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와인아트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여행 마당 스크랩 남아프리카공화국 기행-요하네스버어그로 가는 길
아트 추천 0 조회 312 08.10.16 17:4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오늘은 8월 9일부터 19일까지 열흘간 휴가를 내고 남아프리카 공화국(Republic of South Africa, Republiek van Suidafrika. 이하 남아공)으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열흘 동안 남아공 요하네스버어그(Johanesberg, 현지인들은 조하네스버어그, 줄여서 Jo'berg이라고 부름. 이하 조벅)에 살고 있는 여동생 부부와 비트워터스랜드 대학교(Witwartersland University, 줄여서 Wits University, 비츠 대학교)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는 아들 정하를 방문할 예정이다. 또 케이프 타운(Cape Town)과 케이프 반도(Cape Peninsula)의 희망봉(The Cape Of Good Hope)도 돌아보고, 시간이 되면 야성의 세계로 사파리(Safari)도 경험해 보려고 한다. 아프리카 대륙으로의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의사인 딸에게 한의원 진료를 대신 맡기고 떠나는 여행이라 환자분들에게 조금은 덜 미안하고 홀가분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70세가 넘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가야만 하기에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남아공까지는 비행시간만 해도 17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께 건강상의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내가 돌봐드리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항공권은 딸이 인터넷을 통해 미리 구입해 놓았기 때문에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찾기만 하면 된다. 항공료는 일인당 왕복 백만원이 조금 넘는다.

 

부모님은 5남1녀 중 막내딸인 여동생이 엘지상사 조벅 지사에 나가 있는 남편을 따라서 남아공으로 떠나간 뒤 3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다. 게다가 다음달 여동생이 출산을 하게 되면 앞으로 또 몇 년 동안은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여동생도 고국의 부모님을 그렇게나 그리워하고, 또 부모님도 만리타국에 나가 있는 하나뿐인 딸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장남인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워낙 바쁜데다가 시간을 통 낼 수가 없어서 부모님께 늘 죄송한 마음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젠 70을 훌쩍 넘기신 부모님의 연세로 볼 때 앞으로는 장거리 해외여행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부모님을 모시고 여동생이 살고 있는 남아공 여행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Stay With Me Till The Morning - Dana Winner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OST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지도

 

인천 국제공항(Incheon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해서 여동생과 아들을 위해서 가져가는 물건들을 화물로 부치려고 아시아나 항공사(Asiana Air Lines) 데스크를 찾았다. 화물은 일인당 20kg, 일행이 네 명이니까 도합 80kg까지 허용된다. 그런데 화물의 무게를 달아보니 92kg이다. 남은 12kg의 짐을 다 부치려면 추가비용 45만원을 더 내야 된다. 남은 짐을 배낭과 여행가방에 나누어 넣고서도 정하가 좋아해서 가져온 햄이 남는다. 할 수 없이 햄을 데스크 여직원에게 주고 나서 부모님을 위해 패밀리 서비스를 부탁한다. 곧 나타난 직원이 부모님을 휠체어에 태우고 출국 수속부터 비행기 탑승까지 친절하게 처리해 준다. 안내방송에 따라 저녁 8시경 홍콩(Hong Kong, 香港)행 아시아나 항공 OZ 723편 비행기에 오른다. 패밀리 서비스 덕분에 부모님은 휠체어에 타신 채 편안하게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저녁 8시 20분 드디어 비행기가 활주로를 질주하기 시작한다. 잠시만에 비행기는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영종도 인천 국제공항을 이륙해서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홍콩까지는 3시간 정도 걸리니까 한국시간으로 11시 20분(한국과의 시차가 1시간 늦은 홍콩에는 10시 20분)쯤 도착하게 될 것이다. 앞좌석에 달려 있는 간이탁자를 내려놓고 집에서 가져온 소설가 이종태의 단편소설집 '벌레(시한울)'를 펼쳐 든다. 임연규 시인의 시집 '꽃을 보고 가시게(오늘의 문학사)'와 김홍표 시인의 시집 '뒤란에 서다(북랜드)'도 배낭에 넣어 왔다. 비행기 안에서 보내야 할 그 기나긴 시간에 다른 할 일도 마땅히 없는지라 평소에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읽으려는 것이다. 

 

