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빛 낙엽 러셀을 하면서..(정맥 6차 모래재—슬치)
코고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단잠에 빠져 있던 중 일어나라는 소리에 눈을 비빈다.
버스는 어느새 모래재 휴게소에 도착하여 쉬고 있다.
가느다란 실비가 오느듯 마는듯 뿌리고 있는데 부지런한 회원님들은 스패츠를 차고,
우의를 꺼낸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아침 일찍 비가 게이고 날씨는 평소와 같이
맑을 것 이라고 한다.
천년사랑님이 준비한 빵과 애플 주스를 베낭에 챙겨 넣고 출발 준비를 서두른다.
4차 구간 도착점에서 전원이 화기애애하게 능선을 향해 오른다
눈에 익은 임도를 따라 능선에 올라서서 남쪽 방향으로 튼다.
가파른 능선 길을 따라, 하나 둘씩 교통호를 지나고 작은 봉우리에 오르는 중 비는 멎고
껴 입은 옷이 더워서 한 사람 두 사람씩 옷을 벗고 재 정비를 한다.
오늘은 큰 특징 없는 능선들과 오르내림이 다소 지루할 것이라는 설명 이지만
우측으로는 전주시,좌측으로는 운이 좋으면 산행 중 마이산을 한번 더 볼수있는
호남정맥 1구간이다.
호남정맥 20회차 구간은 395km, 그 중에서 전북 구간은 29.8km이고
전남북 경계구간이 121.5km, 전남구간이 243.7km이다.
금남호남 구간 4차 64.2km를 합하면 전체는 459.2km이고 이제 역사적인(?) 1구간을
시작으로 내년 9월이면 모두 마치게 된다.
오늘은 진안군, 임실군, 전주시(완주군) 경계를 넘나드는 전체 21km이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평소 보다는 적은 인원이지만, 이런 날은 더 더욱 가족적인
분위기로 즐거운 산행을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10여분이 지나서 낮은 봉우리 아래로 내려서니 작은 안부가 나타난다.
거리나 방향으로 봐서 신보 활석滑石광산으로 가는 길인데 표시기는 보이지 않는다.
호남구간을 산행할 때 등산로 곳곳에 운모 같은 광 물질이 자주 보였는데,
이 광산은 활석을 채굴하여 전주에 있는 분쇄공장에서 가공 하였다 한다.
1948년도에 개발하여 80년대 초반에 폐광을 한 상태 이지만 활석은 그 용도가 화장품,
보온용 내화耐火재는 물론 전기 절연제, 도자기, 도료 등에도 널리 쓰였다 한다.
이어지는 오르막 등산로는 제법 숨을 몰아 쉬게 한다.
어둠 속에서도 우측 산 아래 송정리의 가로등 같은 불빛이 계속 따라온다.
능선 정상을 한 발짝 내려서니 어마 어마한 묘 1기가 자리하고 있다.
가히 왕릉 같은 크기다. 비석에는 通仕郞 密陽 孫氏라 쓰여있다.
통사랑은 고려시대 문관의 품계로서 9품관에 속하는 높은 벼슬을 지낸 분으로서
최근에 이장을 한 탓인지 아직 잔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상태이다.
어둠 속에서 보아도 전망이 아주 좋아 보이고 그 옆으로 능선 아래 안부까지 임도가
잘 조성되어있다.
다시 가파른 봉우리를 향해 오르다가 뒤 돌아보니 아직도 묘지 부근에서 서성이는 불빛이
3-4개 보인다.오늘따라 천년 사랑님의 걸음 걸이가 무겁다.
조하사님도 무슨 연유인지 후미 대열에 따라온다.정상에서 길을 잃을까 걱정이 되어서
후미를 향해 몇 차례 소리를 지르고 나니 임도 방향으로 내려서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가 지른 소리 탓인가, 좌측 아래 동내에서 개 짓는 소리가 한참이나 이어진다.
백두 대간은 깊은 산중을 지날 때가 많았으나 정맥은 이렇게 사람 사는 곳이 가깝다.
갑자기 산죽이 키를 넘는가 싶더니 끝나는 지점 묘 1기 부근에 휴식을 하고 있는 선두를 만난다.
기록을 위해 볼펜과 지도를 찾으니…아뿔사, 출발할 때 우의 주머니에 집어 넣은 것이
바지 아래로 흘러 떨어진 모양이다….
