다윗은 죄 중에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다 모태에서서부터 죄의 유전을 이어 나왔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인간의 노력이나 수양, 공로,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 구원받는 길은 없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 누구도 구원받을 자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죄에서 구원해주실 수 있습니다. 미국 교회들을 보면 예배 드리기 전에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해주시옵소서” 이렇게 고백을 하고 예배 드리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 짧은 순간인데도 여기에서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②질병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해서 보게 하시고, 문둥병자를 고쳐주시고, 벙어리의 입을 열어 말하게 하시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려서 듣게 하시고, 각색 병든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라고 말씀했습니다. ③흉악한 사탄의 결박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고 오셨습니다(요일 3:8).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했지만 그들은 말씀 앞에 거꾸러졌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더러운 귀신에게 명할 때 물러갔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6~18절에 보면 바울이 빌립보성에서 전도할 때에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가 소리를 지르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방해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귀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했을 때 귀신이 즉시 나갔습니다. 모든 악의 영들을 멸하시는 주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10:38에 보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에게는 이와 같은 권세가 나타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④멸망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외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3:16에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다윗은 이와 같이 주의 구원을 인하여 감사했습니다. 둘째, 기도의 응답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그 마음의 소원을 주셨으며, 그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셨나이다”(시 21:2) 다윗은 자기의 부르짖음에 응답해주신 일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응답받을 때마다 당연히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알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응답에 대해 감사할 줄 알 때 더 큰 응답이 있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무엇을 응답받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에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때 주님께서 그것을 인정해주시고 역사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소원이 있을 때 입술로 구하게 됩니다. 시편 81:10에 보면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입을 넓게 열어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귀한 선물 중에 하나는 구하면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8) 구하는 자가 얻게 되고, 찾는 자가 찾게 되며,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는 것입니다. 또한 구하되 믿음으로 구해야 됩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빌립보서 4;6에도 보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느 농촌에 농사철인데도 계속해서 비가 안오니까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비 오기를 위해서 기도했듯이 온 성도들이 비 오기를 위해서 산에 올라가서 기도회를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어떤 주일학생이 집에 있는 아버지 우산, 어머니 우산, 형 우산, 자기 우산, 동생 우산 등 우산을 한 보따리 들고 올라갔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야, 구름 한점 없는 날에 우산을 왜 가져오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아이가 오히려 당황했습니다. “아버지, 지금 비 오기 위해서 기도하러 간다고 하셨는데, 그럼 비가 오면 어떻게 해요? 비가 오면 우산을 써야 되잖아요?” 이런 아이같은 믿음이 있음으로 하나님의 기적이 있는 것입니다. 비 오기를 위해서 기도하러 가는데도 아무 준비도 없이 가는 것과 비가 올 줄 믿고 우산을 가족수대로 준비해 가지고 온 아이를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 누구 때문에 응답을 주시겠습니까? 믿음의 아이로 인해서 응답이 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려움이 비록 있어도 좋은 일로 바꾸어주실 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이 베푸신 복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시 21:3) 모든 복은 주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다 주의 것입니다(롬 11:3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복은 아름다운 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베푸신 복은 영원한 복입니다. “저로 영영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시 21:6) 우리가 사용하는 그릇 중에 일회용이 있습니다. 일회용 그릇은 아무리 좋아도 한 번 사용하면 버려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영원한 복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영원하듯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도 영원한 복인 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복 중에 가장 큰 복은 천국을 소유한 복입니다. 넷째, 장수의 복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저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주셨으니, 곧 영영한 장수로소이다”(시 21:4) 다윗은 죽음의 위기에서 그의 생명을 건져주시고 연장해서 장수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어제 비록 부유하게 살다가 죽은 사람보다 오늘 비록 고생을 하면서 가난하게 살아도 삶을 연장 받고 있다는 이 자체가 얼마나 축복입니까? 이왕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장수의 복을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크게 쓰임 받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감사했고, 기도의 응답과 하나님이 베푸신 아름다운 복과 장수의 복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다윗의 감사를 본받아 주의 구원을 인하여 감사하고, 항상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 더욱 감사할 일이 넘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름다운 복을 받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성경말씀 출 23:14-19 김 조목사
