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받아 주신 이 곳에 계신 라하 팬분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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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올!”
요이, 은뉴와 헤어지고 걸음을 재촉하던 중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역시나 익숙한 목소리로 올이는 걸음을 멈췄고 곧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올이의 어깨에 손을 탁 올려놓았다.
“구름이 안녕. 그런데 다른 애들은 어쩌고 혼자 와?”
“아침엔 되도록 스스로 일어나게 놔두거든.
아침을 같이 먹는 것도 아니고, 아 그렇다고 우리들이 완전 남남처럼 지낸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선을 지킨다고 해야 하나.
……‘혼자’ 라는 단어를……선호하는 얘들이니까.”
“……그렇구나.”
"야 남궁 운!"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운이를 부르는 목소리.
운이는 뒤를 돌아보고는 방긋 웃었고 올이도 뒤를 돌아 목소리의 근원을 바라보았다.
같은 교복을 입고 있는 남학생 두 명.
명찰색이 운이와 같은 걸로 보니 삼학년.
“누구야?”
“내 친구들.”
“그래? 그럼 친구들하고 천천히 와. 난 먼저 갈게.”
올이는 운이의 친구들이 점점 다가오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돌려 학교로 가려고 했고 운이는 돌아서는 올이의 손목을 잡아 올이의 걸음을 멈췄다.
“착한 애들이야.”
“응 구름이의 친구니까 착하겠지.”
“그런데 왜 피하는 거야?”
“……잠시 잊고 있었어. 내 시간은 한정 되어 있다는 것을.
바보 같다는 것은 알지만 더 이상 늘리고 싶지 않아.
인연이라든지, 소중한 사람이라든지……하는 것들.
헤어질 때 더 아플 뿐이니까.”
“헤어지는 게 무서워서 포기한다는 건……너무……슬프잖아. 올아…….”
올이는 조금은 슬픈 표정으로 웃어 보이더니 운이의 등을 살짝 때리고는 발걸음을 돌려 학교로 향했고 곧 운이의 친구라는 두 인물이 운이의 앞에 섰다.
“운 안녕! 옆에 누구 있지 않았어?”
“있었어. 내 친구”
“누군데? 우리학년? 전학 왔어?”
“아니, 2학년.”
“2학년이 너랑 친구야?”
운이는 자신에게 계속 질문을 해대는, 갈색머리의 귀여운 얼굴을 가진 남자의 머리를 부비거리며 말했다.
“사정이 있다. 승현이는 신경 꺼, 알겠지?”
“뭐야 지금 빈정거리는 거지!”
“야 정우야 네 아들 데려가라.”
“아들은 무슨……승현아 가자.”
승현이와 정우라 불린 아이들은, 특히 정우라 불린 아이는 운이의 얼굴을 보더니 승현이라 불린 아이의 뒷덜미를 콱- 부여잡고 학교로 들어갔고, 운이는 아직도 저 멀리서 걸어가는 올이의 뒷모습을 보다가 또다시 후- 하는 한숨을 내뱉었다.
올이는 운이에게 인사를 한 이 후 축- 쳐진 어깨를 하고는 교실을 들어갔다.
올이는 이제 지정석이 되어버린, 그 자리로 걸어가 전학 처음 날처럼 책상에 엎드렸다.
얼마나 이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까.
만약 그 아이가 찾아……온다면 그 즉시 이곳의 생활을 버리고 옛날의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주니를 포함한 아이들과……인연을 만든 것도 잘못한 것일지도…….
올이는 갑자기 이마에 있던 상처가 쓰린 느낌을 받았고 얼굴을 찌푸렸다.
“야, 왜 그래? 아프냐?”
그때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 오존이가 올이의 등을 살짝 툭 치면서 말했고 올이는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
“흠…….”
올이가 방긋- 웃으며 말하자 오존이는 뭔가가 걸린다는 표정으로 올이의 얼굴을 보더니 올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상을 살짝 구겼다.
“뭐야, 왜 갑자기…….”
“아픈 거 맞는 것 같은데…….”
“몸 하나도 안 아파.”
“몸이 아니라 여기. 여기가 아픈 건 쉽게 숨길 수 없어.”
“…….”
“억지로 밝은 척하고, 억지로 웃고, 억지로 행복한 척해도……달라지는 건 없어.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고민스럽고, 답답할 뿐이지.”