이종태 작가는 충주에 살면서 오로지 소설만 쓰는 전업작가로 나와는 가끔 만나 곡차례를 나누는 사이이기도 하다. 문학평론가 유한근(한성디지털대학교) 교수는 '노마드-청결한 영혼, 그리고 불교적 판타지'라는 큰 제목과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또 다른 산맥'이라는 작은 제목을 붙인 '벌레'에 대한 평론에서 이종태 작가를 '21세기에 들어와 한국적 상황 속에서 사라져버린 문학을 목숨처럼 인식하는 소설가이다. 문학 속에서 절망하고 구원을 찾으려 하는 작가이며, 한국 단편소설의 정통성을 지키려 하는 작가이고, 그러면서도 리얼리즘 소설로부터 새롭게 도약해서 제 색깔을 갖으려 하는 작가이다.'라고 평하고 있다. 첫번째 단편은 '호수에 내리는 비'라는 제목의 소설이다. 소설을 읽어 내려가면서 서서히 허구의 세계로 빠져든다. 이어 두번째 단편 '내 몸에서 싹트는 소리가 들렸다'와 세번째 단편 '우리들의 환'을 읽으면서 이종태 작가의 소설이 재미가 있으면서도 이야기 구성력이 매우 탄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소설을 읽다가 눈이 피로해서 음악을 듣기로 한다. 앞좌석 등뒤에 달려 있는 모니터를 이용하면 원 터치로 영화나 음악을 감상할 수 있고, 라디오도 들을 수 있으며, 게임도 할 수 있다. 또 비행정보도 알 수 있다. 컴퓨터로 인해 참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모니터의 음악감상 메뉴에 들어가 기내 오디오 시스템으로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핸드릭스(Jimi Hendrix)의 연주를 듣는다. 지미 헨드릭스는 반 헤일런(Van Halen), 윙위 맘스틴(Yngwie Malmsteen)과 더불어 역사상 기타연주에 가장 큰 변혁을 가져왔다고 평가되는 3대 기타리스트 중 한 사람이다. 사이키델릭과 블루스, 록을 접목해서 대중들을 사로잡은 그의 명곡 'Purple Haze'와 'Hey Joe'를 비롯해서 'Manic Depression', 'Love Or Confusion', 'May This Be Love', 'I Don't Live Today', 'The Wind Cries Mary', 'Third Stone From The Sun', 'Foxy Lady'에 빠져 든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스튜어디스들이 기내를 돌면서 저녁식사로 기내식 세트를 나누어 준다. 쌀밥과 해물튀김에 소스를 앉은 반찬, 소프트 롤 빵, 케익, 샐러드가 들어 있다. 마침 시장기가 돌던 참이었다. 음식맛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기내식 세트에는 커피와 설탕, 크림, 버터, 껌, 소금, 후추, 이쑤시개, 물수건까지 들어 있다.

 

비행정보를 보니 비행기는 지금 고도 12km의 상공을 시속 870km의 속도로 날아가고 있다. 40분 후에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Hong Kong Check Lap Kok International Airport, 중국어로는 香港國際機場)에 도착한다는 부기장의 안내방송이 들려온다. 스튜어디스에게 홍콩 공항에서 남아프리카 항공사(South African Airways) 비행기로 갈아탈 때도 패밀리 서비스를 받고 싶다는 부탁을 한다. 스튜어디스로부터 현지 직원이 도와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일단 안심이 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 1번 게이트

 

밤 10시 20분 비행기는 어둠속에 잠긴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 활주로에 내려앉는다. 1998년에 공식 개항한 홍콩 국제공항은 바다를 메워 만든 첵랍콕 섬에 위치하고 있어서 첵랍콕 공항이라고도 부른다. 이 공항은 화물과 승객의 주요 환승 센터로써 중국 본토나 동남아시아, 동아시아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스카이트랙스에 의해 여러 번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선정된 바 있는 이 공항은 24시간 운영되고 있으며, 매년 4천5백만명의 승객과 3백만톤의 화물을 처리하고 있다. 2006년에는 싱가포르의 창이 국제공항이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선정되었다.

 

비행기문을 나서자 아시아나 항공사 현지 직원 두 사람이 휠체어를 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있다. 휠체어에 부모님을 태운 중국인 직원들이 앞장서서 출입국 수속을 대신해서 처리해 준다. 현지 직원들은 부모님을 조벅행 남아프리카 항공사 비행기를 탈 수 있는 1번 게이트까지 안내해 주고 돌아간다. 그들에게 '댕큐!' 하고 감사의 인사를 표한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직접 부모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수속을 일일이 다 밟어야 했을 것이다. 화물은 자동으로 인수인계가 되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홍콩서부터는 한국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현지어 아니면 영어만이 통한다. 나는 영어를 거의 못하는 편이라 갑자기 귀머거리가 된 듯한 느낌이다. 어릴 때부터 한글이 매우 과학적이고 세계적으로 뛰어난 문자라고 귀가 따갑게 들어왔는데...... 그렇게 훌륭한 문자를 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쓰지 않는 것일까? 그 우수하다는 한글도 한국을 벗어나면 전혀 쓸모가 없다.   

 

밤 11시 50분 발 조벅행 남아프리카 항공사 소속 SA 287편 비행기는 5시간이나 지연되어 새벽 4시 45분에 출발한다고 한다. 비행기가 지연되는 이유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도 없고, 또 이에 대해 누구 한 사람 물어보거나 항의하는 사람도 없다. 별 수 없이 대합실에서 기다리며 사방을 둘러보니 공항 안은 그야말로 인종전시장이다. 지구상의 인종이란 인종은 다 모여 있는 것 같다. 중국에 사업차 왔다가 브라질 상파울루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교포 한 사람과 브라질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대학생 한 명도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홍콩에서는 조벅을 경유해서 브라질로 가는 것이 빠르다고 한다. 말이 통하는 사람들을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한국과 남아공간의 정기 직항노선은 아직 개설되지 않았다. 그래서 남아공엘 가려면 홍콩이나 싱가포르, 방콕, 두바이 등을 경유해야 한다. 홍콩에서 남아공 조벅까지는 비행기로 14시간 걸린다. 시차는 남아공이 한국보다 7시간 늦다. 부모님은 피로에 지치셨는지 대합실 의자에 드러누우신 채 잠이 드셨다. 새벽 두 시쯤 한국에서 가져온 순대와 만두로 야식을 먹으면서 시장기를 달랜다. 순대와 만두를 외국에 나와 먹어서 그런지 더 맛있는 것 같다. 야식을 먹은 후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나도 긴 의자에 드러누워 두 발을 쭉 뻗고 잠을 청해 본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자 1번 게이트가 부산해진다. 공항 직원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승객들은 줄을 서기 시작한다. 'Johanesberg, 約翰尼斯堡'라고 쓴 안내판에는 불이 환하게 들어와 있다. 저 문을 나가서 14시간이 지나면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땅끝 나라 남아공에 발을 딛게 될 것이다. 어제 도움을 주었던 현지 직원들이 다시 나타나 다른 승객들보다 먼저 부모님을 휠체어에 태우고 비행기 문앞까지 데려다 준다.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조벅행 SA 287편 비행기에 오른다. 자리를 찾아서 앉아 있는데 흑인 스튜어디스가 오더니 영어로 뭐라고 말을 하는데, 익숙한 단어 몇 개를 제외하고는 통 알아듣지를 못 하겠다. 무슨 말인지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정확한 뜻을 몰라 답답해 하던 차에 마침 곁에 있던 한국사람이 통역을 해준다. 스튜어디스는 내게 '조벅에 도착해서 휠체어 서비스가 도착할 때까지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으세요.'라는 말을 전하려고 했던 것이다. 진작 좀 영어를 잘 배워 둘 걸.......   