하나님은 감사와 찬양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시43:21) 감사절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은혜 깨닫고 감사하는 성도님들 심령과 가정과 사업 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더하시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킬 3대 절기를 말씀하셨습니다. 유월절은 애굽 땅 종살이에서 해방시켜주신 하나님의 은혜 잊지 않게 하시려고 누룩 넣지 않고 만든 떡 만들어 먹으며 지키라, 수장절은 년 중에 곡식을 거두어 저장하는 것으로 년 중 먹이시는 하나님 은혜 깨달으라 하는 것이요,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첫 열매(보리)거둠을 감사하는 절기로 광야 40년간 만나 주셔서 살려주신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토지소산도 주셨으니 첫 번째 곡식 주심을 감사하게 하는 절기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를 따라 7월에 하곡 중 보리, 밀 거둠을 감사하고 11월에 수장절인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을 전통으로 해왔습니다. 이때가 되면 다양한 행사와 함께 의미 있게 지켰습니다. 그러나 농촌 사회에서 도시 산업화로 변해지면서 그 의미를 상실해 버려 추수감사절을 나름대로 지켜 가는데 맥추감사절이란 우리나라에 쌀도 소비량이 줄어들고 보리는 남부지방에 극히 일부에서 농사하며 기호식품으로 변해진 요즈음에 이 절기가 구시대의 산물처럼 느껴져 헌금이나 한 번하고 지나가는 절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켜라 하신 의미를 바르게 인식하면 꼭 지켜야 할 절기이기에 그 뜻을 바로 깨닫기 원하며 “맥추절을 지켜라”고 제목하고 말씀 드리려 합니다. 1. 맥추절 왜 지켜야 하는지 이유를 살펴봅니다. 첫째,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실 때에 시대가 달라졌으니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꼭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절기를 지켜라 명령하신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 이루어진 것 잊지 말고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열을 주시고 하나는 내 것이니 십일조 드려라 하심이 하나님의 은혜와 경외하심을 갖고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하나님이 주신 만나 먹고 살다가 농사 지어 첫 열매 거둠에 참으로 기뻤을 것입니다. 만나 주심도 하나님의 은혜요, 토지소산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고 하나님 섬기는 백성 되기 위해 잊지 말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현실 문제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기에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맥추감사절 지켜야함을 가르쳐야 합니다. “4월 보리고개”라는 말을 아시는지요?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먹을 식량이 부족하여 보리심어 익기도 전에 그 이삭을 잘라 죽을 끓여 먹으며 고비를 넘겼던 때를 가르키는 말입니다. 지금 풍요롭게 되어 그 때를 잊어버리고 흥청망청하는 오늘의 시대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은혜 깨닫는 절기로 지켜야 합니다. 덴마크가 GNP가 3만 8천불임에도 검은 호밀 빵 한 조각 먹고 식사를 합니다. 이는 건국 조상들이 모래벌판에 호밀 밖에 되지 아니하여 그것 먹으며 나라 세웠음을 기억하고 근검절약하고 하나님의 은혜 감사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니 억지로라도 지켜야 할 것이 하나님의 은혜 잊지 말고 하나님만 섬기기 위함인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백성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깨닫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심이니(살전5:18) 하나님이 복 주시는 것입니다. 지난 날 하나님의 은혜 지금도 주십니다. 늘 깨닫고 감사절 잘 지켜 더 큰 복 누리는 성도되시기 원합니다. 2. 맥추절의 현대적 의미를 잘 찾아봅니다. 맥추절은 처음 익은 곡식 드리기에 초실절 이라고도 하고 처음부터 칠 주간 되는 절기라 칠칠절이라고도 하고 50일째 지킨다 하여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10일 후에 오순절 때 성령이 강림하심으로(행2:) 현대교회가 세워졌고 세계 복음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맥추감사절에 성령으로 충만하여 교회도 부흥되고 가정도 복 되고 아름다운 역사 이루는 절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 오늘의 의미입니다. 또 신앙에도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광야 40년 수고 없이 하나님이 주신 것 받아 먹기만 했으나 16절에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첫 열매를 거둠”이라고 하셨으니 가만히 얻어만 먹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땀 흘려 수고하여 얻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이제 우리 최선 다해 하나님의 영광 돌리는 신앙의 성장이 있어야 할 절기입니다. 새벽기도, 십일조, 주일 성수가 끌려 다닐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자원할 줄 아는 신앙의 성장의 절기인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시고 신앙의 성장을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맥추감사절을 지킴으로 더욱 새롭게 되어 더 큰 복을 받는 성도되시기 바랍니다. 3.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19절) 18절은 유월절을 지키는 방법이라면 19절에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는 제일 좋은 것으로 으뜸 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모든 수확률의 대표적인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최선 다해 섬기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신6:5) 하신 말씀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16:9-10에 “네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려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분량과 내 형편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다해 기쁨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아프리카 선교사가 나에게 4개 교회를 순회하며 예배 인도하는데 백 명 정도 예배 드려도 헌금이 천원이 잘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3-4십리를 농산물을 머리에 이고 목사님 댁을 찾아와서 드릴 때 선교에 보람을 느끼고 감격하는 말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것도 그 정성이 들어있는 것으로 섬김의 마음을 받으시기 원함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잊지 않고 최선 다해 감사하는 성도되시기 원합니다. 