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걷기 코스
군포 수릿길
호수와 당숲 아우르는 순둥이처럼 착한 길
대야미역 출발, 수리산 임도 따라 11.4km
성남시의 남한산성, 가평군의 연인산에 이어 2009년 경기도 세번째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수리산은 도심 속 '녹색섬'이다. 산본신도시를 병풍처럼 감싸 안고 안양과 안산과 걸쳐 있기에 3개 지역 주민들은 수리산의 혜택을 톡톡히 받고 있다. 관악산, 청계산과 더불어 한강 남쪽에서 서울을 에워싸고 있는 수리산은 펑퍼짐하고 후덕한 태을봉을 주봉으로 관모봉, 슬기봉, 수암 등을 거느리며 제법 웅장한 산세를 자랑한다. 깊은 계곡에는 산림욕장이 조성돼 있으며 약수터와 다양한 휴식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걷기열풍을 타고 수리산 일대에 곤포수릿길이 만들어져 등산과 걷기, MTB 등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수리산 봉우리를 담은 갈치호수
군포수릿길은 크게 수리산둘레길, 수리산임도길, 자연마을길, 도심테마길로 나뉘고, 그 안에서 여러 길이 갈라진다. 그중 추천하고 싶은 코스는 임도길과 자연마을길 일부를 엮은 길이다. 코스는 대야미역~갈치호수~정난종 선생 묘역~덕고개 당숲~납덕골~수리사~임도오거리~철쭉동산~수리산역으로 이어진다. 이 길을 따르면 군포8경에 속하는 당숲, 수리사, 철쭉동산 구경은 물론, 수리산 깊은 품속에 숨은 납덕골 마을과 정난종 선생 문화유적 등을 만날 수 있어 금상첨화다.
지하철 4호선 대야미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좀 막막하다. 아직까지 군포수릿길을 알리는 흔한 이정표 하나 없기 때문이다. 역 앞에 세워진 수리산등산로 안내판에서 갈치호수, 임도오거리 가는 길을 확인했으면 출발이다.첫번째 목적지는 왼쪽으로 보이는 둔대초등학교. 도로를 따라 둔대초등학교 정문 앞에 서면, 왼쪽으로 신작로 같은 옛 도로가 보인다. 그 길을 따라 10분쯤 가면 이정표를 만나면서 반월호수와 갈치호수가 갈린다.
오른쪽 갈치호수 방향으로 꺾어지면 곧 큰 도로를 만난다. 터벅터벅 걷다보면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휙 지나간다. 대야미역을 들머리로 수리산 가는 길은 MTB마니아들에게 인기 코스다. 작은 동산처럼 보이는 호수 방죽에 올라서자 와~ 탄성이 터져 나온다. 군 시설물이 들어선 슬기봉이 우뚝하고, 아담한 갈치호수는 수리산 여러 봉우리를 담고 흔들린다.
분위기 좋은 방죽에서 내려와 다시 도로를 따르면 곧 갈림길. 덕고개는 왼쪽이고, 먼저 오른쪽의 정난종 유적을 둘러보는 것이 순서다. 호가 허백당인 정난종(1433~1489)은 황해도관찰사로 재직하며 이시애의 난 평정에 공을 세우고 이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성리학에 밝고 무엇보다 서예에 일가를 이루어 초서와 예서를 잘 썼다고 한다. 재실을 지나면 묘역으로 들어선다. 야산 중턱쯤에 조성한 묘역은 봉분이 많아 누가 누구인지 헷갈린다. 정난종의 묘지에는 크고 작은 문인상 한 쌍이 서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봉분 앞의 작은 묘비는 1496년에 세워졌으니 제법 역사가 깊다.
봉분 앞에서 뒤를 돌아보니 갈치호수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한눈에도 명당임을 알 수 있는 이곳은 정난종의 형 난손이 미리 보아둔 자리로, 먼저 세상을 뜬 사람이 묻히기로 했다는 일화가 내려온다.최근에는 동래군파 종손과 일가족이 18대째 내려온 종택과 인근 전답을 공공 문화유산으로 내놓았다고 하니. 참으로 뼈대있는 선비 가족이다.
덕고개로 가는 길은 휘파람이 절로 난다. 도로는 포장됐지만, 차가 뜸하고 상추, 고추 등이 자라는 주말농장의 풍경이 정겹다. 200m가 안되는 덕고개는 구렁이 담 넘듯 은근슬쩍 올라붙는다. 덕고개 고갯마루에서는 좌우로 임도가 갈린다. 덕고개에서 100m쯤 내려가면 유독 나무가 좋은 곳이 나오는데, 이곳이 당숲이다.
