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 꽃집
아직은 덥고 햇살도 따갑지만 그늘아래는 제법 서늘한 것이 가을 냄새가 난다. 가을은 참 좋다. 너무나도
푸른 하늘과 상쾌한 공기가 고독의 깊이를 더해주는,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한다는데, 소매화원을
운영하는 우리들의 이 가을은 시원한 생맥주 한 잔과 땅콩안주를 더욱 절실하게 하는 것 같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이나, 다른 지역의 길가를 지나다 보면, 빼꼭히 들어서 있는 상가들 틈에서 약 2~3
년 전에만 하더라도 한 블록에 두 세 곳이던 화원들이 무대에서 점차 사라지고 대신 반찬가게와 죽 전문
점, 문구팬시점, 김밥전문점, 떡집 등이 새롭게 자리를 메우고 있다. 물론 도시 외곽에 있는 대형 비닐하
우스화원들은 아직도 수적인 면에서 건재하다고 하지만, 도시개발이 가속화 되면서 장담할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도심의 상가집단에서 화원이 퇴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필자는 우선 임대
료 지급조차 버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하루 매출이 얼마나 될까 하고, 3년 전에 딸애가 다
니는 초등학교 옆 건물에 새로 개점한 근사한 화원을 매일 유심히 살폈던 경험이 있다. 옷 가게를 했던
자리인데 비교적 건평이 넓은 4층 건물에 아이들이 좋아하던 유명 패스트푸드점과 은행 등이 입점한 1
층이고, 초등학교 옆이라 자리세도 꽤 비쌌던 곳이다. 인테리어도 깔끔하게 했고, 꽃 다루는 솜씨도 좋아
보였다. 주변에 예쁜 꽃집이 새로 생겨서 좋긴 했지만, 한 달이 지나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매출이
도저히 나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겉으로만 볼 수 있을 뿐 속내를 모르는 필자가 그 같이 걱정했던
까닭이 있다. 보름이 지나면서 화원의 개점시간과 폐점시간이 일정하지 않았다. 처음 문 열고 며칠간 주
위의 호기심과 친지들의 배려 속에 다소 바빴던 기간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대비를 한 듯 했지만, 그새 여
직원을 그만두게 하고 혼자 운영하려 하니 사정이 그럴 만도 했다. 필자가 걱정한데로 화원은 다섯 달 도
못 채우고 가게를 아이스크림집으로 넘겨야 했다.
점포에는 고객의 눈길을 끌만한 상품도, 또한 팔고자 하는 의욕도 없어보였다. 필자가 가끔씩 들어가 보
면, 일반적인 꽃 냉장고와 생화, 싱크대, 작업대겸 계산대가 있고, 진열대에는 몇 가지 조화소품과 유리
화기들, 바닥은 관엽소품 몇 개와 중간급 귀면각선인장 한두 개 정도가 구비해 놓은 상품의 전부이다. 모
두를 판매한다 해도 어림잡아 2~30만원이 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고객들이 들어와서 무엇을 사겠는
가? 그나마 가맹점들로 부터 이따금씩 들어오는 주문배달 마저 없다면 꽃 냉장고 역시 쓸모없는 쇳덩어
리처럼 텅 비어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의 화원이 유지되려면 주문배달 포함해서 하루 평균 30만원 이상이 판매 되어야 한다. 30만원 팔
기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점포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원칙이 있다. 점포의 위치별,
품목별 할당매출이 그것이다. 매장의 가장 좋은 자리와 그곳에 놓이는 상품의 매출포지션을 주축으로
꽃냉장고와 작업대에서 발생하는 매출포지션, 기타 진열대에서 보충되는 매출 등 당일의 매출이 합산되
는데, 필자의 견해로는 핵심의 자리에서목표매출의 50% 약 15만원 이상이 판매되어야 되며, 꽃냉장고
부분에서 10만원 나머지 진열대에서 5만원정도의 판매로 하루매출이 구성되어야 한다. 가장 좋은 자리
는 지역별 특성을 고려하거나, 기존 매출추이를 참고하여 선정된 제품들이 자리 잡아야 되며, 유행이나
기호에 따라 수시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생화부분은 꽃 배달 가맹점의 평균 주문과 학교주변이라는 환
경적 강점을 살려 매일 최소매출이 발생되도록 영업과 서비스를 다해야 된다. 기타 진열대는 꼭 화원에
서만 구할 수 있는 상품들이 진열 되어야 한다. 즉 빈 화분이나 배양토, 비료, 난에 관련된 자재, 식물 영
양제 외에 기본적인 원예부자재의 구색이 맞아야 필요한 고객들이 다시 오게 된다.
