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아버지를 따라 방문한 그 집의 안마당은 넓고 네모반듯했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기단이 높은 안채와 낮은 문간채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문간채 측벽에 붙어있는 닭장 안엔 벼슬이 붉고 꼬리가 멋진 수탉 한 마리와 암탉 몇 마리가 볍씨를 쪼아 먹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께서 닭장 앞에 혼자서 멀뚱히 서있는 내게 오시더니 찐 계란과 식혜를 주셨다. 노른자가 참 고소했다. 종이비행기를 힘껏 날렸다. 지붕보다 높이 솟구쳐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곤두박질하여 처마 위에 툭하고 떨어졌다. 어른들은 대청에 앉아 막걸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무슨 이야기인지 길게 이어졌다. 나는 넓은 마당을 혼자서 왔다 갔다 했다. 종이비행기는 여전히 처마위에 얌전히 앉아 있다. 그걸 내려달라고 하면 될 텐데 유별나게 쑥스러움을 많이 탔던 나는 말 한 마디 못하고 안타깝게 그 집을 떠나왔다.
어두컴컴해서야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혀가 꼬부라질 정도로 몹시 취해 있었다. 그 모습을 부엌에서 얼굴을 내밀고 바라보시던 엄마는 세상 듣도 보도 못한 육자배기로 욕을 퍼부었다. 얼마나 속이 상하셨으면 그랬을까 싶은 게 아버지가 은근히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마철이 지난 마당은 이곳저곳이 심하게 패여서 잔돌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엄마의 대거리엔 신경도 쓰지 않고 기단을 오르려던 아버지는 발을 헛딛으면서 그만 뒤로 크게 자빠지셨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어서 내 작은 심장이 터질 듯이 벌렁벌렁 요동을 쳤다. 방금 아버지를 미워했던 것이 여간 죄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크게 넘어지셨는지 아버지는 정신을 잃었고 엄마는 혼비백산하여 찬물을 떠와라 소리소리 질러대며 아버지의 뺨을 두드렸다. 사는 것이 힘겹고 궁핍했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다. 그 뒤로 한동안 마당이 무서웠다. 걸을 때도 조심조심 걸었다. 나도 아버지처럼 쓰러지면 안 되니까
딱지치기, 땅따먹기, 구슬치기, 비석치기, 팽이 돌리기 등등, 동네 아이들과 마당에서 놀다 지치면 흰 곱돌을 주워와 땅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마을 한 가운데에 마당 넓은 집이 있었는데, 바깥마당은 가을 추수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 텅 비어 있었다. 마당 한쪽구석엔 누렁 소 한 마리가 말뚝에 묶인 채 제가 싼 쇠똥 위에 앉았다 섰다를 반복했다. 길가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뜯어와 소 얼굴에 들이밀면 까칠까칠한 혓바닥을 길게 내밀어 손에 쥐고 있는 풀을 낚아채듯 가져가 제 큰 입속으로 쑥 처넣었다. 우적우적 풀 씹는 소리가 듣기 좋아 또 풀을 뜯어다 소에게 가져다주곤 했다. 동네 형들이 자치기를 했다. 근처만 가면 어김없이 “야 인마 저리안가 니들 대가리 터져볼래 빨리 안 비켜” 그 소리에 은근히 부하가 치밀어서 꽁무니를 뒤로 빼면서 “메롱! 형 똥꼬에 털 났다” 냅다 소릴 지르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 얼마나 고소하던지... 동무들과 함께 웃고 울며 뛰어놀았던 곳 마을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깃들어 있는 곳 바로 ‘마당’이다.
초가삼간을 짓고 새살림을 차렸다. 없는 살림이긴 해도 헛간 한 채 정도는 있어야 집안 구실이 가능해진다. 지천으로 굴러다니는 돌들을 채집하여 집둘레에 담을 쌓는다. 이로서 안채와 헛간채 사이는 자연스럽게 안마당이 되었다. 집과 담장 사이엔 푸성귀를 심어먹을 만한 채마 밭도 생겼다. 비록 궁기를 모면하기 어려운 가난한 살림이긴 해도 그 속에서 젊은 부부는 아이를 낳고 온 정성을 들여 키웠다. 성실하게 산 덕택으로 살림이 좀 나아지면 정든 초간삼간은 헐고 기와집으로 새로 지었다. 늘어난 곡식과 살림밑천인 송아지를 키우기 위해 외양간을 겸한 행랑채를 증축한다. 더 나아가서 거둬들인 곡식 단을 쌓아놓고 타작을 위한 바깥마당까지 마련했다. 이제야 비로소 한 집안의 내력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바깥마당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나름대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반증이며 가문의 자랑이기도하다.
