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4장
1. 사사기 4장 구조
사사기 4장은 가나안 왕 야빈의 압제로부터 여사사 드보라의 활약을 다루고 있는 기사로 다음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1-10절. 가나안 왕 야빈의 압제에 대항하는 여사사 드보라의 등장
11-16절. 이스라엘의 바락 군대가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의 격전에서 승리함
17-24절. 패퇴한 시스라의 죽음과 드보라의 승전가
2. 사사기 4장 주해
사사기 4장의 구조에 의해 각 단락의 본문을 주해하면 다음과 같다.
4:1-10 / 가나안 왕 야빈의 압제에 대항하는 여사사 드보라의 등장
1-10절 / 1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2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으니 그의 군대 장관은 하로셋 학고임에 거주하는 시스라요 3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4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5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6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7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셨느니라 8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니 9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10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만 명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이스라엘은 학대와 억압을 받아야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찾을 줄 아는 어리석음에 있는 미련한 백성 된 모습을 보였다. 그토록 죄를 사랑하며 악한 길에 서기를 즐겨하는(참조. 시 1:1) 그들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시고 징계의 채찍을 드셔서라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일하심을 사사기 전체를 통해 눈 여겨 보아야 하는데, 이는 4장에서도 보게 된다.
그런데 앞서 3:31에서 사사 에훗이 죽은 뒤 아낫의 아들 삼갈이 이스라엘을 이끄는 사사가 되었는데, 그에 대한 기록은 아주 간단했다. 삼갈은 소 모든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는 기사를 다루고 있는데 4:1에 이르러서 다시 기록이 “에훗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여호와께서 하솔에 도읍한 가나안 왕 야비의 손에 그들을 파셨는데…”로 시작하고 있다. 삼갈이 죽은 후에가 아닌, 여전히 ‘에훗이 죽은 후에’이다. 삼갈의 활동에 보면 그가 몇 년을 활동하고 죽었다는, 그리고 삼갈이 사사로 있는 몇 년간은 이스라엘에 평화가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 이는 삼갈이 사사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활동했지만 이스라엘 주변에는 블레셋 외에도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이방 족속들이 있었고, 이는 이스라엘이 이제는 가나안 족속들과의 혼결(混結), 우상숭배에 만연되어 있어 사사 삼갈의 활동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으며,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속에 있으면서도 무감각한 상태에 놓여 있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스라엘에 평화가 없다. 삼갈을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사사로 세우셨으나 그의 구원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 돌이킴이 없이 죄악에 젖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없는 이스라엘은 평화의 시대를 잃어버리고 암흑의 시대를 살아간다. 그래서 엘리훗이나 에훗이 사사로 활동하던 때에 말씀하시던 “그 땅이~동안 태평하였다”는 기록이 사사 삼갈이 활동한 시대의 기록에서는 없다. 그리고는 바로 다시 “에훗이 죽은 후에”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에훗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또 하나님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 여기의 ‘또’라는 말은 반복을 의미할 뿐 아니라 점점 더 가중되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에훗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우상숭배를 하지 않게 하고 적의 압제에서 보호하였으나, 에훗이 죽은 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사가 그들을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여 엄격하게 통치, 교훈하였던 데서 벗어나 하나님을 떠나고 그 열조보다 더욱 패역하여 우상숭배를 하고 패역한 행위를 하였다. 그러한 이스라엘의 죄악은 삼갈 때에도 그치지를 않았으며 오히려 계속하여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러므로 ‘에훗이 죽은 후에 또 하나님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고 계속된 진행으로 기록해 주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에훗이 죽은 후에 얼마간 그렇게 패역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기간이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패역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5:8에 잘 반영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저마다 새로운 신들을 자기 신으로 삼고 섬겼다. 전쟁이 일어나 적군이 성문에까지 들이닥쳐도 그 신들을 붙잡고 있었다. 그만큼 정신이 우상숭배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언제까지 그렇게 되는 것을 방치하지 않으셨다.