난감하다… 다 외울 수도 없고… 메너남 단장이 산행기를 쓸 때 시간도 표시 하라고 해서
볼펜이 필요 하였는데… 잘 되었네 오늘은 쓰지 말지 뭐…체념한다.
그러나 채송화님이 베낭을 뒤져서 볼펜을 건낸다.그것 마져도 내 마음대로 안된다
짧은 산죽구간을 지나서 또 묘 1기를 만난다.
등산로에는 발목을 수북히 덮는 낙엽이 끝없이 이어진다.낙엽은 많아도 흙 번지는 없어서 수월하다. 아직은 낙엽 밟는 재미에 정감마저 느낀다.
평탄한 안부를 내려서니 강철로 된 안내판이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다.
곰티재(웅치)에 도착한 것이다.
전주에서 진안간 고개는 오룡고개(국도26번 가정고개),모래재,곰치,조두치,마치등이있으며
대동여지도에 이름표를 달고 있는 고개는 웅치로서 가장 짧은 거리였다고 한다.
버스가 운행되기 이전 까지 가장 통행이 많았던 고개라고 한다.
우리가 4차 구간에서 지난 오룡고개는 일제때부터 신작로가 생겨서 목탄차가 다니고,
전주.무진장간에 버스가 다녔다 한다.
곰치는 양반이, 조두치는 서민이 주로 다닌 길로서 실제로는 조두치(오두재)가 많이 이용 되었다 한다.
이 재는 예전 신작로가 나기 전 진안~전주간의 주요교통로였다. 진안~전주간 교통로는 이길 말고도
북동쪽으로 약 2Km 지점에 적내재가 있기는 하였으나, 경사가 급하고 험하여 짐이 있는 사람이나 일반 길손은
이 길을 주로 택하였다고 한다. 이 길로 약 1.5km 쯤 내려가면 완주군 소양면 월상리 신촌마을에 다다른다.
옛 고갯마루에는 으레 그러하듯 이곳에도 서낭당의 돌무더기 터가 있다.
이 재는 역사상 유명한 전적지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조선 7도를 유린하였으나,
바닷길을 지키고 있어 오직 호남만은 넘보지 못하고 있던 차,당시 전라도 공략 책임자인 일본군 승장(僧將)
안고꾸지(安國寺惠瓊)가 지휘하는 제6군 15,700명이 금산(금산)에 사령부를 설치하고
1만여 명을 주공(主攻)으로 하여 금산~진주~전주로, 2천여명을 조공(助攻)으로 하여 금산~진산~전주로 이어지는
전주성 협공작전을 전개했다.
그러나 웅치에는 전주성을 지키기 위해 전진 배치된 조선의 의병장 황박(黃璞)과 나주판관
김제군수 정담(鄭湛), 해남현감 변응정(邊應井)등의 연합군이 침공해 오는 일본군을 맞아 1592년 8월 14~15일 양일간에
걸쳐 이곳 웅치지역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조선, 연합군은 용전 분투하였으나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이곳에서 대부분 장렬한 전사를 하였다.
이때에 이 지방 사천인(泗川人) 김수 (金粹/ 1542~1592)와 그 동생 김정(金精 /1544~1592)도 의병으로 참전하여 큰 공을
올리고 형제가 동시에 순직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주력도 이곳 전투에서 전력에 막대한 손실을 입어 전주성 근교까지
진격하였으나, 전주성을 공략할 여력이 없어 퇴각하고 말아 웅치전이 호남을 방어하는 데에 결정적 공헌을 한 사실은
알 수 있다. 이 전투가 벌어진 날은 우연치 않게도
하며, 이 양대 전투가 임진왜란 때에 전세를 조선쪽으로 역전시키는 결정적 전기가 되게 하였다.
이 재 부근과 연결되는 능선 곳곳에서는 당시 전사한 병사들의 시신을 합장 한 듯한 돌무덤이 산재한다
2001년 12월
진안군수
웅치를 지나서부터 등산로를 따라 좌측으로 설치한지 오래된 철망이 한동안 이어진다.
기록을 보건 데 아래 쪽 산 자락 염소 농장에서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길은 평탄하고 이따금씩 나타나는 능선은 아직은 쉽게 오른다.