말씀 마치겠습니다. 맥추감사절이 지나간 시대에 산물이 아니라 우리에게 오늘의 풍요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 잊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섬겨야하는 명령을 지키는 절기요, 복 주시기를 즐겨하시는 하나님의 뜻있는 맥추감사절에 어려웠던 때 기억하고 늘 감사하며 현대 교회를 세우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사 신앙의 성장을 이루시기 위한 절기임을 깨닫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자원하여 맥추감사절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더욱 크신 은혜와 사랑 받는 성도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출23:14)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출23:15)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대로 아빕 월의 정한 때에 칠 일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출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출23:17)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산본성광교회 박기완목사 맥추감사절은 세계의 모든 교회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맥추절을 지키라!"(출23:16)고 직접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맥추감사절은 무슨 절기입니까?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그들은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농사할 수 없는 거친 사막에서 하늘의 양식인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또 물이 없을 때 반석에서 생수를 내어 마시게 하셨고,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많은 전쟁에서도 승리하게 하셨으며, 천박한 그들에게 십계명과 율법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처음으로 농사를 지어... 첫 보리를 수확하게 되었고 그것을 하나님께 요제로 드렸습니다. 그 날로부터 오십 일 후면 대(大) 추수기가 다가오는데 그 때는 보리나, 밀, 무화과나무, 감람 열매 등을 수확하게 됩니다. 이 대(大) 추수기를 기념하는 절기가 바로 맥추감사절인 것입니다. 맥추감사절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의 마음과 정성을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옛날에 우리나라도 모든 사람들이 다 한결같이 농사만 짓고 사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서 산업이 발달하고 공업이 발달하고... 여러 가지 전자 산업이 발달하고... 또 새로운 신기술들이 계속 발전해 나감으로써... 이제는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 다양한 직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직업의 종류만 해도 수백 수천 가지가 넘게...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그 당시의 사람들처럼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해도... 삶을 살아가는 것이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것은 다 똑같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나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나... 아니면 다른 생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나... 모두가... 다 농부가 농사를 짓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는 일이 다르고 생업이 달라도... 하나님께서 맥추감사절을 명하신 것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의 마음과 정성을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절기를 지키라고 하시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반드시 신앙적인 의미와 교육적인 가르침이 있습니다. 시대가 변해가지만 그런 중에서도... 절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져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절기를 지키라고 명하신 이유는, 우리들이 절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라고 하시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에도 그렇게 해야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절기를 지킬 때 마다... 우리는 잊고 살았던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감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람들은 의롭지가 않아서 절기를 정해 놓지 않으면, 그만 은혜를 잊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그렇게 선하지가 못합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크고 귀한 은혜라고 할지라도 그 은혜를 오래오래 기억하지 못하고 쉽게 잊어 버리고 맙니다. 그 정도로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들을 너무 잘 아시기 때문에... 절기를 정해 놓으시고 그 절기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기억하고 잊지 않게 하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이 명하신 절기를 지키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더욱 풍성한 복을 내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넘치는 은혜와 풍성한 복을 받으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절기를 지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감사'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유카리스데오'라는 말인데, 이 단어는 '은혜'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는 고백으로... 신앙의 아름다운 열매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와 복을 주셨는데도 그 은혜와 축복을 모르면... 감사를 모르게 되고... 감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깨닫게 될 때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아 알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과 복 주심에 대해서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는 마치 햇빛과도 같습니다. 햇빛은 어두움을 정복하고... 사물을 따뜻하고 뜨겁게 해 줍니다. 햇빛은 모든 생명체에 생명을 주고 성장하게 만듭니다. 또한 어두운 밤이 지나고 햇빛이 비칠 때... 사람들은 잠자리에서 깨어나 일을 하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할 때... 우리의 감사는 햇빛과 같이 우리의 어두움이 정복되고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으며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감사는 단비와도 같습니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게 되면, 만물이 소생하게 되고 더러운 것들이 다 씻겨 나가는 것처럼.. 감사하게 되면 우리의 심령이 새로워 지고 깨끗해 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감사는 시원한 바람과도 같습니다. 