 

인천발 홍콩행 비행기에는 황인종 승객이 대부분이었는데, 홍콩발 조벅행 비행기에는 흑인과 백인 승객이 대부분이다. 승무원도 흑인이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남아공의 저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당시만 해도 흑인이 항공사 승무원이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백인들로부터 정권을 인수한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의 흑인정권이 남아공에 들어서자 정치적 자유를 되찾은 흑인들은 이제 사회의 주요 직종에도 진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비행기가 아프리카 대륙으로 떠나는 비행기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좌석에는 오랜 비행시간을 위한 치솔과 치약, 눈가리개, 양말 한 켤레, 모포 한 장이 놓여 있다. 그런데 물건들이 좀 조악한 편이다.

 

새벽 4시 50분. 비행기가 활주로를 질주하기 시작한다. 잠시만에 비행기는 아직은 어둠컴컴한 홍콩의 새벽 하늘로 날아오른다. 저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홍콩의 휘황찬란한 야경이 환상적이다. 동녘 하늘에 붉은 기운이 돌면서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잠깐 사이에 비행기는 짙은 구름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다. 승무원들이 돌아다니면서 창문 가리개를 닫는다. 주위를 돌아보니 모두들 자고 있다. 때때로 불안정한 기류를 만날 때마다 비행기가 심하게 요동을 친다. 영어와 중국어로 안내방송이 나오는데 무슨 말인지는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 

 

잠이 오지 않아서 음악을 들으려고 모니터를 켠다. 음악 메뉴를 클릭하니 아는 음악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이왕이면 아프리카 음악을 들으려고 '아프리카'라는 말이 들어가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선택하기로 한다. 마침 남아공과 세네갈, 짐바브웨, 나이지리아, 부르키나 파소 등지로부터 온 뮤지션들이 피쳐링한 음악이라는 소개글이 붙은 'VA-African Groove'라는 씨디가 실려 있다. 씨디에 수록된 'Saye Mogo Bana'를 비롯해서 'Boroto', 'Mekete', 'Kalicom', 'A Peace Of Ebony', 'Hardstone', 'Wouyouma', 'Bouba', 'Logos Communique', 'One For Senegal', 'Khululuma', 'Mofolo Hall' 등의 곡들을 차례로 듣는다. 줄루어로 짐작되는 남아프리카 원주민어로 된 곡목은 무슨 뜻인지 짐작조차 못하겠다. 음악이 흘러나오자 단조로운 리듬이 반복되는 연주를 기대한 내 예상이 그대로 맞아 떨어진다. 이들의 연주에서는 좀 세련되기는 했지만 일정한 패턴의 리듬이 단조롭게 반복되는 아프리카 전통음악의 특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특히 경쾌하고 빠른 리듬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타악연주는 주술적인 마력을 지니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인도양의 푸른 산호초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인도양

 

음악을 들으면서 네번째 단편 '나비야 청산가자'를 읽는다. 다섯번째 단편 '벌레'을 읽고 나서 인연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에 잠긴다. '아프리칸 그루브'의 연주를 벌써 네번째 듣고 있는데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들으면 들을수록 음악에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마력이 있다. 다음에는 'Cassette'의 음악을 감상한다. '커세트'는 2007년도 남아공 뮤직 어워드에서 최우수 록 앨범상을 수상했으며, 다른 2개 부문에서도 수상후보에 오른 최고의 듀오 그룹이다. 이 앨범에는 'A.I'를 비롯해서 'Love With The Light On', 'Your Star', 'Sometimes', 'Beautiful Smile', 'All The World', 'Welcome Back To Earth', 'Tracy', 'Heartless', 'Time'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의 노래와 연주는 상당히 세련되고 뛰어나다. 특히 타악연주가 이 앨범을 더욱 빛나게 해주고 있다. 아프리카 록을 들으면서 음악은 세계공통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비행기가 언제부터 바다 위를 날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렇다면 아까 보았던 육지는 인도네시아쯤 될 것으로 짐작된다. 문득 창문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니 인도양의 푸른 산호초가 환상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에머럴드빛의 산호초가 바다속의 호수처럼 보인다. 하늘과 바다는 하나로 붙어서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하늘과 바다가 뒤바뀌어 하늘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하늘이 된 듯한 느낌이다. 하늘을 닮아서일까? 어쩌면 바다는 저토록 눈이 시리도록 푸르를 수가 있을까! 그 푸르른 바다 위에는 솜털처럼 하얀 뭉게구름이 한가로이 떠 있다. 마치 하늘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또 얼마쯤 지났을까..... 비행기가 두 개의 섬이 떠 있는 바다 상공을 날고 있다. 아마도 저 섬은 마다가스카르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승무원이 다가오더니 창문 가리개를 닫으라고 한다. 창문을 통해서 쏟아져 들어오는 눈부신 햇빛이 승객들의 수면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버트란드 드 빌리(Bertrand de Billy)가 지휘하는 베토벤의 3번 교향곡을 듣는다. 이 교향곡은 베토벤 5번 교향곡 '운명'을 들을 때의 느낌처럼 장중하면서도 힘차다. 음악을 들으면서 이종태 소설집의 여섯번째 단편 '페넬로페의 눈'을 읽는다. 이어 일곱번째 단편 '영혼의 회귀'를 읽는데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졸음이 쏟아진다. 책을 덮고 이어폰을 벗은 다음 눈을 감으니 순식간에 꿈나라로 빠져든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대륙

