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있는 책 마을
‘헤이 온 와이'를 다녀와서
조 월 례
●처음에
책과 관련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책과 관련된 기사에서 언뜻언뜻 책 마을이라는 단어를 몇 번 본 기억을 갖고 있으면서 호기심과 궁금증을 갖고 있던 중 금년 조선일보 2월 26일자에 영국의 책 마을 헤이 온 와이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리차드 부스라는 사람이 낡은 성을 사서 헌 책방을 열었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중요한 헌책을 사 모았다. 책과 관련된 사람들 사이에 그곳에 가면 필요한 책을 구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리차드 부스는 헌 책방으로 성공하게 된다. 그러자 마을에 하나 둘 헌 책방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것은 마을 전체를 헌 책방으로 형성하게 된다.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축제가 열린다. 세미나, 강연회, 작가와의 대화 등 크고 작은 책과 관련된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영국의 작은 마을 헤이 온 와이를 찾는다. 2000년에는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축제가 열린다.]
이것이 조선일보에서 읽은 기사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기사를 쓴 이선민 기자에게 전화를 해 보았다. 기사 외에 더 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책마을에 대한 알 수 없는 매력과 궁금증 때문에 아무런 사전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상태에서 무모하게도 일단 가보겠다고 작정하고 3월초 여행사를 통해 숙박할 호텔을 찾아보았지만 이미 호텔은 동이 나고 없었다. 여행사는 며칠을 이곳저곳을 뒤진 끝에 어렵게 책마을 가까이 있는 딱 하나 남은 호텔을 찾았다고 연락이 왔는데 그곳은 하루 잠만 자는데 우리 돈으로 20만원이나 했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이 계약금을 보내 예약을 했다. 그리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 부산 전 동화읽는 어른 회장이었던 윤영희씨와 대전 동화읽는 어른 회장 이광원씨 그리고 사무총장 이희정씨가 함께 가게 되었다. 다행히 윤영희씨가 작년에 그곳에 잠깐 다녀온 적이 있고 언어 소통이 된다는 이유로 함께 가자고 부추겼고 고맙게도 이에 응해주어 구체적인 일정과 계획이 잡혀나갔다. 사실은 더 많은 회원들에게 알려 함께 가고 싶기도 했지만 책마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했다. 함께 가자고 했다가 내용이 신통치 않으면 실망할 수도 있거니와 잘 모르는 사람들이 가서 헤멜 것에 대한 부담이 커서 더 이상의 인원을 늘리지 않았다.
●헤이 온 와이를 향하여
마을 이름은 헤이, 그리고 마을 옆에 흐르는 강 이름이 와이 강이다. 이 두개가 합쳐서 헤이온 와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헤이온 와이로 가는 길은 멀었다.
히드로 공항에서 지하철을 이용해 런던시내로 들어가는데 대략 한시간이 걸린다. 거기에서 웨일즈 지방으로 가는 버스터미널 빅토리아 코치스테이션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4시간 30분가량을 가면 히어포드라는 작은 지방이 나온다.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1시간 가량 가면 한적한 작은 시골마을 헤이온 와이가 나타난다. 꼭꼭 숨어서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만 자기를 드러내는 산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 일정 때문에 우리는 5월 30일에 출발해서 일본에서 하루를 묶고 12시간 반의 비행 끝에 런던에서 다시 하루를 묵고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히어포드에서 다시 하루를 묵고 하다보니 실제로 헤이 마을에는 축제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6월 3일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책 마을로 가는 길에는 영국의 전통가옥들과 짙푸르고 넓은 초원에 양떼 가 풀을 뜯는 아름다운 정경이 내내 이어진다.
인포메이션을 통해서 이번 축제기간 동안에 진행된 프로그램은 날짜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홍보물을 통해서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홍보물 가운데서 어린이들과 관련있는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헤이 온 와이의 축제에서 어린이 부문 프로그램 일부
(5월27일)
◆ 필름제작자 프로젝트(사운드트랙 2000)
청소년을 위한 영화와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헤이 축제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 아마도 것에 환상적인 비디오와 만화 그리고 사운드 트랙을 만드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첫번째 기회가 될 것이다. 스탭들은 다음과 같다.