영적 침체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께 더 감사해 보세요. 모든 억눌린 것들이 물러가고 새롭게 변화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심은 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감사를 많이 심으면 심을수록... 감사할 일들이 더 많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범사에 감사함으로... 삶에 활력을 얻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때 마다 그것이 자라서 줄기가 생기고 잎이 나고 꽃이 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으며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갈6:7-8).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 맥추감사절을 어떻게 지키라고 하셨습니까?(신16:9-17). 오늘 본문 17절에 보면, "모든 남자는..." 그랬습니다. 성경에서는 언제나 남자를 부르게 되면... 그 남자 속에 여자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부르면 아내도 포함되고 그 가정의 자녀들도 다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모든 남자'라는 말씀은 모든 가정,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맥추절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신명기 16:14절 말씀에도 보면,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그랬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한 사람도 빼놓지 말고.. 절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옛날에는 남자만 숫자를 헤어리고 여자는 숫자에도 치지 않았습니다. 어린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노비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자들고 자녀들... 그리고 노비들까지도 다 절기를 지키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숫자에도 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일일이 다 명시한 것을 보면... 맥추감사 절기는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두 다... 전체가 드려야 되는 그런 절기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과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까지 다 지키라고 명령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총동원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린 아이로부터 성도 개 개인... 가정 '전체'가 드리는 그런 감사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맥추감사절을 맞아... 가정 전체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가족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또 어떻게 지켜야 합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지키라"고 말씀했습니다. 절기를 지킬 때에 기쁨으로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감사예물을 드릴 때에 마지못해 억지로 한다든지 의무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주신 축복을 깨닫게 되면...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떻게 지켜야 합니까? "힘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가지고 있는 역량을 다하여... 힘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힘이 있는 대도 안 드리거나... 힘대로 드려도 억지로 드리게 되면 예물답지 못하니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신대로... 힘대로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형편에 따라서 하되 힘대로 최선을 다해서 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해야 됩니까?... 빈 손으로... 공수로 내게 보이지 말라 그랬습니다(출23:15, 신16:16-17). 옛날에는 임금 앞에 나아갈 때, 가장 귀한 예물을 가지고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물며 만왕의 왕이 되신 하나님께 나오는 자가 절대 빈손으로 와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물질로서 감사를 표현하게 되는데... 물질을 드려 감사하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라고 인정하는 자세... 그런 믿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마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먼저 마음에서 우러나야 합니다. 감사의 동기, 감사의 출발은 마음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없는 감사는 형식적인 것이고 거짓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 마지못하여 억지로 하는 감사가 아니라 즐거움이 동반된 감사... 마음속에서 진실함이 우러나오는 감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7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기쁨으로... 마음과 정성이 담긴 예물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감사할 조건들이 자꾸만 생기도록 은혜와 복을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맥추절을 다른 말로 초실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이는 처음 열매를 드리는 절기이기 때문에 초실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신16:19). 잠언 3:9-10절 말씀에 보면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를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포도즙이 넘치리라" 그랬습니다. 출애굽기 13:2절, 레위기 27:26절 말씀에도 보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그랬습니다. 출애굽기 23:19절, 신명기 16:19절 말씀에서는 "너희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10:36절 말씀에는 "처음 난 것을 율법에 기록한 대로 우리 하나님 전으로 가져다가 하나님의 전을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주어 먹게 하라" 그랬고, 출애굽기 34:20절에 보면 "만일 그렇게 못하겠거든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라고 말씀했습니다. 첫 열매를 드리라는 것은... 가장 먼저 수확한 것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제일 크고 실하고 좋은 것을 골라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을 가장 존귀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려고 정해주시는 절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하게... 절기를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난하고 없어서 우리에게 무얼 바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금도 내 것이요 은도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학2:8).