대문을 활짝 열어젖힌 안마당에서 방금 막 신방에서 나온 어여쁜 새색시와 늠름한 신랑이 혼례상을 마주한 채 교배례를 하고 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을까 높은 안채와 행랑채 기단 위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하객들로 북적인다. 모두가 고개를 길게 빼고 신부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겠다며 난리법석들이다.
해소 천식으로 몇 해를 고생하시던 할머니께서 새봄이 미처 오기도 전에 황망히 세상을 떠나셨다. 진눈개비가 종일토록 을씨년스럽게 내렸다. 마당 가운데엔 시뻘건 장작불이 활활 타오른다. 망자는 생전의 의복 중에서 깨끗한 것으로 갈아입혔고 머리를 곱게 빗은 채 베개 위에 편안히 누워계신다. 핏기 없는 얼굴이지만 병마로 인한 고통은 사라지고 편안한 모습이다. 망자와 병풍을 사이에 두고 상주와 가족들은 성근 베옷을 입고 머리와 허리에 굵은 새끼를 동여맸다. 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서 연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애간장 끓는 곡을 하신다. 일가친척과 동네 어르신들이 하나 둘 빈소 앞에 술을 따르고 삼배를 한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한 집안의 대소사를 이처럼 마당에서 치렀다. 마당은 한옥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 없어선 안 되는 매우 중요한 생활공간이다. 마당 없는 한옥은 상상할 수 없다. 한옥이 더욱 멋스럽고 품위 있어 보이는 것은 마당이 있기 때문이다.
마당이 마당으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줄 때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을 때다. 사람이 살다보면 뭔가로 자꾸 채워지게 마련이다. 처음엔 마당 가장자리에 화분 몇 개를 들여놓았을 게다. 그러다 화단을 만들고 직접 땅을 파서 화초를 심는다. 내친김에 정원수 몇 그루를 추가한다. 나무가 있으니 그 앞에 예쁜 조경석도 하나, 둘 늘어난다. 큰맘 먹고 연못을 만들자. 손주들이 찾아오면 놀 수 있게 작은 나무그네도 하나 들여놓자. 바비큐 파티를 열 수 있게 화덕도 하나 만들자. 마당은 점점 좁아든다. 그러다 과거의 텅 빈 마당 사진을 들여다보다 “아! 그래 마당은 아무것도 없을 때가 가장 아름다웠구나” 한다.
마당은 자연그대로의 흙바닥일 때 한옥과 가장 조화롭다. 일반적인 흙은 다량의 진흙 속에 모래와 자갈이 혼합되어 있다. 건조한 날씨엔 진흙이 수축되면서 딱딱해지고 먼지가 일어난다. 비가 내리면 물을 흠뻑 빨아들인 진흙이 팽창되면서 질퍽거린다. 이럴 때를 대비해 디딤돌을 설치해주면 진흙을 밟지 않고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진흙성분이 많은 흙을 마사로 치환해주면 디딤돌 없이도 이동에 불편함이 없다. 마사는 화강석이 퇴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잘게 부서진 부스러기다. 비가와도 신발에 달라붙지 않아 좋고 마사의 화사한 빛깔은 한옥과 잘 어울려서 많은 사람들이 선호한다. 그래도 빗물에 의한 골 파임 현상이 일어난다. 일 년에 한 두 번은 마사를 보충해주어야 한다. 마당에 콩 자갈이나 깬 자갈을 깔기도 한다. 자갈은 아무리 단단하게 다져도 공극이 커서 밟을 때마다 부스럭대는 소리가 난다. 예민한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 마당에 두꺼운 자연박석을 깔거나 가공판석을 붙여 마감하기도 한다. 콘크리트를 두껍게 포장하는 사례도 의외로 많다. 한 번 포장하면 철거가 쉽지 않아 신중해야 한다. 푸른 초원을 연상케 하는 잔디마당은 잘만 가꾸면 무척 아름답다. 다만 살아있는 생명체여서 꾸준히 관리를 해줘야 한다. 집안을 자주 비워두거나 성정이 게으른 사람에겐 권장할만한 게 못된다. 가능하면 자연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집과 사람에게 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