등산로 아래로 임도가 보였다 사라지다 한동안 이어진다.
약간의 오르막을 올라선후 삼거리 능선에서 잠시 주춤하다가 지도를 꺼내 확인을 하고
또 하고 나서 우측으로 방향을 잡고 급경사에 가까운 길을 이어간다.
묘 수십 기가 나란히 잠들어 있는 곳에 유독 金海 金氏, 儒人 天安 全氏 묘에만 묘비가 있고
그 아래로 잘 정비된 웅치 전적비가 어둠 속에 우뚝하다.
전적비 3면에는 임진왜란 당시의 전황을 새긴 부각이 있고
기념비는 3면이 모여서 우뚝한 꼭지점을 이룬다.
관군의 복장으로 대치하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농기구를 들고 말을 탄 왜병들과 접전하는
모습도 있다. 실로 답답하기 그지 없는 당시의 전황이다.
갑자기 들려오는 음악 소리…회장님이 일본에 출장가서 구입한 신형 MP3, 120MB용량으로
무려 3000곡을 저장할수 있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무거운 카메라를 벗어 버리고 MP3로 바꾼
것이 어쩌면 현명한 판단 일지도 모른다.
솔밭 사이로 난 시멘트 도로를 건너서 다시 된 비알을 오른다.
10여분 만에 정상에 오르니 또 다른 정상이 저 앞에 우뚝하다(560m 봉).
간단히 목을 적시고 가뿐 숨을 고른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앞선 팀을 다시 만난다.
좌측 아래로 희미하게 저수지 물이 반사되고(신정호저수지) 우측으로는 익산포항간 고속도로의
가로등이 졸고 있다. 새벽을 여는 차량 소리가 요란하고 먼산 자락도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내려서는 길은 또 급경사, 낙엽이 덮힌 길은 미끄러져 내려 간다는 표현이 걸맞다.
시야가 환하게 밝아 지는가 하더니 키 만큼 자란 쑥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인삼 밭을 하였는지 검은 비닐이 길 위에 흩어져 있고 안부는 매우 넓다.
형상이 새 머리를 닮았다고 조두치鳥頭峙, 어떤 기록에는 까마귀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오두치烏頭峙라고 불리기도 한다.
잡초와 가시 덩쿨이 웃 자라서 뒤엉킨 넓은 안부 좌우로 임도가 선명하다.
오르막을 향해 올라 가는데 아직은 어두운 새벽과 쌓인 낙엽 때문에 길 찾기도 쉽지 않다.
능선에 올라서니 비로소 훤히 밝아오고 길도 평탄하다.
마주 오는 산행팀을 만나면서 아침인사를 한다.
수원에서 온 팀으로서 오늘이 호남정맥 마지막 구간 산행이라 한다.
아하.. 그러고 보니 4차에서 만난 팀도 금남호남 마지막이라 하였는데
지금까지 만난 팀은 모두 북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내년 9월에 다른 팀을 만나면
“오늘이 마지막 산행 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답할 것이다.
오르막 길옆에 얌전히 서있는 강철 표시기를 만난다.(원불교 훈련원 0.7km,상달1.7km)
좌측 상달,중달,하달길로 통하는 마을은 원불교 훈련원, 원불교 교당이 줄지어 있는 곳이다.
오르막이 조금 더 이어 지는 곳에 플라스틱 의자와 함께 제2쉼터라고 표시기가 서 있다.
진행방향 능선을 오를까 하다가 좌측 경사면을 향해 가는 수월해 보이는 길로 접어 들었다.
앞으로 가야 할 구간이 능선 정상에서 다시 내려와서 좌측으로 진행 하리라는 오판을 한 줄을
이때는 전혀 몰랐다.
아득히 보이는 암봉의 허리를 지나 좌측의 안부에 도착하여(
우리도 아침 준비를 한다. 언제나 진수성찬, 동태 + 두부 + 김치 찌게를 준비하고
조 하사님의 버너로 따근 따끈하게 끓인다.
아침 먹는 재미도 등산도중 큰 즐거움의 하나다.
그러나 만사OK,산과바람,짱아씨가 지우천왕을 기다리는 동안
짱아씨는 낙엽에 드러누워 눈을 감는다.
지금까지 산행에서 이렇게 들어 눕기는 처음이다.아무래도 오늘 컨디션이 심각한가 보다.