 

얼마나 오랫동안 잠이 들었을까? 기내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는 바람에 잠이 깬다. 곧 조벅 국제공항에 착륙한다는 내용이다. 조벅 국제공항을 왈탐보(Ol'Tambo) 국제공항이라고도 부른다. 왈탐보는 남아공 민족해방운동사에 커다란 공헌을 한 올리버 탐보(Oliver Tambo, 1917~1993)를 가리키는데, 그를 기리기 위해 공항에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올리버 탐보는 백인들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대항해서 저항운동을 전개했던 아프리카 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 ANC) 제2대 의장을 역임했던 사람이다. 망명생활에서 돌아온 올리버 탐보는 1990년 ANC 전국회의를 개최했는데, 이때 중풍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이듬해인 1991년에 자신은 명예직인 ANC 전국의장으로 물러나고 넬슨 만델라에게 ANC 의장직을 물려주게 된다.   

 

비행기는 이제 아프리카 대륙 상공을 날고 있다. 처음 만나는 아프리카 대륙에는 햇빛을 받아서 눈부시게 하얀 거대한 뭉게구름의 바다가 펼쳐져 있다. 구름사이로 산과 계곡, 그리고 강이 언뜻언뜻 보인다. 눈 아래 펼쳐진 웅장하고 광대한 대자연의 풍경에 넋을 잃을 정도다.

 

베토벤의 3번 교향곡을 4번째 듣고 있다. 다시 이종태의 소설집을 펴 든다. '올가미'는 두 남자 접대부의 인생유전을 그린 단편이다. 이제 마지막 단편 '누가 벽을 만들었나?'만 남았다. 이 단편은 두 이복형제의 기구한 만남과 헤어짐이 주요 줄거리이다. 마지막 단편을 읽고 나서 소설집을 덮는다. 이 얼마만에 소설책을 읽어보는 것인가! 남아공으로 떠나는 길고 긴 비행시간은 나로 하여금 오랜만에 소설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배가 출출해서 기내식 담당 승무원에게 컵라면(Cup noodles)을 하나 부탁한다. 중국 아니면 홍콩 제품이 분명한 合味道 蝦杯麵인데, 맛은 한국의 컵라면과 별 차이가 없다.  

 

비행기는 이제 구름이 어느새 사라지고 맑게 갠 남아공의 하늘을 날고 있다. 남아프리카의 광활한 대륙이 눈 아래로 보인다.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평선은 끝도 보이지 않는다. 강바닥은 가뭄이 들었는지 벌겋게 드러나 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것은 강, 직선으로 뚫린 것은 도로이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자를 대고 그은 듯 똑바로 뚫려 있다. 드넓은 대지에는 사람이 사는 마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저 아래에는 아프리카 야생의 세계가 있으리라. 조벅이 가까와지면서 비로소 마을과 도시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요하네스버어그 전경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요하네스버어그 왈탐보 국제공항

 

비행기가 조벅 상공에 이르자 서서히 하강하기 시작한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조벅 시가지가 엄청나게 광대하다는 데 새삼 놀란다. 남아공 제일의 도시라고 하는 조벅은 서울과 천안을 합한 것과 같은 넓이의 땅에 세워진 도시라고 하니 얼마나 큰 도시인지 짐작할 수 있다. 기장이 곧 조벅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을 내보낸다. 조벅의 왈탐보 국제공항이 눈에 들어오면서 랜딩 기어의 바퀴가 활주로에 닿는 충격이 전해져 온다. 14시간의 지루한 비행끝에 조벅 시간으로 오후 12시(한국시간으로 저녁 7시) 드디어 왈탐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난생 처음 아프리카 대륙에 감격적인 첫발을 내딛는다. 남아공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주로 조벅의 왈탐보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다.