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내게 있다고 했습니다(잠8:18). 하나님은 여름도 이루시고 겨울도 이루시는 분이시요, 낮도 주의 것이며 밤도 주의 것이라고 했습니다(시74:16).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 뭐가 부족해서 바치라고 하시겠습니까?... 이는 우리의 정성과 마음을 보시고 더욱 넘치는 복을 내려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사무엘상 2:30절 말씀에 보면,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부자요, 축복 받은 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를 드리되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감사... 최선을 다하는 감사... 기쁨으로 드리는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하다 못해 덜 익은 과일은 맛이 없는 법입니다. 음식도 숙성이 되고 완숙이 되어야 맛이 있습니다. 덜 익으면 맛이 떫고... 당도가 약하고... 상품적인 가치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장 잘 익었을 때... 가장 성숙하고 숙성이 되었을 때... 가장 값어치가 나갈 때... 그때 먹어야 영양가도 있고 최고의 맛을 내게 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함은 그 사람의 신앙의 성숙을 말하는 것이요, 그 사람의 신앙이 잘 익었음을 말해 줍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축복의 통로가 되고 복의 근원으로 쓰임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덜 익은 것이나... 쭉정이 같은 것을 드려서는 안됩니다. 가장 잘 익은 것,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을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할 것입니다. 감사는 축복 받는 연습이요, 불평은 망하는 연습입니다. 감사가 넘치면 은혜와 복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돈 지갑에서 돈들이 만나는 날이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배추 잎사귀의 색깔을 한 만원 짜리 한 장이 지갑 안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들어왔습니다. 그동안 무료하게 시간만 보내던 천원짜리들이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만원짜리 형님 오래간만입니다" "아, 천원 아우들 오랜만이오. 나는 요즘 참 바쁩니다. 아줌마 따라서 찜질방도 가고 노래방도 가고 백화점에도 가고... 때로는 노름방에도 가고, 아저씨 따라서 사우나도 가고 여행도 가고 아이들 따라서 책방, 문방구, 오락실도 가고.... 안 가는데 없이 바쁘게 지낸다네... 그래서 자네 천원짜리 아우들과 만나는 기회가 별로 없다네. 그런데 천원 아우들, 어째서 바쁜 세상에 이렇게 한가하게 세월을 보내고 있는가?" 하고 말합니다. 그때 천원짜리 아우가 하는 말이 "만원짜리 형님, 형님이 너무 부럽습니다. 저희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지난 번 설날에 한 번 외출을 할 줄 알았는데 세배하러 온 아이들이 지갑에서 나오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요즘 세상에 세뱃돈 천원 주는 어른이 어디 있어요 싫어요 하는 통에... 다시 지갑 주머니 속에 들어가서 아직도 세상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주인 아저씨가 꼭 필요할 때는 주일날 교회에서 나를 헌금할 때 이용하거든요. 더구나 이 아저씨는 한 달에 한 번 갈까말까 합니다. 그래도 우리 천원짜리들은 주일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더래요. 재미있는 예화입니다만.... 교훈이 담겨 있는 비유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는 만원, 십만원, 백만원... 아낌없이... 인색하지 않게 쓰지만 하나님께 드릴 때는 너무 인색하다는 것입니다. 맥추감사는 지난 반년의 세월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고... 마음을 다해서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미처 준비가 안되었다면 다음 주에라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날마다 진보하기를 원하시고 전진 있는 믿음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엡4:15, 벧후3:18). 예수님께서 한번은 열 명의 문둥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한 사람만 주님께 와서 감사를 드렸을 때... "열 사람이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하시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책망하시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마땅히 감사해야 됨에도 감사하지 않으면... 주님은 매우 서운하게 여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복받을 근원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감사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자체로서도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감사하는 그 마음 속에는 기쁨이 있고 평안이 깃들여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그 마음에 불평이 있습니다. 원망이 있습니다. 평안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대개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은, 은혜를 받고도 배신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은혜를 받고도, 도움을 받고도 배신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도 은혜 받고, 축복 받고 배신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은,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은, 은혜를 받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영국의 성경 주석가 메튜 헨리(Mattew Henny ; 1662∼1714) 목사님은 감사를 설명하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감사는 산수에서 더하기(+)와 같아서 모든 것에 감사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더해진다. 어떤 일이든지, 어디서든지 감사하면 플러스의 축복이 주어진다. 그러나 반대로 원망과 불평은 빼기(-)와 같아서 있는 것까지 빼앗기고 없어진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풍족한 삶을 살게 되지만,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자꾸 없어지고 자꾸 빼앗겨서... 결국은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입니다. 기뻐하며 춤을 추고 소고 치며 노래하며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마음껏 영광을 돌리는 날입니다.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서 우러 나오는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감사에 대해 설명하면서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별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별빛도 달빛도 햇빛도 필요없는 영원한 천국의 빛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모든 삶에... 여러분의 직장과 하시는 생업 위에 지난 세월동안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기억하며...