언급된 내용들만 검토해 봐도 얼마나 바쁘겠는가. 최소 2~3일에 한 번씩은 제품을 구매해야 되고 10일
에 한번은 전면의 제품을 교체해 주어야 고객의 관심을 유지 할 수 있다. 또 기타 진열대의 상품들도 매
일 닦고 위치변경을 시켜주어야 하며, 문은 활짝 열려있고 매장이 상쾌하여야 고객의 마음을 잡을 수 있
다. 거기다 수시로 화원의 존재를 알리는 영업활동을 하여야 한다. 물론 주변의 가장 큰 고객인 학교와
학부모들과의 거리를 좁혀 놓는 일이다. 당장에 성과는 없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지역 쇼핑몰의 한 품
목으로 자리를 잡아가는데 기여하는 바가 크리라 생각된다.
결코 혼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경험과 기술이 필요하며, 계획도 세워야 한다. 무작정 버티고
보는 끈끈한 마음자세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런 마음자세로 시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저 쉽게
내 장사 한 번 해보려고, 더 많이 벌어보고 싶어서, 기술이 아까워서 등 많은 사람들이 한가한 마음으로
시작하고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쉽게 생기고 금새 문을 닫는 것이다. 점포를 열고 닫는 과정
에서 생기는 손실이 다른 업종같이 큰 것은 아니지만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인데, 쉽게 포기하고 잊으려는
것 같다. 그래서 필자는 더욱 안타깝다.
옷 가게에 이어 화원들이 서서히 빠져나간 자리를 반찬가게와 떡집, 죽 전문점이 메우고 있다. 김밥 전문
점도 꾸준하다. 반찬가게에 가보면 반찬이 가득하다. 집에서 볼 수 없었던, 어린 시절에 어머님이 만들어
주셨던, 진기한 반찬들이 가득 있다. 가끔씩 아내의 손에 이끌려 반찬가게를 방문해 본다. 요즘과 같이
부부가 함께 일하는 환경에선 결국 활성화 될 수밖에 없는 업종이다. 뻔히 아는 품목이었지만, 작심하고
시작한 누군가에 의하여 훌륭한 생계거리로 발전한 것이다. 새로운 직업이 많이 필요한 현실에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죽 전문점과 떡집도 마찬가지다. 죽은 웰빙 시대에 꼭 맞는 아이디어라고 생각된다.
처음엔 저게 될까 하고도 생각해봤는데, 점포수가 늘어나는 것이 예사 일이 아니다. 종류도 다양하지만,
판매단가 또한 만만치 않아 적정매출 유지가 용이할 듯 보인다. 기존의 인식과 달리 아주 고급스러운 인
테리어도 죽이 확실한 선물상품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한때 동네시장 한켠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방앗간이, 생활습관이 바뀌고 식빵에 밀려 아예 사라지는 줄 알았던 떡이 요사이 제과점보
다 더 많이 보이는 떡집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떡도 마찬가지로 명절 때나 맛볼 수 있었던 여러 종류의
다양한 상품으로 소비자들 가까이 다가 왔다. 먹거리로써 적지 않은 판매단가가 점포 운영자들에게 많
은 이익과 생활을 보장해준다.