“…….”
“남이 어리광 부리고, 짜증내고, 화내고, 하소연 하는 거 듣기 싫어.
하지만 넌……괜찮아.
항상 웃으니까, 항상 밝은 척 하니까……여기는 슬픈 널 알아봐주는 사람은 얼마 없으니까……너만 괜찮다면 내가 들어줄게.
네 맘이 편하다면……가끔은 화내고 하소연해도 괜찮아.
짜증내도……괜찮다고.”
“……복잡한 문제가 있어. 그걸 풀 수 있는 방법은 알고 있어.
하지만 그걸 풀면……안 돼. 아직은……아직은 안 돼.
난 이곳에서 어떤 것도 할 수 없는데……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싫어.
답답하고 복잡하고.
……아! 미안, 나도 모르게 횡설수설…….
그냥 잊어버려.”
어두운 표정으로 띄엄띄엄 말하던 올이는 이내 평소처럼 생글 웃고는 오존이에게서 고개를 돌렸고 오존이는 그런 올이를 바라보다가 이내 올이의 팔을 잡고 엎드려 있던 올이를 세웠다.
“나랑 놀자. 오늘 한 올과 금 오존은 조퇴 한 거야.”
17
“ㅁ, 뭐 하자는 거야?”
“나랑 놀러가자.”
“어딜?”
오존이는 올이의 팔을 잡고는 후문으로 몰래 학교를 빠져나왔고 올이는 영문도 모른 채 오존이에게 질질 끌려갔다.
두 사람은 학교 주변을 벗어나 시내 쪽으로 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교복차림의 오존이와 올이를 힐끔 쳐다봤지만 오존이는 그런 사람들은 무시한 채 어딘가로 계속 걸었다.
“교복차림이니까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신경 쓰지 마. 한 번 보고 안 볼 사람들 이니까.”
얼마나 걸었을까.
오존이는 곧 발걸음을 멈췄고 올이는 주변을 둘러봤다.
“또 오락실?”
“너 저번에 자요이랑 둘이 구경만 했던 거 알아. 오늘은 이거.”
오존이가 손으로 가리킨 것은 다름 아닌 펀치기계.
오존이는 씨익 웃고는 주머니를 뒤져 나온 동전을 기계에 넣었다.
“쳐봐”
“뭐?”
“그냥 이렇게 팍- 쳐 버려봐.”
말과 동시에 주먹으로 힘껏 기계를 쳐버리는 오존이.
유달리 커다란 그 소리에 주변 사람들은 오존이를 쳐다봤고 오존이는 얼떨떨하게 서 있는 올이게 말했다.
“이거 보기보다 꽤 재밌어.”
올이는 어색하다는 듯 칠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있는 힘껏 주먹으로 기계를 내리쳤다.
점수가 올라가고, 비록 오존이에게는 못 미치는 기록이었지만 올이의 표정은 굉장히 밝아보였다.
“어때?”
“아……!”
올이는 오존이를 향해 밝게 웃어보였고 오존이는 그런 올이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다시 손목을 잡고 올이를 끌어당겼다.
오존이는 올이가 이제는 별 의심 없이 자신을 따라오는 것을 알자 조심스럽게 손목을 놓았다.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시내 안쪽으로 들어갔고 오존이는 가끔씩 뒤를 돌아 올이를 확인하면서 길을 걸었다.
올이는 혹시라도 길을 잃을까 하는 불안감에 오존이의 뒤통수만 쳐다본 채 길을 걸었지만 역시 간간히 뒤처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존이는 뒤쳐지는 올이를 보고 한숨을 푹 쉬고는 뒤를 돌아 올이의 손을 잡고는 자신의 교복 끝을 잡게 했고 놓지 말라는 말을 하며 미소 짓고는 앞으로 향했다.
올이는 행여나 놓칠까 오존이의 교복을 꽉 쥐었고 오존이는 그런 올이가 귀여웠는지 살짝 올이의 볼을 꼬집었다.
올이는 자신의 볼을 꼬집는 오존이를 부루퉁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자신 앞에 있는 건물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반매장?”
“너 항상 mp3플레이어 듣고 있길래, 좋아하나 싶어서. 싫어해?”
“아니, 좋아해!”