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더 큰 축복과 은혜를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찬양하라 (Everybody, Praise the Lord) 시편 150장 1-6절 이종윤목사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감사할 제목이 너무 많아 실은 아무것도 감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사절을 만들어 지키게 하셨습니다. 오늘 감사하는 성도들은 우리에게 눈과 코, 입과 귀, 그리고 건강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Ⅰ. 어디서 찬양하는가(Where to praise God). 오늘 본문인 시편 150장의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여호와를 찬양하라”가 3번, “하나님을 찬양하라”가 1번, “그를 찬양하라”가 9번 나타납니다. 오늘 우리는 어디에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본문 1절에서는 하나님의 성소에서와 권능의 궁창(in heaven), 즉 지상의 성소와 하늘의 궁창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예배당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지상의 성소는 없습니다. 다만 살아계신 하나님의 전(殿)인 몸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고후 6:16, 고전 3:16, 6:19). 즉 하나님의 전(殿)인 몸 안에서 그리고 몸으로 우리가 가는 어디서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Ⅱ. 왜 하나님을 찬양하는가(Why to praise God). 본문 2절에서는 그의 능하신 행동과 지극히 위대하심 때문에 찬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능하신 행동은 창조와 구원역사를 말한다면(보호, 섭리, 구원) 위대하심은 하나님의 속성(통치, 거룩성, 전지, 사랑, 은혜, 선하심, 긍휼, 공의, 진리, 지혜)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고 그가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알게 될 때(즉 성경을 잘 공부하게 될 때)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Ⅲ. 어떻게 찬양하는가(How to praise God). 본문 3절에서부터 5절에서는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나팔, 비파, 수금, 소고, 현악, 퉁소, 제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를 총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나팔은 제사장이, 비파와 수금은 레위인이, 소고는 여인들이 연주합니다. 그러므로 제사장, 레위인, 찬양대원, 일반 모든 이들이 성악, 기악, 무용으로 주를 찬양하는데 몸과 마음과 기(技)를 다하여 주를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모든 노래가 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듯 모든 악기가 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의 도구로 적합한 것도 아닙니다. 새 노래 즉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경험한 것에 근거한 노래로(계 5:9, 14:3) 그리고 신령한 노래로 주님께 찬송해야 합니다(엡 5:19). Ⅳ. 누가 찬양해야 하나(Who should praise God). 본문 6절에서 호흡 있는 자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기보다는 공격하고 모독하며 부인하며 무시합니다. 예수님은 거절을 당하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우리가 원하든 말든 모든 무릎이 그 앞에 끓고(빌 2:10)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 것입니다(계 5:13). 맺는말. 가장 위대한 합창, 가장 위대한 노래, 가장 큰 감사는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합창, 노래, 감사 등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주님만을 믿고 의지함으로 우리의 감사가 더욱 확신에 넘치는 찬양이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큰 축복을 받으시는 우리 서울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행복한 이의 감사 대상 16:34-36 -오창우 목사
행복한 이의 감사 (대상 16:34-36)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오늘도 크신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 어떤 알코올 중독자에게 아들이 둘 있었습니다. 도저히 두 아들을 키울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복지과 직원에 의해서 이 아들들은 각각 다른 집으로 입양을 보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다음 두 아들의 행방이 궁금해서 복지과 직원이 추적을 했습니다. 과연 이 두 아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첫째 아들을 찾아가 보았더니, 아버지와 똑같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수용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질문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당신도 이렇게 살 수 있단 말인가?" 그 아들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인데, 어떻게 내가 알코올 중독자가 안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맞는 듯합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부모가 본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지요. 웃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도 할 수 있지요. 여러분 꼭 그럴까요? 이번엔 둘째 아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형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동생은 사랑하는 아내와 예쁜 자녀들과 함께 아주 단란한 가정을 가꾸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질문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아버지와 전혀 다르게 살수 있습니까?" 그때 아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그렇게 사셨는데, 내가 어떻게 똑같이 살 수 있단 말입니까?" 타산지석이나, 병가지상사란 말이 맞는 것입니다. 두 아들이 살아온 삶의 조건은 똑같습니다. 같은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도 판이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 아드님은 똑같은 아버지의 유전자를 받고, 똑같이 처절한 환경 속에서 삶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알코올 중독자가 된 것이 너무나 당연한 노릇이라 생각했지만, 또 다른 사람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지 않은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잘 보세요! 남의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생각의 차이, 판단의 차이는 결국 삶의 결과까지도 엄청나게 차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인생은 선택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 에 따라서 운명이 바뀌는 법입니다. 중요합니다. 잘 선택을 해야 합니다. 바르게 판단을 해야 합니다. 행복과 미래는 판단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결코 운명이 아닙니다. 