화원의 장점은 확실하다. 꽃이 아름답고 우아하기 때문에 판매하는 사람의 호칭도 아저씨나 아줌마가 아
니라 선생님이고, 고객들은 선생님들의 몸에서 항상 꽃향기를 느낀다. 그렇지만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
간과 비용을 지불하고 생산되는 매출의 크기는 현저하게 다르다. 화원이 경쟁에서 밀리는 이유이며 단점
이다. 또한 더 이상 생업거리가 될 수 없는 증거가 된다. 화원이 단독으로 생계의 방편이 될 수 없다면 머
지않아 업종 자체가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존폐의 기로라는 냉혹한 현실 앞에 있다. 전
국에 등록된 화원만 2만 곳이 넘는데, 이대로 간다면 외람되지만 향후 3~5년 후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필
자는 말하고 싶다.
우리는 꽃이라는 확실한 상품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만약 가까운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제과점 등에서 꽃
을 판다면, 꽃은 한 개의 상품으로 전락되고, 화원은 사라 질 것이다. 꽃 한 가지만 보면 그렇다. 필자의
생각은 꽃을 중심으로 그 주변상품을 개발하고 보급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스타일의 화
원구조로는 어렵다. 재래시장 길가의 때 묻은 탁자위에서 팥죽을 팔았던 방법으로 죽 전문점을 운영했다
면 지금과 같은 자리매김은 어려웠을 것이다. 화원도 마찬가지다. 전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20년 전의 화
원과 지금의 화원이 다른 점은 거의 없다. 그 수 만 현저하게 줄었을 뿐, 꽃 냉장고와 난, 관엽류, 조화소
품, 간단한 화병류가 전부인 매장의 구조는 별반 차이가 없다. 좀 넓은 곳이라야 한 쪽에 화환 한 개 꼽을
수 있는 공간이 추가 될 뿐이다.
모두 느끼고 있는 것처럼 경조사에 주로 쓰였던 난 종류와 꽃다발, 바구니 화환 등의 소비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소비자들의 인식과 문화가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덤덤하게 현실을 맞이하고 있
는 것처럼 보인다. 가뜩이나 많은 꽃배달 전문점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과거처럼 꽃배달에만 의존해서
는 몇몇 영업력 있는 화원을 제외하곤 존재 할 수 없는 구조인데, 우리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고작 오
랜 기간 동안 자신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형성해놓은 가격만 자꾸 내려놓고 있다. 원인을 너무 쉽게 찾으
려고 들 한다.
95년에 2억하던 강남의 집값이 현재는 10억이 넘는 곳도 있다. 또 300원하던 아이스크림이 500원이 넘
는다. 길가에서 먹던 라면도 1200원에서 2200원으로 올랐고, 700원이면 빌렸던 비디오가 2000원이다.
1000원이면 먹던 팥죽이 4000원은 줘야 되고, 기본이 1000원이던 떡볶이가 2000원이 넘는다. 그런데
우리는 4000원에 팔았던 허브포트를 지금 1500원에 팔고 있다. 그리고 10만원씩 받았던 화환마저도 8
만원으로 내리려고 애쓰고 있다. 고객이 아니라 판매하는 우리들 자신이 열심히 내리기 경쟁이다. 기름
값은 어떤가. 95년에 500원선이던 가격이 지금 세 배 이상 올랐다. 물류비가 올라도 최소한 두 배 이상
올랐을 텐데, 더 올려야 될 판에 내린다고들 하니 무지하게 안쓰럽고 불쌍하다.
우리 화원업계에도 돈 많이 벌고 성공한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아직도 잘되는 점포가 많이 있고 새로
화원을 열고자 하는 분들 역시 많다. 지금은 성공한 분들이 시장에 은혜를 갚아야 할 때라고 필자는 생
각한다. 적어도 화원이라는 테마가 상가의 숲속에서 사라져 버리지 않도록, 화원이 최소한의 생계유지
정도는 가능한 업종으로 남을 수 있도록 시장을 이끌어 주어야 될 때라고 필자는 거듭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 이익보다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봅시다. 우리의 꽃이 다른 업종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붙잡기
위하여 함께 노력합시다.
첫댓글 글을 읽고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제과점에서 케익하고 꽃바구니와 겸하여 배달하고 떡가게에서도 그러고 화환은 재생해서 배달하고 질서가 없습니다.꽃가게 하시는분만 이도 저도 어디에다 발을 맞춰나갈지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