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와! 한시연씨의 생기있는 파워풀한 무대, 대단하죠?”
“네, 작은 몸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모든 분들을 단번에 사로잡는데요. 그게 바로 한시연씨가 가지고 있는 마력이겠죠?”
“맞습니다. 올해 한시연양의 신드롬이 한국을 뒤흔들었는데 미국에서의 인기도 날로 높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앞에 계신 남자분들 모두 침 닦으시구요, 다음 시상으로 넘어가겠습니다.”
MC들의 말소리는 무대 뒤에까지 쩌렁쩌렁 울리고, 무대 뒤엔 정신없다.
수많은 가수들과 시상하러 온 연예인들로 붐빈다.
백업댄서들과 무대를 내려올 때, 시연은 뭔가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했다.
항상 무대를 내려오면 수건을 건네주던 시우가 있었는데 오늘은 옆에 없으니 마음이 설렁설렁, 외롭기만 하다.
이 몇시간을 못참는 거 보니, 시연이 사랑을 하고 있는 건 맞나보다.
한편, 시우는 흑룡파의 아지트에 도착했다.
시우가 나타나자, 문 앞에 서있던 건장한 남자들이 아무말없이 문을 열어주었다.
“아이구. 권사장님 오셨습니까?”
통화할 때의 목소리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흑룡파의 중간보스, 백상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시우는 건조한 표정으로 그를 보고 포커페이스를 잃지 않았다.
“진짜로 혼자 오셨습니까? 백건파 두목님?”
“용건이 뭐야.”
“너무 급하십니다. 후후. 여유를 찾아도..”
“여유를 찾는 건 그 다음 문제겠지.”
시우의 말에 엷은 눈썹을 찡그리며 그를 올려다보다 비열한 웃음을 가득 담는다.
“그럼 제 요구사항을 말해드리지요.”
“최고인기상과 대망의 대상만이 남겨진 상황인데요. 여기 앉아계신 많은 가수분들, 굉장히 떨리실 것 같습니다. 그럼 계속해서 최고인기상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올해 최고인기상은...”
두구두구두구두구두-!!!
“최고 인기상은 최고의 남자그룹이죠. PP! 축하드립니다!”
“가까이서 보니까 여자피부만큼이나 곱고, 백건파를 흔들고 있는 보스라고 보기엔 너무 야리야리하신 거 아니신지. 후후후. 이거 참, 난감합니다. 여자같은 애.송.이.를 손봐야 한다는게.”
그의 갈라지는 목소리는 듣기 거북할만큼 소름끼쳤다.
“제 요구를 들어주실 준비가 되었습니까? 후후.”
“그런게 요구라면, 들어주지. 대신 약속은 정확하게 지켜.”
“당연하지요. 그럼 시작합니다.”
시상식은 끝나가고… 어느 새 대상만이 남아있었다.
시연은 상을 하나도 못받는 거라 생각해 조금은 기분이 울적해 있었다.
상에는 관심도 없었고, 오로지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목에서 후두둑. 진주목걸이가 끊어져 알들이 모두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
목걸이 알이 떨어지고… 알을 주우려고 하는 순간, 대상 발표가 시작되었다. 빵빵한 효과음이 회관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시연은 떨어진 진주알들을 찾으러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사장님이 사준건데….’
“대상은! 올해 최고의 인기와!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몸을 구부리고 알을 찾느라, 정신없는 시연이다.
“첫키스의 한시연씨! 축하합니다!”
사회자 두명이 박수를 치며 시연의 이름을 불렀다.
시연의 이름과 동시에, 터져나오는 함성과 박수소리.
하지만, 정작 대상의 주인공인 시연은 자신이라는 것도 까맣게 모른 채 목걸이 알을 찾는데 정신이 집중되어 있었다.
당연히 대상은 자기 것이 아니라 생각했기에 몰랐던 것이다.
“시연아! 대상! 너 대상이야!”
“한시연! 뭐해?”
최고 인기상을 받고 자리로 달려오던 PP들이 아니었음 시연은 아직도 무대로 못올라가고 있었을 것이다.
“대상이라구! 한시연! 대상!”
가슴에 손을 얹고 있던 시연이 카메라 앵글에 클로즈업되어 잡혔다.
“응? 뭐라구?”
시연은 시라이 젠의 말이 진짜인지 실감하지 못했다.
“한시연씨, 축하드립니다! 무대로 올라와주세요!”
“한시연! 한시연! 한시연!”
뒤에있던 팬들은 시연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고, PP와 다른 가수들의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축하한다는 인사와 꽃다발이 시연에게 쏟아졌다.
“저..요..?”
“축하해! 시연군! 대상이야!”
“축하한다! 얼른 나가봐!”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리에 가만히 서있다, 동료들의 응원과 무대에 올라오라는 사회자의 말에 시연은 한걸음 두 걸음 천천히 발을 떼었다.
무대로 올라가는 동안, 시연의 머릿속은 하얗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대상…?
대상…!
대상이라니. 이제껏 학교에서 받아오던 상과는 달랐다.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가슴이 벅차 올랐다. 밑에서 응원을 해주고 있는 든든한 녀석들, PP. 그리고 수많은 팬들은 함께 기뻐해주고 있었다.
시연은 상을 받으러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만 해도 무슨 상황인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린 정도였다.
누군가 자신의 볼을 꼬집어 주면 정신을 차릴 것만 같았는데… 시상자가 시연에게 트로피를 건네주자 그제야 조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차가운 트로피가 손끝에 닿자 시연은 이내 울음을 터트려 버렸다.
왜 그렇게 눈물이 차올랐는지…!
“1집 첫키스로 데뷔해, 단번에 음반차트..”
사회자의 간략한 시연의 소개가 들려오고, 시연은 눈가에 차오르는 눈물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냥 드레스로 뚝,뚝, 눈물을 흘려내고 있었다.
모든 생각이… 눈 앞에 스쳐지나갔다.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가족들과 시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시연씨, 수상소감 말씀해주시죠.”
정중하게 시연에게 마이크를 대어주는 사회자는 말을 하지 못하고 눈물만 떨구고 있는 시연이 말을 할 동안 기다려주었다.
“흐흑…….”
공사판으로 보이는 어두 컴컴한 공간에서는 12월달 마지막 축제를 뒤로 하고,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니,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공격이었다.
‘퍽-!’
어느 새 시우의 하얀 셔츠가 붉은 피로 물들었다.
아침에 넥타이를 메어주며 밝게 웃던 시연이 시우의 눈 앞에 아른거렸다.
흑룡파가 원하는 건 간단했다.
제주도에 새로 생긴 금성호텔을 넘겨주는 조건, 그리고 백건파와 한시연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약속 대신, 시우를 손보는 것.
이것이 조건이었다. 두 번째 조건은 흑룡파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주를 받은 것이었다.
백건파의 보스를 손대는 일은 정말 꺼림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돈은 받은 것이고 백상두는 무자비하게 각목으로 시우의 머리를 내려쳤다.
“으윽…!”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 권사장님도 잘 아시겠지요?”
“사주한 놈들이 궁금하군. 윽-!”
사주한 쪽은 말하지 않아도 예상이 되었다. 채소아의 기획사인 제이리일 것이다.
권시우를 반 쥑여놓던가, 한시연을 납치하던가, 둘 중 하나를 요구한 것이었다.
당연, 시우는 시연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자신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로 끝나는 거야. 우리 애들, 그리고 한시연.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해.’
무대 위에서 눈물방울을 또르륵. 또르륵. 흘리는 시연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눈에서 하얀눈꽃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투명한 눈물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었다.
“시연씨, 수상소감을-”
시연이 우는 걸 조금씩 참으며 마이크에 잡았다.
“흐…흑….”
쏟아져버린 눈물은 어쩔 수 없나보다.
그래도 정신을 가다듬고 마이크를 꽈악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붉은입술을 떼었다.
“감…사합니다.”
어린애같이 엉엉 우는 모습은 귀엽게 보일 정도로 사람들을 울렸다. 트로피를 안고 있는 기분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기쁨 이 기분과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굉장했다.
“상…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시연은, 떠듬떠듬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상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상을 꼭 받아야지 생각했었습니다. 여기 오면서, 여기 오기 전부터 계속 상 받길 기대하고 있었어요. 상을 받아야만 했어요. 제가… 상을 못받으면 저를 위해서 열심히 일해주신 많은 분들께 너무 죄송스러운 일이 될 것 같아서… 꼭 받고 싶었습니다. 꼭이요. 아까 신인상을 못받았을 때… 아, 난 오늘 상 못받는 구나… 하고 전혀 상에 대한 생각을 못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더 큰 상을 주시니… 아….”
또 다시 눈물을 흘리는 시연이다.
또르륵 볼을 타고 흐르는 그녀의 진주같은 눈물은 맑았다.
“시간 넉넉하니까, 오늘은 시연씨의 자리니까 마음 놓구 편하게 얘기하세요.”
사회자가 옆에서 시연이 편안하게 마음을 가질 수 있게끔 이야기해주었다.
