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과 복면
정약수
어린 시절 김내성金來成의 탐정소설 『백가면』을 읽었던 적이 있다. 하도 오래된 일이라 지금은 소설 내용에 대해서는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고, 단지 작중인물 가운데 명탐정 ‘유불란’이라는 이름만 기억하고 있는 정도다. 이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그 뒤에 만화에도 ‘백가면’이니, ‘흑가면’이니 하는 제목이 더러 등장했던 것 같다.
가면假面이란 자신의 얼굴을 본래의 자기 모습 아닌 다른 모습으로 변형시킨 것을 말한다. 예로부터 인간은 여러 가지 이유나 목적으로 가면을 사용해 온 것 같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본 모습을 다르게 바꿔 보려는 원초적인 욕망을 반영하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카니발, 사육제, 축제, 연극 등에서 가면은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는 가장 오래되고 직접적인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면은 탈 또는 탈바가지 등으로 불리면서 여러 가지 용도나 목적으로 사용해 왔던 것 같다. 특히 하회가면의 양반, 선비, 중, 각시 탈조각은 기괴한 형상과 강렬한 색채로 인물의 개성이 매우 잘 표현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양반가면은 양반을 언청이, 코비뚤이, 입비뚤이, 사팔뜨기 등의 기형으로 나타냄으로써 일반 평민들의 양반에 대한 불만을 양반 가면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풍자하는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가면이 얼굴을 본래 모습에서 다른 모습으로 바꾸는 것이라면, 복면覆面은 얼굴을 다른 사람이 잘 알아볼 수 없도록 헝겊이나 수건 따위로 싸서 가리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가면과 복면의 차이는 형상의 차이라기보다 목적이나 의도의 차이라고 보겠다. 즉 얼굴을 본래 모습과 달리 보이기 위함이 목적이나 의도라면 가면이 되고, 얼굴을 가림으로써 신원이나 정체성을 숨기기 위한 목적이나 의도라면 복면이 될 것이다.
가면이든 복면이든 과거에는 어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좀체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와서는 그것이 점차 일반화되고, 다양화되어 가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예를 들면 오늘날 성행하고 있는 성형수술도 일종의 가면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형수술을 요즘은 어떤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경우에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거의 누구나 아무런 제약 없이 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것이 되고 있다. 부산의 중심가 서면 지하도를 한번 거닐어 보라. 곳곳에 성형수술을 권장하는 성형외과 병의원의 선전물이 봇물처럼 넘쳐나고 있다.
화장이나 분장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연극이나 영화에서 등장인물이 짙은 화장이나 분장에 의해 그 인물 본래의 모습과는 현저히 달라져버린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므로 화장이나 분장 역시 그 사람 본래의 자기 모습을 어느 정도 변형하는 수단이 된다. 이와 같이 본래의 자기 모습을 변형한 모습을 가면이라고 한다면, 요즘 우리는 가면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복면의 경우는 자신의 본래 모습이나 정체성을 변형시키기보다 숨기거나 은폐시키고자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우리는 흔히 어떤 범법자가 자신의 신원이나 정체성을 숨기기 위하여 복면을 사용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도둑이나 강도가 복면을 한 채 범행을 하는 경우도 있고, 체포된 범법자가 대중에게 자기 본 모습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복면을 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 와서는 과격 집회나 시위에서 복면을 하는 경우도 흔히 있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하여 집회나 시위에서 복면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까지 제정해 놓고 있다 한다. 즉 2015년 11월에 제정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그것이다.
그 외에도 복면을 하는 경우가 요즘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마스크를 복면의 일종으로 봐야할지, 말지는 알 수 없지만,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하고, 거기다 색안경까지 쓴 사람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라. 그런 모습에서 그 사람의 신원을 알아볼 수 있겠는가. 모자 대신 후드나, 마스크 대신 미용 팩이나, 겨울에 추위를 막기 위해 얼굴을 둘둘 감싼 머플러 같은 것도 그 사람의 신원을 알아볼 수 없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나는 요즘 이런 식의 복면을 한 사람들을 하루에도 수없이 마주친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정관신도시에는 시가지를 관통해서 임랑 해변으로 흘러드는 좌광천이라는 하천이 있고, 하천 좌우로는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나는 거의 매일 이 산책길을 따라 산책을 하는데,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식의 복면을 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봄철이나 가을철에는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서, 여름철에는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 위해서, 또 겨울철에는 추위를 막기 위해서 각기 필요한 복면을 한 사람들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가면과 복면은 요즘 와서 하나의 시대적 추세요,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파급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인간 본연의 원초적 욕망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욕망이란 인간이 자신의 본래적 모습이나 정체성을 변형하거나, 은폐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다.
사람 또는 인간을 뜻하는 영어 ‘퍼슨person’은 원래 가면을 뜻하는 그리스어 '퍼소나persona'에서 파생되었다 한다. 그런데 원래 이 퍼소나는 고전극에서 배우들이 쓰는 ‘가면’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현대 심리학에서 퍼소나는 인간이 타인에게 무의식적으로 드러내 보이고자하는 자아 이미지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퍼소나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보이기 위한 꾸며진 자아로서 곧 가면이 될 수 있다.
오늘도 나는 좌광천 산책길에서 얼굴에 가면이나 복면을 한 사람들을 여럿 만난다. 그런 사람들은 대다수가 그냥 지나치기 일쑤이다. 그런데 모자와 머플러로 얼굴을 잔뜩 가린 채 지나가던 한 사람이 나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아마도 나를 아는 사람인 모양인데, 자신이 지금 복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깜빡한 모양이다. 조금 후 내 곁을 지나치던 또 한 사람이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으면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제서야 나도 그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고 마주 인사를 한다.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으로서 낯이 익은 사람이다.
사람의 겉모습으로 그 사람의 신원을 알아보기가 이렇게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니 사람의 참모습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