 

비행기 문을 나서자 공항직원 두 사람이 휠체어를 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있다. 부모님이 휠체어에 오르자 직원들은 앞장서서 입국 수속장으로 향한다. 세계각국에서 온 수많은 인종들로 붐비는 입국장은 흡사 인종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은 뒤 공항주차장으로 나가는데, 다른 공항과는 달리 직원들이 공공연하게 팁을 요구한다. 할 수 없이 미화 5달러를 팁으로 주었다. 공항주차장으로 나가자 승합차를 대절해서 마중을 나온 여동생과 조카 둘, 그리고 아들 정하가 보인다. 부모님과 여동생은 서로 만나자마자 눈물부터 글썽인다. 3년만의 상봉이니 부녀간에 또 모녀간에 얼마나 보고싶고 그리웠을까! 나도 콧잔등이 시큰해져 오는 바람에 엉뚱한 곳을 바라보는 척 하고 있었다. 매제는 회사 일이 바빠서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승합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와 조벅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N1 고속도로로 들어간다. N1은 남서쪽의 케이프타운에서 조벅과 프리토리아를 거쳐 북동쪽의 짐바브웨 국경까지 남아공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이다. 남아공에서 가장 중요한 N1 고속도로는 한국과는 달리 통행료를 받지 않는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차창을 통해 조벅의 거리를 구경한다. 특이하게도 조벅에는 고층빌딩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땅이 넓으니 고층 빌딩을 올릴 필요가 전혀 없을 것이다. 

 

거리에는 BMW나 벤츠, 롤스로이스, 포르쉐, 아우디, 렉서스, 푸조, 피아트, 토요타, 포드, 닛산 등 유명 외제차들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어 마치 자동차 전시장 같다. 최고급 스포츠 세단인 람보르기니와 페라리, 재규어도 간혹 보인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차는 렉서스와 코롤라 등 일본의 토요타사 제품이다. 조벅에서 굴러다니는 승합차는 거의 일본제 토요타 차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남아공의 자동차 시장은 현지 공장을 갖춘 BMW를 제치고 오히려 일본이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주로 소형차이기는 하지만 아반떼나 마티즈 같은 한국산 자동차도 아주 가끔 눈에 띈다. 한국산 자동차를 만나면 반가운 느낌이 든다. 만리타향에서는 고향 까마귀를 만나도 반가운 법이다. 

 

N1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아프리카 대륙의 땅끝 나라인 남아공에 내가 와 있다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는다. 남아공은 한국전쟁 당시 연합군의 일원으로 남한에 공군 1개 전투비행단과 수송기 7대를 보내서 참전한 우방국이다. 한국은 이를 기념하여 경기도 안성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참전비를 세웠다. 한국과의 공식 외교관계는 만델라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1992년 12월에 수립되었으며, 양국은 각각 다음해 2월과 3월에 현지 대사관을 설치했다. 탈냉전 이후 남아공은 1998년 8월에 북한과도 외교관계를 맺었다. 1995년 7월에는 만델라 대통령이 방한한 바 있고, 1998년 4월에는 타보 음베키(Thabo Mbeki) 부통령(현재 대통령)이 방한한 바 있다. 

 

남아공의 면적은 약 120만 k㎡로 한반도의 여섯 배나 되지만 인구는 약 4천6백만 명으로 한국과 비슷하다. 인구 구성은 아프리카 흑인이 약 75%, 백인이 약 15%, 나머지는 아시아계 및 혼혈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는 세 곳이나 된다. 행정수도는 가우텡(Gauteng) 주의 프리토리아(Pretoria), 입법수도는 웨스턴 케이프(Western Cape) 주의 주도인 항구도시 케이프타운, 사법수도는 프리 스테이트(Free State) 주의 주도인 블룸폰테인(Bloemfontein)이다. 남아공의 화폐단위는 랜드(rand/R, 1R=100Cents)로 1랜드는 한국 돈으로 130원쯤 된다.

 

남아공의 공용어는 영어(English), 아프리칸스어(Afrikaans)와 반투어에 속하는 코사어(Cosa), 줄루어(Zulu), 스와지어(Swazi), 은데벨레어(Ndebele), 수투어(Sutoo), 페디어(Pedi), 츠와나어(Tswana), 총가어(Tsonga), 벤다어(Venda) 등 11개 언어이다. 남아프리카인의 조상은 약 1만 년 전 석기시대 후기에 수렵과 채집생활을 했던 산족(부시맨)과 코이코이족(호텐토트족)이다. 그후 15세기까지 철기문명을 가진 반투족이 남아프리카로 남하하여 공동체를 이루고 금, 동광업과 동아프리카 무역을 발전시켰다. 그래서 남아공 흑인은 모두 니제르콩고어족의 베누에콩고어군에 속하는 반투어를 사용한다. 반투어에는 4개 주요 어군이 있다. 최대 어군은 흑인의 절반 이상이 사용하는 코사족, 줄루족, 스와지족, 은데벨레족의 응구니어군이고, 두번째로 큰 어군은 소토족, 페디족, 츠와나족이 속한 소토츠와나어군이며, 그 다음이 총가어군과 벤다어군 순이다. 

 

백인들은 아프리칸스어와 영어를 사용한다. 백인의 절반 이상이 사용하는 아프리칸스어는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이민자의 후예들이 쓰는 언어이다. 영어는 이들보다 나중에 건너온 영국 식민지 이주민의 후예들과 포르투갈, 이탈리아 이민자 등이 사용한다. 1488년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Bartolomeu Diaz, 1450경~1500)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남단을 항해한 이후 1652년에 네덜란드인 얀 반 리베크(Jan van Riebeeck, 1619~1677)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무역선의 중간 기착지로 이용할 목적으로 희망봉 일대에 케이프 식민지를 건설했다. 네덜란드 이주자들은 처음에는 보어(Boer)인으로 불렸으나, 뒤에 네덜란드어에서 파생된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아프리카너'라고 불리게 되었다.