꽤 넓은 가게 안.
옛날 음반부터 최신 음반까지 올이는 신기하다는 듯 여기 저리를 돌아다녔고 오존이는 그런 올이를 웃으며 쳐다봤다.
곧 올이는 걸음을 멈춰 뉴에이지 쪽의 CD를 하나하나 보기 시작했고 오존이는 올이 몰래 올이의 뒤에 가서 올이의 귀에 헤드셋을 씌웠다.
올이는 깜짝 놀라 헤드셋을 빼려했지만 오존이가 헤드셋의 바깥쪽을 자신의 손을 살짝 눌렀고 올이는 오존이의 짓인걸 알고는 입을 삐쭉거렸다.
“뭐하는 거야?”
“들어봐.”
……좋아하는 아티스트.
올이는 플레이어 안에 들어있는 CD를 들여다봤고 역시나 그 안에는 가장 즐겨듣는 아티스트의 앨범이 재생되고 있었다.
우연……?
혹은,
일부러……?
놀란 표정의 올이를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오존이.
알고……있었구나.
“그만 가자.”
“또 어디를 가?”
오존이는 올이의 귀에 있던 헤드셋을 빼 원래자리에 놓고는 올이의 손목을 잡고 나왔다.
오존이는 시내를 빠져나와 주택가로 들어섰고 곧 주택가를 빠져나와 이번에는 공원에 도착했다.
올이는 공원의 구경으로 정신이 없었지만 오존이는 공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관심이 없는지
오직 앞만 보고 걸었다.
올이는 그런 오존이를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이내 오존이가 멀어지자 살짝 빠른 걸음으로 오존이의 뒤에 섰다.
오존이는 공원을 가로질러 다른 입구로 공원을 빠져나왔고 입구 앞에는 산이라도 되는 듯
꽤 높은 계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설마 여기 올라가야 되는 거야?”
“오기 싫으면 말고 나 먼저 간다.”
“나 여기 길 몰라! 오존아!”
오존이는 올이를 살짝 돌아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고 올이는 울상을 짓고는 오존이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빠른 걸음으로 올라가던 곧 오존이는 올이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올이는 한숨을 푹 쉬고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는 다시 계단을 올랐다.
얼마나 더 올랐을까.
올이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고 겨우겨우 맨 위의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높은 지대라 그런지 시원한 바람이 땀이 맺힌 이마를 스쳤고 올이는 가만히 눈을 감아 그 바람을 느꼈다.
“앗!”
갑자기 이마에서 느껴지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체.
올이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봤다.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올이의 손에 캔 음료수를 쥐어주는 오존이.
“고생했다.”
“아, 고마워”
“원래는 밤에 와야 되지만 뭐, 낮에 와도 나쁘진 않아”
오존이는 올이의 팔을 잡고 올이를 일으켜 세웠고 올이를 위 쪽으로 끌었다.
계단위에 위치한 평지.
조그만 정자와, 벤치들.
그리고……밑으로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전경.
“와…….”
“기분 어때?”
“좋아…….”
“네가 뭐 때문에 답답한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해결하면 안 되는 문제라면서.
그렇다면 그냥 불안해하지 말고 이렇게 지금을 즐기면 되는 거야.
미래를 위해 준비해라, 나중을 위해 대비하라…….
준비하는 것도 좋고 대비하는 것도 좋지.
그게 현명한 것이라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우린 그냥 아직 어린 고등학생일 뿐이야.
우린 현명하지 않고, 반드시 현명할 필요도 없잖아.
그냥 지금을 즐기면 그걸로 좋은 거 아니야?
지금 이 순간을 이렇게 놀면서 보내면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나중에 언젠가 과거를 후회할 때 즈음 지금 이 순간을, 미래를 준비하는 것보다 더 나은 좋은 추억으로 만들면 그거야 말로 성공한 거잖아.
충전의 시간이라 해도 좋고, 스트레스 해소의 시간이여도 좋아.
물론 바보같이 놀기만 하는 것도 나쁘지만, 그렇다고 준비만 하는 것도 바보 아냐?
우린 10대잖아.
10대 라는 나이를 불편한 걸로만 생각하지 말고 즐기면 되는 거야.
어리니까, 뭘 모르니까, 이렇게 즐길 수 있는 거야!
