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뜰
이 상 준
오래 전 법원청사 뜰에서 벌어졌던 그 황당한 일은 세월이 가도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흑백필름 같은 것이다.
내가 검찰청에 근무한지 3년쯤 되었을 때였으니까 한 15년 전 쯤 일이다. 일제 강점기 때 지었다는 허름한 청사에 약 300평 남짓한 마당이 있었다. 관공서의 마당치고는 너무 비좁아서 민원인들은 거의 그 공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로 직원들의 주차장으로 이용 되었다.
그날도 마당에는 법원직원과 검찰직원들이 타고 온 승용차들이 빈 주차 공간을 거의 채우고, 약간 늦게 도착한 직원들이 행여나 지각할세라 헐레벌떡 현관으로 뛰어들기도할 무렵이었다. 낡은 지프차 한대가 덜덜거리며 청사 앞마당으로 불쑥 들어섰다. 들어설 때부터 멈칫거리거나 혹시라도 튀어나올 차들에 대한 경계심도 없이 큰 도로에서 그대로 꺾어 들어오는 폼이 좀 수상쩍긴 했다.
창가에서 물끄러미 그 모습을 내다보고 있던 나는 출근에 쫒기는 저쪽 공장(검찰에서는 법원을 그렇게 불렀다) 직원이었거나, 뭔가 급한 볼일이 있는 민원인 정도로 여겼다. 그러면서도 어떤 놈인지 운전을 배워도 참 잘못 배웠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우회전 깜빡이라도 넣어주는 게 뒤따르는 차들에 대한 예의일 것인데, 무작정 차를 꺾어 들어오는 모습이 못돼먹은 망나니 같다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그런데 덜덜덜 소리가 나는 지프차를 자세히 보니 그 몰골이 가관이었다. 좌측에 있는 바퀴들이 전부 펑크가 나서 공기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차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바퀴의 철제 휠 부분과 시멘트 바닥이 마찰되어 마치 철도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가 내는 그 소리처럼 철거덕 철거덕 굉음을 내고 있었다. 운전자는 한쪽으로 기우뚱한 자세에서 핸들을 잡고 있었는데, 보통사람이 그런 상태로 운전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차는 청사 마당에 들어서자말자 주차장으로 가는 게 아니라 오던 속력 그대로 법원 건물 쪽으로 돌진하는 것이었다. 아차! 하는 순간에 그 차는 법원 현관을 들이받아 버렸다. 텔레비전에서나 본 자살폭탄테러의 모습이 그와 같았다. 다행이 현관은 대리석 계단의 층계 위에 있었으므로 차가 올라갈 수는 없었지만, 섬뜩하니 살기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겁주기 위해 형식적으로 취한 행동이 아니라 정말 법원을 깡그리 부수거나 사람을 치어 죽일듯한 실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사람은 차를 뒤로 후진시켰다가 다시 돌진하기를 서너 차례 더 한 것으로 보아 작심을 해도 크게 한 것 같았다. 그때마다 바퀴의 쇠로 된 휠 부분과 대리석 계단이 부딪쳐서 찢어지는 듯한 쇳소리가 났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이 실제상황에 혼비백산하여 용수철에 튕긴 물건처럼 뒷문으로 튀어나왔다.
