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천님이 짚어 주신 글처럼 저도 종종 당황스러운 때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월간문학을 잘 읽었는데 3년쯤 전부터 잘 읽지 않게 되더군요.
한국문인협회 소속이라는 것이 별로 자랑스럽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하여
올해부터 연회비를 안내고 탈퇴를 할까 하다가
한번 맺은 인연을 잘 버리지 못하는 제 성격상 일단 회비를 입금하고
궁금한 것들에 대하여 전화 문의를 했습니다.
그 중 작가가 썼다고 하기엔 좀 난처한 글이 올라오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도 물어 보았지요.
그 쪽의 답변인 즉,
연세가 많으신 원로들의 작품에는 요즘 잘 안 쓰는 고어가 많이 섞이는 경우가 있어도
함부로 고치기는 어렵다. 하며
곤란한 문장이 있어도 그냥 둔 것도 있으니 이해를 하라고 합니다. 또 어떤 분은 평생에 한 번 월간문학에 글을 올리는 것이 소원이라면서 수준에 안 맞는 글을 보내는 때도 있는데, 그야말로 오랜만에 처음 올린 회원의 글을 무시해 버릴 수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좋은 글만 골라 읽으시라고...
그러나 읽어보기 전에는 좋은 글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는 것이지요.
편집부 입장에도 애로가 많다는 것을 알 수는 있었지만.
다른 건 몰라도 띄어쓰기 정도는 작가의 글 흐름에 지장이 없으면
(시의 경우는 일부러 붙이거나 구두점을 안 찍는 추세여서 고치면 안 되는 경우가 있지요.)
보아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였지요.
사실 저도 띄어쓰기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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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님들은 이런 문장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요 며칠 근신하면서 소설을 몇 권 읽었습니다.
인터넷의 글 읽기는 몹시 피곤하지만, 종이책은 안정감이 있고 눈도 덜 피로합니다.
그 동안 시와 수필만 읽다보니 이상하게 정서가 무디어 진 듯해서
제가 좋아하는 김훈님의 소설을 비롯하여 다섯 권을 읽었는데
이 중 한권의 문장들에 대하여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한국문화예술 진흥원’에서 추천한 '2005년 우수문학도서'인
정영문의 [달에 홀린 광대]인데. 소설의 내용자체는 아주 간단한데,
그 표현 방법이 상당히 독특하더군요.
이 책은, 앞에 네 권이 술술 읽힌데 비해,
두 세배 이상의 시간을 들여서 같은 문장을 되풀이 읽게 되었습니다.
[달에 홀린 광대]의 문장의 예를 몇 곳 들어보면
“주위는 고요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고요 사이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물이 흐르면서 내는 소리처럼 여겨지는 소리였다. 하지만 귀를 기울이자 그 소리는 사라졌다.” -22-
“한데 내가 다시 고개를 돌리자 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자전거도 그것이 있던 자리에 더 이상 없다. 그의 자전거는 그가 끌고 가버렸군. 그의 자전거는 그에 의해 끌려가 버렸군. 하고 나는 생각 한다 그리고 어느새 보이지 않는 노인은 어느새 가버렸군. 어느새 가버린 노인은 어느새 보이지 않는군. 나는 말의 반복이 주는 효과를 생각하며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천천히 말 한다. 그러자 그가 자전거를 타고 가버린 사실이 아무것도 아닌 사실처럼 되어 버린다.” -69-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고 괜히 마당을 쓰는 일은 괜한 짓이지. 괜한 짓은 괜한 짓일 뿐이지. 하긴 괜한 짓은 괜히 하게 되지. 괜히 해야만 괜한 짓이 되지. 그렇게 생각하자 중이 마당을 쓰는 일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122-
“그는 가만히 앉아 있었고, 그리고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주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말을 하는 것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도 아주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심지어는 누구도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있을 때에도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195-
“그보다도 나는 누군가가 내게 시키는 일을 잘했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시키는 일만 했다. 다시 말해 시키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내게 뭔가를 시키지 않을 때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뭔가를 시키는 식으로 스스로 뭔가를 알아서 살 수는 없냐고?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내가 나 자신에게 시키는 일은 하지 않았다.”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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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런 글을 읽으면서 앞에 한 문장이나 두 문장으로 짧게 끝내도 무리 없을텐데
문단이 되짚어 지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 어찌 생각하면 아주 멋지게 느껴졌어요.
어쩌면 저렇게 같은 상황의 표현을 여러 가지로 하는 재주가 있을까 싶네요.
그런데 또 어찌 생각하면 말장난 같이도 느껴집니다.
말하자면 독자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속도가 상당히 느려지는 부분이 있어서요.
이런 문장으로 수필을 쓰면 어떨지 그것이 참 궁금합니다.
빌려 온 책이라 도서관에 반납하러 가면서,
회원들께 혹 도움이 될까하여 몇 문단 여기 올려보았습니다.
첫댓글 작가의 내면의 미세한 움직임을 쫓은 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서사적인 수필에서는 이런 표현이 좀 뭣하지만,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을때, 보이거나 손에 잡히지 않는 사유의 세계를 글로 쓰고자 할 때, 쓰고자 하는 욕망이 마음 속에 꽉 차 있을 때 수필에서도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 좀 어려운 얘기네요.
