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blog/115630274C2CB4EA5D)
♣ 조선시대 종묘의 역사
조상숭배의 형태는 문화권마다 다종다양하다. 유교 문화권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으로 분리되어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형체인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이원적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죽은 조상의 혼과 백을 위하여 묘(廟)와 묘(墓)를 각각 세워 이원적으로 조상을 숭배하도록 하였다. 묘(廟)는 보이지 않는 영혼을 모시고 제사를 행하는 곳이고, 묘(墓)는 시신(屍身)인 백을 땅에 묻어 모시는 곳이다. 특히 유교에서는 묘(廟)에 죽은 조상의 혼을 신주(神主)로 받들어 제례를 올리며 후손들이 정신적 지주로 삼게 한다. 이러한 제례를 행하기 위하여 형성된 유교적 신전건축이 묘건축이다. 묘건축은 예제의 규정에 의하여 위치, 규모, 형식 등의 제한을 받는다.
종묘는 왕과 왕비, 그리고 사후(死後)에 왕으로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한 왕실의 묘건축이다. 이 종묘는 사직단과 함께 전통 유교사회에서는 제례를 위한 국가적인 시설로서, 국가나 조정 자체를 의미할 정도로 국가의 존망과 연관되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종묘는 조상의 신주가 모셔진 곳이기 때문에 국가의 중요한 일이 있으면 먼저 종묘에 고한 다음 의논을 하여 시행하였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976C2234C56DAA634)
조선 왕조의 개국 공신인 정도전은 그의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서 "임금은 하늘의 명을 받아 나라를 열면 반드시 종묘를 세운 다음 조상을 받드는 법이다. 이것은 자신의 근본에 보답하고 먼 조상을 추모하는 것이니 후한 도리이다."고 하였는 데, 이와 같이 종묘는 조선왕조의 근간을 확립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제례용 건축으로서 그에 상응하는 독자적인 건축공간을 형성하였다.
도성내 종묘를 배치하는 원칙은 고대 중국의 도성계획제도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 주(周) 왕실의 관직 제도와 공업 행정 및 영선(營繕) 제도를 기록한 『주례(周禮)』「동관(冬官) 고공기(考工記)」에는 주나라의 왕성(王城) 제도가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에 종묘는 도성내 좌측인 동쪽, 사직은 우측인 서쪽에 둔다[左廟右社]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주례에 나오는 종묘 사직의 도성내 배치 원칙에 의하여 조선시대 한양의 종묘는 궁궐인 경복궁에서 보아 동쪽인 지금의 훈정동에 자리잡게 되는데, 태조는 이미 개성에서 왕위에 즉위하면서 종묘를 경영하였다.
묘(廟)와 묘(墓)
혼은땅이요 백은 후손의 문이라!
|
첫댓글 실력이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