더 이상 현관으로 진입하기가 곤란하자 지프차 운전자가 핸들을 옆으로 꺾었다. 직원들이 몰려나와 우왕좌왕 하는 사이 그는 이제 차를 몰아 마당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들이받기 시작했다. 광란의 질주란 바로 이런 광경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50여대의 승용차의 목숨이 백척간두에 달려있었다. 맨 먼저 김 주임의 차가 작살났다. 들이받는 순간 우지직 하고 뒤 범퍼가 떨어져나가더니 창문에 거미줄 같은 금이 갔다. 당황한 김 주임이 밀대자루를 들고 뛰어나가며 “내 차가 무슨 죄가 있노!” 고함을 질러댔지만, 핸들을 이쪽으로 꺾으며 달려오는 그 차를 보자 찍소리도 못하고 되돌아왔다. 그 모습이 흡사 고양이에게 쫒기는 쥐의 신세 같았다. 그 옆에 있던 황 계장의 차는 옆 문짝이 움푹 들어가면서 유리알이 바닥에 흩어졌다. 황계장의 눈에서도 유리알이 튕겨져 나왔다. 여기저기서 “저 놈 잡아라!”는 소리가 들려나왔다. 몰려나온 법원직원과 검찰직원이 어림잡아 100명은 될 것 같았지만, ‘저 놈’을 잡기 위해 뛰어나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평소 민원인들에게 그렇게도 용감하던 검찰청의 청원경찰과 법원의 수위는 다 어디로 숨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허기야 이런 비상사태에 얼굴을 내 밀었다가는 맨 먼저 저승구경을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처자식이 걱정 되어 아예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평상시에는 몸을 꼿꼿 세우고 폼을 잡던 최 판사도 이날만은 보통사람으로 돌아와 “저 녀석 신고하라!”며 허둥허둥 뛰었다. 경찰을 부르라고 고함을 지른 건 검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도, 사사건건 옥신각신하던 검찰과 법원이 이렇게 한 목소리로 결속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이날만은 모두가 한 식구였다.
내 차가 걱정이었다. 비록 중고였지만 거금 400만원을 주고 구입하여 애지중지하던 내 ‘프레스토’ 승용차의 운명이 바로 코앞에서 왔다 갔다 했다. 그 괴한이 제발 내 차한테만은 가지 말았으면 하고 하느님께 빌었다.
지프차가 움직일 때마다 그 근처에 주차해 둔 차 주인들이 어!~어! 괴성을 질러댔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차를 구하려고 용감하게 뛰어들어 귀중한 목숨을 바쳤다간 ‘검찰공무원 차 구하려다 순직, 아침에 법원 마당에서......’라는 제하로 그날 석간신문에 크게 날 일이었다.
마당에는 깨어진 유리조각과 떨어진 범퍼, 찌그러진 차들로 난장판이 되는 동안, 현관 안에서는 직장 특유의 논쟁이 벌어졌다. 검찰 측에서는 재판에 불만이 있는 사람이 법원을 찾아와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라고 원인을 법원 쪽으로 돌렸다. 안 그러면 괴한이 법원 현관을 들이받을 이유가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법원이 권위의식에 꽉 차서 민원인들을 홀대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거라고 몰아붙였다. 그러자 법원직원들은 펄쩍 뛰었다. 목에 힘주는 것은 오히려 검찰이었다며 그 화살을 이쪽으로 돌리기에 바빴다. 조사에 불만을 품은 고소인이거나 억울하게 구속된 피의자의 가족일거라고 했다. 민원인이 검찰과 법원 건물을 어떻게 구별하겠느냐며, 법원건물을 검찰청 건물로 오인하고 테러를 한 것이라고 박박 우겼다.
논쟁이 가열되자 어떤 사람이 나서서 술에 취한 사람이 객기를 부리는 것이라며 논쟁을 중단시키려고도 했다. 이 상황에서도 판사가 있었고 검사가 있었고 그 사이에 변호사가 있었다.
누가 원인행위를 제공했는지에 대해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서가 바로 담장 옆에 있었지만 출근 시간이라 상황이 제대로 전파가 안 되었는지 신고한 시점에서부터 출동한 시점까지 한 20여분 걸린 것 같았다. 평소 같으면 출동이 늦었다며 시말서를 징구해야하느니 어쩌니 따질 일이었지만, 그날은 경찰이 그 장소에 와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이럴 때는 경찰이 최고였다.