“가족들… 우리 가족들… 저에겐 보석같은 가족들입니다. 어려울 때도 힘들 때도 항상 함께해주셨어요. 정말. 너무 사랑해요. 그리고 내 선생님들, 도광이, 젠, 후, 모두들 너무 고마워.”
‘퍼억!’
내리치는 주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실실 웃고 있는 시우가 미친놈이라는 생각까지는 드는 백상두였다.
그러나 더 이상 주먹도 발길질도 할 수가 없어져 버렸다. 무서운 놈이라는 게 느껴졌다.
“독한새끼. 내가 살다살다 이런 질긴 놈은 처음이야.”
자신이 맞고 있다는 게 행복했다. 지킬 수만 있다면… 이쯤 미친놈처럼 맞아줄 수 있었다.
권시우라는 남자는 그렇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지키고 있었다.
백상두가 마지막으로 시우의 몸을 가격하자, 시우는 바닥으로 쓰러져 피를 토해내었다.
“크윽.”
‘퉤’하고 입에 고여있는 피를 뱉어내는 시우다.
“권시우. 대체 뭐냐. 비웃는 거냐?”
“맘대로. 생각해.”
“왜 안 덤벼? 이런, 씨.”
그의 살아있는 진한 눈동자는 아직은 멀쩡했다.
눈가에는 이미 상처가 나 여기저기 찢어져 피가 나고 있었고… 온몸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무거웠다.
이 정도에 정신을 놓지 않고 번뜩거리는 시우의 눈을 보자, 백상두는 움찔했다.
자신이 크게 잘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무서웠다.
백상두가 손에 들고 있던 각목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애들아, 그만 가자.”
재미없었다. 진짜로 싸움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같이 해야하는 것이 맛이라는 건 백상두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권시우는 아무 저항없이 맞아주기만 하였고, 오히려 자신이 혼자 상대하고 있는 권시우가 미친놈이 아니라, 자신이 미친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밤은 제 기억 속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같이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어둡고 춥고 눈물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 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빛이 처음엔… 원망스러웠고, 그 다음엔 감사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있게끔 만들어주신, 저의 단 하나뿐인 남자에게 감사한다고 사랑한다고 말을 전하며 이 상을 돌리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권시우씨.”
시연의 인생의 빛이 되어준 남자.
시연은 시우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가 자신의 앞에 나타나 축하해. 라는 말을 해주길 기다렸다.
시우의 ‘축하해’ 이 한마디가, ‘잘했어’ 이 한마디가 가장 듣고 싶었다.
[52]
짧은 진동소리에 안쪽주머니에서 태혁은 핸드폰을 꺼내었다.
시우였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그럼.
‘휴-’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진다.
하지만 태혁은 걱정이 태산이다.
그 놈들이 그냥 곱게 놔둘리 없다고 장담하고 있었다.
시우는 빠질 듯이 아픈 팔을 부여잡고 있었다.
얼굴에 통증은 완연한데 목소리만은 편하다.
“지금 가겠습니다! 형님, 어디십니까?”
-그것보다도 어떻게 됐어?
시우에게 먼저 중요한 건 시연이의 소식 뿐이었다.
“대상. 받으셨습니다.”
시우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픔도 단번에 사라질만큼 대단한 소식이었다.
-이제 나 데리러 와.
시연은 상을 꼭 껴안고 내려오자마자 시우를 찾았다.
끝났다는 기쁨과 대상을 받았다는 기쁨이 겹쳐 시연은 밥을 먹지 않아도 마음이 든든했다.
“사장님 어딨어요?”
거머리같이 달라붙는 기자떼들을 떼어놓고는 경호원들과 태혁의 보호를 받으며 차에 탄 시연이 제일 먼저 궁금한 걸 태혁에게 물었다.
떳떳하게 공개연인선언까지 했으니 시연의 기분은 날아갈 듯 평온했다.
‘왜 대답을 안해주지?’
태혁은 대답이 없었다.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둘러대는 걸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사장님 어디 갔어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눈치빠른 시연이 이상하다는 걸 못 알아차릴리 없다.
“먼저 집으로 가시죠.”
“혹시.. 무슨 일 있는거예요? 사장님한테 무슨 일 있는 거죠!”
다급해진 시연의 목소리에 태혁 또한 당황하여, 아니라며 그녀를 안심시키기 시작했다.
시우의 명이니 무조건 거짓말을 해서라도 안심시켜야 했다.
“아닙니다. 급하게 출장준비를 하시느라.. 집에 가계시면 사장님께서..”
“전화기 주세요.”
태혁의 어설픈 거짓말이 통할리 없었다.
시연이 당차게 태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얼른요! 통화해볼꺼예요!”
태혁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건네받자마자 시연은 단축키 1번을 누르고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띠리리리…
신호가 가다, 탈크닥. 그 다음 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그의 목소리에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고, 안심이 되었는지 시연은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어딨어요? 대체 어딨어! 지금 왜 내 눈 앞에 안보이는 건데요!”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우렁찬 시연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살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역시, 한시연은 권시우를 미소짓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시우는 갑자기 밀려오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목소리만은 멀쩡하게 시연이 걱정하지 않도록 차분하게 말했다.
“축하해, 대상.”
“내 얼굴 보고 축하해 줘야죠! 전화로 하는 축하는 필요없어!”
“대견해, 우리 꼬맹이.”
시연이 탄 리무진은 어느새 시연의 집에 도착했다.
“지금 어딨어요? 왜 갑자기 사라진건데? 혹시 무슨 일 있어요?”
“하나씩만 물어봐.”
“지금 볼래요. 지금 사장님 얼굴 볼래요. 빨리 얼굴 보여줘요.”
시연도 모르게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얼른 훔치고 말을 이어나갔다.
“자꾸 눈물이 나. 저번에 말했죠. 사장님이 없으면 캄캄해진 무대같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구 너무너무 아프구, 힘들 것 같다고 했잖아. 나 지금 그렇단 말이야.”
안심이 되질 않았다.
다행히 그의 목소리는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안정되어있었다.
“아프지마.”
“나 안아프게 하고 싶으면 당장. 내 앞에 나타나세요!”
탈크닥. 갑자기 끊어진 전화.
시연은 눈이 동그래져서 정신없이 ‘여보세요?’를 연발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사장님! 권시우!”
태혁이 시연에게서 핸드폰을 건네받아 확인해보았다. 끊어진 전화통화.
다시 연결해보아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문득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장님 제가 지킵니다. 걱정마시고 아가씨는 들어가 계세요. 이건 사장님의 간절한 부탁이기도 합니다. 제발….”
태혁은 권시우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충성파였다.
태혁에게 시우는 지켜줘야 하는 사람이었고, 자신이 모셔야 하는 형님이었다.
시연은 자신에게 간절하게 부탁하는 태혁을 보니, 고집을 피우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혁의 마음이 지금 시우의 마음과 같은 것일 것이다.
무슨 상황인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상황인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해줘요.”
“네, 알겠습니다. 꼭 전화드리겠습니다.”
태혁이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탔다. 빠르게 움직이는 태혁이다.
불안한 마음에 자꾸 눈물이 비집고 시연의 볼을 타고 흘렀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건지…….
태혁이 거칠고 빠르게 운전을 하여 시우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공사판으로 보이는 낡은 건물에, 들어가 찾아보아도 시우는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다급해진 태혁은 큰 목소리로 시우를 불렀다.
“형님!”
한참을 돌아다니다 굵은 기둥에 겨우 앉아있는 시우를 발견했다.
그 순간 태혁은 가슴에 무언가가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형님!”
태혁의 목소리를 알아차린 건지, 시우가 살며시 고개를 들어 태혁을 올려다보았다.
태혁은 바로 몸을 굽혀 시우에게 눈높이를 맞추었다.
“괜찮으십니까?”
온몸에 피범벅이 되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붉은 피로 물들어있는 시우를 보자 태혁은 어눌한 말에 더 말이 나오지 않았다.
5년전이 다시 떠올라 누구보다도 마음이 아픈 태혁이었다.
“대체 이게… 백상두 이 개자식을 그냥!”
“됐어. 이걸로 끝냈으니…까.”
그가 겨우 입을 열어 말한다.
아픔이 진해져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을만큼 고통은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태혁은 빠르게 시우를 들춰메었다. 빨리 이 어두운 곳에서 벗어나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형님, 정말 괜찮으십니까?”
“어…….”
시연을 무사히 집까지 데려다 놓고 오라는 명을 지킨 태혁이다.
“기운을 내셔야 합니다. 정신 놓지 마십시요. 제발….”
오늘 태혁은 간절한 부탁을 두 번이나 해야했다.
시우가 성공적으로 수술이 끝나고 잠이 들었을 때, 태혁은 시연에게 전화를 했다.
시연에게 전화를 하지 말라는 시우의 명이 있었지만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거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태혁이었다.
시연은 역시 새벽녘까지 잠도 자지 못하고 전화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기다리던 태혁의 전화를 받자마자 삼성병원으로 달려갔다.
전화가 울렸을 때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기분이었지만, 병원이라고 말을 했을 땐 다리가 후들거렸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느낌이 좋지 않더니…!
시연은 대충 옷을 주워입고 밖을 나왔다. 태혁이 보낸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새벽하늘은 맑았다.