알아도 모른 척하고, 모르면 모르는 데로 그렇게 그냥 흘려보내면 되는 거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소리치듯, 큰 소리로 말하는 오존이.
그런 오존이의 말에 올이는 가슴이 조금 뭉클 하다.
10대니까, 어리니까 아무것도 모른 척 하고 즐겨…….
……지금은……즐겨도 되는 거야?
“야! 금 오존! 한 올! 으, 힘들다!”
저 밑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올이는 상상이 가는 이미지에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곧 주니와 도운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나 짜증을 한가득 품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도운이의 모습은 오존이를 박장대소 하게 만들었고 도운이는 오존이의 얼굴에 오존이의 가방을 던지는 것으로 오존이의 입을 막았다.
“……네가 없는 지금은……조금은 즐겨도 되는 거니……별아?”
18
“뭐? 또 오락실이라고? 나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왜 자꾸 오락실이야…….”
“알려줄게.”
시내에 모인 넷.
주니는 오락실을 가자고 올이를 달래고 있다.
도운이는 아무 말도 없지만 오락실에 가고 싶은 눈치다.
올이는 할 줄 아는 게임이 없다며 다른 곳을 가자고 하고 있다.
오존이는 그저 아무 곳이나 가라는 식으로 아예 다른 쪽을 보고 있다.
“……알겠어. 가자.”
그리하여 할 수 없이 오락실로 질질 끌려가는 올이.
주니와 도운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방긋방긋 웃었고 얼마 안가 곧 오락실에 도착한 네 사람.
올이는 어찌할 바를 몰라 세 사람을 쳐다봤다
아무 곳이나 가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좋은지 오존이는 도운이와 오락실 안쪽으로 쪼르르 들어가 버리고 주니는 약속대로 올이를 데리고 오락실 안 쪽으로 데려갔다.
“어떤 거 알려 줄까?”
“음…….”
“테트리스 해봤어?”
“테트리스? 컴퓨터로 해봤는데.”
“그럼 이게 블록 바꾸는 거고 이게 떨어뜨리는 거.”
“아.”
신기하다는 듯 오락기 버튼을 살짝 살짝 눌러 보는 올이.
그런 올이가 귀여운지 주니는 올이의 머리를 마구 부비거리더니 동전을 넣고 올이와 의자에 앉았다.
조금은 어색한 듯 실수를 하는 올이었지만 곧 익숙해졌는지 곧 잘 해냈고 주니는 올이가 하는 걸 지켜보더니 이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너 여기서 이거 하고 있어. 저쪽에 있을 테니까.”
“응.”
테트리스에 푹 빠진 듯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은 잘하는 올이.
주니는 의자에서 일어나다 말고 다시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주니가 다시 자리에 앉은 지도 모르고 게임에 몰두 하는 올이.
주니는 그런 올이를 가만히 관찰했다.
여자같이……생겼다.
아니, 여자보다는 인형같이 생겼다는 게 맞는 표현일까.
유달리 가느다란 손목과 손.
특히나 새하얀 피부는 여자애들 사이에서도 찾기 힘든 빛깔.
주니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엄지손가락으로 올이의 볼을 쓸었고, 올이는 게임을 하다말고 주니를 바라보며 천진하게 웃어보였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아니!”
갑작스럽게 벌떡 일어난 주니 때문에 ‘쿵-’ 소리와 함께 의자가 뒤로 넘어가고, 올이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서 게임에서 손을 떼고 주니를 바라봤다.
“주니야 갑자기 왜 그래?”
“아니, 그…… 밥! 밥 먹으러 가자고.”
“아……. 그래 밥 먹으러 가자.”
주니는 의자를 대충 세워 놓고는 오존이와 도운이가 있는 쪽으로 가버렸고 올이도 테트리스를 힐끔 보다가 주니를 따라 걸어갔다.
모형 오토바이에 올라 신나게 달리고 있는 오존이와 조금 울상으로 핸드폰을 뽁뽁거리며 누르는 도운이.
“도운아 무슨 일……있어?”
올이가 도운이 앞으로 걸어갔고 오존이는 도운이를 힐끔 보더니 다시 게임에 눈을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냥 놔둬. 보나마나 오락실 왔다고 자요이한테 혼나는 중일걸.”