 

1795년에 영국군은 케이프 식민지를 점령하고 국경을 따라 반투어를 쓰는 부족들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1830년대에 들어와서 영국인들에게 밀려난 아프리카너들은 북상하여 오렌지 자유국(1854)과 남아프리카 공화국(1838, 후에 트란스발 공화국이 됨)을 세웠다. 1899년 영국이 두 공화국을 남아프리카 연방에 포함시키려고 하자 이에 맞서 저항하는 보어인들과 영국인 사이에 보어전쟁이 일어났다. 1902년 보어인들이 패하고 두 공화국이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영어는 남아프리카의 공용어가 되었다.     

남아공은 남위 22∼35°, 동경 16∼33°에 위치하며 동서, 남북으로 각각 약 1,600km에 이르는 꽤 큰 나라이다. 동쪽과 동북쪽에는 모잠비크와 스와질란드, 서북쪽에는 나미비아, 북쪽에는 보츠와나와 짐바브웨가 국경을 접하고 있고, 영토 내에는 독립국인 레소토가 있다. 동남쪽으로는 인도양, 서남쪽으로는 대서양과 접한다. 남아공은 크게 광대한 내륙고원, 반원형의 산맥을 이루며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그레이트 단애(斷崖), 협소한 띠 모양의 해안평야 등 3대 지형구로 나눌 수 있다. 최고봉은 레소토의 북동쪽 국경지대에 있는 오수르스 산이고, 주요 하천은 오렌지 강과 림포포 강이다. 남아공에는 다이아몬드와 금을 비롯하여 석탄, 구리, 망간, 크롬, 우라늄, 백금, 철, 천연가스 등 천연광물자원이 매우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남아공은 세계 최대의 금 생산국이다. 

남아공의 기후는 온난성 아열대기후이다. 평균기온은 여름철(12∼2월)에는 21∼32℃, 겨울철(6∼8월)에는 10∼21℃이다. 자연식생은 케이프 주의 지중해성 기후에서 잘 자라는 관목에서부터 서부 반사막지대의 가뭄에 잘 견디는 관목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수목으로 뒤덮여 있는 케이프 주 남쪽 일부를 제외하고 나머지 국토의 대부분은 초원지대이다. 남아공에는 크루거 국립공원, 필레인즈 국립공원 등 사자와 코끼리, 코뿔소, 기린, 영양, 하마와 같은 야생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구역이 많다. 

남아공 최초의 헌법은 영국 국왕을 국가 수반으로 하고 의원내각제를 골자로 한 1909년의 남아프리카법이었다. 이 법의 제정으로 남아프리카 연방이 수립되었다. 남아프리카법은 1961년 제정된 헌법으로 대체됨으로써 남아공은 영국연방 내의 자치령에서 독립하여 공화국이 되었다. 1966년에는 남아공 내 레소토(바수톨란드) 공화국이 독립했다. 1948년부터 1994년까지 남아공의 정치, 사회체제는 백인 소수 정권에 의한 아파르트헤이트에 기초한 것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란 소수 백인집단의 정치, 경제적 지배를 유지하고 백인과 컬러드(Coloured, 혼혈인), 아시아인(주로 인도인), 아프리카 흑인을 법률적으로 엄격하게 분리하는 인종차별 정책을 말한다. 이 흑백 인종차별 정책의 폐지를 위해 흑인들은 ANC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고 격렬한 저항운동을 전개했으며, 1976년에 일어난 소웨토(Soweto) 흑인 저항운동은 전세계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과 흑인들의 끈질긴 저항운동에 직면한 F. W. 데 클레르크(De Klerk) 대통령의 백인 소수정권은 유화정책을 쓸 수 밖에 없을 만큼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백인 소수정권은 마침내 1990년 ANC 의장 넬슨 만델라를 석방하고, ANC와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운동단체들을 합법화하였다. 1991년부터 백인 정권은 ANC를 비롯한 다른 정치단체와 함께 흑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헌법개정에 관한 협상을 벌임과 동시에 인종차별적 법률들을 폐지함으로써 아파르트헤이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1994년 4월 26일 남아공 최초의 다인종 제헌의회 선거가 실시되고 이와 함께 임시헌법이 발효되었다.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ANC 의장 넬슨 말델라는 320여 년에 걸친 백인정권에 의한 압제를 끝장내고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으며, 임시헌법에 의해 악명높은 아파르트헤이트는 역사적 뒤안길로 사라졌다. 만델라는 즉시 ANC와 이전의 백인 집권당인 NP(National Party, 국민당)를 비롯해서 온건정당의 인물들을 부통령과 각료로 임명하여 임시 연립정부인 국민통일정부(Government of National Unity, GNU)를 구성하였다.