살을 에이는 추운 날씨는 시연의 뜨거운 눈물을 막진 못했다.
#병원
병원복도를 정신없이 뛰었나보다.
병원에 있던 간호사들이 한시연이 나타나자 놀라 쳐다보았다.
태혁이 전화로 알려준 병실로 허겁지겁 뛰어가보니 시우는 잠들어 있었고, 그 옆엔 태혁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만히 누워있는 시우를 보자, 또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얼굴에 상처가 나있고 붕대를 감고 있는 다친 시우를 보니 마음이 아렸다.
아리다 못해 쓰라리고 아팠다.
시연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태혁이 비켜난 자리에 가 앉았다.
“뭐야… 왜이래요…….”
“…….”
“왜이래요. 얼마나 다친 건데…”
“오른팔 인대가 파열되어 수술했습니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었습니다.”
“많이 아프죠… 많이 아프지….”
시연이 한 방울 두 방울 눈물을 떨어뜨리며 시우의 얼굴을 만졌다.
“어떡하면 좋아요. 아프면 안되요.”
참 아까운 사람….
참 소중한 사람….
아프지마…….
당신 아프면 나도 아파…….
아침 10시.
새벽부터 달려와 울다 지친 시연이 시우 옆에서 잠들어 있다.
굳이 옆에 붙어 있겠다는 시연의 고집은 태혁도 말릴 수가 없었다.
시우의 엄지손가락을 꼭 붙잡고 잠들자 태혁은 이불을 시연에게 덮어주었다.
큰 병실로 차갑지만 밝은 햇살이 들어왔다. 환한 빛에 시우가 살며시 눈을 떴다.
자신 옆에 누군가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런지 더 빨리 눈이 떠졌다.
그리고 느껴져오는 숨소리와 촉감. 고개를 돌려보니 시연이 옆에 있다.
자신의 손가락을 꽉 잡고 잠이 들어있는 녀석을 보자 시우는 행복했다. 아프지만 행복했다.
밤새 얻어터지고는 아침에 일어나 웃을 수 있다는 것에 자신이 미친놈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건 행복이었다. 아무한테나 느낄 수 없는 것.
시우가 일어나자, 시연은 자동적으로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곤히 잠자는 것 같았지만 예민한 시연이었다.
“어!”
시우가 눈을 뜨고 자신을 보고 있자, 시연의 눈가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눈 부었어.”
눈물방울이 똑 떨어지자 시우는 다치지 않은 왼쪽 손으로 시연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엉엉!”
부은 눈 더 부어도 어쩔 수 없다! 눈물이 나니까. 자기 남자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안심이랄까.
수없이 걱정하고 또 걱정했던게 말끔히 사라져 마음이 편해지니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나 일등했는데… 나 대상인데… 왜 아파…? 아프지마. 아프지마, 엉엉!”
“안 아파.”
“엉엉!”
안 아프다고 말려도 시연의 한번 터진 눈물샘은 막을 수가 없다.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쏟아내 듯 펑펑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던 시우가 시연의 우는 소리에 기습 뽀뽀에 들어갔다.
“읍!”
이렇게 하면 좀 진정이 될까, 울지 않을까, 시연의 입술을 덮었다.
부드러운 그의 입술이 입술에 닿자 시연의 눈물은 자연스레 뚝 멈추었다.
눈이 동그래져 놀라 큰 눈을 깜빡거릴 뿐이었다.
시연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것 같다 싶으니 시우가 살며시 입술을 떼었다.
갑작스런 기습 뽀뽀에 얼떨떨한 시연이다.
그런 시연을 보며 시우가 말했다.
“울면 뽀뽀하고 싶어져.”
그의 자극적인 발언에 시연은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제야 천천히 미소가 입에 걸렸다.
웃던 시연은 시우의 깁스한 팔을 보고는 열이 화르륵 올랐다.
바로 정색을 하고 물었다.
“몇 대 맞았어요? 그 협박했던 놈들 맞죠? 내가 가서 복수할꺼야! 어디 가면 만날 수 있어요?”
시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랑의 뽀뽀 효과가 벌써 나타나는가보다.
기운이 철철 넘쳐 소매끝으로 눈물을 훔쳐낸 후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놈들이 여기랑 여기랑, 여기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난 가서 두 배로 갚아줄꺼예요!”
시우가 다친 곳을 오목조목 가르키며 말했다.
우는 건 약해지고 약해지면 강해질 수 없다!
시연은 큰 목소리로 전의를 불태웠다.
“앉아봐.”
그가 말했다.
“나 가서 걔들 혼내줄꺼라니까요!”
“복수했어, 벌써.”
복수했다는 그는 입꼬리가 살짝 말아올라갔다.
“우리 꼬맹이 대상탄 게 복수야.”
시연은 입을 퉁 내밀고 시우를 쳐다보았다. 그걸론 복수가 성이 안차!
“똑같이 해줄꺼야! 아니 두배로 아프게 가서 패줄꺼야! 태혁이 아저씨랑 같이 가서!”
“하하하!”
태혁이까지 끌여들이다니. 역시 대단한 여자다.
흑룡파를 쓸어버리려는 여자조폭의 탄생인가? '백건파 보스의 연인 흑룡파를 무너뜨리다' 전설로 남을만한 일을 벌이려는 시연의 즉흥적인 행동에 시우는 기분좋게 웃음을 터트렸다.
말리지 않으면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시연이라면.
“웃지말아요. 난 진심이라구요.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 애들 좀 풀어줘요! 내가 헤치워 버리고 올께요!”
조폭말투로 주먹을 불끈쥐고 진심으로 외치고 있는 시연이 귀엽게만 보이는지 시우는 아무런 미동없이 웃기만 한다.
“나 화나요. 당신 이렇게 아프게 만든 놈들 때문에 열받아! 그냥 가만히 있기 싫어요! 어제 기쁠 때, 내가 기뻐하고 있을 때, 모두한테 축복받고 있을 때, 사장님은 혼자 아파하고 있었잖아! 힘들었잖아!”
“하나도 안 아팠고, 하나도 안 힘들었어. 한시연 옆에 없었어도 즐거웠다구. 행복했어.”
“바보예요? 진짜 바보아니예요? 이렇게 다쳤는데!”
“이런 거쯤 아무것도 아니야. 진짜 아프고 진짜 힘든 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했을 때야.”
시우의 말에 울먹거리던 시연이 강하게 눈물을 훔쳐내고 시우를 쳐다보았다.
강한 남자. 강한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강한 남자다.
“안아줄께.”
시우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시연은 다가가 시우의 가슴팍에 안겼다.
‘내 남자다…….’
“아프지마요.”
시연과 시우가 서로를 꼬옥 안고 있을 때, 헛기침소리가 들려왔다.
“흠흠! 큼큼!”
[53]
시우와 시연이 동시에 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시우의 할아버지가 서계셨다.
가느다른 눈을 뜨고는 시우와 시연을 보고 있었다.
“흠흠!”
두 사람은 얼른 서로에게서 떨어져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누구세요?”
시연이 묻자, 할아버지가 안경을 한번 쓰윽 만지다 시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시연도 할아버지를 천천히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서로가 한참을 그렇게 보고 있다, 동시에 ‘아!’ 소리를 내었다.
“할아버지는?”
“그 때 그 아가!”
“할아버지! 맞으세요?”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확인했다.
할아버지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는 시연이다. 5년 전 피흘리며 쓰러져있던 남자를 병원으로 옮겨주었고 그 남자의 보호자인 인자한 할아버지를 만났던 것을 기억해냈다. 바로 지금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그 날 시연이 옮긴 남자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밤이었기 때문에 시연이 기억하는 건 피 뿐이었고 남자라는 것 뿐이었다. 시우의 얼굴은 시연의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시우 할아버지의 얼굴은 정확히 기억한다.
“그럼, 그 때… 그 다친 사람이!”
시연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시우를 재빨리 돌아보았다.
웃고있는 시우를 보니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걸 그의 웃음으로 알 수 있었다.
“나 알고 있었던 거예요?”
“응.”
“왜 말을 안했어요?”
“날 기억 못한 벌이야.”
이럴수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시우를 몰랐었다니. 기억 못하다니. 시연은 멍하니 시우를 바라보았다.
“아가 많이 컸구나.”
할아버지가 그 때의 시연의 모습을 기억 속에 더듬어가며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시연은 밝게 웃으며 인사를 드렸다.
시우의 할아버지는 시우가 시연에게 은혜를 갚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연인이 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저 여기 있는 지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손자 다친 것도 모를 줄 알았느냐! 할애비가 왔는데 어디 펑퍼짐하게 누워 있느냐. 어여 일어나! 그리고 이 아가도 빨리 소개하거라.”
아픈 시우라고 봐주지 않는 할아버지!
“저 환자예요.”
“환자면 위 아래도 없는 것이야? 퍼뜩 일어나거라. 몸은 누워있을수록 쇠약해지고 나태해지며 상처는 더욱 깊어지는 것이야.”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의 강한 교육을 받고 자란 시우는 익숙한 듯 몸을 일으켜 세웠다.
시연은 할아버지의 강한 교육을 생생히 체험하니 시우가 조금 안쓰럽게 느껴졌다.