“풋, 알았어. 주니가 밥 먹으러 가자는데…….”
“배고프냐?”
“뭐……좀.”
“……그럼 은진 선배나 보러 가자.”
오존이는 도운이에게 어깨동무를 하더니 도운이를 데리고 오락실을 빠져나왔고 올이는 걸어나가는 주니를 톡톡 치며 입을 열었다.
“누구야?”
“운이 형 선배가 하는 가게 있어. 카페 같은 건데 식사도 돼.”
“구름이의 선배라면……너희 선배도 되는 거 아니야?”
“……뭐.”
주니는 대강 올이의 말을 흘리며 대답하고는 저 앞으로 걸어갔고 올이도 별 말 없이 주니를 따라 걸어갔다.
그렇게 네 사람은 오락실에서 빠져나와 시내 중심가로 걸어갔다.
요이에게 문자를 하며 계속 울상인 도운이와 그런 도운이를 위로하는 오존이.
주변 지리를 물어보는 올이.
올이에게 이 곳 저 곳을 손가락으로 찍으며 알려주는 주니.
교복을 입은 탓인지 아니면 남다르게 잘 생긴 외모 탓인지 걸어가면서도 꽤 이목이 집중됐지만 오히려 네 명은 관심이 없는 듯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어느 정도 걷다가 걸음을 멈춘 넷.
제일 앞에 걷던 오존이가 가게 문을 열었고, 연 순간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업 아직 안 해요.”
유니폼을 입은 채 ‘일 하기 귀찮아요.’ 라는 분위기를 풍기며 슬렁슬렁 대걸레질을 하고 있는 남자.
“선배 안녕하세요.”
“아, 너희들 이냐.”
그 남자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고 한 쪽 눈썹을 찡그리며 앞에 서있는 아이들을 찬찬히 둘러봤다.
“아……? 문 주니, 금 오존 각자 옆으로 두 발자국만 가봐.”
“네?”
“가라면 가봐.”
주니와 오존이는 영문도 모른 채 각자 왼쪽과 오른쪽으로 찢어졌고, 그 둘의 뒤에 있던 올이의 모습이 자연스레 드러났다.
“오, 뉴 페이스.”
“전학생이에요.”
“그래?……친구?”
“…….”
“네, 친구에요.”
조금은 머뭇대는 도운이와 주니.
하지만 오존이는 조금의 머뭇거림 없이 바로 대답했고 도운이와 주니는 그런 오존이를 조금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은진은 무언가를 파악하듯 아이들을 쭉 둘러보고 얼마 후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시원스런 미소를 지었다.
“밥 줄 테니까 밥이나 먹어라. 안 귀여운 후배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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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도 않아, 네 종류의 리조또를 들고 나온 은진.
아이들은 각자 선호하는 리조또를 골라 집었고 올이는 마지막 남은 접시 하나를 자신의 앞으로 끌어왔다.
별말도 없이 조용히 리조또를 먹는 아이들.
접시에서 시선을 떼고는 옆을 돌아보던 올이는 아이들을 바라보던 은진과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흠-’ 하는 헛기침과 함께 시선을 돌리던 은진은 올이가 자신을 계속 바라보는 것을 느꼈는지 조용히 손짓을 했고 올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은진 쪽으로 걸어갔다.
함께 구석으로 걸어간 두 사람.
먼저 입을 연건 올이였다.
“왜……그렇게 쳐다보셨어요?”
은진은 주머니에서 다시 담배를 꺼내 입에 꺼내 물었고 불을 붙였다.
뽀얀 연기가 은진의 입술에서 흘러나오고 은진은 자신 뒤에 있던 벽에 등을 기댔다.
“…….”
“……네?”
“글쎄……. 자식들, 아직도 저 모양이네. 싶어서.”
“무슨…….”
“아직도 저렇게 지들끼리 똘똘 뭉쳐서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나 싶어서 봤다. 그래도 오늘은 좀 신선하네. 이렇게 뉴 페이스도 보고.”
“…….”
“솔직히 조금은 놀랐다. 평생 세 명이서, 아니지 좀 포함하자면 운이 자식이랑 꼬맹이 요이랑 그렇게만 똘똘 뭉쳐 살 것 같았는데 네가 저기에 껴 있어서 말이야.”