300여 년 지켜온 덕고개마을 당숲
울창한 숲터널로 들어서자 신성한 분위기가 전해오고 맑은 기운이 온몸으로 퍼진다. 좀 더 걸어가려 하니 길이 없다. "여기가 끝이에요." 숲 바닥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던 주민 아지씨가 말을 건넨다. "숲은 50m밖에 안되지만, 우리 마을에서 300년 넘게 지켜왔어요." 그의 말에는 자긍심이 묻어 있다. 이곳에서 군응제라 불리는 마을제사가 300여 년간 이어져 왔다고 한다. 철조망이 둘러쳐진 안쪽에 볏짚으로 둘러놓은 당집이 있다. 당집 옆 나뭇등걸에 한 아저씨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그림이다. 주변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린다.
당숲에서 내려서면 벽화마을로 유명한 납덕골이다. 벽화를 보는 사람 기분을 좋게하는 묘한 재주가 있다. 웃는 아이들, 애벌레, 기차, 비행기 등의 그림들은 동심을 불러 일으킨다. 납덕골은 벽화도 좋지만, 아담한 수리산 줄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어 마음이 포근해지는 멋진 공간이다.
작은 계곡이 졸졸 흐르는 물길을 한동안 거슬러 오르면 수리사다. 예전에는 대웅전 외에 36동의 건물과 산내에 132개의 암자가 있는 대찰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고 곽재우 장군이 말년에 입산해 중창하고 수도한 곳이다. 지금은 소박한 규모지만, 산세와 어우러진 모습이 아늑하다. 수리산의 이름이 바로 수리사에서 나온 것이다. 예전에는 어느 왕손이 이 절에서 기도하던 중 부처님을 친견했다고 하여 산 이름을 불견산이라 했다.
수리사에서 내려와 임도로 들어선다. 수리산 임도처럼 찾는 사람이 많은 곳도 드물다. 숲이 우거지고 걷기 편한 좋은 길이다. 구불구불 서너 번 모퉁이를 돌아서면 정자가 선 임도오거리에 닿는다. 수리산 슬기봉 일대의 모든 임도와 산길이 여기서 만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교차로다.
오거리에서 철쭉동산으로 가려면 '8단지 입구' 방향으로 내려선다. 70m쯤 가면 만나는 갈림길에서 능선으로 이어진 길을 따른다. 이정표가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 숲이 좋은 능선을 15분쯤 내려가면 도로를 만나면서 산길이 끝난다. 철쭉동산 가는 길은 도로를 쭉 타고 내려와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된다. 철쭉동산은 비록 사람이 심은 것이지만, 10만 여 그루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은 장관이다. 꽃밭 한가운데 있는 정자에 앉아 떠나는 봄에 작별을 청한다.
*군포수릿길 가이드
군포수릿길은 크게 수리산둘레길, 수리산임도길, 자연마을길, 도심테마길이 있다. 임도길은 구름산책길, 풍경소리길, 바람고개길로 나뉘고, 자연마을길은 당숲길, 안골길, 바람호수길로 갈라진다. 길이 많아 복잡하지만, 이 길들은 서로 연결되기에 취향에 맞게 코스를 잡는 것이 좋다. 이 글에 소개한 코스는 자연마을길의 당숲길과 임도길을 적절하게 엮었기에 주요 명소를 두루 거친다. 코스는 대야미역~갈치호수~정난종 유적지~덕고개 당숲~납덕골~수리사~임도오거리~철쭉동산~수리산역, 거리는 약 11.4km에 4시간30분쯤 걸린다. 군포수릿길은 아직까지 이정표 설치가 안 돼 중간중간 목표지를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다.
*교통
전철은 4호선 대야미역에서 내린다. 자가용은 영동고속도로 군포나들목으로 나오면 대야미역이 지척이다. 대야미역에서 갈치호수~덕고개~수리사~반월저수지~대야미역을 왕복하는 마을버스는 07:00~22:00 매시 정각에 대야미역을 출발한다.
*맛집
대야미역에서 출발했다면 덕고개마을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 좋다. 문화예술체험공간인 산화랑이 운영하는 식당 산화랑(031-437-6050)에선 친환경 농산물로 밥상을 차린다. 산화랑정식 7,000원.
참고:월간<산> 2011년 6월호 별책부록 '명품둘레길 63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