경찰 중 한 사람이 겁도 없이 괴한의 차 앞으로 다가가더니 그의 시선을 이리저리 끌었다. 그 모습이 마치 투우하는 투우사와 같았다. 그 사이 한 경찰관이 잽싸게 움직이는 괴한의 차위로 뛰어올랐다. 그것은 목숨을 건 도전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차안에 탄 사람의 멱살이 경찰의 손에 잡혔는가 싶었는데, 바로 차문이 열리더니 한 사람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이제 마당에 엎어진 그 사람이 누구이며, 왜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까 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쓰러져 있던 40대 중반의 남자는 예상과는 달리 술 냄새도 풍기지 않는 멀쩡한 사람이었다. 다가간 사람들에게 저항하거나 달려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호기심 찬 눈으로 차 안을 살펴보던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뜻밖에도 예닐곱 정도의 남자 아이가 겁에 질린 채 조수석에 타고 있었던 것이다. 괴한이 아들까지 데리고 와서 아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엄청난 짓을 했던 것이다. 차 안에 있는 아이는 마치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울지도 않았다. 멍하니 앉아있는 게 이미 이 세상사람 같지가 않았다. 아니 며칠을 굶었는지 백지장 같은 얼굴에 핏기 하나 없었다. 허기가 져 울 힘조차 없었는지 축 늘어져 있었다. 그 죽을 것 같은 공포를 이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며 견뎠을까. 눈물이 핑 돌았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 사람은 원양어선 선원이었다. 돈을 벌어 아파트를 살 요량이었다. 애써 번 돈을 꼬박꼬박 부인에게 송금하였다. 꿈에도 그리던 집을 한 채 장만하여 가족들이 오순도순 남들처럼 살 것이라 생각하면 갑판위의 새우잠도 그에게는 낙이었다. 3년 동안 억척스럽게 돈을 벌었다. 그러나 선원생활을 청산하고 집에 와보니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졌다. 부인이 바람이 나서 벌어준 돈을 몽땅 날려버렸던 것이다. 남편이 나타나자 지레 겁을 먹은 부인은 아예 가출까지 하고 말았다. 남편은 그래도 용서하며 아내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노력하였으나, 한번 바람이 지나간 부인의 가슴을 되돌리진 못했다.
부인이 먼저 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남편은 이혼만은 절대 안 된다며 재판기일에 출석도 하지 않았다. 당사자가 재판에 참석하지 않으면 설마 이혼이야 되겠나 싶었다. 그러나 이혼판결이 났다. 남편이 재판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고 측인 부인의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이른바 ‘의제자백 판결’로 졸지에 이혼을 당했던 것이다. 남편은 부인도 잃고 돈도 잃었다. 남겨 진 것은 어린 아이와 빈털터리인 몸뚱이가 전부였다. 억울하고 분해서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두 어 달을 술로 보내다가 결국은 정신이 돌아버린 것이다.
그는 해당 재판관이 부인과 한편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모두 죽이고 자신은 아들과 동반자살을 하기로 작정했다. 전날 밤에는 밤새도록 잠 한 숨 자지 않고 판사를 어떻게 죽일지 궁리를 하다가 날이 새자말자 차를 몰고 법원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포항에서 경주까지 오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너 죽고 나 죽는다’는 일념뿐이었을 것이다.
경찰관들이 그 사람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그 광경을 아이가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비틀거리며 마당 밖으로 끌려 나갔다. 이제 폭풍이 지나간 황량한 마당에 아이만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집나간 엄마와 정신병에 걸린 아버지, 그 사이에서 오갈 데 없는 아이가 청사 마당에서 버려진 듯 있었다.
여직원들의 눈에서부터 이슬이 고였다. 한참 후에 시청 복지과 직원들이 아이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질 때 까지 직원들은 일손을 잡지 못하였다.
아버지의 징역형이 확정되면 아이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그게 걱정이었다.
(2007.10. 서라벌 수필 원고)
첫댓글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이 아릿함은 저 또한 무정한 삶에 맥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한 목숨이라서일까요. 지금 그 아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첨엔 멋 모르고 한참을 웃다가 사연을 알고는 한참 가슴아프다가~~그 아이 궁금하네요 많이 컸을텐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