건네주는 소주 한잔이 입술을 달지근하게 한다. 내 경험상,첫 잔이 달지근하게 느껴지면
그날은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 무한정 들어갈 수있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허기를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아침 햇살을 느낀다.
뒤에 오는 후미 대장을 위해 약간의 찌게를 남겨두고 만일을 대비해 코펠도 하나 준비해 둔다.
식사 후 진행 방향 때문에 약간의 혼돈이 있었으나 비껴난 정상이 옳은 길임을 확인하고
다시 오른다(
산 중턱에서 천년사랑님,윤님씨,
이거야 말로 부엌 살림을 통째 옮겨온 듯 진수성찬이다.
정면에 보이는 높은 봉우리에는 이동통신 중계기 안테나와 전원을 얻기 위한 태양열
집전판이 보인다. 비로소 만덕산 갈림길 3거리에 오른 것이다.(
만덕산은
그런데, 스테인레스 강판에 누군가가 이곳을 만덕산 이라고 표시해 놓았다.
잘못된 표시기가 얼마나 많은 산악인을 골탕 먹이는지 알기나 하고 썼을까….?
그런나 강판 아래 슬치 13.2km라고 표시 한 것은 방향이나 거리나 믿어도 될듯하다.
萬德山
높이는 762m로 일명 부처산이라고도 하며, 만 가지에 달하는 덕을 가진 이는 부처뿐이라는 뜻에서 기인한다.
호남정맥에서 제일 먼저 솟아오른 봉우리로, 암봉과 육산으로 조화를 이룬다.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의 풍치가 펼쳐진다. 특히 동남쪽 기슭에 위치한 미륵사 일대의 경관은 일품이며,
높이 50m의 만덕폭포와 그 주변의 풍광도 뛰어나다.
미륵사 뒤바위의 겨울철의 빙폭은 젊은 산악인들의 빙벽타기 훈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바위 능선길을 오르내리다가 우뚝 솟은 병풍바위를 만난다.
구름이 시야를 가리지만 않았다면 이 길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우측의 정수사 방향으로 아득히 보이는 절벽과 좌측의 상달길 부근에 있는 원불교 훈련원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좌측은 한적한 시골 동내 모습이고 우측은 깊은 산골의 정취가 베어난다.
계곡은 깊어 군데 군데 단풍도 보여주면서 발길을 멈추게 하고 카메라 또한 일행을 더디게 한다.
처음오신 한듬산 지기님, 천년사랑님과 산그리메의 사진기가 돌아가면서 바쁘다.
오늘 산행에 오신 여성 회원은 다슬기님과 짱아씨를 빼고는 다 모여있다.
사진찍기 좋아하는 분들이 빠졌으나(그것도 복이지 뭐..) 남은 회원들간에 웃음이
끊어질 줄 모른다..
그 즐거운 와중에도 새로 산 신발이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발톱이 빠질 지경으로 아프다.
발가락 끝에 반창고를 붙이고, 바위암님이 건네준 발가락 양말을 껴 신어도 통증이
가시지 않는다. 내리막 길을 갈때는 그 통증이 극에 달한다.
가벼운 발걸음도 전망이 끝나니 무디어 진다.
낮은 언덕에 제5쉼터라는 표시와 함께 플라스틱 의자가 놓여있다.
우리가 제2쉼터를 지났는데, 그 사이 불쑥 제5쉼터가 나타났다.
이렇게 붙여진 번호의 시작과 끝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몇차례 오르 내림을 지나고 나서 일행이 털썩 주저 앉는다
단장님이‘아들이 보내준 김포 고구마”를 꺼낸다. 물기가 없어서 텁텁 하지만
그것도 맛 있다. 만사 OK님이 낙엽 4개를 손에 들고 이것은 참 나무 잎, 이것은
갈 참나무, 이것은 떡갈나무….자세히 들여다 보니 모양이 제 각각이다.
조기가 많이 나는 바닷가 법성포에서 자랐다는데 나무와 식물에 대해서 만물박사다.
이어서 만나는 길은 벌목 지대인듯 나무는 없고 임도가 이 능선 저 골짜기로
무질서 하게 만들어져 있다. 계곡의 밭에는 가을 채소가 남아서 아직도 파란 들판이다.