시우가 일어나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시연을 짧고 강하게 소개해드렸다.
“사랑하는 여자예요.”
“허허허-”
병실에 할아버지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가득 찼다.
시우의 소개가 마음에 드셨는지 웃음을 떼지 않으셨다.
“할아버지 저 가수 됐어요. 가수예요!”
“허허허! 그게 정말이더냐.”
시연과 시우의 할아버지는 시우를 빼고 오순도순 앉아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연이 해맑은 얼굴로 말을 꺼내었다.
“첫키스 모르세요? 저 대상도 받았어요!”
“오호호! 대상? 장한 일을 하였구나!”
“헤헤.”
할아버지가 시우에게 큰 소리를 치셨다.
“아, 인석아! 왜 할애비한테 말도 안하고 감추고 있었느냐!”
“눈코 뜰새 없이 바빴어요.”
“그게 이유가 돼? 음, 쯧쯧. 인석이.”
“할아버지! 이제 아셨으니까 혼내시지 마세요.”
시연이 시우를 편들자 할아버지가 슬며시 미소를 머금고 말씀하셨다.
“그래. 내 아가를 봐서 참으마. 허허. 태혁이가 시우 네 녀석이 다쳤다고 연락을 하여 걱정이 되 아침부터 부랴부랴 와봤더니 아프기는커녕, 혈색이 더 좋구나.”
“아니예요, 할아버지. 시우씨 많이 다쳤어요. 아픈 척 안하고 있을 뿐이예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시우를 쳐다보는 할아버지다.
“이 늙은이는 그만 가봐야지. 잘있는 거 보니 되었다! 으흠.”
할아버지는 길게 자리에 앉아있지 않으시고 일어나셨다.
아직도 건장하신 할아버지. 거기다 눈치도 빠르신 분이다.
“퇴원하거든 연락넣거라. 아, 준이랑 인경이는 잘 지내고 있다.”
인경은 할아버지 집으로 들어가 준이와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시우의 허락이 떨어진 다음날부터 집으로 들어갔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할아버지도 인경이 탐탁치 않았지만 자신의 잘못되었던 행동을 용서받고 싶어하는 간절한 마음을 받아주게 되었다.
“나 가마. 몸조리 잘하거라.”
“네, 살펴 가세요.”
시우가 몸을 일으켜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고, 시연은 할아버지를 배웅해드리러 따라 나왔다.
“따라나오지 않아도 되는데, 들어가보거라, 아가.”
“아니예요. 병원 앞까지 모셔다 드릴께요.”
예의바르고, 성숙하게 큰 시연이 대견스럽고 예뻤다.
할아버지는 흐뭇한 표정으로 천천히 말을 꺼내셨다.
“우리 녀석이, 제 형 보내놓고 많이 힘들어 했지. 그동안 웃음도 잃고 지내던 녀석이었는데, 인경이 때문에 사랑이 싫다고 하던 녀석인데, 우리 시우를 변하게 해주었구나, 아가가.”
고마웠다. 시연에게, 그리고 시우에게도 고마웠다. 웃지 않고 울고 있었던 손자가, 사랑을 믿지 않았던 손자가 한 여자에게 마음을 열어 사랑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는 할아버지 마음이 놓였다.
“우리 시우, 오랜만에 웃는 걸 보니 좋구나…. 앞으로도 많이 웃게 해주련?”
“네, 걱정마세요. 앞으로 책임지고 웃게만 할꺼예요.”
“허허허! 우리 아가, 정말 예쁘구나. 믿겠느니라.”
어느새 병원 앞에 다 내려온 시연과 할아버지다.
병원 앞에는 기사가 차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차에 올라타기 전 시연의 손을 꼬옥 잡아주고는 다시 한번 말을 하고 차에 올라탔다.
“아가, 부탁한다.”
“네, 할아버지. 조심히 가세요.”
할아버지는 마음이 편안해지셔서는 시연을 보고 빙긋 웃어보이곤 차에 올라타셨다.
깐깐해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시연에게만은 푸근한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의 차가 병원을 빠져나갈 때까지 손을 흔들던 시연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마세요. 권시우 내가 웃게 만들거예요.”
병실로 돌아오자, 눈을 감고 있는 시우다.
“자는 거예요?”
“응.”
“왜 자요! 난 눈 떠있는데. 나 눈 떠있을 땐 같이 눈 떠 있어요.”
시연의 말에 시우가 눈을 떴다. 그의 검고 진한 눈동자가 맑다. 투명하다.
“그럼 한시연도 자.”
팅팅 부은 눈은 하고 있는 시연은 많이 피곤해보였다. 잠도 한숨 못잤을 뿐 아니라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1년치 눈물을 쏟아버렸기에 피곤했고 야위어 보였다.
시우의 유혹의 손길에 시연은 무거운 눈꺼풀을 올린 채로 쳐다만 보았다.
시우가 한쪽 이불을 걷으며 자신의 옆자리에 빈공간을 내어주었다.
“올라와.”
시우의 한마디에 순간 마법같이 잠이 쏟아졌다.
옆자리를 툭툭 치며 올라오라는 시우를 가만히 보던 시연이 발걸음을 옮겼다.
시우의 옆자리에 올라가 누웠다. 편안했다. 편안하니 잠이 쏟아졌다.
한 침대에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있었다.
시우는 눈을 감고 자려는 시연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잘자.”
*
“형!”
“형, 괜찮은 거야?”
시우의 병실로 PP애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겨우 몸을 움직여 의자에 앉아있던 시우가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댔다. 시연이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달콤한 잠에 빠져있는 시연은 침대를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형, 어떻게 된거야? 괜찮아요?”
“얼마나 다친거예요? 누가 그랬어요?”
“누워있어야지 이렇게 막 일어나 있어도 되는 거예요?”
PP애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시우는 그냥 말없이 웃고만 있었다.
그의 웃는 옆모습은 남자가보아도 근사했다.
“조용. 깬다.”
시연이 깰까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춰 말하는 시우다.
시연을 보고만 있어도 아픔이 싹 가신다.
전혀 아프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이 아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많이 다친 것 같은데… 괜찮아요, 형?”
“대체 누가 이런 거예요?”
“뭐가 중요해. 살아있으면 됐지.”
털털한 시우의 말에 PP들은 걱정스러운 눈을 하고 쳐다본다.
“그래도…”
“몸에 난 상처는 금방 아물어.”
마음이 다친다면 그 상처는 이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 와중에 침대에서 시연이 뒤척거렸다.
“으음…….”
시연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눈을 천천히 떴다.
“므어야….”
눈을 비비고 희미하게 보이는 PP애들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시연이 눈을 번쩍 떴다.
“시연군 너무하다.”
시라이 젠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이어 도광이와 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해.”
“형이 환잔데 어째 네가 그 침대를 차지하고 있는 거야?”
후의 말에 정신이 확 드는 시연이다. 얼른 일어나 확인해보니, 시우는 간이의자에 앉아서 도광이 캔을 따준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시연은 자기 혼자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머!”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회복이 빠른 시우는 건강하여 금방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피곤하여 자는 시연을 배려한 시우였다.
“내가 여기서 혼자 다 차지하고 잔거예요? 미안해요.”
“괜찮아.”
시연이 울상을 지었다. 환자를 밀어내다니. 자기 머리를 통통 치며 ‘바보-바보-’를 연발했다.
“그렇게 미안하면 부탁 하나 들어줘.”
시우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뭔데요? 다 말해요. 내가 다 들어줄께!”
“머리 감겨줘.”
시우는 깔끔한 성격이었다. 일어나서 한손으로 겨우 세수를 했다.
오른팔을 다치니 왼손을 조금만 써도 무리가 가 힘들고 고단했다.
한손이 힘들지만 않다면 머리를 시원하게 감고 싶었다.
“알았어요. 좋아요!”
시연은 흔쾌히 승낙했고, 곧바로 시연과 시우는 병실 안에 딸려있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병문안 온 PP들을 멀뚱히 세워두고 두 사람은 머리를 감으러 들어가버렸다.
큰 병실이라 화장실도 최신식에 고급이었다. 샤워기도 있었고 샴푸도 구비되어 있었다.
시연은 샤워기 물을 틀어 시우의 머리카락에 물을 적신 뒤, 샴푸를 풀어 머리를 감겨주었다.
뽀글뽀글 하얀거품이 머리를 뒤덮자 시원한지, 아님 시연의 부드러운 손길이 좋은건지, 기분이 매우 좋아지는 시우다. 손끝에 힘을 주어 시원하게 감겨주는 시연이.
“시원하죠?”
“응. 작은 손이 머리속을 왔다갔다 하니까, 기분이 묘해.”
거품이 눈에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였다. 짧은 머리라 머리를 감겨주는 일이 쉬웠다.
물로 헹군 후 수건으로 그의 머리를 정성스레 부비부비 말려주었다.
“아- 시원하다.”
두 사람이 머리를 감고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PP들이 입을 모아 ‘닭살!’이라고 말했다.
“밖엔 난리가 났는데, 두 사람은 머리 감고! 이러고 있는 거 기자들이 알까나?”