 

1996년에는 제헌의회에서 과거 남아공 백인 소수정권의 불의(不義)를 지적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인간의 존엄성, 인종과 성차별의 반대, 평등의 실현, 인간의 권리와 자유의 증진이라는 원칙에 기초해 세워진 국가'라고 규정한 남아공 신헌법이 제정되어 이듬해에 발효되었다. 1995년 5월 의회에서 '진실과 화합법'이 통과되고 투투 주교가 이끄는 '진실과 화합위원회'가 설치되어 백인정권하에서 저질러진 반인류적, 반인권적인 범죄의 진실을 규명하고 나아가 흑백간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1998년 10월 '진실과 화합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라 만델라 대통령은 용서와 화합을 호소하는 한편, 반인권적 범죄의 처벌과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일반사면은 거부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만델라 정부는 국제적으로는 아프리카의 정치, 경제문제와 국제분쟁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남아공의 국제적 지위를 크게 향상시켰다. 국내적으로는 흑인우대정책(BEE, Black Economy Empowerment)을 도입하고 새 노동법을 제정하여 경제상의 흑백차별을 사라지게 함과 동시에 인종 및 성차별을 철폐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노동조합과 흑인 경영자들로 하여금 기업을 설립케 하거나 백인 회사들을 인수케 하고, 기업과 직장에서는 흑인과 여성의 고용 비율을 각각 75%, 50%가 되게 하였다. 이때부터 흑인들은 경제적 지위가 점점 높아져 중산층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만델라 대통령이 물러난 뒤, 1999년 6월에 실시된 두번째 총선에서도 ANC는 압승을 거두고, 만델라의 후계자인 타보 음베키 ANC 의장 겸 부통령이 차기 대통령에 취임했다. 음베키 정부는 앞으로 흑인들의 높은 실업률과 생활고, 주택난, 에이즈, 범죄 등 산더미처럼 쌓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인종간 경제적 평등의 실현과 삶의 질을 향상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남아공은 가우텡 주를 비롯해서 노던 프로빈스(Northern Province) 주, 음뿌말랑가(Mpumalanga) 주, 노스 웨스트(North West) 주, 프리 스테이트 주, 노던 케이프(Northern Cape) 주, 콰줄루 나탈(KwaZulu Natal) 주, 이스턴 케이프(Eastern Cape) 주, 웨스턴 케이프 주 등 9개 주로 나뉘어져 있다. 가우텡 주는 남아공의 상업, 금융, 산업 중심지인 까닭에 남아공에서 가장 작은 주이면서도 인구밀도는 가장 높다. 주요 언어는 아프리칸스어, 영어, 줄루어다. '가우텡(Gauteng)'은 '금이 나는 곳(The place of gold)', 즉 '금 노다지의 땅'이란 뜻이다. 가우텡 주에는 남아공의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 주도인 조벅을 비롯해서 흑인해방 투쟁으로 유명한 소웨토, 게르미스톤, 반데르빌파크 등 주요 산업도시들이 있다. 가우텡 주는 남아공 GDP의 37%를 차지하고 있고, 노동인력의 70%가 이곳에 몰려 있으며, 연구 개발의 약 60%가 여기서 이루어지고 있다.

 

내가 첫발을 내디딘 조벅은 가우텡 주의 주도로 해발 6천 피트에 자리잡고 있는 고원도시이다. 1886년에 엄청난 양의 금맥이 발견되면서 일명 '황금의 도시'라 불렸다. 이후 사막이나 다름없던 작은 금광마을에서 오늘날과 같은 국제적인 대도시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지금도 시내 곳곳에는 금을 캐던 폐광들이 흩어져 있다. 남아프리카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조벅은 세계 6대 금융도시로 현재 남아공 최대의 상업도시이며, 금융과 산업, 국제무역의 중심지이다. 또한 이곳에서 생산되는 금과 다이아몬드는 남아공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목이다. 

조벅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는 우선 남아공 인종차별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Apartheid Musium)을 들 수 있다. 다음 조벅의 역사를 전시한 조벅 전시실, 지질 및 광물전시관 등을 갖춘 아프리카나 박물관(Africana Musium)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50층 빌딩으로 맨 위층에 전망대가 있어 조벅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칼튼 센터(Carlton Centre), 새끼 사자를 안고 사진도 찍을 수 있고 차에 탄 채 돌아다니면서 야생의 사자도 관찰할 수 있는 라이온 파크(Lion Park), 과거 남아프리카 개척시대의 마을 모습을 재현한 골드 리프 시티(Gold Reef City)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민속촌 유원지로 조성된 골드 리프 시티에서는 남아공 민속춤도 관람할 수도 있고, 지하 250m 갱까지 내려가 옛날에 금을 캐던 현장도 체험할 수 있다. 그밖에 라스베가스의 축소판으로 엔터테인먼트 복합단지인 몬테카지노(Montecassino), 흑백간의 정권교체 이후 조벅 다운타운에서 밀려난 백인들이 새로 건설한 도심지로 쇼핑센터와 오피스 건물이 밀집한 샌튼 시티(Sandton City)도 한번쯤 들러볼 만한 곳들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포웨이스 데인펀 골프코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데인펀 더 글레이드즈 빌리지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더 글레이드즈 빌리지의 여동생이 사는 집

 

N1 고속도로를 벗어나 포웨이스(Fourways)로 가는 도로로 들어선다. 왈탐보 국제공항에서 약 3,40분 정도 달린 끝에 조벅에서도 부촌으로 알려진 포웨이스 데인펀 골프촌(Dainfern Golf Estate)에 도착했다. 골프촌 정문에는 시큐리티(Security)들이 지키고 있으면서 출입자들의 신분을 일일이 확인을 한 뒤에 출입을 시킨다. 골프촌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담장에는 전기철조망이 설치되어 있고, 시큐리티들이 24시간 내내 순찰을 돈다. 백인들이 조벅 교외의 데인펀 골프촌처럼 컴플렉스(Complex), 즉 집단거주지역을 형성하고 모여서 사는 것은 치안상의 문제 때문이다. 데인펀 골프촌에는 주로 기업의 총수나 사업가와 같은 부자들이 많이 산다.