글린 에반스-영화의 오디오적인 요소를 담당한다.
존, 시몬, 조나단, - 만화를 디자인하고 특수 효과를 넣는 것을 담당한다.
피오나 - 모든 중요한 애니매이션 담당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필름을 편집하는 과정까지 배우게 된다.
◆ 모빌 메니아
여러 가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투명한 재료까지) 모빌을 만든다.
◆ 책 꼴라쥬
중고책을 가지고 하는 것으로 호일과 티슈를 사용하여 이미지나 단어를 가려서 창의적이고 유일한 책을 만들어낸다.
◆ 퍼펫
함지나 그릇뚜껑, 자루 걸레에서 행주까지 사용하여 인형을 만든다. 이 인형들을 가지고 움직이는 방법을 배우고 이 과정이 끝날 때 전문가들의 공연이 있다.
◆ 밀레니엄 웹사이트
다양한 이미지를 사용한 디지털 사진 기술에서 세상 어디까지나 접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다. 자신의 이미지를 디스크에 담아갈 수 있다.
◆ 빛으로 그림 그리기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색깔이 덮인 사진 종이에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 행사)
◆ 존 브린이
만화가, 코미디언, 작가, '맥스'시리즈와 bultimate joke handbook'의 작가.
재미있는 그림 그리기를 가르쳐 줌
<3-5세를 위한 공연>
◆ 로렌스 아놀드
어린이들은 Little Cub에 참여하도록 초대받게 된다. 즉 이 책에 나오는 정글의 여러 동물들처럼 행동해 본다.
로렌스 아놀드가 쓴 책
◆ 모자 쓴 고양이
모자 쓴 고양이가 말한다. '즐거움을 가지면 즐겁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이곳 헤이 온 와이에서 그 방법을 알려준다. 와글 그룹게임, 액티비티, 읽을 거리를 만나보세요
(5월28일)
작가들의 행사로 각각 45분씩이며 책 사인회도 뒤따른다.
◆ 닉 버터워스
'공원지기 퍼시' 라는 책은 최고 베스트중의 하나 -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임
닉은 이번 행사를 통해 공원지기를 자랑하는 동물과 그의 친구들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그려보고 싶어서 이 행사에 왔다. 아주 재미있는 행사가 될 것임, 놓치지 마세요
◆ 다이아나 윈 존스
'크리스토 먼시 시리즈'의 작가. 이 작품에 어떻게 영감을 얻고 썼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최초의 아이디어와 출판 편집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것은 아주 유일한 기회가 될 것이다. 맨 마지막에는 작가와 질문과 대답의 시간이 있다.
◆ 마법을 만나세요
'윌리엄을 만나세요'라는 책은 어린이들에게 마법을 공유할 수 있는 책이다. 원래 이야기는'윌리엄의 목소리'라는 라디오와 카셋트 오디오로 유명하다. 작가는 그 이야기를 읽어주고 어떻게 수년동안 많은 팬들이 생기게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3-5세를 위한 공연)-시간 30분. 반드시 어른과 동참할 것
◆ 콜린 맥노튼
콜린은 작가이며 '프레스톤의 돼지'의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최근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림을 그릴 예정이다. -꼬마 돼지는 책에 나오는 미스터 울프가 할 수 있었던 일과 다른 일들을 제시할 것이다.
◆ 공원지기 퍼시
모두가 좋아하는 공원지기 퍼시와 즐기세요..
재미와 여러 가지 게임이 벌어짐. 축하카드도 만들고 케익을 만들면서 참여할 수 있다. 이 파티가 끝나면 집에 가져가도 된다.
◆ 테디 베어의 소풍- 숲에 홀로 남다.
마법의 테디 베어와 함께 숲으로 갈 수 있는 또 다른 기회, 작가이며 일러스트레이터인 벡이 멋진 스토리텔링을 한다. 그의 그림책을 읽어 줄 것이다.
