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과 마라톤 / 김정우 신부

[정영애엘리사벳]

◈ 마약과 같은 마라톤

나를 이기다

2000년 3월 잠실 종합경기장은 참으로 잊혀지지 않는 장소가 되었다. 동아마라톤 대회에서 42.195km를 4시간 만에 처음으로 완주하고 잠실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 웅장한 경기장의 환희와 격정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느낀 것은 나 자신에게도 이러한 능력이 있고, 이것이 달리는 사람의 진정한 기쁨이라는 것과 나 자신을 이겼다라는 승리의 도취감이었다. 광화문을 출발할 때 날씨는 꽃샘추위로 한기를 느끼게 했다. 많은 사람과 함께 달리고 있었지만 혼자라는 고독감 외로움 그리고 긴 여정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했다. 누가 왜 이런 힘든 운동을 하느냐는 말에 내가 마라톤을 하는 이유에 얽힌 지난날의 일들이 달리는 동안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힘들었던 외국생활

누구나 다 외국생활은 힘들고 어렵다. 말과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과 적응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나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수녀원에서 생활을 하였다. 비엔나 숲속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수녀원은 아주 아름답고 조용한, 시내에서 뚝 떨어진 곳이어서 사람들의 발길도 잘 닿지 않는 곳이었다. 여기서 만 5년간 생활을 하면서 수녀원 미사를 드려주고 밥을 얻어먹으며, 공부도 하고 그리고 한인공동체 사목도 함께 하였다. 혼자의 몸으로 세 가지 일을 다 하려고 하니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잘 수 없는 수녀원 환경 속에서 힘든 공부로 인해 나의 체력은 점점 떨어져 갔고 입에 잘 맞지 않는 수녀원 음식으로 점차적으로 위와 장의 기능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과의 만남은 곧 시간 낭비와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에서 될 수 있으면 한국 사람들과 만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점차적으로 우리 음식에 대한 감각마저 멀어지게 되었다. 그런 생활을 5년 동안 하다 보니 체력과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았지만 공부를 끝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커피 담배 그리고 수면부족이 원인이 되어 마지막 시험공부 중에는 전신마비 증세가 오기도 했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외국생활 끝 무렵에는 수녀원 뒷산을 30분씩 걷거나 달리기를 해 보기도 했다. 일단은 공부를 끝내고 귀국하였지만 건강상태는 엉망이었다.

신학교에서

1992년 귀국을 했다. 마음은 본당신부를 하면서 요양을 좀 하고 쉬고 싶었지만 학교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귀국 즉시 대구 신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그러나 신학교에서 첫 생활은 마음의 부담과 강의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또 다시 외국생활과 같은 삶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건강이었다. 우리 음식의 날거나 거친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할 정도로 위와 장이 고장 나 있었다. 더군다나 자극적인 음식은 더욱더 문제였다. 자주 위경련을 일으켰고 위 기능 자체가 저하되어 있어 약을 먹어도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태로는 더 이상의 생활이 불가능할 것 같아 우연한 기회에 마지막 방법이라는 생각에서 조깅을 해보기로 했다. 대구 신학교 운동장을 뛰는 것이었다. 이것이 마지막 방법이라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비장한 마음으로 매일 운동장을 달리게 했다. 처음에는 400m 트랙을 4바퀴 돌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10바퀴 그리고 20바퀴 그리고 50바퀴까지 달릴 수 있게 능력이 향상되었고 그 시간은 약 1시간 40분이 소요되었다. 그러다 보니 다행스럽게도 위와 장의 기능이 호전되기 시작했고 음식 섭취 능력도 많이 향상되었다. 그러니 매일 달리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루 일과와 하루의 삶이 되어버렸다.