그것으로 하나님은 사사 에훗이 죽은 후 이번에는 가나안 왕 야빈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압제케 하였다. 그에 따라서 하솔을 도읍 – 수도 – 으로 삼고 인근 지역을 다스리던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의해 이스라엘이 20년 간 심한 학대를 받게 된다. 야빈이 어떤 사람인지는 여호수아 11:1 이하에서 알 수 있다. 그는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길갈 진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마돈 왕 요밥과 시므론 왕과 악삽 왕과 및 북방 산지와 긴네롯 남편 아라바와 평지와 서방 돌의 높은 곳에 있는 왕들과 동서편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산지의 여부스 사람과 미스바 땅 헤르몬 산 아래 히위 사람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연합군을 형성할 것을 제의하여 동의를 얻었을 만큼 그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했으니 그만큼 군사력 또한 강했다. 사사기 4:2-3에서의 하솔 왕 야빈은 철 병거만도 900대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하솔 왕 야빈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이 있다. 4:2에서의 하솔에 도읍한 가나안 왕 야빈은 여호수아 11:1에서의 하솔 왕 야빈과는 동일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호수아 11:1 이하에서 하솔 왕 야빈은 여호수아와의 전쟁에서 패하였다. 이 전쟁에서 하솔 왕은 죽임을 당하였고 연합군은 전멸을 당하였다. 그리고 하솔 도읍은 불타버렸다. 그 후 가나안 주민들은 하솔 성을 재건하였는데, 그 도읍을 다스리는 왕 야빈은 세습적인 이름이다. 마치 애굽 왕을 바로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사사기 4:2에서의 하솔 왕 야빈은 그 세습에 있은 왕으로서 철 병거를 900대를 거느린 막강한 군사력을 행사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혔는데 20년 동안을 심히 학대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깨우치기 위하여 다이 가나안의 모든 족속들 중에서도 가장 강하고 포악한 하솔 왕을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20년 동안 괴롭힘에 있게 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 일로 인하여 큰 근심에 있게 됨으로 마침내 회개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20년 동안을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좀처럼 돌이키지 않고 있다가 그 고통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마음이 이전보다 더욱 더 강퍅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부패한 성향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가 아니면 바뀌지 않는다. 하나님의 구원을 열조들에게서 듣고 또한 자신들이 직접 경험했으면서도 도무지 돌이키지 않았다. 그러다가 야빈에 의해 압제받은지 20년 만에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이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돌아보기로 하신 것이다.
해서, 이때를 기다려 오신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옷니엘, 에훗을 사사로 세우셨듯이 이번에도 이미 그들을 위하여 한 사사를 준비해 오셨다. 그 사사는 드보라이다. 드보라는 사사기에 등장하는 모든 사사 중에서 유일하게 여사사인 특징을 갖는다. 드보라는 랍비돗의 아내1)로 사사로 사역하게 되기 전에 여선지자였다. 그렇게 여선지자로 이스라엘에서 하나님께서 예언하시는 대언자로 사역하는 활동에 있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게서 사사로 활동하는 사람이 남자가 아닌 여자인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는 선지자의 경우도 동일하다. 그렇게 일반적이지 않은, 특이한 일인 남선지자가 아닌 여선지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활동하게 된 것은 이스라엘이 처한 종교적이요 신앙적인 상황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사사 에훗이 죽은 후 삼갈이 그 뒤를 이어 사사의 활동에 있었음에도 이스라엘은‘왕이 없이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살아가는 어둠이 짙었던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여자는 남자에게서 보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지 않은 연약한 자라는 인식에 있는데, 남자 그 누구에게서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쓰임에 있지 못하는 타락한 부패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실로 충격 요법을 사용하시는 것으로 하나님은 연약한 여자를 남자를 대신하는 선지자로 세워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사역하는 활동에 있게 하셨으니, 여선지자 미리암의 경우가 그랬으며(출 15:20), 이번의 드보라, 그리고 앞으로 훌다(왕하 22:14)의 경우 또한 그렇다. 이렇게 사람들이 연약하다고 여겨 그리 관심을 갖지 않는 여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의 구원은 사람의 능력에 의해서 있어지는 일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어 가신 것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의 기준에 의하여 그 가망성이 계산되는 것도 아니다. 선지자 스가랴는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라고 하였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드보라가 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 나가시는 것이기에 그가 여자라고 하는 그 자체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이스라엘이 드보라의 활동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고 드보라의 다스림을 받느냐는 것이다. 