동물 축사 같은 파란 지붕의 건물이 군데 군데 보이고 작은 저수지도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임도가 끝나는 평지에는 포장도로가 잘 나 있고 산 중턱으로도 길이 보인다.
지도로 봐서 임실군 관촌면 회봉리이고 이 회봉리도 위치에 따라 상회, 중회, 하회로
나눠져 있다. 산촌은 거주민이 작아서 각각 하나의 이름을 갖기에는 부족하듯,
대부분 상.중.하를 붙여서 이름 짓는 경우가 많다. 산위에서 내려다 보니 소꼽장난이라도
하듯이 한 손안에 들어온다. 산촌의 늦 가을이,완만한 능선을 이고 있는 전라도 산촌의
가을 풍경이따듯해 보인다.
시골서 자란 내 눈에는 이것 마져도 정겹기 짝이 없는 익숙한 모습이다.
이 안부가 마치磨峙(재)이다.
마치고개, 말티고개라는 이름이 자주 나오는데,말/마 는 모두 산,산정이라는 의미의 마루,
마리에서 유래하였다 한다. 산에 있는 고개, 산정에 있는 고개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진행방향의 등산로는 싸리나무,딸기나무,칡 넝쿨이 뒤썩여 불편하기 짝이 없다.
사이 사이에 두릅나무도 보이지만 진행은 점점 느려진다.
어려운 길이 끝나고 평탄한 안부가 이어 지다가 밤나무 단지를 만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다시 이어지는 잡목,가시넝쿨 길이 얼굴을 따갑게 한다.
키를 넘는 잡목과 잡초, 가시넝쿨 사이로 으름나무가 아직도 파랗다.
지도로 봐서 566m봉우리다(
앞서가던 그룹이 낙엽 위에 주저 앉거나 드러 눕는다.
이제는 낙엽 러셀이라도 하듯이 초반의 정취는 어디 가고 길이 미끄럽기까지 하다.
산 아래 동리의 아이들 소리도 간간히 들리고 개 짓는 소리도 들려온다.
고도는 낮아지고 있으며 가야 할 목적지도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걸음 걸이가 느려지고 남은 거리를 묻는 회원이 자꾸 늘어난다.
짧은 휴식후 숲을 지나니 전방이 다시 밝아진다.
부산 낙동 산악회가 나무에 걸어놓은 슬치(재) 표시기가 있고
이 나무 저 나무에 걸려있는 수많은 꼬리표가 반긴다.
좌우로 임도가 나타나고 진행 방향 능선으로도 넓은 임도가 시원하다.
좌측 능선은 노란색으로 물들인 전나무가 빼곡하고 정면의 임도 주변 산 비탈에
은행나무,단풍나무,산수유 나무를 잔뜩 심어 놓았다.
산수유 나무 아래로 키가 무릅까지 오는 암록색의 식물이 능선을 덮고 있다.
노란색과 붉은색 꽃을 달고 앙증맞게 피어있다.만사OK님도 그 이름을 모르겠다고 한다.
저절로 자란것은 아닌것 같고 넓은재배 면적으로 봐서 무슨 용도가 있는것 같다.
치우천왕이 건네는 선인장 술(Tequila, 테킬라)을 한잔씩 하고 임도를 따라 작은 능선을
올라서니 발 아래 파란 초록 카펫이 넓게 깔려있다.
연 초록 밀밭이 회원들의 발 걸음을 또 잡는다.
그 아래로는 제법 큰 동리가 자리하고 있다(상월리,월은) 건너편 산 자락은 임삼밭,
고추밭이 능선 까지 나 있고 계곡에는 한 뼘이나 될까… 뙤기 논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면 초원과 꽃,나무들로 화원을 이룰 만한 아름다운 능선이다.
후미를 기다렸다가 오늘 처음 참가하신,용인에서 오신 한산듬 지기님이 사진을
열심히 찍고나서 걸음을 재촉한다.
곧 이어서 오늘 구간 처음으로 삼각점이 설치된 작은 봉우리를 만난다(416.2m)
이제 8-9km남은 거리다.낮은 능선과 안부를 이어 가다가 좌측에 감나무를 만난다.
까치밥으로 남긴 것인지 5-6 그루에 제법 많이 달려있다.
시간이 지연 되는 것 같아서 올라 가지는 못하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깝다.