(5월29일)
(작가 행사- 책 사인회가 이어짐)
◆ 데이비드 클레맨트 데이비스
'화이어 브링거'란 책은 폭우에 의한 이야기. 고대 신화와 역사나 이 서사시에 뒤엉켜 있다. 작가는 어떻게 그 이야기를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 풀 쿡슨
폴은 학교, 도서관, 페스티벌, 교회, 출판계, 라디오 등에서 폭넓게 활동하는 시인
그의 재담은 청중들을 즐겁게 해 줄 것이다.
(3-5세를 위한 공연)
◆ the gruffalo
그루팔로가 누구일까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고 혹같이 생긴 무릎, 쿠 끝에는 독이 있는 쥐젖이 있습니다. 이제 당신이 이 동물을 만날 시간입니다. 이 책의 작가 줄리아 도날드슨과 함께 스마티즈 상을 탄 것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6-8-10세)
◆ 쉘타이 앤드 더 세들 미스터리 퀴즈
누가 작은 사과 숲의 말의 안장을 훔쳤을까? 스토리텔러 딘 힐이 그 미스테리를 풀기 위해 시간의 경주를 할 것이다. -이야기, 게임, 쉘타이 노즈백은 집으로 가져감
◆ 코키 폴
그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 시간으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 할 것임
이처럼 어린이를 위한 행사가 날짜별로 시간대 별로 자세하게 소개되었는데 우리 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거인 사냥꾼을 조심하세요'의 작가 콜린 맥노튼, 공원지기 닉 버터워스 등의 이름과 그들이 하는 행사 내용이 눈에 띄었다.
작가들은 저마다 자기 코너를 갖고 개인 이벤트를 열고 있었으며 원하는 사람들은 3-7파운드 가량의 돈을 내고 참여할 수 있었다. 상당히 흥미를 끄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놓쳐서 아쉽다. 물론 어른들을 위한 각종 세미나와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이 있었고 특히 우리처럼 아이들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된 것을 알 수 있다.
● 책마을에서
책 마을에 온 첫날인 6월 3일에 마을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책마을의 원조가 되는 리처드 부스의 헌 책방은 높은 언덕에 성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 서 있었다. 거대했다. 140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의 수많은 책과 삽화들이 알파벳순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책방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책 박물관을 연상하게 했다. 짧은 시간에 둘러본 느낌은 책의 역사가 바로 그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러 개의 방, 여러 개의 통로마다 책이다. 아이들 책에서부터 어른들을 위한 책까지 모든 분야의 책이 다 거기에 모여 있었다. 어떤 분야의 사람이라도 그곳에 오면 원하는 책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당에는 어린이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누구라도 원하는 책을 필요한 만큼 골라가고 생각해서 기부금을 내면 된다. 비가 뿌리는 가운데서도 아이들이 즐겁게 책을 고르고 있었고 이광원씨와 나는 비를 맞아가며 책을 뒤지고 그러다가 만나는 맘에 드는 책을 골라들고는 가져 갈 걱정에 골라놓았던 책을 내려놓으며 아까워했다.
우리 숙소가 있는 히어포드까지 돌아가려면 5시 막차를 놓쳐서는 곤란하다. 서둘러 몇 곳을 둘러보고는 4일날 다시 갔다. 리차드 부스의 헌 책방 외에도 마을 곳곳에 있는 헌 책방은 어딜 가나 수많은 책의 더미였다. 그 많은 책들이 일목 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마을에 있는 어린이 책 전문서점(물론 헌 책방)에 갔다. 어린이 책방에 들어가서 한동안 뒤지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눈사람 아저씨' 를 1파운드(우리 돈 1700원 가량)을 사고 또 책방을 옮겨서 뒤지다가 그림 작가가 다른 '개구쟁이 해리' 시리즈를 만난다. 다시 다음 골목에 있는 책방으로 간다. 어마어마하게 크다. 나무로 된 계단을 삐걱거리고 올라가니 책에 질식해 버릴 만큼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들의 더미에서 책 냄새를 맡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뒤지다 모리스 샌닥의 그림책을 건진다. 책에 질려서 다시 다음 골목의 책방으로 가서 새것이나 다름없는 개구리 이야기를 그냥 눈으로만 보고, 존 버닝햄의 때가 꼬질꼬질한 책을 한 권 산다. 브라이언 와일드 스미스의 책, 피터레빗 책들이 쌓여있는데 가져갈 걱정에 골라놓았다가 내려놓곤 했다. 책 욕심꾸러기인 우리 모두는 이렇게 책에 코를 박고 보고 또 보다가 뒷골목 서점으로 갔다가 옆 골목 서점으로 갔다가 하면서 우리에게도 친숙한 책들을 실컷 보았다. 낯선 나라에서 책의 더미를 돌아다니며 낯익은 책을 만나는 기쁨, 새 책의 절반도 안되는 가격으로 맘에 드는 책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쁨에 흠뻑 취했다.