어렵지만 참 좋은 얘기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런 글은 보통 수준의 작가가 흉내 내기는 어려울 정도의 문장이라고 봅니다. 읽으면서 자주 고개가 끄덕여 졌습니다.
쓰고자 하는 내용이 풍부할 경우에는 위 글 같이 엮어가면 참 재미 있는 글이 될것 같습니다.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분의 글에 대입시켜 써 봤으면 하는 충동을 느낍니다..
이 글속의 주인공은 참 특이한(?) 성격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정신이 반듯하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아니라 하기도 어려운. 그래서 심리적인 묘사가 보이지 않게 저런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산문은 그 내용은 불문하고 문장은 제대로 쓰야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읽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쓰야하는데, 아무리 소설이지만 이렇게 혼란스러운 문장은 유명한 작품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이상의 '오감도'가 생각납니다. 비평을 달리하는 분들이 있지만, 위 예문과는 다릅니다. 글을 쓰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실 이글의 주인공이 반듯한 정신에서 조금 벗어나는 인물입니다. 그러다 보니 표현도 그 사람의 심리를 따라서 되풀이 되고 또 되나 싶습니다. 어려웠지만 재미 있었습니다. 이상의 [오감도], 그 시의 페러디 시를 쓴적이 있습니다. " 열세 명의 처녀가 무대를 걸어가오/(무대는 실내 극장이 무난하오)/첫 번째 처녀가 예쁘다고 그러오/두 번째 처녀도 예쁘다고 그러오/세 번째 처녀도 예쁘다고 그러오/............그 중에 두 처녀가 예쁜척하는 처녀라도 좋소/그 중에 한 처녀가 예쁜척하는 처녀라도 좋소/(무대는 노천극장이라도 상관없소)/열세 명의 처녀가 무대를 걷지 않아도 좋소// ㅎㅎ 벌써 10년전 일입니다. 지나간 것은 그립습니다
대게의 시는 두 세번 읽고 음미해봐야 한다지만, 선생님의 시도 아무 생각없이 몇 번 읽고나서 그 마음을 짚어갈 수 있어 가끔 '숲이 나를 보고'를 아무쪽이나 펴들고 시인의 마음을 따라가보곤 합니다.
아이고, 부끄러워라.
단박에 그 의미를 알 수 있고 문학적 향가가 높다면 더 없이 좋은 작품이지요. 그러나 사람의 마음, 심상을 표현하는 것도 문학, 또는 예술의 본질이라고 생각됩니다. 곰곰 되씹어 가며 작가의 내면을 살피고 공감대를 느끼는 것도 문학(예술)작품을 통해서 느낄수 있는 기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장의 반복이 주는 효과로서 말장난과도 같은 글로서 이상의 오감도를 비슷하게 그린것 같은데 다시 읽어보니 그럴듯 하기도 하고 이상하게 엉뚱한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 엉뚱하게 이상하기 보다는 내면의 의식의 흔들림을 나름대로그려낸듯 합니다. 의식의 흐름을 이렇게 밖에 표현할수 없다면 이글은 다시 엉터리 같기도 합니다. 아, 초보자인 저에겐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려운것은 이해되는 쉬운것만 못하니.. 이글은 역시 다시 난해한 글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글에 대한 제 생각을 이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으니 나 또한 엉뚱한 사람입니다. ㅋㅋ
창호지에 먹물 스미듯이 금방 따라하셨습니다. 역시 우등생은 다릅니다. 그런데 이상의 오감도도 천천히 여러번 읽다보면 이상한 쾌감이 느껴집니다. 처음에는 좀 무섭지요. 열세명의 아이가 우루루 도로로 질주한다고 생각해 보셔요. 한 아이가 무섭다고 하니 다른 아이들도 무섭다고 하고 또 다른 아이가... 상황이 상당히 공격적인 느낌이지요. 제목이 [오감도 烏瞰圖]냐? [조감도 鳥瞰圖]의 오류인가? 제목부터 논란이 뜨겁습니다. 우리민족의 이야기냐? 최후의 만찬이냐? 등등...
물론 글을 반복하여 쓰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앞에 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하나고, 앞과 뒤 사이에 적당히 나올 말으 찾지 못하여 연결하려는 의도가 둘이고,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방법이 셋이고, 작가가 쓴 말을 포장하기 위한 것이 넷이고, 쓸 글이 없어서 질질 끄는 것이 다섯입니다. 글세요 소설이나 수필에서 정말 이런 글을 써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명천님은 정말 열심히 공부하시는 군요. 위에 다섯 가지 잘 기억해 두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소설에서는 일부 쓰는 것이 좋을 때도 있지만, 수필처럼 짧은 글에서는 이렇게 쓰면 원고지 채우기 정도의 효과가 아닐런지요? 허지만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위에 올려주신 글 중에서 틀린 곳 바로 잡아서 회원들 알게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에 맞춤법 답안 보내주신 것도 도움이 많이 되었답니다. 저도 나름대로 해보긴 했는데 띄어쓰기는 대충 알겠는데, 문장이 너무 길고 엉겨서 영 그렇더군요. 부탁드립니다.
그런 긴 문장을 쓴 사람의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문법상 잘못은 산방산님의 글과 제 답글에 있습니다. 참조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보고 왔습니다. 그 사이 올려있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