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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하늘 양식
사람은 먹어야 살기 때문에, 양식은 생명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에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기도가 중요합니다.
인간에게 여러 가지 고통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배고픔입니다.
‘사흘 굶고 남의 담 안 넘을 사람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의 가난한 나라들의 국민들은 배고픔의 고통이 일상입니다.
우리도 40-50년 전까지만 보릿고개를 겪었습니다.
지난 가을에 수확한 곡식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에 식량 사정이 어려워서 해마다 겪는 행사 같았습니다.
진성 씨의 노래 보릿고개의 가사입니다.
“아이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 가슴 시린 보릿고개 길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정동원 군의 노래로 듣습니다. (2분 44초)
https://www.youtube.com/watch?v=wBrSEAzeqAc
(262년 전) 1759년, 조선 21대 왕 영조가 두 번째 왕비를 간택할 때의 야사입니다.
후보에 오른 처녀들이 각각 자기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방석에 앉게 되었는데, 15살 김 씨 처녀는 방석을 살짝 밀어놓고, 그 옆에 앉았습니다.
왕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식이 어찌 가친 존함이 씌여 있는 방석을 깔고 앉을 수 있사오리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왕이 문제를 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깊은 것은 무엇인가?"
모두들 무슨 바다가 제일 깊다고 하는데, 김 씨 처녀는 “사람의 마음 속이 제일 깊은 줄로 아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바다가 아무리 깊다 해도 그 깊이를 잴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 무엇보다도 깊어 그 깊이를 잴 수가 없사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어 다른 문제를 내었는데, “이 세상에서 무슨 꽃이 제일 좋은고?”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들 이 꽃 저 꽃을 말하는데, 김 씨 처녀는 “목화꽃이 제일 좋사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꽃들은 잠깐 피었을 때는 보기 좋으나, 목화꽃은 나중에 솜과 천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주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고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다른 처녀들이 여러 고개를 대고, 어떤 처녀는 “우리 조선에서 백두산 고개가 제일 높지요.”라고 하였습니다.
김 씨 처녀는 “보릿고개가 제일 높은 고개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감탄한 왕이 김 씨 처녀를 왕비로 간택하였는데, 정순왕후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고개가 보릿고개라고 할 만큼, 먹고 살기 힘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고난의 역사가 많았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광야생활 40년도 더 힘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이 어떠했는지를 알려면, 광야를 보면 됩니다.
광야에서 시내산까지 영상 (10분 17초, 6분 12초 부분이 금송아지 제단)
https://www.youtube.com/watch?v=eI34BVEXhJc
최근에 드론으로 찍은 영상인데, 3,500년 전의 모습은 이것보다 더 열악했을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성지순례 여행을 가서 며칠 지나가는 정도입니다.
이런 광야를 지나면서 40년 동안 산 것은 정말 힘들고 고달팠을 것입니다.
영상에서 보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생활하며 통과하였던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부터 전혀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집도 없어서 천막을 치면서 옮겨 다녔습니다.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추운 곳이 광야입니다.
물도 없고,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양식을 구할 수 없는 곳입니다.
다른 민족들의 공격을 받기 쉽고, 수많은 백성들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환경입니다.
뱀이나 전갈도 있었고, 여러 가지 위험이 있는 곳이 광야입니다.
옷을 구할 수 없고, 신발도 구할 수도 없습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그냥 지나가기도 힘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을 지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이기에,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하는 동안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매일 만나를 내려 양식을 주셨고, 고기로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40년 동안 의복이 해어지지 않게 하셨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셨습니다.
패션을 따라 입을 수 있는 형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의복이 해어지지 않게 하시고, 신발이 닳지 않게 하시고, 발도 부르트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광야를 통과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온 모세가 지나온 광야생활을 상기시키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백성들에게 가르칩니다.
모세의 가르침의 핵심이 1절 말씀입니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1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번성할 것이나,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면서, 부모의 훈계와 징계에 비유하십니다.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5-6절)
부모가 그 자녀에게 훈계하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훈계하십니다.
부모가 그 자녀를 징계하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셨습니다.
부모의 훈계와 징계가 자녀의 유익을 위한 것처럼, 하나님의 훈계와 징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훈계를 듣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훈계를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부모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계속 강조하지만, 자녀들은 두 번만 들어도 짜증을 내고 잔소리로 여깁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을 받고 번성하도록 계명과 법도를 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듭 말씀하시고 강조하여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순종하였습니다.
모세도 가나안 땅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강조하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라.
너희를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광야를 통과하게 하시고, 가나안 땅을 얻게 하신 것이 하나님이시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잘 살게 될 때에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망한다.
가나안 땅에 사는 민족들의 우상을 따라 섬기면 망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통과하면서 여러 번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순종하였습니다.
광야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으면서도 그랬는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 번성하고 살 만하면 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모세가 다시 가르치고, 거듭거듭 강조하였습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12-14절)
하나님께서 거듭 말씀하시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복과 저주를 결정짓고, 구원과 멸망을 결정짓는 중요한 말씀이기에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것을 잔소리로 듣고, 마음에 새기지 않습니다.
자녀들도 부모의 말씀을 잔소리로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세 번만 이야기해도 짜증을 냅니다.
모세가 신명기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친 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입니다.
지도를 봅시다.
40년간의 광야생활이 끝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느보산에서 모세가 죽었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모세가 신명기의 말씀을 가르친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했던 세대가 아닙니다.