“기자들은 기획사에서부터 병원 밖까지 계속 죽치고 있다구요.”
“기자들이?”
“형 신문 못 봤어요?”
“신문? 왜?”
태혁이 신문을 일부러 가져다 주지 않았다.
시우에겐 충분한 휴식이 필요할 것 같아서 조금은 쉬게 하고 싶은 깊은 마음이었다.
태혁이 기자들도, 언론도 다 맡고 있었다.
도광이 건넨 신문 1면에는 대문짝만하게 시연과 시우의 열애설 기사가 크게 차지하고 있었다.
어젯밤 시상식에서 시우와의 사랑을 당당하게 밝힌 시연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어마어마했다.
신문마다 시연과 시우의 열애설 기사와 대상을 받은 시연의 기사가 가득차 있었다.
<사랑합니다, 권시우씨!>
시연의 사진과 함께 큰 타이틀을 시작하여 기자들이 시연의 수상소감을 가지고 밤새 장편소설을 써놓은 듯 했다. 비슷한 부분도 있고 과장된 부분도 있었지만 거의 이야기를 만든 기사였다.
“뭐야!”
시연이 신문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PP들은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사진이 왜 이렇게 이상한거야? 맨날 기사나올 때마다 난 사진을 이상한 걸 넣어주더라! 표정두 이상하구! 사진 좀 다른 거 넣지!”
띵! 사진이 잘못 나왔다며 퉁퉁거리는 것이었다.
시연이 사진투정을 부리고 있을 때, 시우는 신문을 한참 뚫어져라 읽다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를 재빨리 숨기고 눈썹을 씰룩거리며 말했다.
“뭐야.”
“……?”
시우의 반응에 시연이 팔짱을 끼고는 시우를 쳐다보았다.
“왜 그래요?”
“누가 고백하래.”
“내가요!”
“고백은 내가 해야 되는 거야!”
“누가 하면 어때요! 사랑하면 말하는 거야! 난 숨기는 거 싫다고 했잖아요.”
“……사랑해!”
시우가 수줍은 듯 볼이 발그레지며 고백했다.
싸우다 뜬금없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시우가 귀여운 시연이다.
“나두.”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도광, 젠, 후는 모두 팔을 비벼댔다. 닭살이야!
이 커플의 애정행각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시연은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도 개의치않고 수건으로 시우의 머리를 털어주었다.
“두 사람 닭살행각이 전국에 아니 세계로 생중계되면 볼만 하겠는걸.”
[54]
시우는 누워있을 틈이 없었다. 아파할 틈도 없이 병원 침대에 누워 일을 하기 시작했다.
시우는 간단하게 제이리 기획사를 짓눌렀다. 밟아도 꿈틀할 수 없게끔. 먼저 시작한 건 그쪽이니 이젠 봐줄 수가 없었다.
“바로 넘겼지?”
“네, 형님.”
태혁이 시우에게 와 보고했다. 시우는 치밀하게 일을 진행해 왔었다. 계산적이었다.
그동안 제이리 기획사의 비리들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것을 한번에 터트려 버렸다.
기자들은 물만난 듯 신나했고 연예기획사로는 제이리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정신없이 비리들을 막고 수습하느라 땀 좀 뺄 것이다.
건드리면 가시를 세우게 되어 있다.
제이리는 그 점을 너무나 쉽게 간과했던 것이었다.
“하와이 호텔 상황은 어때.”
“괜찮습니다. 계속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현지인의 반응도 좋구요.”
하와이 호텔은 시연의 명의로 사놓은 것이었다.
해외에 물 좋은 곳을 봐두었다가 하나 둘씩 호텔을 샀고 나중에 시연에게 선물하려고 준비해놓은 호텔이 몇 개 되었다.
“태혁아.”
낮고 진지한 음성이 태혁을 불렀다.
그의 우수에 찬 눈이 태혁을 바라보며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려 준비하고 있었다.
“예, 형님.”
언제나 한결같은 태혁과 시우. 둘의 관계는 처음 만날 때부터 지금까지 똑같았다. 함께였다는 것.
“조직은 이제부터 네 몫이다.”
“형님!”
태혁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시우를 쳐다보았다.
안된다, 아직은 저의 몫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똑같은 거야. 변함없어. 숨겨져있던 내가 그냥 묻히는 거야. 원래 그건 내 몫이 아니었지.”
“형님, 전 형님의 일을 옆에서 도울 뿐입니다.”
“정해져 있었던 거야. 예전부터 생각했던 거고. 네가 있었기에 백건파가 있을 수 있었다.”
한번 정한 시우의 결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태혁은 시우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안다.
시우의 한번 내린 결정은 다시 무르는 일이 없었다.
“형님..”
“마지막 명령이다. 자리를 맡아.”
태혁의 눈이 촉촉해졌다.
시우는 조직을 태혁에게 넘기는 것에 대해 욕심이 없었다. 당연한 절차였다.
“그리고 결혼해. 좋은 여자 만나서. 형한테 어울리는 멋진 여자 만나.”
시우가 오랜만에 불러주는 ‘형’이라는 호칭에 태혁이 눈가가 촉촉히 젖어들었다.
시우의 몸이 어느 정도 붙었고 상처도 나아졌다. 회복이 빠른 시우였다.
시우가 퇴원수속을 밟으러 원무과에 갔을 때 시연과 PP는 병실에서 시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가 문자를 확인하더니 설레발을 치며 TV를 켰다.
“난리 났대!”
후의 난리통에 도광이와 젠, 시연은 무슨 일인가 물었다.
“왜? 무슨 난리..”
연예속보가 나오는 채널에 모두들 눈이 고정되었다.
“뭐야, 저거?”
모두들 깜짝 놀라 입이 벌어졌다.
의자에 앉아있던 세 사람은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그 정도로 쇼킹한 연예뉴스였다.
“미친 거 아냐?”
채소아가 방송국 옥상에서 일을 벌이고 있었다. 대단히 위험하고도 어처구니 없는 일.
자살을 하겠다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옥상에 올라가 있는 채소아의 모습이 고스란히 TV에 나오고 있었다.
뛰어내리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경찰들과 방송국 사람들, 소속사 관계자들이 말리고 있는 위급한 상황이 생방송되고 있었다.
- 이젠 정말 끝이야! 모든 게 다! 다 망했다구! -
채소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연은 멍하니 TV 속 광경을 보고 있었다.
저게 진짜인지 드라마 연속극의 한 장면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상황은 급박하게 흐르고 있었다.
“저러다 진짜 떨어질라.”
도광이 말했다.
“언제 제대로 한번 노래 한 적도 없으면서. 인기 있을 때는 인기있다고 팬들 외면해놓구 인기 떨어지니까 또 외면한다고 저러고.”
“몸으로 승부하려니 당연히 노래가 안 나오는 거지. 음악은 아트(Art)거든.”
PP들의 말을 듣고 있던 시연은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래?”
“나 갔다올께!”
“어딜? 혹시 저기? 가지마, 저러다 말겠지. 쇼하는 거 같은데.”
후가 시연을 잡았다. 그러나 시연의 뜻은 강경했다.
“쇼든 아니든 쟤 저기서 저러면 내 맘이 안 편해.”
“가지마라! 기자들 쫙 깔렸는데 지금 가면 더 난리가 나. 지금 스캔들 때문에 눈이 빨개져있는 기자들 소굴이라구.”
후가 뜯어말렸다. 유리와의 열애설로 한번 기자들에게 당해본 후가 강력하게 시연을 말렸다.
그런데도 시연에겐 통하지 않았다.
“괜찮아!”
모두가 말리는 데도 뿌리치고 병실을 나왔다. 세 남자가 시연을 쫓아 병실을 따라나왔다.
“같이 가!”
같이 갈 수밖에 없었다. 시연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방송국 앞.
기자들이며 방송 관계자들, 그리고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는 방송국 앞이다.
옥상에선 아직까지 채소아가 서있는 게 보였고, 경찰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내려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밑에는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큰 에어 매트가 깔아져 있었다.
PP와 시연이 여기서 모습을 드러낸다면 방송국 앞은 더욱 아수라장이 되버릴 것이다.
세 사람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껴고는 방송국 뒤편으로 향했다.
다행히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쪽 비상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PP와 시연이 옥상 가까이에 오르자, 계단에 쪼르려 앉아있던 채소아의 기획사 식구들이 죄다 동시에 일어났다.
“문 열고 들어오면 떨어져 죽어버리겠다고 하도 협박을 해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여기 있는 거예요. 무서워서.”
간이 콩알만해져있는 기획사 식구들이 발만 동동거리고 있었다.
시연에겐 그런 채소아의 말이 통할리 없다.
“나 혼자 문 열고 들어가볼게. 문은 열려 있어요?”
“열려 있어요.”
“그럼 됐어요.”
채소아의 기획사 식구들은 한대 입을 모아 푸념을 늘어놓았고, 시연은 그런 사람들을 진정시킨 뒤, 발을 내딛었다.
“괜찮겠어? 혼자 들어가도?”
도광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살릴꺼야.”
시연이 계단을 올라 옥상문 앞에 다다랐다.
문을 살짝 열고 빼꼼 안을 살펴보니 채소아가 서있었다.