드보라의 다스림을 받으면서 자신을 하나님께 나아가며 하나님께 묶어두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에훗이 죽은 후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하는 종교적이요 신앙적인 상황은 여선지자의 사역을 하는 활동에 있는 드보라를 예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 외에 전쟁을 이끄는 재판관(5절)과 통치자(6-10절)의 역할을 하는 사사의 직무도 맡게 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왕 야빈을 충동하여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과 관련하여 드보라는 에브라임의 산악지대 라마와 벧엘 사이에 있는 곳, 자기 이름을 따서 지은‘드보라’라고 하는 종려나무 아래에 가서 있고는 하였는데, 그때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판결 받을 사건을 드보라에게 가지고 와서 해결하였다. 그런 어느 날 드보라는 사람을 보내어 납달리 지파 사람들의 지역에 딸려 있는 게데스에 살고 있는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불러 오게 하였다. 그리고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셨으니,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1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주리라’하셨다.” 그러자 바락이 대답하기를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않으면 나도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므로,2) 드보라는 그와 함께 갈 것임을 약속하면서 “그러나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9절)라고 말해주어서 이번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승리로 거둔 영광은 그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것은 여호와이신 하나님께서 시스라를 바락의 손에서 이미 여사사 드보라의 손에 넘겨주신데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바락은 그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서 전쟁에 참여해야 할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드보라와 바락은 함께 게데스로 갔으며, 바락은 납달리 지파 사람과 스불론 지파 사람들을 게데스로 집결시켰다. 그 수는 1만 명에 이르렀으며, 그들은 바락을 뒤따라 다볼산으로 올라갔으며 드보라도 그들과 함께 올라갔다.
4:11-16 / 이스라엘의 바락 군대가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의 격전에서 승리함
11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 12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사람들이 시스라에게 알리매 13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 병거 구백 대와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을 하로셋 학고임에서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 14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 하는지라 이에 바락이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15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걸어서 도망한지라 16바락이 그의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하로셋학고임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었더라
바락이 드보라와 함께 게데스로 갔으며,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으로 올라가 진지를 구축하고 전쟁에 임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시스라는 900대나 되는 철 병거 부대와 그밖에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온 군병력인 대군을 동원하여서 하로셋에서 기손강으로 집결시켰다. 이러한 움직임을 간파한 드보라가 함께 참전한 바락의 이스라엘 군사 1만 명은 가나안 왕 야빈이 임명한 하로셋 학고임3) – 하로셋 땅(지역) - 에 거주하는 군대장관 시스라(2절)가 지휘하는 군대와 맞섰다. 하나님께서는 야빈 왕이 군대장관 시스라가 이끄는 철 병거 900대를 소유하고 수많은 군사로 구성된 대부대를 여사사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군사 1만 명을 이끄는 지휘관으로 임명한 바락으로 하여금 맞서서 싸우게 하셨다. 현대의 군대로 보면, 가나안 왕 야빈이 조직한 군대는 탱크 900대로 구성된 기갑부대를 거느린 엄청난 숫자의 군사이며, 바락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는 탱크 한 대 없이 고작해야 순전히 보병 1만 명밖에 안 되는 것이어서 이 전투는 인간의 계산으로는 해보나마나한 것이었다. 하지만 드보라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 바락에게 명하였다.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14절). 이 명령이 떨어지자 바락의 군대는 다볼산에서 계곡으로 달려가 시스라의 군대를 향하여 돌진하였으니, 하나님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파하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바락을 위해 싸우셨기 때문에 막강한 시스라 부대는 패퇴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전쟁에 바락과 군사 1만 명을 참가시켰지만 전쟁은 하나님이 하셔서 그들 앞에 서서 싸우셨다. 