좌우로 낙엽송 나무가 빼곡하고 그 아래로 황금빛 낙엽이 곱게 깔려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 구간은 소나무를 거의 만나지 못 하였다.
이것이라도 기氣를 받으려는지 바위암님이 나무를 힘껏 안아본다.
다시 밤나무 단지가 나타나고 이어서 산딸기나무,싸리나무,잡목숲이 길을 또 더디게 한다.
흔적이 희미한 임도가 나타 나면서 강아지 짓는 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넓은 임도 주변으로 개간 작업을 하다만 불도져,트랙터가 멈춰 서있고
인적도 없는 컨테이너 박스 주변에서 애완견 5마리가 반갑게 짓어댄다.
능선위 밭에는 이랑을 깊게 파고 거름(퇴비)을 이곳 저곳에
옮겨놓고 파종준비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넓직한 황산재에 도착한다.
개간지에서 설치한 펜스 옆으로 손바닥 만하게 난 좁은 길을 따라
힘들게 이어 나간다.좁은 등산로와 잡목으로 뒤 썩인 길을 지나 작은 안부에서 심은지
몇 년 안되는 밤나무 단지를 마주 한다.
작은 오름이 끝나고(447m봉,
마지막으로 주저 않아 베낭속에 든 것을 꺼내 먹는다.
형찬군이 철 늦은 토마토를 나눠준다. 솔향님이 빵을 나눠주고 사과도 꺼낸다.
윤님씨가 나무에 기대어 피곤한 눈을 감는다. 마주 않아서 그 모습을 보노라니
너무 안스럽다. 경북 상주까지 가서 지내는 조상 시제와 조부모님들 기제사에다…
11월에 지내는 제사가 세번인가 네번인가… ?
고향에 내려 오는 길에 오늘 중식을 하려는 식당까지 답사를 하였다 한다.
남자들이야 제사만 지내면 되지만 여자들은 준비하랴 설거지하랴…
그 노고를 아는듯 “우리 회원중에서 솔향이가 제일루 행복한 사람이여…”
천년 사랑님이 한 마디 한다. 핵가족이 되면서 제사라는 것이 이 세대에게 주는
어려움을 조상님들은 예전에 상상이나 하였을까….?
완만한 내리막길,호젓한 비 포장 산길을 내려 가다가 시멘트 포장 길을 만난다.
좌우로 수확이 끝난 고추밭,참깨 그루터기,무우밭,갓 김치용 채소(전라도 김치?)밭을
만난다.너무도 완만한 야산이라,강원도 경상도라면 산 정상까지 농사를 지어도 전혀
문제가 없을 듯 하다.
발 아래 저수지 공사가 분주하고 우측 능선으로는 수 많은 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너무도 크게 자리한 봉분이 궁금하여 가까이서 보니 學生 府君 OO 氏라고 비석도 크다.
봉분을 크게 한다고 조상님이 기뻐 하실까…?
이산 저 능선에 잠들어 있는 크고 작은 무덤들은 저마다 흘러간 세월의 이불을 덮고 있다.
비석이나 상석(床石)이 놓여진 무덤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어느 산자락을 오를 때 나를 크게 웃게 하는 아줌마 두 사람의 대화.
" 무덤의 비석에는 왜 모두 《學生》이라고 썼노...? "
서슴없이 말을 받는 아줌마의 우스개 대답.
" 공동묘지에 "入學"했다고 그랬겠지..." ......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의식 중에서 상례와 제례 때 자주 접하게 되는 《學生》이라는 말 -
그 말의 뜻을 알아본다. 《學生》이라는 말은 《유학생(幼學生)》이란 말의 줄임말이다.
그 말은『幼學이었던 사람』이란 말로 보면 무방할 것이다.
유학이란 벼슬을 하지 않은 유생(儒生)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출사(出仕)하여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았으나 지식의 깊이나 세상을 보는 경륜만은,
재주가 아까운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세상을 하직한 사내들에게 남은 사람들이
그의 삶을 아깝게 여겨 붙여준 추서(追敍)이다. 아름다운 배려가 아닐 수 없다.
男子들에게 붙여준 추서가 학생이었다면 여자들의 경우에는 《유인(孺人)》이라 한다.