환경을 탓하며 원망과 불평을 하며 자신은 물론 함께한 사람들까지도 망치고 있는 사람은 아닙니까? 불행한 사람이 가는 길입니다. 아니면, 환경을 뛰어 넘어 하나님의 축복을 만들어 가는 사람입니까? 행복한 사람이 되시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과 행복의 삶을 선택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지금 환경이나 조건, 외모나 가진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우리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 사랑하는 딸이다.(빌 3:12-14)” 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 46:3-4에서 말씀하시기를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 찌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 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은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목동에서 이스라엘의 왕의 자리에 오른 다윗, 행복한 다윗이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해서 드린 감사의 기도문 가운데 일부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언약궤"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법궤"라고도 합니다. 그 속에는 아론의 지팡이와 십계명 돌비와 만나가 들어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신적인 권위가 거기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사울 왕 때에는 이 언약궤가 70년 동안 변방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놓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일을 마치고 나서 너무나 감격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행복한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크게 2가지입니다. 첫째는 인자하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오늘 다윗은 누구보다 인자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인자는 사랑과 자비입니다. 34절 말씀을 같이 보게 되면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멘-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누구보다 왕이 된 것이 감사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이 행복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바로 이 때 다윗의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님... 인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없었더라면 나 같은 사람이 어찌 한 나라의 왕이 될 수 있었겠는가? 하는 감사가 떠오른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것처럼 다윗은 참으로 기막힌 인생을 살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목동으로 초라하게 살았으나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난 후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으로부터 온갖 고난과 핍박을 받았지만 마침내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난날을 생각하면 참 기적과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왕은 그 모든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가수 조수미 씨의 공연에 대한 신문기사의 내용입니다. (국민일보) 2000년 11월 6일 오후 10시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은 감동의 물결로 흘러넘쳤습니다. SBS 창사 10주년 기념으로 오후 7시30분부터 시작된 소프라노 조수미의 공연이 끝나자 청중은 열렬하게 ‘앙코르!’를 외치며 공연에 화답했다는 것입니다. 앙코르는 2곡 정도인 것이 관례지만 계속되는 청중의 성화에 못이겨 4곡을 부른 조수미씨는 그래도 청중이 자리를 뜨지 않자 다시 무대에 올라 스텝에게 마이크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지난날의 간증을 했습니다. “제가 오늘 이처럼 뜨거운 환호를 받고, 지금까지 외국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늘에 계신 분, 하나님 덕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불러보고 싶었던 노래를 이 자리에서 한번 부르겠습니다.” 조수미가 부르는 노래는 찬송가 405장의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이었다. 연주를 맡은 수원시립교향악단과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곡이라 조수미 씨는 반주 없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소프라노 중에서도 최고음 소프라노(콜로라투라)인 그녀가 무반주로 부르는 찬송은 더없이 감미롭고 깊은 감동으로 순식간에 청중의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마이크에 두 손을 포갠 채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는 그녀는 세계적 소프라노가 아닌 ‘기도하는 소녀’였다고 합니다. 이 죄 많고 부족한 사람을 세계적인 소프라노 가수로 만들어 주신 인자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이 끝나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꽉 메운 3900여명의 관객은 일제히 일어섰습니다.그리고 무대 앞쪽 주한 외교사절들은 물론 교복 차림의 청소년과 노년층 관객까지 모두 일어나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날 밤은 예술의 아름다움과 함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경건함이 공연장을 휘감아오는 가운데 청중은 깊은 감동에 사로잡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박수를 보냈다고 신문기자는 감격스럽게 그 날의 상황을 기사화했습니다. 이것이 세계적인 가수요 하나님의 딸인 신앙인 조수미의 신앙간증의 현장입니다. 인자하신 하나님이 계셨기에 오늘의 내가 있었다는 그 감사의 겸손이 조수미를 조수미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습니까? 목동의 자리에서 왕의 자리로.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 십입니다. 이 인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다윗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감사를 하니까 그 자신도 인자하게 삽니다. 이 사실이 중요합니다. 거만하면 안 돼요.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임금은 물론, 아버지를 배신한 아들 압살롬, 저주하는 시므이, 그대로 내버려 둡니다. 싸우지를 않습니다. 왜? '하나님의 인자로 여기까지 왔는데 저 사람하고 싸우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다' '사울왕 죽이고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으니까... 어리석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남보다 많이 알고 많이 갖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남을 정죄하고 비판을 하는 거지요. 예수님께서 "내가 온유하니 너희도 온유하라"고 하셨잖아요.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지요. 