책방들에는 사이사이에 간이 의자를 배치해 두었다. 책방을 찾는 사람들이 책방 한쪽 구석에서 마냥 책을 뒤적이고 읽어도 누가 뭐라는 사람이 없다. 삐거덕거리는 나무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좁은 공간에 놓인 책장의 사이사이에 처박혀 졸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할 수 있는 쉼터이기도 하다. 책방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미로같은 책의 방들이, 지하실에 있는 책의 방들이, 다락방 같은 곳에 있는 책의 방들이, 그리고 노상에 놓인 책장에서 땅 바닥에 놓인 책 더미들이 거리 자체를 책방으로서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헤이 마을에는 헌 책방 말고도 장난감 가게, 골동품 점, 악세사리 코너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 음식점, 우리 나라의 인사동처럼 골동품을 취급하는 상점골목, 갤러리, 기념품점, 등이 있었지만 중심은 역시 헌 책이었다. 낡고 오래된 것이 제대로 대접받는 곳이었다.
책 마을은 72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축제 기간동안에 6만 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온다고 한다. 그러면 평소에는 거의 사람이 찾지 않아 장사가 될까 싶은 노파심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묵었던 숙소 주인에게 물어보니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고 한다. 책방을 하는 사람들은 장사를 목적으로 한다기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삶의 일부로 즐기고 자연스럽게 쌓이는 고도의 전문성을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기꺼이 나누어 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뜻밖에 헤이 마을에서 한국인 손혜정씨를 만났다. 40대 초반의 이 여성은 유리 공예를 공부하고 있는데 헤이 마을에서 한시간 반 가량 걸리는 스완지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손혜정씨 말에 의하면 모든 예술의 집합체가 바로 헤이 마을이라고 했다. 자기가 보물처럼 숨겨놓고 아껴가며 즐기는 헤이 마을에 한국인이 온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하며 반가워 마지않았다. 평소에도 수시로 헤이 마을을 찾는다는 그녀는 아직까지 한국인을 만난 일이 없다면서 거듭 놀라워했다. 그리고 이곳에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 하더라도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있는 예술의 마을이라고 하며 책방 주인에게 무언가를 물으면 몇 시간 정도는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정도로 헤이 마을 사람들은 자기분야에서 모두가 전문가라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질문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표정에서 그들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기꺼이 즐기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한 책방 주인은 책을 몇 권사고 한국에서 왔노라며 명함을 주니 반갑다고 하며 기분좋게 5파운드를 깍아 주었다.
조그마한 시골마을 헤이온 와이는, 우리 나라로 치면 현재 책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는 영월의 한쪽 귀퉁이쯤에 해당될 만한 곳이다. 한 마을 전체가 책으로 그것도 헌 책으로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헤이 마을의 집들은 보통 몇 백년씩 된 전형적인 영국의 고풍스런 가옥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것이 서점이기도 하도 B&B라는 숙소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도 400년이 된 집인데 자녀들이 커서 모두 출가하자 집을 개조해서 아래층에서는 헌 책방을 하고 윗층에서는 살림을 하면서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50대 후반인 듯한 주인 내외는 활기차게 자기들의 일을 즐기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혹시 책마을에 매력을 느껴 찾아가고자 하는 이들은 아래 정보를 활용하기 바란다.