 

정문을 통과하자 골프촌 한가운데 데인펀 골프장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골프장을 둘러싸고 늘어서 있는 유럽풍의 저택들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여동생이 사는 데인펀 골프촌의 더 글레이드즈 빌리지(The Glades Village) 입구 화단에는 노란색과 주황색의 이름 모를 꽃들이 활짝 피어 있다. 남아공은 한국과는 정반대로 지금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이라 나뭇가지에는 움이 막 트기 시작하고, 땅에는 새싹들이 한창 돋아나고 있는 중이다. 겨울이라고 해도 낮에는 반팔옷을 입어도 될 정도로 그리 춥지는 않다.

 

드디어 차가 빌리지의 여동생 집 앞에 멈추어 선다. 여동생의 집은 방 다섯 개의 2층 저택으로 잔디가 곱게 깔린 정원에는 수영장이 딸려 있다. 차고에는 여동생의 독일제 BMW, 집 앞 잔디밭에는 아들 정하가 등하교용으로 구입한 한국산 현대차 액센트가 세워져 있다. 매제의 차는 프랑스제 푸조라고 한다. 조벅은 워낙 넓은 곳이라 이곳에서 생활하려면 사람마다 차가 한 대씩 필요하다. 남아공은 자체 생산하는 자동차 브랜드가 없기 때문에 모든 차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자동차 가격이 비쌀 수 밖에 없다. 중고차도 마찬가지다. 정하는 귀국하는 한국인으로부터 액센트 중고차를 한국에서 살 때보다 거의 두 배나 주고 샀다고 한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나미비아에서 왔다는 흑인 가정부가 반갑게 맞아준다. 여동생으로부터 배정받은 방에 여장을 풀자 오랜 비행에 지쳤는지 갑자기 피로가 몰려온다.  잠시 방에 눕자 시나브로 잠이 들어버린다. 한 시간 정도 잠을 자고 일어나자 정하가 몬테카지노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몬테카지노 거리풍경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몬테카지노 식당가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몬테카지노 도박장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몬테카지노에서 부모님과 조카 유승윤(왼쪽), 유승혜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부모님과 아들 정하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몬테카지노 야외분수대에서 유승윤과 승혜

 

저녁식사를 마치고 부모님을 모시고 정하의 차로 몬테카지노로 향한다. 여동생은 몸이 무거워 집에서 쉬기로 하고 조카 승윤이와 승혜만 데리고 왔다. 몬테카지노는 데인펀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카지노에 도착하여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벤츠나 BMW, 폭스바겐 등 고급차들이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다.  

 

엔터테인먼트 복합단지 몬테카지노에 들어갈 때는 시큐리티로부터 몸수색을 받아야 한다. 총기류를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몬테카지노를 밖에서 보면 중세의 성처럼 보이는데, 내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다. 이곳은 엄청나게 큰 건물의 내부에 건설된 실내도시이다. 별그림과 조명이 반짝이는 천장은 마치 진짜 하늘인 것처럼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몬테카지노는 일년 내내 밤이 계속되는 작은 라스베가스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 그래서 여기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는 사람들은 밤인지 낮인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도박에 몰두한다고 한다. 비정한 자본의 논리가 여기서도 관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들이지만 흑인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각종 상점과 주점, 레스토랑이 늘어서 있는 중세 유럽풍의 거리 한가운데는 룰렛과 블랙 잭, 슬로트 머신을 갖춘 카지노가 자리잡고 있다. 카지노에는 도박과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디지털 카메라로 카지노 사진을 찍고 있는데 시큐리티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그중 한 명이 위협적인 목소리로 여기서 찍은 사진을 지우라고 한다. 나는 사진을 지우는 시늉만 하다가 그냥 남겨 두었다. 카지노에서는 사진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미처 몰랐다.

 

카지노 앞에서 부모님과 어린 조카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3년만에 만난 조카들이 귀엽기 그지없다. 그새 많이 자란 모습을 보니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조카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부모님도 흐믓해 하시는 표정이 역력하다. 부모님과 아들 정하의 다정한 모습도 보기에 좋다.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다가 군복무를 마치고 남아공에 어학연수를 와 있는 종손이자 장손인 아들 정하가 부모님은 대견하신가 보다. 야외 분수대에서 승윤이와 승혜 자매는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고 앙징맞은 포즈를 취한다. 부모님이 연로하신 까닭에 아마 이번이 마지막 해외여행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몬테카지노에서 여동생 집으로 돌아오니 매제가 퇴근해 있다가 반갑게 맞는다. 매제와 함께 한국에서 가져온 팩소주를 마시면서 정담을 나누다 보니 밤이 늦는 줄도 모르겠다. 가족의 정은 이렇게 끈끈한 것이다. 여동생과 매제가 이곳에 살고 있지 않았다면 정하가 남아공으로 어학연수를 올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또 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남아공 여행을 할 하등의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은 피곤하신지 벌써 잠자리에 드셨다.

 

남아공 조벅에서 맞은 첫날 밤이 깊어가고 있다. 내일은 라이온 파크에서 사파리를 한 다음 칼튼 센터를 방문할 예정이다.  

 

2007년 8월 10일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