예수님은 인자하신 분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에게도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죄없는 자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인자해야 지요. 겸손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니까! 인자하심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인자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합니다. 웃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이 막걸리 드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 》 초 신 자 : 충격받고 교회 안나온다. 오래된 신자 : 충격받은 초신자 데리러 갔다가 같이 충격받고 교회 두고 온 성경 챙겨서 다른 교회로 간다. 청 년 회 : "역시 우리 목사님은 앞서가는 분이야" 라면서 다음주 월례회 장소를 호프집으로 정한다. 서 리 집사 : 충격받고 안나오는 오래된 신자 찾아가서 " 세상에 하나님 말고 믿을 놈이 어딨나"라면서 목사 욕한 다음 당장 제직회 열어서 노회에 보고 하겠다고 협박한다. 안 수 집사 : 대장장로님 찾아가서 목사청빙 광고 내라고 한다. 장로 1년차 : 다른 교회 친구한테 좋은 목사 소개 부탁한다. 장로 5년차 : 잘 아는 좋은 목사 있다고 소개한다. 원 로 장로 : 찾아온 당회원들에게 말한다. "그거 술 아냐 우유야, 나도 먹어봤는데 진짜 우유야" 여러분! 우리의 과거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인자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일군이 되었습니다. 겸손합시다. 낮아집시다. 그러면 더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많이 감사를 해야 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어요. 6.25전쟁 때 북한에 의해 적화통일이 됐더라면 우리는 세계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가 됐을 겁니다. 6.25전쟁 때 우리를 도와 준 나라들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만큼 사는 것 누구 때문입니까? 물론 우리가 열심히 살았어요! 그러나 그것만으로 대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과거를 돌아보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인자하신 하나님께 감사" 하는 우리 또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감사하는 행복을 선택하는 행복한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번째는 구원하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35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서 건져 내시고 모으시사 우리로 주의 성호를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할찌어다"-아멘-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는 지 아십니까? 다윗이 13장에서 하나님의 법궤를 수레에 실고 옮기다가 일군 웃사라고 하는 사람이 떨어지려고 하는 법궤를 잡는 바람에 죽는 불상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15장에서 하나님의 법궤를 레위사람이 다시 하나님의 법대로-어깨에 메어 무사히 옮겨 놓고는 감사해서 이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홉니와 비느하스가 법궤를 가지고 블레셋과의 전쟁에 나갔으나 죽었고 법궤를 붙들었던 웃사도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그 자체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내 능력대로, 뜻대로, 도구로 사용하려고 할 때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화를 입습니다. 다윗은 철저히 하나님의 법대로 하나님의 법궤를 옮겼다는 것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에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캐나다의 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당대에 거부가 된 깁슨 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에 물방앗간 심부름꾼으로 갖은 고생을 겪으면서도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 마침내 산림 20만 에이커와 철도 280 마일을 소유하는 부자가 된 것입니다. 어느 날 인터뷰를 위해 찾아온 기자가 성공의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첫째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말 것, 둘째는 수고하는 것을 싫어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할 것, 셋째는 하나님을 믿고 매사에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오늘의 저를 있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자 그 기자는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답니다. "그거야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때 깁슨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 못됩니다.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진리이지만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복음성가 중에도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는 찬양이 있잖아요. 아시지요? 내일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 길 가고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예수 팔 내미사 내손잡아 주소서 내일일은 난 몰라요 장래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날 붙드사 평탄한길 주옵소서 만왕의왕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만백성을 구속하니 참구주가 되시네 순교자의 본을 받아 나의믿음 지키고 순교자의 신앙따라 이 복음을 전하세 불과 같은 성령이여 내 맘에 항상계셔 천국가는 그날까지 주여 지켜 주옵소서 우리의 미래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살아라! 그러면 네가 잘될 것이다." 우리는 그 약속을 믿고 그 말씀 안에 살 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놀라운 축복과 은혜속에 살아가는, 그 구원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서 진정한 감사의 찬양을 드리게 되실 줄로 믿습니다. 다윗은 전쟁이 시작을 하게 될 때 적군이 칼을 목에 대고 있어도 그는 싸우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했습니다. 죽으라면 죽었습니다. 싸우라고 했으면 싸웠습니다. 내 힘을 의지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을 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가려고하는 애쓰고 수고하는 여러분에게 구원의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실 줄로 믿습니다. 이 한주간도 이 하나님을 통해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신 하나님이 십니다. 구원의 하나님이 십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 여러분의 축복이시기를 바랍니다. 36절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찌로다 하매 모든 백성이 아멘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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