“그러……세요?”
“운이가 소개 시켜준 이후로 내 음식이 입맛에 맞는지 자주 찾아오긴 했지만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듯 항상 선을 그었지. 반말 써도 된다, 존댓말 하지 마라, 선배라 안 불러도 된다, 형이라고 불러라……했지만 끝까지 존댓말에, 선배를 붙이더군. 친해지고 싶지 않았겠지. 어떻게 보면 난 저 아이들에게 거절당한 건가?”
“…….”
“넌……좀 특별해 보이긴 하지만 좀 더 분발해야겠는걸. 금 오존 자식은 잘 사로잡은 것 같은데 다른 것들은 아직 인 거 보니까.”
그는 담배 연기를 다시 한 번 뱉고는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려 발로 밟고, 올이의 머리를 마구 부비 거리고는 홀로 나갔고 올이는 은진이 건드렸던 머리를 정리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형, 아직도 오픈 안했어? 이러다가 주인 누나한테 형 맞겠다.”
“오랜만에 귀여운 후배님들이 와서 말이지.”
“귀여운 후배도 좋지만 시계는 틈틈이 보는 게 좋을 텐데.”
“젠장!”
홀 쪽에서 들려오는 몇몇의 목소리들.
올이는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는 홀로 나갔고 그 곳에는 홀을 정신없이 정리하는 은진과 두 명의 남학생이 서 있었다.
곧 두 명의 남학생은 갑자기 나타난 올이를 힐끔 쳐다보더니 주방 쪽으로 들어갔고 올이는 아이들이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곧 은진이 대걸레를 빨러 화장실로 들어가고, 주니는 지갑을 열어 만 원 권 몇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올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곧 오존이와 도운이도 따라 나오고 올이는 조금 이상하다는 표정을 주니를 올려다봤다.
주니는 올이의 의문을 대충 파악했는지 다른 곳을 보며 조금은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은진 형 선배고, 좋은 사람인 건 알지만 더 이상 접근 하는 건 좀 싫거든.”
“아…….”
“그만 돌아가자.”
“그럼 난 이 쪽으로 이만 갈게. 내일 보자.”
아이들과 방향이 반대쪽인 올이는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가려 했으나 갑작스레 손목을 잡아오는 손길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뒤를 돌았다.
손목을 잡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주니.
주니 자신도 자신의 행동에 놀랐는지 조금 얼떨떨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빙그레 미소 짓고는 입을 열었다.
“……놀다가 이따가 저녁 밥 해줘.”
“……아?”
“네 밥 맛있어. 그러니까 저녁 밥 해줘.”
조금은 억지스럽고 어리광 같은 말투.
하지만 올이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주니는 올이의 행동에 한 층 더 밝게 미소 지었다.
“옷 갈아입고 나올게.”
주니, 오존, 도운은 집에 오자마자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고 올이는 널려있는 물건들을 피해 소파로 걸어가 가방을 내려놨다.
남자들 끼리 사는 집이라는 걸 확인이라도 시켜주는 듯 지저분한 집안.
딱히 먼지나 더러운 것들이 돌아다니는 건 아니었지만 여기저기 널려있는 물건들이 꾀나 지저분해 보였다.
올이는 주변에 굴러다니는 물건들을 대충 정리를 하며 아이들을 기다렸고 곧 옷을 갈아입은 오존이가 방에서 나오고, 도운이와 주니가 2층에서 1층으로 내왔다.
“뭐 할 거 있어?”
“아니…….”
“봄이어서 그런지 되게 나른하다.”
“TV나 켜봐.”
주니는 나른하다는 표정으로 쿠션에 얼굴을 파묻었고 도운이는 옆에 있는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어느덧 네 사람은 조용히 TV에 집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돌아다니느라 피곤했는지 올이가 꾸벅꾸벅 졸다가 자신 옆에 있던 오존이에게 스르르 기대 잠들었고 도운이는 그 모습을 보더니 자신에게 있던 쿠션을 오존이에게 넘겼다.
오존이는 쿠션을 받아 올이가 편하게 잘 수 있게 바닥에 눕혔고 쿠션을 올이의 머리에 받쳐주었다.