삶이 된 달리기

1994년부터 시작된 나의 달리기는 어언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달렸다. 비가 오면 학교 체육관에서 달렸고 눈이 와도, 바람이 몰아쳐도, 겨울의 추위와 여름의 살인적인 더위도 나의 달리는 삶을 말릴 수 없었다. 심지어는 외국여행을 갈 때도 짐 속에 운동화와 운동복은 필수품목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달리기에 대한 심취는 하루라도 달리지 않으면 몸이 이상해지고 달리기 시간이 되면 벌써 몸은 달리기 준비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올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달릴 시간이 되어도 달리고 있지 않으면 몸에는 왜 달리지 않느냐는 신호가 올 정도이고 머리는 온통 달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꽉 들어차 버릴 정도였다. 그래서 스스로 중독이라고 생각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니 겨울의 추위와 여름의 더위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 달리는 나를 시험하는 친구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생활로 어느덧 신학교 운동장에는 400m 트랙을 따라 타원형의 달린 길이 깊게 남아있게 되어 이 길을 학생들이 “정우 Road”라고 부를 정도가 되어버렸다. 사실 10년 동안 사용한 운동복만 해도 20벌 이상이며 운동화는 25켤레 이상 그리고 양말은 셀 수도 없을 정도이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

1999년 처음으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였다. 그것도 우연한 기회에 신학교에 대신학원장으로 계시던 김경식 몬시뇰께서 달리는 것을 보시고 마라톤 대회에 한 번 도전해 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처음으로 3월에 있었던 경주 동아 마라톤에 하프 코스에 도전해 보았다. 처음인 이 낯설은 도전에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지도 몰랐고 그 때만해도 마라톤 매니아나 동우회가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생각대로 준비를 하고 출전해 보았다. 낯 설은 도전이었지만 출발부터 귀동냥과 주워들은 지식을 통해 열심히 달려보았다. 긴장과 초조함 그리고 미지 영역에 대한 도전의 흥분감으로 21km를 달렸지만 연습량이 많아서 그런지 무리 없이 편안하게 달릴 수 있었다. 그래서 첫 공인 기록이 1시간 52분대 였다. 지금도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오는데, 전문 마라톤운동화가 없었기에 그냥 달리기 신발에다 양말은 검은 색 목양말에 바지는 수영복 같은 반바지를 입고 상의는 줄무늬가 있는 면으로 된 셔츠에 번호판을 달고 달렸으니 말이지, 요사이 마라톤 복장에 비하면 논을 매기 위해 나온 어느 동네 아저씨 폼이었다. 달리고 나서의 성취감이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신감과 기쁨 그것 이었으며 나도 할 수 있고, 어떤 난관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하지만 지식도 정보도 불충분한 상태에서 처음으로 출전한 것이기에 근육에 통증은 있었지만 한 일주일 지나니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었다.