영국 책마을 인포메이션 센타 : 01497 -820144
web-site : www.hay-on-wye.co.uk
●우리는 어떻게
영국의 아이들도 보고 듣는 것에 익숙해져서 책을 잘 읽지 않는다고 한다. 인터넷을 비롯한 시청각 매체가 위세를 부리는 것은 영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책 마을이 존재하고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즐기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최근 우리 나라도 전자 책 출판이 늘어나고 인터넷 인구가 늘어나면서 종이 책에 대한 위기론까지 대두되지만 책 마을은 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책으로서의 위상을 잃지 않을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책 마을은 참 매력적인 곳이다. 나이가 들고 늙어서도 책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매력이고, 어린아이부터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마르지 않는 지적 욕구를 마음껏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무엇보다도 나이에 관계없이 평생동안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마을이 책 마을이다. 이것을 우리 나라에는 어떻게 접목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해 본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그곳에는 헌책방도 있고 도서관도 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다. 책을 만드는 이들, 그림을 그리는 이들, 글을 쓰는 작가들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간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만들어도 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노래도 만들어보고, 영화도 만들어 보는 마을을 꿈꿔본다. 누군가가 먼저 어딘가에 가서 자리 잡고 책방을 하나 여는 거다. 그러면 하나 둘 모여 들거다. 시골 가서 농사지어서 먹는거 해결하고 조금만 쓰고 바라만 봐도 좋아하는 이들끼리 그렇게 사는 마을을 이루고 싶다. 다소 감상적일 수도 있고 또 이런걸 하기 위해 따져봐야 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겠지만 우리에게 맞는 우리의 책마을을 꾸미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다. 결코 남의 나라 영국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책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어 볼까?
■어린이 전문서점
영국에 간 둘째 날 런던에 있는 어린이 전문서점엘 갔다. 15평 남짓한 서점 1층에는 주로 그림책이 진열되어 있고 지하에는 장난감과 큰 아이들을 위한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개구쟁이 해리 시리즈가, 에릭카의 책들이, 존 버닝햄과 헬렌 옥슨버리의 책들이, 브라이언 와이드 스미스의 시리즈 등 우리 나라에서 번역된 낯익은 책들이 우리를 반겨 맞는 듯 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한 권씩만 번역되어 있는데 대개 시리즈로 나와있었다. 매장은 책과 관련된 캐릭터의 그림이나 인형들이 조화를 이루며 책과 친근하게 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의 친절과 전문적인 안내가 책방에 대한 호감을 갖게 한다.
이 서점은 생긴지가 11년이 되었는데 처음 운영하는 사람들은 은퇴를 했다고 한다. 60가까이 됨직한 마들린이란 여성, 그러니까 할머니에 가까운 그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한마디만 하면 그 분야의 책들을 줄줄이 뽑아다 설명을 해주었다. 고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책방을 찾는 사람들에게 책에 대한 풍부한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헤이온 와이에 간다고 하니 지난주 자기도 다녀왔다고 하며 반가워하고 교대하기 위한 새로운 스탭이 오니 우리를 일일이 소개해 주었다.
마들린을 보면서 한 분야에서 9년 10년 일하면서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쌓아가고 그것을 독자를 위해 서비스하는 그것이 서점을 오래도록 유지하는 비결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들에게서 장사의 모습을 찾기는 어려웠는데 그것이 오히려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나이 많은 할머니 스탭이 타주는 커피도 얻어 마시고 사진도 찍고 책도 보고 사기도 하고 돌아왔다. 마음 같아서는 마들린과 영국 아이들의 독서경향이 출판문화, 부모들의 책에 대한 생각 따위들을 묻고 싶었으나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문제 때문에 아쉽게 돌아와야 했다. 어린이 책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 살아갈 사람들의 맑고 깨끗한 모습이 그들의 삶을, 그리고 아이들의 삶을 아름답게 가꿔 갈 것 같은 기쁜 예감을 주었다.