글자의 뜻풀이로만 보아서는 "젖을 먹여 키워준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 천만의 말씀이다.
"孺人 !" 그것은 조선시대의 외명부(外命婦)의 벼슬 이름이다.
九品의 벼슬을 한 문무관(文武官)의 아내들을 유인이라 한다.
한 平生을 고난과 애환으로 꾸려나간 女人네들의 삶의 궤적에 대한 보답이다.
이 경우를 두고 보면 봉건사회가 꼭 남존여비(南尊女卑)의 행태로만 되어진 것이 아니라는것을 엿볼 수 있다.
--유병부 님의 글에서--
차 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전형적인 농촌 집들이 하나 둘씩 보인다.
17번 국도,경기도 양지에서 시작하여 충청도 진천,청주,대전을 지나고
전라도 전주,임실,남원을 거쳐 순천,여수 돌산도 까지 가는 중요한 길이다.
이 길에 위치한 슬치에 도착한다.
우리가 서 있는 이 길로 춘향이를 그리워하는 이도령도 지나 갔을 것이다
안슬치, 밧슬치(바깥슬치), 슬치는 350여 년 전 평산 신씨가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저
옛날 도인이 비파를 뜯으며 고개를 넘어왔다 하여 비파瑟 고개峙 슬치라 하였다는 설이 있으며
지금은 신씨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먼저 도착한 회원님들 얼굴이 새삼 반갑다.
예약된 식당에서 편안하게 앉아 올갱이 국을 먹는다.
간에 좋다고 국물을 전부 마시라고 솔향님이 한마디 한다.
낙엽 러셀을 할 정도로 전 구간을 한 없이 밟고 지나온 구간,
호남의 산과 들,묘지 문화를 눈으로 공부하고 본대와 후미 큰 차이 없이 함께 한
오붓한 산행을 마친다.
후기; . 최근에 산지山地가 많이 개발되어 임도가 많아 졌으며 이로 인하여 지명 확인이
용이하지 않았습니다.
. 대 부분의 구간이 지명이나 표시가 충분하지 않아서 어디쯤 가는지,남은 거리가
얼마인지 가름 하는데도 애를 먹었습니다.
. 지명과 시간을 가름하는데 붕어잡이님의 사진이 많이 참고가 되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첫댓글 온누리님 산행기 세세하게![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2.gif)
감합니다..천년의 사랑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윤임님 고생많이 하셨고 그 와중에 사진 담아주시느라 연신 애쓰셨구요.....후미에서 형찬씨는 후미대장 도와서 거둔다고 고생했슴다...천*사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눈에 보이는게 전부는 아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라는 건 아시죠![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6.gif)
그러나 제가 행복해 보인다니 고맙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열심히 살겠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저도 온누리님의 산행기따라 호남정맥 1구간 잘 다녀 왔습니다.감사합니다...
행복 바이러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붕어잡이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산행기 올라오기를 손곱아 기다렸습니다. 제고향을 지나는 길이라 빠질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한치앞을 내다볼수 없는게 인생사라는 말이 맞는것 같습니다. 저도 쑥대장님이랑 같이 산행기따라 잘 다녀왔습니다. 감사합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이번 산행에는낙엽들이 두터운 요를 깔아 놓은 듯 폭신폭신했죠![?](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낙엽을 밟고 지나가면 과자를 깨무는 소리 처럼 바삭 바삭... 다시한번 ![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2.gif)
산 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부회장님의 산행기 항상 다시한번 그길 걸을수 있게 만드는군요 산행기따라 다시걷는 낙엽길이 너무나 좋습니다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음...온누리님 산행기 간수 자알 하셔야합네다... 어느날 제가 홀라당 훔쳐다가 "뭉클한 산행기"라는 책을 낼지 몰르거등요.... 마치 네셔날 지오그라피 한편을 보는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혹시 직업이....?
언제 보아도 정겨움이 가득한...글 온누리님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산행기를 보면서 ...![달](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11.gif)
지근한...그맛을 듬뿍 느끼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융탄자를 깔아놓은 것 처럼 낙엽밟는 소리가 아직까지도 귀가에 울리며 설레이게 했는데 그곳에서 만추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만끽하며 단순한 산행이 아닌 마음을 살찌우는 산행이였답니다 온누리님의 산행기는 제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 사랑하고픈 충동을 일으키게 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