곧 주니도 도운이의 다리를 베고 잠들었고 도운이는 오존이가 올이에게 해준 것처럼 자신의 다리 대신 소파의 쿠션을 주니의 머리에 조심스레 받쳐주었고 곧 두 사람도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스르르 잠에 빠졌다.
20
“귀엽게도 자네.”
바닥에서 자고 있는 올이와 주니를 지나, 테이블 위에 바이올린케이스를 올려놓는 운이.
“아, 음. 형 왔어?”
눈을 게슴츠레 뜨며 세수하듯 한손으로 얼굴을 비비는 오존이.
유난히 잠귀가 밝은 탓에 운이가 들어오는 소리에 깬 모양이다.
“미안, 소리 컸나보다.”
“괜찮아. 슬슬 일어나야지”
오존이가 시계를 보며 눈을 찡그렸고 운이는 그런 오존이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냉장고로 걸어갔다.
“그런데 왜 거실에서 이렇게 자고 있어?”
“그냥 어쩌다보니까……. 이건 뭐야?”
바이올린케이스를 가리켜 물어보는 오존이.
운이는 냉장고문을 열다 말고 거실을 힐끔 들여다보더니 ‘아아-’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하면 열어봐. 대신 흠집 내면 안 된다.”
운이는 옷을 갈아입으려는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오존이는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케이스를 바라봤다.
운이가 항상 애지중지 금은보화처럼 모셔 두었던 바이올린케이스와 상반되는 검은색의 바이올린케이스.
케이스의 구석에 새겨져있는 H. O. 이라는 이니셜.
오존이는 케이스를 열어 안을 살펴봤다.
새 것처럼 흠집 하나 있지 않은 바이올린.
오존이는 조심스럽게 바이올린을 들었다.
역시나 운이의 바이올린과 상반되는 상당히 연한색의 바이올린.
황토색보다도 연한 바이올린은 노란빛을 띠고 있었다.
“운이 형 거랑은 완전 반대네.”
“그렇지?”
오존이는 깜짝 놀라 옆을 쳐다봤고 그곳에는 언제 나왔는지 운이가 빙그레- 웃으며 오존이가 들고 있는 바이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쌍둥이 바이올린인가…….”
“우리 사부가 올이랑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물해준 바이올린이야. 특별히 사부가 알고 있는 장인에게 사정사정해서 이렇게……쌍둥이로 제작했지.”
옛일을 회상하듯, 오존이 손에 들려 있는 바이올린을 조심스레 쓰다듬는 운이.
“그렇게 한 올과의 추억이 소중한 거야?”
“응……소중해.”
“……형이 소중하다니까 곁에 있어 주는 거야. 형의 소중한 사람이니까……상대해 주는 거라고. 형의 소중한 게 아니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어. 지금처럼 곁에 두지도 않았을 거야.”
평소에는 그래도 어른스러웠던 오존이.
하지만 운이 앞에서의 행동은 어린 꼬마가 아버지한테 투정부린 듯, 약간은 칭얼거리는 투에 표정도 부루퉁하다.
동생만 봐주지 말고 자기도 봐달라는……형의 투정처럼.
“그래. 그래서 오존이에게 특히 고마워하고 있어.”
“알면 됐어.”
삐진 어린아이처럼 입술을 쭉 내밀며 말하는 오존이.
운이는 오존이의 손에 들려 있는 바이올린을 조심스레 빼앗아 테이블위에 올려놓고 오존이를 품에 안았다.
“내가 올이만 생각한다고 질투하는 건 아니지? 오존이도 소중해. 그러니 올이랑도 오존이가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형 바람, 들어 줄 거지?”
“응……알겠어.”
운이는 오존이를 조심스럽게 품에서 떼어놓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바이올린을 케이스에 넣고 케이스를 정리해 자신의 방으로 가지고 들어간 후 곧 나와 오존이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올이 에게는 비밀.”
“왜?”
“그리워했던 건 갑작스레 만나야 더 행복한 거니까. 그 바이올린 내 방에 숨겨놨거든. 쉿 하는 거다?”
“응…….”
‘바스락-’
몸을 뒤척여 일어나던 주니.
운이의 모습을 보고 눈을 깜빡거리다가 옆에 누워있는 올이의 품으로 쏙 들어가 다시 눈을 감아버린다.