출애굽 당시의 세대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순종하다가 광야에서 모두 죽었습니다.
신명기의 말씀을 듣는 세대는 광야생활을 한 세대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 세대입니다.
여기서 신명기의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위치를 생각해 봅시다.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너고, 광야생활 40년을 거쳐, 이제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고 죽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위치는 야구 경기에서 3루에 주자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한 베이스만 더 가면 홈인할 수 있습니다.
야구에서 2루와 3루에 주자가 있으면 득점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스코어링 포지션(scoring position, 득점권)이라 합니다.
2루보다 3루는 더 득점하기 쉬운 위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야구의 3루 주자처럼,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위치한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 신명기의 말씀을 듣는 세대, 곧 가나안 땅에 들어갈 세대의 착각이 여기에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중 대부분은 애굽의 종살이를 겪지 않았습니다.
또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중 상당수는 광야생활도 많이 겪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야구의 3루 베이스처럼, 가나안 땅을 눈앞에 바라보는 위치에 서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3루타를 치고 3루 베이스에 있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애굽의 종살이 경험도 없고, 광야생활도 많이 하지 않고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3루타를 치고서, 1루와 2루 베이스를 지나 3루에 서 있는 것과 그냥 3루에 서 있는 것은 다릅니다.
오늘 우리 세대, 그리고 자녀들 세대가 착각하는 것이 그와 같습니다.
태어나 보니 집이 아파트이고, 자가용을 타고 다니고, 잘 입고 잘 먹고,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의 혼란, 6.25 전쟁, 보릿고개, 가난과 고생을 보지 못한 세대입니다.
지금 이만큼 사는 것이 나이 든 세대에게는 너무도 감사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당연하게 보입니다.
1950년대 사진들을 몇 장 보겠습니다.
부산 영주동의 판자촌
그 자리에 들어선 시민아파트 (그 당시 대단하였습니다.)
부엌 (불을 때서 밥을 하고 음식을 하였습니다.)
동네 빨래터
우량아 선발대회 (몸무게와 발육 상태로 심사하였습니다.)
옥수수 가루, 우유 가루를 배급받으려는 줄
국민학교 입학식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있었습니다.)
국민학교 교실 (학급당 70여 명)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선물받은 아이들
공동수도전에서 물 받으려는 줄
지게꾼 (역 부근에서 짐을 져 주고 돈을 받아 살았던 사람들)
버스 차장 (만원 버스)
시발택시 (처음 나온 택시, 시작이란 뜻)
분뇨수거원
수영비행장
우리도 저런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그것도 일제시대나 조선시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좋은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뼈빠지게 고생하셨고, 하나님께서 복 주셔서 오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신 것은 특별한 뜻이 있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3절)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먹었던 하늘 양식입니다.
이런 양식을 먹은 일이 그때 외에는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 만나를 내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셨습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육의 양식일 뿐 아니라, 영의 양식이기도 하였습니다.
더욱이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6장 51절)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육의 양식이었고, 우리에게 영생의 떡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그들의 육의 양식이었습니다.
만나는 오늘 우리가 광야 같은 세상을 지나 천국에 들어가도록 주신 영생의 떡 예수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먹었던 것같이, 오늘 우리는 영의 양식을 먹습니다.
우리가 먹는 영의 양식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 떡이십니다.
우리가 먹는 영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 양식이 있습니다.
땅의 양식(육신의 양식)과 하늘의 양식(영의 양식)입니다.
사람의 육신이 양식을 먹어야 살 듯이, 영의 양식도 먹어야 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아침,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보여 줍니다.
만나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 떡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면서 하늘 양식,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어야 합니다.
제 집의 수족관에 있는 열대어들은 아침 저녁으로 먹이를 줄 시간이 되면 난리입니다.
먹이를 줄 시간이 되면 수족관 앞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모여듭니다.
여러분은 매일의 밥상을 어떻게 받습니까?
열대어들의 반만큼이라도 반갑게 밥상을 받습니까?
영의 양식은 제대로 먹습니까?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 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수십 년 하면서 성경을 많이 읽었습니다. 몇 번 통독하였습니다. 성경을 많이 압니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지난 일주일 동안 성경을 읽었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듣느냐가 중요합니다.
밥을 두고 “옛날에 많이 먹었어요. 작년에 많이 먹었어요. 어제 많이 먹었어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많이 먹었고, 일주일 전에 먹고, 어제 먹었어도, 오늘 밥을 먹지 않습니까.
영의 양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에 많이 먹었고, 일주일 전에 먹었어도,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어야 합니다.
옛날에 많이 숨쉬었으니, 오늘은 숨쉬지 않아도 됩니까?
기도가 영의 호흡이라면, 오늘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육의 양식은 너무 많이 먹어서 다이어트를 해야 할 정도인데, 영의 양식은 얼마나 먹습니까?
성도에게는 영의 양식, 하늘 양식이 있습니다.
육의 양식보다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생명의 떡으로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 바로 앞에 서 있는 것이 야구의 3루에 주자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3루타를 쳐서 거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요, 도우심이요, 복주심이요, 인도하심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렇습니다.
이만큼 사는 것이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말씀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입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좀 살 만한다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순식간에 망합니다.
성도는 하늘 양식을 먹고 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끝까지 걸어가는 성도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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