‘쾅!’
시연이 구멍 틈으로 안을 살펴보고는 바로 발로 옥상문을 사정없이 박차고 들어갔다.
시연이 보이자 채소아의 눈은 왕방울만해졌다.
“너너! 뭐야!”
채소아는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시연에게 소리쳤다.
“나가! 나 떨어져 죽는 거 보고 싶어?”
“너 진짜 떨어질 수 있어?”
시연의 말에 채소아는 눈이 뒤집힐 정도로 황당해했다.
“뭐야?”
“너 떨어질꺼냐구.”
떨어질려고 이 짓을 하고 있는데 시연이 떨어질꺼냐고 물으니 당연 황당했다.
“떨어질꺼야!”
“떨어질 수 있으면 떨어져봐! 뛸꺼면 빨리 뛰던가!”
“뭐야?”
“너가 떨어지면 내가 좋지, 너가 좋니? 난 너 없으면 가수생활 편하게 하게 될거라 좋다!”
“지금 염장지르니!”
채소아가 소리를 빽 질렀다.
옥상문도 잠가두지 않고 이런 시위를 한다는 건, 진짜로 뛰어내리겠다는 게 아니었다.
그냥 쇼일 뿐이었다.
누군가 강하게 내려오라고 애걸을 해야 내려가겠다는 나쁜 심보를 가지고 서있을 뿐이었다.
“너 왜 그래? 용기도 없으면서 이게 무슨 짓이야?”
“네가 어떻게 알아? 용기가 없을지, 있을지 어떻게 아냐고!”
“대체 뭐가 널 이렇게 만든 건데?”
“넌 모르겠지. 사람들한테 주목받고 있는 넌 모르겠지!”
“주목 받고 싶어서 이래? 사람들 마음 졸이게 하면서 주목을 받고 싶어?”
“그래! 주목 받고 싶어 환장했다! 그래서 이런다. 3집까지 냈는데도 사람들한테 잊혀지는 기분 알아? 갓나온 애송이는 대상타고, 난 상 하나 못 받고! 내가 있는 기획사는 망하게 생겨서 사장님이 이젠 나가란다. 다른데 알아보래! 허무해. 가수라는 게 이렇게 허무할 줄 몰랐다. 허무해서 죽을 맛이야. 그래서 이런다. 나 못잊게 하려고 뛰어내리겠다는데 니가 무슨 상관이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힘든 것도! 내 존재도 무시하고 알아주지 않으니까 이렇게 발악이라고 하는 거야! 됐어?”
시연이 가만히 채소아를 쳐다보았다.
진지한 눈으로 정확하게 시선을 마주한다.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다 뒤돌아섰다.
“그래, 알았다. 그럼 떨어져. 네 맘대로.”
시연이 체념을 한 듯 뒤돌아 몇발자국 걸었다.
채소아가 바란 방향이 절대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려오라고 울구불구 난리가 나고, 말리려고 온갖 힘을 써야 내려가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던 것인데 너무나 쉽게 시연이 뒤돌았다.
‘이건 아닌데.’
만약 이렇게 된다면, 구원의 손길이 지금 떠나버린다면 정말 뛰어내려야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채소아는 악에 바쳐 소리쳤다. 시연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가수가 되고 싶어서 무릎까지 꿇면서 권시우 사장한테 매달렸었어! 나도 가수 되고 싶었어! 권시우라면 날 최고로 키워주겠지 하고 몇 번이고 부탁했었어. 근데 안된대. 못 키운대! 난 안된다는 거야! 근데 넌 되더라. 내가 못하는 거 안되는 거 너는 다 되더라! 넌 눈이 살아있대. 그럼 내 눈은 죽어있다는 거야? 넌 그렇게 쉽게 되는 이유가 뭐냐고! 나보다 어리고 나보다 별로인 너가 쉽게 정상에 오르는데 난 뭐냐고!”
시연은 몸을 다시 돌려 방방 뛰며 악을 지르는 채소아를 쳐다보았다.
“왜 그런 거 같아? 사장님이 난 되구, 왜 넌 안된다구 한 것 같아?”
“내가 어떻게 알아! 빌어먹을!”
“난 절박했거든. 넌 그냥 한번 스포트라이트 받고 싶어서, 스타가 되기 위해서 가수가 되려고 했겠지만, 난 그게 아니었거든! 이거 아니면 죽는다고 생각하고 뛰어든거거든. 그러니까 다르지! 잘하는 거 해서 사람들한테 인정받으려고 하니까 넌 안 되는 거야! 난 사람들한테 인정받으려고 이 일을 시작한 게 아니라, 사람들한테 내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어! 힘든 사람! 나처럼 가난해서 울고 싶은 사람들한테 내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날 인정해주더라.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예뻤는지 좋아해줬어! 사랑을 주더라! 근데 넌 뭐냐! 사람들이 자기 노래를 들어줬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한 적 있어? 노래 부르고 싶어서 우는 심정 알아? 넌 그냥 스타가 되고 싶었던 거야. 뜨고 싶었구 사람들한테 잘 보이고 싶었을 뿐이야. 그러니까 안되지. 인기 있고 사람들이 찾아줄 땐 네 모습 감추어 버렸잖아. 네 노래, 네 춤을 보고 싶어해도 안 보여줬잖아. 음악을 사랑한게 아니라 너무나 자기 자신만 사랑하고 위했잖아. 그러니까 사람들이 등을 돌린 거야! 너가 싫어서가 아니야. 네 행동 때문이야. 조금 뜨고서 인기있으니까 나 스타네 하면서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버렸잖아. 사람들 무시하고. 너가 먼저 못되게 굴었잖아! 인과응보! 자업자득! 권선징악! 다 니가 만든거야!”
시연의 외침에 채소아가 굵은 눈물을 흘렸다.
그 말을 고스란히 듣고 그 자리에 서서 엉엉 울어제꼈다.
“허무하다고 생각하지마. 너가 가수라는 것 만해도 허무한 게 아니잖아. 가수 못해서 울고 있는 애들을 생각해봐! 그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넌 몰라! 누가 널 더 사랑해주길 바란다면 너부터 사랑해! 그리고 노력해!”
인정받고 폼나게 사는 건 나중 일이다. 먼저는 노력과 진실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런 구식 방법은 요즘 안 통해! 인기 떨어졌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이런 걸 택한 거니? 한심해! 이 똘추야!”
“뭐 똘추?”
“그래, 똘추! 똘아이에 추한 기지배! 부모님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이쁘게 더 잘나게 낳아주셨건만 이게 무슨 짓이니? 안 부끄러워? 죄송스럽지 않아? 그냥 떨어지면 여기서 끝이야! 누가 너 여기서 떨어진다고 불쌍하게 볼 것 같아? 다 뒤돌아서 욕해. 그래, 한 3일정도는 떠들썩하겠다! 유명 인기여가수 채소아 죽었다! 네 팬들도 울어주겠지. 근데, 잠시야. 이 바보야, 죽으면 사람들은 잊고 싶지 않아도 잊게 되있어! 3일 뒤면 뒤돌아서고 영원히 잊혀지게 될거라구! 이대로 간다면 정말 널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꺼다, 이 맹추야!”
씩씩거리며 말하는 시연의 눈에서도 어느새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너 이대로 그냥 떨어지면 난 어떨 것 같냐. 너한테 보란 듯이 나 잘난 거 보여주고 싶은데! 그동안 나 괴롭힌 거 몽땅 복수해주고 싶은데, 이렇게 가버리면 난 어떻게 하냐고! 내려와! 내려와서 나한테 한대 맞고 가! 어차피 떨어질꺼면 나한테 죽도록 맞고 떨어져!”
시연이 한 걸음 두 걸음 채소아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엉엉 울고 있는 채소아. 시연은 얼른 다가가 그녀를 잡아끌었다.
폴짝 옥상 안전한 곳으로 내려온 채소아다.
시연이 갑자기 잡아당겨서, 채소아가 발을 헛디뎌 넘어져 웃긴 꼴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떨어질뻔한 걸 살렸다.
“야! 이렇게 무식하게! 엉엉엉!”
“넌 무식한 방법이 통하는 거 같애!”
콧물 눈물을 흘리며 우는 채소아는 안쓰러울 정도였다.
“엉엉! 이 무식한 기지배!”
“바보같은 기지배!”
“말미잘같은 기지배!”
“오징어같은 기지배!”
유치하게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서로를 보며 소리쳤다.
“뚝 그쳐! 그 콧물 나한테 묻히면 패버릴꺼야!”
시연의 말에 채소아가 피식 피식 웃었다.
조금 진정이 되고는 자신의 피가 나는 무릎을 매만지며 말했다.
“여기 다 까졌잖아.”
채소아가 아프다며 자기 무릎을 애지중지 하며 감싸자 시연이 소리쳤다.
“죽을려고 했던 사람이 거기 좀 까졌다고 그러냐! 뛰어내렸으면 어쩔 뻔 했어!”
할말이 없다. 그 정도 상처는 뛰어내리는 것 새발의 피였다.
“넌 나한테 빚을 졌어. 그것도 두 번이나. 두고두고 갚아!”
