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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 낙수도 이쯤이면
이원우
‘가짜 어머니가 있었다.’색동 어머니회 회원이 되기 위하여 아이가 있다고 속이고 동화 구연 대회에 나와서 입상한 규수, 사후 탄로가 났지만 그냥 애교로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몇 년 있다가 그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내게 주례를 부탁하는 게 아닌가? 성은 밝힐 수 없고 이름이 ‘복 복(福) 자, 올 래(來) 자’였다. 복이 온다니, 면사포를 쓴 그 순간부터 복이 넘치는 가정을 이룰 것 같아 얼씨구나 하고 기분 좋게 예식장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런데, 사회를 찾는데 역시 낯익은 얼굴이다. 엄명희 색동 어머니회 부산 회장. 세상에 여자가 사회하는 결혼식을 집전하다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무슨 기록이나 세웠나 싶어 떠벌이고 다녔다. 아닌 게 아니라 십 년이 훨씬 지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자 사회를 봤다는 말조차 듣지 못했으니……. 기고만장해 있었다고나 하자. 그러다가 작년에 나는 큰코다치고 말았다. 세상에, 박희선 동인이 여자로서 주례석까지 점령(?)했다는 게 아닌가? 정말 박희선 동인은 작은 거인이다.
어쨌든 우린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다. 주례가 남자의 전유물이 되란 법은 없으니까 제2, 제3의 박희선 동인이 나왔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말이다.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결혼식장 안에서 요지경이 벌어지고 있다. 얼굴을 찡그리게 하는 그런 ‘경우의 수’(?) 두서넛.
그날 나는 새로 맞춘 양복을 입고 서둘러 사상에 있는 뷔페를 겸한 예식장으로 나갔다. 사회자와 몇 마디 주고받은 뒤 주례대 옆 의자에 앉아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화촉 점화 차례, 신랑 혼주석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대갈일성! 이놈의 자슥들 장사 처음 하나? 신랑 신부 이름도 안 갈아 붙이다니.
여담인데, 이보다 더 심한 욕지거리가 있었지만 적을 수 없다.
나보고 하는 소리는 아니지만, 적이 불안하였다. 팀장의 얼굴을 바라보니 무척이나 당황한 표정이다. 자칫하면 불똥이 나한테 떨어지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하기도 했고, 긴장하여 조심조심 결혼식을 이끌어 나갔다.
무사히 마치고 팀장이 건네주는 사례를 받으려니, 되레 내가 부끄러웠다. 자신에게 질책했다. 적어도 주례라면 30분 전쯤에 입장하여, 제일 먼저 주례대 옆 어디에 신랑 신부 이름이 바로 붙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할 게 아니야?
거기 버금갈 만한 또 다른 아찔한 얘기.
솔직히 말해 결혼식에 사회자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사회자가 없으면 오히려 매끄러운 진행이 된다. 그들 중 더러 군더더기가 붙은 다듬어지지 않는 시나리오로 분위기를 이상하게 끌어가는 친구를 보면 기가 막힌다.
며칠 전 실로 경악할 말이 어느 사회자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양가 혼주의 화촉 점화가 있다는 말만 하면 될 텐데, 이 친구 그 앞에다 슬쩍 끼워 넣는다는 말이 ‘신랑 신부를 낙태(落胎)한 양가 어머니의 화촉 점화’ 어쩌고저쩌고. 한숨 소리가 예서 제서 터져 나왔다. 그가 이벤트 회사에 근무한다는 소릴 듣고 실소하였다. 물론 그것도 주례가 책임져야 한다.
사회가 있어야 한다면, 적어도 반 시간 전에 만나서 할 말 안 할 말을 일러줘야 한다. 부산 시내 모든 예식장의 시나리오 첫 머리를 ‘바쁘신 와중(渦中)에’가 차지하는데, 굵게 나오는 네임 카드 펜으로 ‘와중’을 ‘중’으로 고치고, 사회자의 농간에 놀아난다면, 일촉즉발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공간이 예식장이다.
그런 아찔아찔한 순간을 이겨 나가고 사진 촬영까지 마치고 안도의 숨을 쉬면서, 돌아 나온다. 양복 윗 호주머니에 꽂았던 꽃과 손에 끼었던 장갑은 가까이 있는 아기들에게 건네주는 여유를 보이면서 받는 봉투 안을 열어보면 일금 칠만 원,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액수다.
사상에서 간접 수모를 당하던 그날 나는 거짓말 같지만 네 쌍의 새로운 부부를 탄생시켰다. 당연히 10만 원짜리 수표 석 장에서 2만 원을 뺀 게 결산(?)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두 건은 미수금으로 수첩에 적어놓은 채다. 말하자면 외상이다. 1년이 넘었는데……. 그게 주례의 현주소다. 대신 동구청 예식장의 H 팀장은 너무 산뜻하다. 남이 보든지 말든지 자리에 앉은 내게 다가와 호주머니에 넣어준다. 그런 신사가 없다. 그가 있어서 나는 여태껏 ‘영일만 친구’며 ‘사랑으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주례로서 신랑 신부에게 선사할 수 있었다.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주례야말로 어느 분야의 예술가보다 일가를 이룬전문직이라는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고. 기껏해야 30분 안쪽이지만 휘둘리지 않는 소신은 기본이다. 충성이 어떻고 효도가 어떻다는 식이 아니라,한 편의 수필을 읽는 것 같은 산뜻한 주례사를 창작할 줄 알아야 한다. 전과(前科)나 이혼 경력이 주례로서의 결격 사유라던데, 글쎄 그건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 같기도 하고.