올이는 갑작스레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는 주니 덕에 눈을 뜨고, 품 안에 있는 주니를 보고 풋- 하고 웃더니 흘러내린 주니의 머리를 쓸어 올린다.
“우리 올이, 엄마 다 됐네.”
왠지 모를, 조금은 빈정거리는 말투.
운이의 그 목소리에 올이는 자조적인 표정이 되어버리고, 어느새 잠에서 깨어나 조용히 누워 있던 도운이는 그런 운이에게 베고 있던 쿠션을 던져버린다.
“……그래 그만 한다. 감싸기는.”
운이는 도운이가 던졌던 쿠션을 도운이에게 다시 던졌고 도운이는 쿠션을 받아 다시 누워버린다.
처음부터 자신은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는 듯.
약간의 정적.
올이는 ‘휴-’ 하고 한숨을 내뱉더니 교복 소매를 팔꿈치 까지 걷어 올리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김치찌개 부탁해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넉살좋게 말하는 운이를 향해 올이는 어쩔 수 없다는 김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어버렸다.
도운이마저 다시 안정적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버리고, 오존이는 조용한 목소리로 운이를 향해 물었다.
“형 그리운 것이라니……무슨 말이야?”
“음, 글쎄.”
“혀엉! 말해봐. 궁금하잖아.”
애교를 부리듯 말끝을 늘이며 말하는 오존이.
운이는 그런 오존이를 보며 웃어버리고 할 수 없다는 듯 입을 연다.
“하여튼 너한테 못 당한다. 사실 이건 원래 올이 것이지만 올이가 가지고 있지 않았어.”
“음……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올이가 전에 살고 있던 집에서 가져온 거라고 하면 되나.”
“뭐야 형 자꾸 이상한 말만하고.”
“음……. 그러니까 올이는 원래 여기에 살지 않고 다른 곳에 있었거든. 그런데 이사를 하게 됐어. 뭐……그래 할머니랑 같이 살기 위해서 말이야. 그런데 그 할머니가 바이올린을 끔찍하게 싫어하거든. 아마 눈앞에 있으면 집어던져 버렸을걸. 그래서 바이올린을 전에 살던 곳에 두고 할머니 집으로 들어간 거야. 그런데 지금은 그 할머니랑 안 살고 있으니까 좀 가지고 있어도 되잖아? 올이는 바이올린 정말 좋아하니까.”
운이는 올이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듯 조용히 말했지만 궁금했던 오존이는 큰소리로 운이에게 되물었다.
“그럼 쟤는 지금 어디 살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좋아하는 것까지 포기하면서 꼭 할머니랑 살아야해? 그냥 전에 살던 곳에서 살면 되잖아. 운이 형이 들락거리는 거 보니까 그 집도 그냥 비어있는 것 같은데.”
“아……. 그…….”
“남궁 운!”
운이가 막 말을 이으려고 했을 때, 올이가 급했는지 국자를 손에 든 채 주방을 빠져나와
운이의 이름을 크게 불렀고 운이는 깜짝 놀라 올이를 쳐다봤다.
올이의 큰 소리에 어느새 도운이와 주니도 잠에서 깨어 올이를 바라봤고 올이는 입술을 깨물더니 입을 열었다.
“아, 미안 큰소리내서……. 구름아 잠시만…….”
올이는 운이를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고 운이는 조용히 올이를 따라나섰다.
올이는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의 뒤에 있는 운이를 노려봤다.
'달칵- 달칵'
조용한 주방.
소리라고는 김치찌개가 끓고 있는 냄비의 뚜껑과 냄비가 부딪치는 소리뿐.
“올아 너 갑자기 왜 그래?”
“말.”
“뭐?”
“말……하지 마. 내가 어디살고 있는지, 무슨 사정인지 아무 것도 말하지 마.”
첫댓글 구름이도빵꾸똥꾸
구름아 그럼 안돼에..ㅠ _ㅠ 아무리 다른 애들이랑 올이랑 친해지길 바란다고 해도 그건 올이가 싫어하는 일 이잖아..ㅠ _ㅠ
구름이미워
올이가 아파하는 일이니까 말하면 안되잖어 구름아.ㅜㅜㅜ
마음을아직안열었군용ㅇㅇ졸려워ㅋ
구름이때찌
별이라는 아이랑 대체 무슨 관계인지 궁금해 미쳐불겟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