“뭐? 함부로 끼어들면서 무슨 빚이야!”
“빚이지! 암튼 빚이야! 갚을 때까진 못 죽어! 알았어? 내 옆에서 두고 배 아프게 만들어줄꺼야! 이 빚쟁이야!”
“뭐야?”
시연의 막무가내식의 빚독촉이 시작되었다.
“너한테 나 잘나가는 거 평생 보여줄꺼야! 그래서 배 아프게 만들어줄꺼야!”
“내가 가만히 있을 꺼 같아?”
“그럼 너두 떠! 너두 인기많아지면 되겠네!”
시연의 억지에 채소아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 억지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시연에게 정말로 평생 고마운 빚을 진 채소아였다.
[55]
시연이 채소아를 데리고 나왔다.
두 여자가 옥상 문을 열고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채소아의 기획사 식구들과 PP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리고 시우가 있었다.
퇴원수속을 밟고 병실에 와보니 아무도 없었다.
텅 비어있는 병실 확인을 하곤 바로 시연에게 연락해보았다.
하지만 그 시각 시연은 옥상에 들어서 채소아의 구출에만 정신이 팔려 있어 전화가 오는지도 몰랐다.
전화가 안되자, 시우는 함께 와있던 시라이에게 전화를 했다.
시연이 채소아의 자살을 막으러 방송국 옥상에 있다는 말을 듣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말끔한 정장을 입고 있던 시우는 바로 태혁과 함께 방송국으로 향했다.
기자회견은 이틀 뒤 인데, 눈이 빨개져 있는 기자들이 거머리마냥 들러붙을 걸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지끈 거렸다.
“사장님!”
채소아의 자살소동을 마무리 짓고 옥상을 나오는 시연의 모습은 달덩이같이 환했다.
천진난만한 함박웃음을 하고 시우를 부른다. 화를 낼 수 없게 만드는 여자다.
장한 일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항상 위험하여 가슴을 조마조마 하게 한다.
권시우의 가슴을 졸였다 풀었다 할 수 있는 여자는 분명 한시연 뿐이다.
코끝이 빨개져있는 시연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게 시우의 눈에 단단히 콩깍지가 씌인게 분명하다. 시우가 시연의 손을 잡았다.
“가자.”
시우의 손을 꼭 잡고 시연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단을 걸어내려가고 있는 시연, 시우 커플을 보니 모두들 부러워 어쩔 줄 몰라했다.
“화났어요?”
“응.”
바로 화났다고 대답하는 시우. 시연은 그런 그의 마음을 다 안다.
자신을 너무도 사랑하고 아끼는 남자의 심정을 모른다면 곰탱이겠지.
“위험한 일은 멀리한다. 약속했던 거 잊지 않았지.”
“잊지는 않았는데- 상황이 그렇게.”
“내 말을 듣지 않았을 땐 어떻게 한다고 했지?”
“내가 뭐 해준다고 했었어요? 그런 말 안했었는데!”
“기대해.”
시우의 말에 궁금한 걸 못 참는 성격의 시연이 바로 알려달라고 보챘다.
“뭘 기대해요? 빨리 알려줘요!”
“그럼 여기서 하란 말이야?”
“뭔데요? 뭔데요! 궁금하단 말야!”
시우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계단을 내려갔다.
시연은 그 모습에 더 궁금해 죽겠다며 시우의 팔을 붙잡고 늘어졌고, 그렇게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중에 누군가 급하게 소리쳤다.
“야.”
채소아였다. 채소아가 시연을 불렀다. 변함없는 목소리.
하지만 그 전과는 다르게 한결 부드러워진 채소아의 목소리였다.
시연과 시우는 뒤따라온 채소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채소아는 미안한 표정과 고마운 표정을 섞어 말했다.
“고마워.”
방송국은 나가야 할 길이 모두 봉쇄되어 있었다.
수백명의 기자들과 경찰들, 팬들, 수많은 사람들이 방송국 전체를 막고 있었다.
시연과 시우가 빠져나가기 전 채소아를 구했다는 것이 삽시간에 보도되어 더 많은 인파가 몰려있는 상황이었다.
모두들 시연을 주목하고 있었다.
스캔들이 있고 처음으로 얼굴을 내비치는 시연과 시우이니 대어를 놓치고 싶지 않은 기자들은 취재하기 위해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시연, 시우 커플을 취재하기 위한 기자들간의 열띤 경쟁은 대단했다.
시우와 시연이 경호원들의 보호 속에서 얼굴을 내비치자 고목나무에 딱 달라붙은 매미마냥 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상식장에서 시연의 고백은 두 갈래로 의견이 갈리어 있었다.
역시 한시연답게 쿨하다! 멋진 고백 멋있었다! 좋았다는 의견이 있는 한편, 서운하다. 영원한 솔로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공식적인 발표가 없어 이야기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고 관심은 더욱 더 뜨거워져 있었다.
이 상황에 기자들이 눈이 뒤집어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기자들이 가만 둘리 없었다.
“두 분 사랑공개에 대한 구체적인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채소아씨를 어떻게 설득하신 겁니까?”
“사장님 어디를 어떻게 다치신 건가요?”
“열애공개를 하셨는데 더 이상의 언급을 안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정신없이 몰려드는 기자들 때문에 경호원들의 수고는 두배가 되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를 들이밀었고, 소리치고 난리도 아니다.
차가 있는 곳까지 태혁과 경호원들의 경호가 없다면 나가지 못할 상황이었다.
기자들의 억센 몸부림에 아직 아물지 않은 시우의 오른팔이 카메라와 부딪쳤고 시우는 심한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연을 안전하게 모셔야 겠다는 일념하나로 아픈 내색하지 않았다.
시연은 앞에서 카메라로 찍으며 인터뷰 요청을 하는 ‘s’ 방송국 기자의 물음에 간단한 대답을 하며 한 발 두 발을 내딛었다.
사람들에 밀려 겨우 차 앞까지 도착한 시연이다.
기자들이 뒤에서 성화를 내며 연인공개까지 했는데 그냥 가면 섭하다며 아우성을 쳐 시우와 시연을 그 자리에 멈춰 세웠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고, 시원하게 사랑을 보여줄 때가 왔다고 생각했는지, 시우는 시연을 차에 태우기 전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벌내린다고 했지. 기대하라고 했지. 기대해.”
시우의 말이 떨어지지가 무섭게 그의 입술이 시연의 볼에 와닿았다.
‘쪽-’
찰칵.찰칵!
시연은 놀라 눈을 깜빡거렸고, 화르륵- 얼굴 색이 붉게 변했다.
둘의 예쁜 모습이 고스란히 기자들과 방송국 카메라에 담겼다.
수백명의 취재진들에게 열띤 환호성과 카메라 플래쉬 세례를 받았다.
모여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커플을 지켜보았다.
그것도 잠시 시우의 입술이 시연의 볼에서 떼어졌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한시연씨를 사랑합니다.”
정중하고 힘있는 시우의 말에 모두들 석고상마냥 굳어버렸다.
여기자들과 여자팬들은 시우의 멋진 모습에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시연 또한 시우의 공개고백에 눈은 말똥말똥, 입은 다물어지지가 않는다.
시우가 씨익- 쿨한 미소를 지으며 시연을 차에 태웠다.
그리고 자신도 차에 올라타 문을 닫았다.
넋이 나간 듯이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던 기자들이 차 문이 닫히자 더 안달이 나 차문에 달라붙었다.
시연의 벤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방송국 앞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놀랬어?”
부끄러운지 살구빛인 시연의 얼굴이 점점 더 빨개지고 있었다.
그러자 빙그레 시연만의 티없이 맑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좋아요!”
감정을 숨기지 않는 순수함이 시우를 더 안달나게 하는지도 모른다.
“더 기대할 게 있는데.”
이보다 더 기대할 것이라. 시연은 눈을 반짝반짝이며 물었다.
“뭔데요?”
한 30분 후 차가 도착한 곳은 럭셔리한 분위기가 넘쳐 흐르는 큰 고급 저택이었다.
“시연아, 내려.”
살짝 잠이 들어있던 시연을 깨웠다. 시우는 시연을 데리고 저택으로 들어갔다.
딱 보기에 호화스러운 저택이 눈 앞에 보이자 시연은 눈을 비비고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이렇게 좋은 집에 사람이 살긴 하나요?”
“응. 이제.”
“여기 왜 온거예요?”
“들어가보면 알아.”
귀족이 살 것 같은 집에 시우가 문을 열고 시연의 손을 끌어당겼다.
“들어와.”
“막 들어가도 되요?”
“당연하지”
보통 주택과는 다르다. 집에 들어서자 집의 단아함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넓은 정원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벤치와 그네, 작은 티테이블도 나와있었다.
“와! 되게 깜찍해요!”
꼭 신비스러운 나라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연이 이곳저곳 보다 시우에게 다시 물었다.
“여기 어딘데요?”
“한시연한테 선물할 곳.”
“네?”
눈이 강아지마냥 커져서는 시우를 올려다보는 시연이다.
“이, 이 집을 저한테 선물 할 거라구요? 농담하는 거예요?”
시우가 키를 시연의 손바닥을 들어 올려놓았다.