어린이 전문서점은 아니지만 이동하면서 눈에 뜨이는 일반 서점에 있는 어린이 책 코너를 둘러보았다. 유명작가들의 작품을 위한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 공통점을 볼 수 있었다.
큰 아이들을 위한 책은 나이별로 진열되어 있었고 한쪽에는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을 배려한 듯 목마나 놀이감, 들이 눈에 띄었다.
예정하지 않았지만 교통안내 책자에 소개된 런던 시내에 있는 어린이 책방을 한군데 더 가보았다. 여기는 런던 어린이 전문서점하고는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다. 3-40평정도 되는 매장은 지극히 대중적인 성격을 띄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물론 유명작가들의 작품코너가 있고 다양한 그림책이 진열되어 있었으며 비디오, 카드, 스티카, 동화 캐릭터가 새겨진 티셔츠, 비디오, 토이북 등 토탈 어린이 서점이었다. 지하에는 조립 장난감, 과학그림책, 성교육을 위한 책, 건강이나 요리 책들이 진열되어있었다. 우리가 책을 고르자 스탭인 듯한 사람들이 다가와 도와주겠다고 제의를 해 왔고 상을 받았거나 유명한 사람들의 작품들을 권해주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책만 소개된 닉 버터워스 같은 작품들이 비디오로 나와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책이란 것이 글자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로, 영상으로, 캐릭터로 다양하게 만날 수 있음을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 어린이 전문서점들은 매장의 크기나, 분위기나, 스탭들의 전문성 면에서나 런던 어린이 전문서점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다만 사회적인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 학교에서
헤이 마을에서 만난 손혜정씨의 안내로 스완지라는 마을을 가게 되었다. 그곳의 마을 도서관과 학교를 둘러보기로 했는데 도서관은 시간이 부족해서 못가고 대신 사립학교를 둘러보았다. 낡은 학교 건물 좁은 복도 등 학교 건물은 그다지 볼품이 없었다. 유치원 단계에서부터 우리로 치면 17,8세 아이들까지 있다. 11세부터 여자아이들을 받으며 한 반이 15명이 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17,8세 아이들은 대학교에 갈 아이들이 머물면서 대학에 가서 공부할 분야의 것을 공부한다고 한다.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토마스 교장은 이 학교는 아카데믹하고 스포츠에 강하며 특히 드라마 쪽에서는 명성이 있는 학교라고 한다. 학교가 작지만 더 크지 바라지 않는데 작은 만큼 교사는 아이들 하나 하나를 다 알 수 있음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고 한다. 나이 어린아이부터 큰 아이들까지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큰 아이들이 작은아이들을 돌보아 주게 된다고 한다.
이 학교에서는 아이들 개개인이 가진 개성을 끌어내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부여하려고 하며 아이들이 언제나 교사에게 물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한다.
아이들의 독서교육에 대해서 묻자 토마스 교장은 이곳 아이들도 컴퓨터나 텔레비젼, 영화 등 큰소리로 보는 거에 의존하기 때문에 책을 읽지 않아서 고민이라고 하며 꼭 읽어야 할 책 목록을 만들어 주는데 듣는 기능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토마스 교장은 과학을 전공한 교육자이지만 예술 교육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었다.
