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밀양은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이 너무나 깊다. 2008년 2월25일 퇴임하시고 밀양역에 도착 하셨다. 대통령의 귀향이라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하신 말이 생각난다. “밀양이 경상남도 맞죠. 그러면 내 고향 맞네요.” 큰 눈과 웃는 모습이 생생하다. 시장님을 비롯한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손을 흔들고 미소 지었다. 노란손수건과 노란풍선의 물결 속으로 희망을 안고 봉하마을로 향했다. 노란 풍선의 신드룸은 영원히 기억된다. 부끄러움을 아는 대통령, 바보대통령, 농사짓는 대통령, 노짱 등 많은 수식어를 남기셨다. 봉하마을을 사람 사는 세상으로 가꾸시다 너무 빨리 한줌의 흙이 되었다.
2009년 5월 23일은 마음이 너무 아팠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다. 우리 밀양에서는 심포니밴드 주관 음악회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취소되고 다음날 밀양시청 지하에 분향소가 설치되었다. 밀양 시민들도 가까이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난 7일장 동안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검은 옷, 흰옷차림을 하고서 나의 마음을 달래기도 하였다. 봉하마을에 가니 슬픔이 더욱 치밀어 울음이 나왔다. 대통령을 사랑하는 국민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고인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부엉이 바위는 아무런 표정도 말도 없이 추모객들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봉하산 부엉이 바위는 새로운 순례지가 되어버렸다. 14줄의 유서는 한편의 시가 되어 맴돌았다. 고통, 슬픔, 삶, 죽음, 원망 이모든 것들을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운명으로 여긴 그 삶은 작은 비석으로 남게 되었다.
절대 권력의 최상위에 계시면서 자신을 위해서 권력을 쓰지 않고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묵묵히 일한 역대 최고의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조. 중. 동과 한나라당의 근거 없는 비방으로 어쩌다 욕먹는 대통령이 되셨지만 그는 우리 역사상 민주주의 대통령으로 마음속에 남는다.
대통령의 말을 비대하게 비틀어서 왜곡한 언론들, 검찰수사는 최고의 권력을 비참하게 짓밟은 것 아닐까! 대통령께서는 민생이라는 말은 송곳이고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하다고 말한 그때가 다시 기억된다. 서민의 입장에서 서민대통령으로 우리 곁에 있었다. 아무런 호칭 없이 노무현이라 불러도, 바보라 불러도 기꺼이 바보가 되어주신 대통령이셨다. 이젠 모두 떨쳐버리고 편히 쉬십시오.
나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혼을 상징한다. 밀양 아랑전설에 정조를 지키려다 죽음을 당한 밀양 부사의 딸 아랑이 나비가 되어 자신을 죽인 관노의 상투에 앉아 범인을 밝혀냈다는 설화가 있다. 대통령의 서거5일째 신비하게 나비가 나타났다. 그의 영혼도 흰나비가 되어 봉하마을 빈소 영정에 머물다 사라졌다. 이젠 무거움을 털어버리고 나비처럼 훨훨 날아 좋은 곳으로 갔으면 하고 빌었다.
도내 강희안 시인을 비롯해 13명의 시인들은 서부 경남지역의 주요문인들의 집결력을 발휘해 전국 최초로 추모시집을 만들었다. “슬픈 일 당했지만 문인들은 이 슬픔을 기억하고 기록해 남기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도현 시인은 대통령 노제 추모시에서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에서 거꾸로 달리는 민주주의 기관차에서 뛰어 내려 으깨진 꽃잎이 되었다고 애도했다. 꽃잎을 두 손으로 받쳐주지 못해서, 꽃잎을 가슴으로 안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슬퍼하였다. 그는 가고 없지만 추모의 따뜻한 행사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봉하마을에는 그분의 흔적을 잊지 못해 연일 많은 추모 행렬로 붐비고 있다.
난 우리 가까이에 있었던 대통령으로 영원히 기억된다. 청문회스타, 인권변호사, 노사모 이런 대변어도 국민들 마음에 남을 것이다. 구수한 경상도사투리에 인간미가 넘치는 아름다운 대통령으로 그의 모습이 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