“내가 몇 년전부터 너 주려고 손수 설계하고 만든 집이야.”
“몇년전부터?”
“응. 살아도 되고, 별장으로 써도 되고.”
집 선물에 시연이 물끄러미 집을 돌아보았다.
가족들이 사는 집도 시우가 마련하여 준 새 집이고, 게다가 이렇게 거대한 저택이라니!
공기도 좋고, 수영장까지 딸린 호화저택이다.
“받을 수 없어요! 나한테 집은..”
시연이 이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시우다.
그런 시연의 손을 잡아 끌어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돌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내내 시우의 심장은 두근거렸다. 자신도 모르게 행복해졌다.
집으로 들어가자 환하게 불이 켜져있는 내부가 더욱 마음을 끌어당겼다.
깔끔하고 분위기있는, 절대 혼란스럽도록 화려하지 않은 내부였다.
“이 집은 정말.. 못받겠어요. 제가 어떻게 받아요. 이렇게 큰 집을.”
“그럼 날 받아줄래?”
“네?”
시우가 투명한 시연의 눈을 내려다보다 방문을 활짝 열었다.
시연은 열린 방안을 슬쩍 보았다.
방안은 시연이 입이 벌어지도록 놀랄 만한 일이 준비되어 있었다.
큰 방엔 유리로 된 창문이 벽을 대신해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 창문 너머로는 바다가 보였다.
그리고 폭신해보이는 침대 위에, 새하얀 웨딩드레스가 올려져 있었다.
“와…! 웨딩드레스!”
시우가 웃어보였다. 그의 웃음은 진정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시연이 천천히 발을 옮겨 침대에 올려져있는 웨딩드레스를 들어보았다.
눈꽃같이 새하얀 웨딩드레스. 시연의 사이즈에 딱 맞는 고급스럽고 우아한 웨딩드레스였다.
시연이 무슨 뜻이냐며 궁금한 표정을 짓기 전 시우가 청혼 반지를 내밀었다.
케이스에 담겨있는 새련된 다이야 반지에 시연의 눈은 토끼눈이 되어 시우와 반지, 그리고 웨딩드레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시우는 시연의 눈높이에 맞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벅차오르는 감동에 시연은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꿈같은 이 순간에 왈칵 눈물이 났다.
주책맞게 무슨 눈물이 비집고 나오는지. 시연은 눈물을 흘리며 밝게 웃었다.
태양보다 더 반짝이는 미소로 대답했다.
“네.”
시우의 프로포즈는 시연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대답을 듣자마자 시우는 시연을 번쩍 들어 안았다.
그의 눈빛이 사랑한다는 말을 대신한다.
평생 사랑하자. 영원히 함께하자.
하늘같은 사랑을 주고 싶다.
담아도 담아도 담을 수 없는 넘치는 사랑.
담아도 담아도 다 담지 못할 정도로 예쁜 사랑을 주고 싶다.
서로를 감싸주고 따뜻하게 해주는 포근한 안식처가 되어 준다.
그들은 그랬다.
그는 그녀에게 하늘이 되어 주었고, 그녀는 그에게 햇살이 되어 주었다.
* 권시우와 한시연의 웨딩 콘서트에 초대합니다.
“빨리 와! 결혼식 시작하겠다!”
“한번뿐인 결혼식인데 놓치면 큰 일 나!”
여고생 무리가 땀을 뻘뻘 흘리며 정신없이 뛰어 한 종합 운동장에 도착했다.
종합 운동장엔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팬들은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 있었다.
아우성대는 기자들도 잠잠하게 만드는 시연의 팬들이다.
“아저씨들! 줄 서시라구요! 우리 시연언니 결혼식 망칠 셈이예요?”
“비키세요! 한 줄로 똑바로 서야한다는 거 모르세요? 이건 기자아저씨들을 위한 게 아니라 저희 팬들의 축복이 함께하는 결혼식이라구요!”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내보내겠어요!”
그 가수에 그 팬이다.
빽빽거리는 시연의 팬들 때문에 기자들은 아무말도 못하고 줄을 서기 시작했다.
“자자, 모두들 조용히 해주시구요. 곧 있으면 식이 거행될 예정이니 모두 자리에 앉아주시길 바랍니다.”
사회를 보는 시라이 젠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의 목소리는 맑고 화창한 날과 딱 어울리게 밝고 씩씩했다.
시연은 팬들을 모두 초대했다.
시연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하객은 팬들이었다.
종합 운동장에 모인 팬들은 질서정연하게 자리에 앉았다.
화려하게 꾸며진 결혼식장은 따사로운 봄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신부 대기실에선 시연이 꽃단장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거울로 자신을 살펴본 다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진영과 새린이 꾸며준 신부는 하늘 아래 있는 어떤 신부보다도 아름다웠다.
“정말 정말 예쁘다. 아- 나도 결혼하고 싶다. 결혼! 결혼!”
유리가 시연을 보며 부러워했다. 옆에 있던 후가 알겠다며 귓속말로 유리의 부러움을 잠재웠다.
“오늘 이쁘긴 정말 이쁘네.”
누군가 했더니, 채소아가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너무 이뻐서 질투난다.”
“왔네?”
“그럼 와야지. 빚 갚으라고 했잖아. 이럴 때 얼굴 내비쳐서 점수 따야 나한테 이로울 거 아냐.”
“빙고!”
명랑한 시연의 모습에 채소아의 입가에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채소아는 시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악수를 했다.
“결혼 축하해.”
“고마워.”
시연과 소아가 마주보고 웃고 있을 때, 도광이 가운데에 끼어들었다.
소아의 손을 밀치며 시연의 이쁜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어보였다.
“이쁘다, 제자님아.”
“고마워.”
“행복해야 돼! 시라이한테 배웠어. 내가 진짜 사랑하는 거면 네 행복을 빌어주는 거라구.”
“아유, 기특해.”
시연은 도광의 볼을 꼬집어 주었다.
이젠 도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의 옆엔 새로운 사람이 서있으니까.
“진짜 진짜 예뻐.”
“하율이도 와줘서 고마워.”
“신부님 준비되셨으면 나와주세요!”
“네-”
‘후.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자.’
화사한 꽃같은 시연이 모습.
새하얀 드레스는 시연을 천사로 보일 정도로 눈부시게 만들었다.
시연이 나오자 신랑이 될 시우가 앞에 서있었다.
‘긴장하지마. 내가 있잖아. 이젠 내가 평생 옆에 있어줄께.’
그녀의 손끝을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기자들과 팬들은 신부 시연과 신랑 시우가 함께 나오자 뜨거운 박수와 함께 함성을 질렀다.
시우의 가족들, 시연의 가족들, 친구들, 동료 연예인들과 연예기획사 사람들, 시연의 팬들이 결혼식장을 꽉 메우고 있었다.
결혼행진곡이 신나게 나오고-
시우는 시연과 손을 잡고 들어갔다. 하얀 카펫이 깔려있는 곳을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사랑의 약속이 고귀하게 기억되도록 둘의 결혼식이 성대하게 치루어졌다.
“한시연, 사랑합니다.”
“권시우,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
.
.
노을지는 붉은 하늘에 비행기가 높게 떠있다.
“꺄- 너무 신나!”
그 비행기 안에는 어린아이같이 방방 뛰며 좋아하는 시연이, 조종하느라 땀을 빼고 있는 시우, 두 사람만이 있었다.
“시연아,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
“하고 싶은 말이요?”
시우의 물음에 시연이 옆을 쳐다보며 되물었다.
곰곰히 생각하는 척 하다,
“아! 생각났다!”
이마를 탁 치며 말했다.
“배고파요!”
시연이 일부러 엉뚱한 대답을 하자 토라진 척 하는 우리의 권사장님.
시연이 ‘쿡’하고 웃음을 날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사랑해! 권시우!”
그제야 큰 미소를 짓는 시우다.
“나두야! 사랑해!”
그들의 빨려들어가는 이야기.
마력. The End.
정말정말 재밌어요!!!!!!
시연의 성격이 맘에 쏙드내요!!
앞으로도 좋은 소설 많이 연재해주시길 바랍니다ㅎ
근데 시연이 고딩아뉜가?? ㅋㅋㅋㅋ
우왕우왕우왕... 오랜만에 보니까 감회가 색다른용ㅋㅋ
시연이넘 멋지고 이뻐요 정말 멋진 소설이예요 ♡
이거보고 뿅갔어요ㅠ.ㅜ!
벌써 세번째읽어요~너무 재밋어요! 멋진 새작품 기대할게요~
진심 고삼인데 어제 또 읽었어요 이로써 한 마흔번은 읽은듯합니다........;;; ㅋㅋㅋ
드디어 완결까지 다봤어요!^^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 정말 내용도 좋고 질리지 않는 소설이예요!!
역시 단비님은 다르세요^^다른 소설도 열심히 읽고 덧글도 열심히 달아야겠어요!!단비님 홧팅!!ㅎ
저이소설 오늘 다읽었어요 >_< 역시 단비님 소설은 넘짱!!
아~ 시연이 멋져요 ^^
앙 재밌따>_<
역시 마력이 있네요^^
단번에 1편부터 다 보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