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참선 법문 Ⅱ
2. 참선법문(參禪法門) - 3) 화두방편(話頭方便)
옛날의 조사(祖師)들은 곧장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성품을 보고 부처를 이루에 하였으니, 저 달마 조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安心]든가, 육조(六祖) 대사의 '오직 견성만을 논한다[唯論見性]'는 것들은 단지 바로 그 자리에서 알아차리면 되는 것으로서 화두를 보라고 하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후대의 조사들은, 사람들의 마음[人心, 타고난 근기]이 옛날과 같지 않아서 죽자 사자[死心矪地] 달려들지 않고 기틀 속임을 하는 일이 많으며[多弄機詐], 항상 다른 사람의 보배를 헤아려서 자기 집의 보배로 삼는 일이 허다함을 보시고, 부득불 각각 저마다 일가[門庭]를 세우고 제각기 솜씨[手眼]를 발휘하여 학인들에게 화두를 보게 하였다.
화두에는 저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萬法歸一 一歸何處]라든가,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에 어떠한 것이 나의 본래 면목인가?'[父母未生前 如何是我本來面目] 등등이다. 그러나 대체로 '염불하는 자는 누구인가?'[念佛是誰] 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화두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화두라고 하는가?
화(話)는 말이요, 두(頭)는 말하기 전이니, 저 '아미타불'을 염(念)할 때'아미타불' 하는 말은 화(話)요, 이를 염하기 전이 화두다. 이른바 화두(話頭, 말머리)란 곧 한 생각도 일어나기 전[一念未生之際]이니, 한 생각이라도 일어나면 이미 화미(話尾, 말꼬리)를 이루게 된다.
이 한 생각도 일어나기 전을 '나지 않음'[不生]이라고 부르니, 들뜨지 않으며, 혼침에 빠지거나 고요한 경계에 탐착하지도 않고 공(空)에 떨어지지도 않는다. 또 이를 '없어지지 아니함'[不滅]이라고 부르는데, 언제나 뚜렷이 밝아서[單單的的] 한 생각 빛을 돌이켜 다시 반조(返照)한다.
이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음'[不生不滅] (을 비추어 보는 것)을 일러서 화두를 본다[看話頭]고 하며, 혹은 '화두를 비춘다'[照顧話頭]고도 한다.
大晟 新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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