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대 마크
▲ 제5보병사단 철책근무
육군 제5보병사단은 1947년 12월에 제5여단으로 국군 창설과 때를 같이한 부대입니다. 당시에는 광주에 주둔하고 있었으며 후방부대로서의 공비 토벌 임무를 하다가 1949년 5월 1일에 육군본부의 창성과 함께 8개 사단의 일원으로 사단급으로 승격됩니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광주에서 수도권으로 부대가 옮겨갑니다. 창동 미아리전투에서 수도사단, 대전에서 올라온 제2보병사단(노도부대), 전선에서 퇴각한 제7보병사단(칠성부대)과 혼성부대를 이루어 북한군 제1, 3, 4, 6사단이 주축을 이룬 제1군단과 대치를 하던 중 패퇴를 거듭하여 결국 사단이 와해되고 맙니다. (제1차 사단해체)
이후 낙동강 전선에서 고착상태에 빠진 1950년 8월 대구에서 제5보병사단은 재편성되어 후방 방어 임무를 맡게됩니다. 그리고 38선을 돌파해 북진하는 연합군을 후방에서 지원하며, 포항, 지리산, 영주, 김천 등에서 공비 토벌 임무에 전력을 다합니다. 1.4 후퇴 이후 춘천으로 전개 방어를 하였고, 다시 홍천으로 진격해 들어갑니다. 중공군의 2월 대공세로 다시 부대가 와해되어 단양에서 재편성하게 되는 아픔을 겪습니다. (제2차 사단해체) 그 후 인제와 원통의 전투에서 승리를 하였고, 진격하는 중공군의 4월 대공세를 전력을 다해 방어합니다.
현리로 전개하여 피의 능선과 983고지, 351고지를 끝까지 사수하고, 전략 요충지 방어에 성공합니다. 백암산을 탈환하고 금성천 이남 지역을 수복하면서 휴전을 맡이하게 됩니다.
비록 후방에서 갑작스럽게 전쟁을 맞이하였고, 이후 두 번에 걸쳐 부대가 와해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계속되는 전투에서 그 전투력이 나날히 성장한 무서운 부대로 유명세를 떨칩니다. 1970년대 공수사단으로 지정받아 대원들이 공수훈련도 많이 받기도 하였으며, 현재는 R군단의 전투보병사단으로 DMZ를 관리하며 제1차 방어부대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 사단가
아름다운 내 조국의 완전통일 위하여
물불을 가림없이 한데 뭉쳐 싸운다
가평 춘천 탈환전 피의 능선 가칠봉
청사에 아로새긴 전공 세운 5사단
조국의 깃발 아래 민족의 이름으로
새세기 선봉에서 용감히 싸워 나가는
백전백승 열쇠부대 우리 5사단
슬기로운 내 겨례의 자유평화 위하여
화랑의 높은 기개 온몸 바쳐 싸운다
삼각봉과 백암산 치열한 전투에
달려든 붉은 적을 무찔러친 5사단
조국의 깃발 아래 민족의 이름으로
새세기 선봉에서 용감히 싸워 나가는
백전백승 열쇠부대 우리 5사단 |
첫댓글 내가 군대생활했던 5사단의 사단가 입니다 옛생각이 납니다 위 부대 마크를 부치고 다니던 젊은시절이 휙(속청으로 발음) 지나갑니다
근데 나는 속청이 잘안되서 "휙"이 안되겠네
그때는 위문편지쓰는게 연례행사였고 또 답장이오면 얼마나 자랑을 했는지 모르죠?
답장받으면 자랑하셨구나?
엣추억이 떠오르는 장면이네요 젊은추억은 아름답고 무었과도 바꿀수없는것아님니까![?](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앗 열쇠부대 철책근무 16개월 지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