이 전쟁은 사람과 무리의 힘을 의지해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들 위에 능력의 손을 행사하셔서 되어진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바로와 그 군사와 싸울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셔서 바로의 군대를 홍해에서 전멸시킴으로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하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행하신 이적을 자신의 눈으로 보았다. 그 이적이 시스라와의 전쟁에서도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 시스라를 쳐 승리하신 것은 하나님이셨다.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파하게 하시매”에서 사용한 ‘칼날’이 그것을 뜻한다. 칼을 들고 싸우기는 바락과 그의 군사들이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 칼날에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행사하셨다. 곧 칼날은 하나님이 시스라와 그의 군대를 심판하여 멸망시키신 권능이었다. 바락과 그를 따른 군사 앞에서 그러셨다. 바락과 온 군사는 자신들이 들고서 싸우는 칼에서 다만 하나님의 권능을 목격할 뿐이다. 그러므로 시스라가 이끄는 군대는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만큼 철저하게 패하였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왕 야빈을 패배케 하였을 뿐 아니라, 나머지 모든 싸움도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하셨으니, 야빈과 그의 모든 군대를 진멸시켰다(4:23, 24)
4:17-24 / 패퇴한 시스라의 죽음과 드보라의 승전
17시스라가 걸어서 도망하여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이는 하솔 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의 집 사이에는 화평이 있음이라 18야엘이 나가 시스라를 영접하며 그에게 말하되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매 그가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이 이불로 그를 덮으니라 19시스라가 그에게 말하되 청하노니 내게 물을 조금 마시게 하라 내가 목이 마르다 하매 우유 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게 하고 그를 덮으니 20그가 또 이르되 장막 문에 섰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네게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 하고 21그가 깊이 잠드니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가지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그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22바락이 시스라를 추격할 때에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아 그에게 이르되 오라 네가 찾는 그 사람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매 바락이 그에게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엎드러져 죽었고 말뚝이 그의 관자놀이에 박혔더라 23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하게 하신지라 24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눌러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사사기 4:17-24은 가나안 왕 야빈이 내세운 군대장관 시스라가 이끄는 막강한 군대가 상대적으로 약하여 별 힘을 지니지 못할 것 같은 여사사 드보라가 함께 하는 바락이 지휘하는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패배하고 정신없이 도망하는 중에 마침내 죽음을 당하게 된 기사를 다루고 있다. 도망치기에 바쁜 시스라는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으로 뛰어 들어갔다. 시스라가 겐 사람 – 모세의 장인이었던 호밥의 후손들 - 인 헤벨 가문이 살고 있던 지역으로 도망 친 것은 헤벨 가문이 하솔 왕 야빈과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엘은 시스라가 도망 쳐 왔다는 말을 듣고 시스라를 맞이하려고 밖으로 나갔다. 야엘이 그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안심시키며 잠자리를 제공하면서 푹 쉴 것을 권했다. 쫓김에 있는 심한 두려움과 무서움 속에서 겨우 물(우유 – 가축의 젖) 한잔으로 목을 축인 시스라는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을 사람에게 알리지 말고 숨겨줄 것을 부탁하고는 너무나 지쳐 피곤한 나머지 깊이 잠들었다. 그러자 그때를 이용하여 야엘은 장막을 고정시켜 두었던 말뚝 하나를 뽑아 가지고 깊이 잠들어 있는 시스라 관자놀이에 대고 말뚝이 시스라의 머리를 꿰뚫고 땅바닥에 박힐 정도로 망치로 힘껏 내리침으로 시스라는 외마디조차 지르지 못하고 즉사하였다. 이때 바락이 시스라를 뒤쫓아와 야엘이 살고 있는 장막까지 이름으로 야엘은 그를 맞으며 그가 찾고 있는 시스라의 시신을 보이며 내주었다. 이로써 드보라의 예언은 성취되었다(9절). 드보라는 예언하기를 하나님께서는 한 여인의 손에 파셔서 바락으로부터 그의 영광을 빼앗아 그 여인에게 돌아가게 하시 것이라고 하셨었다. 하나님은 한 여인을 통해서 가나안 왕 야빈을 붙이셨다고 하신 그의 말씀을 신실히 이루어가셨다.
23-2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시스라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치셔서 이스라엘 앞에서 가나안 왕 야빈을 패하게 하여 진멸시켰음을 기록하고 있다. 시스라의 죽음으로 가나안 왕 야빈이 이끄는 군대는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힘없이 허물어졌으니, 시스라의 군대를 이긴 이스라엘 사람들은 더욱 더 힘을 내 용기충천 함으로 가나안 왕 야빈을 기세를 내리눌러 결국에는 야빈과 그를 따르는 세력들을 모두 진멸시킨 것이다.4) 그럼으로써 하나님께서 여사사 드보라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뜻을 이루셨다.