학교를 방문하고 나서 손혜정씨가 친구에게 빌린 차를 타고 명소로 꼽히는 스완지 관광에 나섰다. 광활한 바다와 드넓은 초원과 그곳에서 풀을 뜯는 양떼들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우리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신만이 연출할 수 있는 자연경관에 취하다가 그만 런던으로 가는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스완지에서 하루를 더 묵으면서 숙소 창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바다에 취해 버렸다. 아침에는 물이 빠져서 갯벌을 드러내고 오후가 되면 바로 창문 앞까지 찰랑거리는 바다가 되어 있곤 했다. 해안선을 따라서 수 십 킬로가 되는 길은 사람과 자전거만 다닐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우리는 그 길을 산책하면서 책과 아이들과 미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영국은 하루 동안에 사계절을 겪는다는 말이 진짜 실감난다. 춥고 바람불고 비 내리고 그러다가 언제 그랬냐 싶게 쨍 하고 햇빛이 비친다. 따듯한 늦봄을 즐기다가 5월 31일에 이곳에 온 우리는 내내 날씨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럼에도 온갖 종류의 인종이 모여들어 그야말로 인종전시장 같은 런던은 사람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재미만으로도 날씨 변덕쯤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런던은 흑인, 백인 그리고 우리 같은 황인종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고풍스런 런던 시내는 그런 다양한 인종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세계 사람들을 끌어 모아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영국은 어딜 가나 푸른 초원이다. 연중 알맞게 내리는 비 때문인지 도심 곳곳에 드넓은 공원들이 자리하고 있다. 시골로 가면서도 내내 드넓은 초원과 거기에서 풀을 뜯는 양떼들의 모습, 그리고 고풍스런 영국식 집들은 자연스럽게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연출하고 있었다. 일본에서도 같은 느낌이었지만 영국에는 노인들이 곳곳에서 자기 몫의 일을 당당하게 하고 있다. 헌 책방에서도 서점에서도 박물관에서도 학교에서도 안내소에서도 버스 운전기사도 나이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일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쌓인 경험을 발휘하며 일하고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모습이 우리네 파고다 공원과 비교하게 된다.
오래된 낡은 것을 소중하게 가꾸고 그것이 사람을 끌어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걸 보면서 또 우리와 비교하게 된다. 수 백년씩 된 건물들, 그 사이를 오가는 낡은 차량들, 좁은 길, 노인들은 영국은 노쇠한 나라라는 느낌이 들면서도 무시할 수 없는 전통의 무게가 다가온다.
여행의 묘미는 낯선 곳을 찾는다는 기대와 두려움이 혼재하는 속에서 느낄 수 있다.
런던 시내에 있는 내셔널 겔러리와 대영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세계는 힘있는 자들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술분야에서는 까막눈이나 다름없는데도 내셔널 갤러리에 걸려있는 미술품들은 호흡이 멈춰 버릴 것 같은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무엇보다도 유치원 단계의 아이들로부터 고등학교 단계의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갤러리에 와서 각각의 미술품에 대한 감상을 나누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예술을 중시하는 그네들의 의식을 볼 수 있었다. 선생님은 조그만 아이들에게도 열과 성을 다해서 미술품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었다. 또 우리 나라 아이들이 생각났다.
각 시대의 역사와 문화가 총체적으로 담겨있는 그림들에서 울컥거리는 감동이 밀려왔다. 두 번째 간 대영 박물관도 마찬가지다. 기념품점에서 피카소의 복사본 그림을 하나 사들고 나오면서 슬라이드로 크기가 다른 그림으로 각종 기념품으로 상품화되어 이러한 그림들이 생활 속으로 친숙하게 파고들고 그런 작은 일들이 그네들의 문화적 정서를 가꾸어 가는 바탕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린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우리 문화를 우리 아이들의 마음에 심어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끝으로
12박 13일 동안의 영국여행은 나름대로 여러가지 의미가 있었다.
우리들끼리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기면서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가고 먹고 싶은 것 먹고(물론 괴로움이 컸다) 쉬고 싶을 때 쉬면서 여행을 즐겼다. 그래서 책만이 아니라 미술관, 박물관을 찾아가고, 학교도 방문하고 음악회도 갔다. 숙소도 몇 만원 짜리부터 몇 십 만원 짜리 까지 다양하게 이용해 보았다. 음식도 차도 정말 다양하게 경험했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문화여행을 한 셈이다. 그 모든 것은 책과 통하고 있었고 우리들의 삶과 문화와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처럼 총체적인 문화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가 물어보면서 가장 우리다운 삶의 문화를 창출하기 위한 또 하나의 과정을 지나온 셈이다.
▣(조월례 회원은 어린이도서연구회 이사로 상담실장 일을 하십니다)
월간 동화읽는어른에서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