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240314)

섬티아고로 떠난다.스페인에 산티아고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섬티아고가 있다. 5개의 섬을 잇는 순례길이다.궂은 날의 연속이라 좋은 날을 택해 갈 수도 있지만 비가 걸림돌이 될 수는 없었다.그이와의 첫 여행이다.둘이 가는 게 처음이라고 했더니 4년 전에 한계령을 다녀왔다고 내 기억을 흔들어 깨운다. 그랬다. 1박2일로 한계령을 다녀왔다. 하지만 기억하고 싶은 여행이 아니라 불편한 외출이었고, 지금은 마음이 안정되어 편하게 떠나는 첫 여행이다. 그 당시 회사가 어려움에 처해 있었고, 나는 아르코 창작기금으로 책을 출간해야 할 시점이었다. 창작기금은 밑 빠진 독인 회사로 흘러들어갔고, 그 돈이 해결되지 않아 출간하느냐 마느냐 기로에 섰다. 그동안 회사일로 피가 마른 것도 부족해 출간을 두고 신경 쓴 것을 생각하면 나를 위한 보상이 필요했다. 그래서 길을 떠나기로 했다. 그이와 불편한 외출을 하도록 한 건 대게였다. 나는 대게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퇴근하고 울진을 거쳐 동해 바다를 보며 여유롭게 다녀올 생각이라고 귀띔했더니 아이가 후배 아빠의 펜션을 예약했고, 후배 아빠는 선배 엄마가 온다고 대게를 주문했다는 것이다.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대게를 어떻게 처리할 지 고민스러웠다. 차에 싣고 다니면 냄새에 시달려 여행을 망칠 것이다. 대게는 그이가 좋아한다. "대게를 주문해 놨다는데 갈래요?"  거절이다. 갖고 다니다 상하면 버리면 되는데 괜히 말했다 싶었다. 그럼에도 뒤통수에 대고  퇴근 시간에 맞춰 나오라는 말을 남기고 출근했다. 근무 중에 전화하고 문자도 넣었다. 숙소를 예약하겠다는 아들의 성의를 거절했어야 했다. 퇴근하고 울진을 향해 신천대로로 진입해 달리다가 유턴했다. 데리러 갈 테니 준비해놓고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 끊었다. 퇴근시간에 새방골을 통과하는 것이 보통이 아니다. 울진에 도착할 시간을 생각하니 화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집에 오니 팔짱 끼고 목석같이 소파에 앉아 있다. 소파 뒤에 준비한 가방이 보인다. 모른 척하고 가자고 했지만 그래도 안 간다고 뺀다. 마주하는 것은 물론이고 말하는 것조차 싫었다. 현관문을 여니 그제야 못 이긴 척 따라나선다. 헉! 말문이 막혔다. 귀싸대기라도 한 대 날리고 싶었다. 그렇게 떠나 우린 한 밤중에 울진에 도착했다. 근무에 그이와의 실랑이로 피곤이 쏟아졌다. 다음날 아침도 먹지 않고 한계령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우린 발도장만 쿡, 찍고 돌아왔다. 그러니 무얼 기억한단 말인가.   그이는 동네 친구로 중학교까지 같이 학교를 다녔다. 그는 그림에 타고난 재능을 가졌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 제 꿈을 위해 가족들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 결혼해서도 가난을 떨치기 위해 애썼지만 두 번이나 주저앉아야만 했다. 장미꽃을 뿌려놓은 탄탄대로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누구나 가시밭길만큼은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헤치고 나와야 했다.수 년이 걸려 겨우 터널을 빠져나왔다.조금씩 안정을 찾으니 내 마음도 조금씩 누그러졌다. 그이가 하고 싶어 했던 일을 하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는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을 사람이다. 어렸을 때의 꿈을 이루지는 못해도 붓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찾았다.. 문화도시 활동가로 참여하면 가능하다. 그의 생각을 묻지도 않고 이름을 올렸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회의에 한 번만 참석해 달라고 부탁하다가 일을 저지른다고 꽥,소리를 지르면 가지마라고 되받아치기를 숱하게 했다. 그는 선심이라도 쓰는 듯 마지못해 참석했다.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어 지금은 나보다 더 잘 참석한다. 그곳에는 그림을 전공한 사람들이 몇 명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그림에 대한 시야를 넓혔으면 싶었다.활동가로의  참석은 확실히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속도를 내는 것 같았다. 그이의 이런 모습을 지켜본 친구들은 말한다. "남희는 평강공주"라고. 무던히 노력했으니 틀린 말도 아닌 듯하다.ㅋㅋ   3월부터 근무일정이 빠듯해 시간이 없을 것 같다며 여행을 제안했다. 섬티아고로 가고 싶다며 사전 정보를 부탁했다. 12 순례지를 가려면 물때를 맞춰야 하고 다음날은 퍼플 섬을 둘러볼 수 있다는 정보까지.  섬티아고로 가지 못하더라도 마음을 나누며 간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고 하니 가만히 듣고 있다.이번 여행을 통해 그이와 일 년 동안 말한 것보다 더 많은 말을 한 것 같다. 그가 문화도시 활동가로 활동하며 그린 그림을 조카들까지 있는 형제톡에 올린 게 불만이었다기에 문화도시 활동가로 계속 활동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니  말을 못한다. 예인회의 총무를 맡게 한 것도 다르지 않다.  친구였던 우리가 부부의 연을 맺어 오늘까지 오면서 참으로 많은 상처를 주고 받았다. 늦었지만 상처가 아물수 있도록 서로 다독이고 보듬을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