풀코스에 도전

하프 코스를 성공하니 이제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또 주위에 동료신부들과 신학생들이 풀코스에 도전해 볼 것을 권하였다. 풀코스는 하프 코스와 달리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준비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사이에 대구 신학교 대신학원 원장으로 발령을 받고 나니 업무에 대한 책임감과 심리적 압박감으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상당히 심했었다. 다른 어떤 것 보다 경험이 부족한 40대 초반의 신부가 교회의 이런 중책을 맡아야 한다는 것과 장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학생들뿐만 아니라 신학교 신부들도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길뿐이었다. 그래서 매일 규칙적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원장으로서 달릴 수 있는 있는 시간은 학생들에게 매일 주어져 있는 체육시간인 오후 1시-3시 사이로 이 시간에 학생들과 호흡을 같이 하며 달리기를 하였고 그러다 보니 학생들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러한 시간이 규칙적으로 이어지자 이 시간은 아무도 침해하지 않는 시간이 되었고 주교님께서도 이 시간에는 업무관계로 원장을 찾지 않게 될 정도였고 학생들도 이 시간에 원장은 당연히 운동장에 있다고 생각할 정도가 되어버려서 내가 운동장에 보이면 오후 1시이고 내가 운동장에 보이지 않으면 오후 3시가 지났다고 할 정도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라고 할 정도로 매일 규칙적으로 달렸다.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는 비가 조금씩 내리는 날에는 내가 오늘 뛸까 안 뛸까를 가지고 내기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삶 가운데서 시작한 마라톤이기에 풀코스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학생들에게도 안주하는 현실에 나태하게 안주하는 삶 보다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의식을 심어주고 싶은 마음에 2000년 3월 동아마라톤에 출전하였다. 쌀쌀한 날씨에 나름대로는 체계적인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처음 도전하는 풀코스이기에 사실 두려움도 있었다. 광화문을 출발해서 동대문을 지나 잠실대교 그리고 20km 지점까지는 그런대로 달리기가 좋았다. 그러나 경험 부족이어서 그런지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앞에서 기분에 도취되어 너무 오버 페이스를 한 것이 탈이었다. 더군다나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했기에 일찌감치 에너지 소비가 다 되었는지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고 달리는 것이 더 이상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속도도 떨어지고 나 보다 뒤쳐져 달리던 사람들이 하나둘 씩 나를 앞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포기라는 단어가 점점 뇌리 속에 친숙하게 다가오기 시작했고 25km 지점에서는 추위와 배고픔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다리도 천근만근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이를 악물고 묵주기도를 하며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했다. 시간은 벌써 2시간 40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 30km 팻말이 마치 신기루 같이 희미하게 보이길래 더 이상 뛰지 못할 것 같아 30km까지만 하는 마음으로 무거운 몸을 끌다시피 해서 뛰어 보았다. 드디어 30km지점에서 물, 바나나, 쵸코파이로 일단 허기진 배와 갈증을 다스려 보았다. 그 때 마침 휠체어를 탄 장애인 한 분이 혼신의 힘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시각 장애인 한 분도 인도자의 줄에 의존한 채 달리고 있었다. 그러니 포기라는 단어가 머리 속에서 남아있을 여유가 없었다. 아니, “사지가 멀쩡한 내가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결승점까지 가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머리 속에는 달리자 달려 라는 말 외에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아 처절한 심정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얼마나 달렸을까 멀리 잠실 운동장이 웅장하게 서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연도에 시민들의 응원의 박수와 힘내라는 말에 정말로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한 발 한 발 눈앞에 아른거리며 잠실 운동장의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리고 웅장한 운동장에 들어섰을 때 들여오는 My Way라는 음악은 나로 하여금 마치 개선장군이나 삶의 승리자가 된 것 같은 황홀감을 주었다. 드디어 골인! 시계는 4시간을 막 지나있었다. 42.195km를, 아 ! 드디어 해 냈구나. 하느님 감사합니다 라는 기도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몸은 지쳐 있었지만 마음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머물러 있지 말고

앞으로 첫 완주이후 지금까지 풀코스만 10회를 뛰었다. 작년 4월 경주 마라톤에서 3시간 35분이 최고 성적이다. 그리고 작년 2월, 10년간의 대신학원 생활을 청산하고 꿈에도 그리던 본당신부가 되었다. 신부생활 20년 만에 첫 본당신부 생활이다. 지금 살고 있는 용계본당은 대구 금호강가에 있는 조그마한 본당이다. 다행이 이 강가에는 다양한 체육시설과 조깅 코스가 만들어져 있어서 참 감사하게 생각한다. 본당에서 3분 거리에 달릴 수 있는 길이 강둑위로 펼쳐져 있다. 그래서 아직도 달릴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본당에 온 이후 대회가 모두 주일날 있어서 출전할 기회가 없는 것이 좀 아쉽지만 이제는 금호강변을 따라 맑은 공기와 자연의 모습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도 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기에 달리는 기쁨은 하루를 더 풍요롭게 하는 삶의 원동력이 되어 버렸다. 이제 달리는 것은 나를 현실에 안주하거나 타성에 젖어서 사는 삶을 허락하지 않고 나를 채찍질하는 삶의 감시자가 되었고, 끊임없이 앞으로 그리고 미래로 도전하며 나아가게 하는 나의 삶의 인도자가 되었다.

 ▲ 2004년 용계본당에서 김정우 신부님

신부님께서는 2006년 2월 대구가톨릭마라톤 동호회를 창립하셨고

이 글은 홈페이지에서 퍼온 것입니다.

[수사모]

자기 자신에겐 엄하고 철두철미하신...
독일병정 신부님~

[수사모]

신부님의 마라톤은 긴여정이시네요...
-손경순 카타리나-

[고요스텔라]

김정우신부님 멋지십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수사모님^^*

[목우자]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