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소리 ‘미’로 시작하는 의미를 우리의 얼과 율(律)의 관련성에서 비롯된다고 이해하면 시쳇말로 ‘딱’이다. 왜 그럴까. 여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율과 모국어, 모국어와 율은 일체이며, 한국인의 정서가 율의 기초가 되고 그 위에 모국어가 얹어지기 때문이다(조동일). 철저하게 그렇다. 앞서 꺼낸 ‘곤지곤지 짝짝…’이 그렇고 앞으로 논의될 ‘까치야 까치야…’,‘두껍아 두껍아…’, ‘구구단’ 등이 그렇다. 물론 교과서에 수록된 전래동요도…. 그러니 아이들이 부르기 쉽고 노래하기 편한 까닭은 우리말과 율의 같은 사이클 때문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상갓집에서의 율이나 언어 자체도 이런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용되는 언어가 정숙하고 숙연하니 노랫말 또한 그렇고 가락 패턴 역시 그래야 옳다. 상갓집에서의 소리를 센 소리로 시작하면 그것은 우리의 얼이 넋이 혼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 사람은 우리의 정서에 역행하거나 모르거나 둘 중의 하나다. 상대방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 다소곳하게 낮은 소리로 시작하는 것이 미덕 아닌가. 그러니 높은 ‘라’보다는 낮은 ‘미’ 소리가 제격이다. 우리의 얼이요, 넋이요, 혼의 이 소리는 곧 인내천(人乃天)의 소리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소리다. 격양된 큰 소리보다는 작은 소리, 안정된 소리가 상가(喪家)의 모드(Mode)다. 그렇다고 ‘미’음은 소리를 오래 끌지 않는다. 지나친 감성 지체(遲滯)를 자제하고 이내 제자리 ‘라’로 돌아가 본분을 지킨다. ‘라’ 음은 이렇게 변화의 귀재이면서도 종국적으로는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기본에 충실 한다. 함부로 나댐이 없이…. 아무튼 서양 음악에서의 으뜸음 ‘도’가 선율과 화성을 주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국악의 음악 세계에서는 노래를 이끌거나 이끌어가는 주음 ‘라’가 있다는 사실에서 깊은 통찰이 있어야 한다. ‘라’음은 국악 성악곡의 배터리요, 파워요, 견인차라고 보는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 주음으로서의 성격과 명분을 부여해 국악교육의 이론의 틀 한 영역을 개척해 나가자. ‘라’음의 중요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잠시 오케스트라의 무대로 눈을 돌려보자. 지휘자의 위치를 시작으로 질서정연하게 악기가 배열된다. 피아노, 바이올린 등의 현악기 주자들이 자리하고 뒤편으로 호른과 팀파니 등이, 오른편으로 첼로와 더블베이스 등이 들어선다. 이 때 관중들은 왼편을 기웃거리며 지휘자의 입장을 기다린다. 연미복 곱게 차려입은 지휘자를…. 적막이 감도는 순간, 아뿔싸 기다리던 지휘자는 아니 나오고 난데없이 시끄러운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한다. 연주 전의 고요함을 시샘이라도 하듯 때 아닌 소음이 연주장의 벽을 마구 때린다. 왜 그럴까. 악기를 조율하는 튜닝(Tuning) 때문이다. 오케스트라의 절체절명의 조건은 음높이가 일정한 악기들에 있다. 그 어떤 미세한 음 차이도 절대로 용납하질 않는다. 이 때문에 일정한 잣대의 음을 기준으로 해 서로간의 음을 일치시키는데 이를 튜닝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튜닝의 기준 음이 어떤 음인지 아는가. 놀라지 말라. 바로 ‘라’ 음이다. ‘라’음은 튜닝의 소리, 곧 튜닝 사운드(Tuning Sound)다. 튜닝은 튜닝 포크(Tuning Fork)라고 하는 소리굽쇠를 이용하는데 이 소리에 각 연주자들이 귀를 기울여 음을 맞춘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지휘자가 입장하고 날렵한 연미복이 바람을 일으키면서 장엄한 연주는 시작된다.
튜닝 포크가 만들어내는 음, 곧 튜닝 사운드 ‘라’음은 깨끗하고 맑은 순음(純音, Pure Tone)이다. 잡음이 없고 잔 진동이 거의 없는 소리의 원음인 이 소리를 매스컴의 시보(時報)로 쓰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 소리의 주음 ‘라’가 서양의 튜닝 포인트라니….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랍다. 표준 소리를 주음으로 한 국악은 이래서 <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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