하나님은 이처럼 여사사 드보라를 세워서 이스라엘을 가나안 왕 야빈의 압제로부터 구원하셨다. 이 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 돌아왔으며, 그들이 저질렀던 우상숭배를 타파하였다. 그러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진정한 평화가 깃들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다시금 하나님이 그들의 왕으로 자리하였다. 사사 드보라의 재판은 백성의 민원을 해결해 주고 범죄자를 처벌한 것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솔로몬의 지혜에서 보는 바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케 하는 일로서 백성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며 하나님을 의존하게 하여 하나님 중심으로 살게 하고, 그러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그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리게 하는데 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시킨 뒤 “그 땅에 40년 동안 태평하였다”(5:31) 라고 해 주시고 있는 말씀이 그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이스라엘에게서 하나님께서 왕이신 동안은 그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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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랍비돗의 아내 드보라”에 대해서는 드보라를 랍비돗의 아내로 보는 견해 외에 또 다른 견해도 있다. 그것은 랍비돗이 인명으로 쓰인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을 들어 랍비돗을 ‘인명’으로 보는 것이 아닌 ‘지명’으로 보는 것이다. 해서 ‘랍비돗의 아내 드보라’가 아닌 ‘랍비돗의 여인 드보라’로 본다. 그러나 그 근거는 ‘랍비돗의 아내 드보라’라고 하는 견해에 비해 희박하다. (2) 한편, 드보라가 ‘랍비돗의 아내’란 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랍비돗의 아내’란 말에서 ‘랍비돗’이란 ‘횃불’이란 뜻인데 ‘바락’이란 말도 같은 뜻이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드보라가 혹 ‘바락의 아내’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단어의 뜻을 가지고 추측하는 그러한 해석에는 무리가 있다.
2) 벨도우(Bertheau)는 말하기를 바락이 여사사 드보라가 함께 동행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은 드보라가 그에게 행한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자신의 힘에 대한 불신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에는 너무나 연약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고 하였다. 카일. 델리취도 이에 동의하면서 덧붙이기를 바락은 그 싸움에서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을 원하였고 여사사 드보라가 있음으로 해서 바락은 물론이고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격려받기를 바랐다고 하였다. 이 두 사람의 주장대로라고 할지라도 바락이 여사사인 드보라가 자기와 함께 동행해 주지 않으면 자기도 가지 않겠다고 한 사실은 바락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수행하지 않는 것으로 그 자체가 하나님께 악한 행동이었다. 하나님은 적군을 바락에 손에 붙일 것이라는 명령을 여사사인 드보라의 입을 통하여 분명하게 바락에게 전달하였는데 바락이 비록 자신의 연약함을 인하여 드보라의 동행을 요청하였을지라도 이것이 불신, 불순종이 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았다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개입을 드보라의 동행에서 확인하려고 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드보라는 즉시 바락의 이러한 요청에 자신이 동행해 주기는 하지만 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에게 주실 영광을 거두어 한 여인에게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는 책망을 하셨다. 적장 시스라를 바락의 손에 붙이셔서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여인의 손에 붙이셔서 그 전쟁을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드보라는 이 사실을 바락에게 분명히 밝혔다.
3) ‘학고임’은 ‘이방인’, ‘이방 나라’를 뜻하는 ‘꼬이’의 복수형인 ‘고임’에 정관사 ‘하’가 결합된 형태로, ‘고임’은 주로 ‘열방’, ‘열국’, ‘민족들’로 번역된다. 하지만 여기서 ‘고임’은 시스라가 거주했던 ‘하로셋’을 수식하는 말이기 때문에 이방의 여러 나라들을 지칭하는 말로는 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여기서의 ‘고임’은 창 14:1이나 수 12:41에서 보게 되는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해서 ‘학고임’은 시스라가 거주하는 지역의 땅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볼 것이다. 따라서 ‘하로셋 학고임’ ‘하로셋 땅(지역)’이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란 이해를 갖는다. 시스라가 그 ‘하로셋 학고임’에 거주하였다는 것은 그 지역의 한 주민이었다는 것에서가 아니라, 하로셋 땅(지역)을 다스리며 강력한 군사력을 소유하고 있었던 군주(방백, 성주)인 것에서 이다. 가나안 왕 야빈은 그에게 군대장관의 직책을 맡겼다.
4) 카일. 델리취는 가나안 왕 야빈이 패배와 그에 따른 진멸 당함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가졌으니 가나안 왕 야빈과 그의 정권이 무너졌다고 해서 전체적으로 가나안 사람이 진멸된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