나 자신은? 40대 중반부터 경력을 쌓았으니 실적 하나만은 그런대로 만만찮다. 오래전이긴 하지만, 효도를 강조한 나머지 ‘어머니 은혜를 끝까지 독창한 일이 있는 걸로 보아 흥분 잘하는 천성이그대로 들어날 염려가 잇다. 귀에 내 말이 들어오지도 않을 신랑 신부에게 중국 전한시대 유안이 쓴 「회남자」의‘그물 한 코’를 너무 자주 우려먹는다. 은사 정신득 선생님의 저서에서 인용한 거다. 이런 경망함이 지칫 마흔이 넘은 한 쌍에게 딸 아들 구별 말고 셋 이상 낳아 잘 기르라는 주문으로까지 발전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래도 강행군을 하는 이유가 있다. 왕복 교통편까지 세 시간이 걸린다 해도, 귀가하여 사례를 봉투째 아내에게 쥐어줄 때 그가 보이는 미소가 좋아서라고 하자. 주례를 서는 날은 정말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점심 한 끼라도 밖에서 먹지 않은 정신, 그게 또 나로 하여금 소시민의 애환을 실감나게 하지 않는가?
축복 가운데 얻는 낙수(落穗), 그것 또한 자산이다. 그래 나는 다음 일요일을 기다린다.
체중아, 이제 내가 ‘막춤’까지 추랴 !?
네가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것쯤 안다. 그런데 여태껏 나는 너를 너무 푸대접하지 않았지 뭐야. 그러나 오는 낮 외출했다가 핀잔을 먹었으니, 널 원망 좀 해야겠다. 남들이 뭐라 했는지 알아? 나더러 얼굴이 부었다더군.
오랜만인데 보기 좋을 만큼 살이 붙었다면 이렇게 내가 좌절하지 않았을 거야. 아무튼 오늘 내가 네게 맹꽁징꽁 지껄여도 고깝게 생각하지는 마라.
내 오늘 희한한 결심을 했으니, 내가 못마땅하여 구시렁거려도 난 초지일관 내 목소리를 낼 거야.
2002년도 내가 메리놀 병원에서 먹지도 못한 채 보름 입원해 있다가 와 보니,네가 가리키는 저울의 바늘이 63이었단다. 그러다가 내가 퇴원 후 갑자기 증가하는 식욕을 억제하지 못해 게걸스럽게 먹었잖니? 삽시간에 78! 난 저울에서 내려와서도 한참이나 어리둥절한 채였지.
네가 그렇게 사란의 애간장을 태우리라곤 예전엔 미처 생각도 못했었지. 너는 십 년 넘게 내가 통제하는 그대로 66킬로그램 이쪽저쪽에서 머물러 있었으니 말이야. 그래 오랫동안 다소곳이 네 자리를 지키고 있는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어. 때론 자랑까지 하고 다녔다.
오늘 나는 네게 푸념을 좀 늘어놓아야겠다. 다섯 자 다섯 치의 단구에 73킬로그램, 그게 허울 좋은 너와 나의 현주소다. 김순철 부민병원 의무원장의 전언을 여기 옮기면서 창피를 느낀다. 나더러 건강을 제대로 유지하려거든 너의 10분의 1은 깎아내야 하겠다는 거야.
너 기억하니? 68킬로그램만 되어도 흔히 이런 표현을 쓰면서까지 너를 탓했다. 아니 탄했다. 땀을 발바닥을 통해 땅으로 쏟아내야 할 ‘비계’가 2킬로그램이 넘는다고…….
근래까지 그런대로 운동이라는 이상적인 처방으로 70의 숫자에 만족하면서 체중계를 오르내렸다. 정확히 말하면 69.5~70.5. 그러다가 외형부터 남의 눈을 속이지 못한다는 걸 나는 절감했어. 근래 만나는 이마다 살이 쪘다는 거야. 개중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노인학생도 있어. 밖에 나가면 그래서 낙담하고 돌아오기 일쑤지. 오는 아침에 드디어 73을 돌파, 한숨이 절로 나오더구나.
두 가지 장애 요건이 생겼다는 걸 너도 알지 않니?
이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메리놀에 입원해 있을 때, 너 기억하니? 외출을 해서 태종대로 나갔는데, 그 비싼 복국을 시켜놓고 국물 한 숟가락 못 떴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만 주르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나는 속으로 한탄했지. 아니 소리는 못 냈지만 나는 부르짖었다. 이건 사랑이 아니다. 시체인들 이보다 못하랴!
그로부터 겨우(?) 8년인데 나는 분명 살아있으니 기적이랄 수밖에. 그리고 서글프게도 식탐(食貪)의 노예가 되어 버렸어. 나이 겨우 초로에 접어들었는데, 생존이란 환희와 음식과의 전쟁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다니 너무 버거워. 카톨릭 신자로서 늘 기도야 하지. 특히 ‘식사 전 기도’는 절대 빼먹지 않는 건 너도 알지 않아? 은혜로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내가 너를 원망하게 된 이유 중 또 하나는 운동 부족이란 거야. 하루 40분 빠르게 걷기는 내 새왈의 일부분인데 언제부터인기 그 약속이 파기되어 버린 점, 실로 통탄해야 될 지경이야. 발톱이 빠질 정도로 열성을 보여오다, 그 며칠 동안의 절망간을 내 글재주가 모자라 여기서 나타낼 수 없다는 걸 너도 알 거야.
인간은 본래 간사한 것 같아. 운동을 하다가 쉬다가 하는, 이번과 같은 악순환이 여러 번 계속되다 보니, 이제 만성이라는 질환으로 변해진 것인지도 몰라. 그래 잠정적 포기, 언제 다시 운동장으로 나설지 이리송하여 한숨만 쉬고 있구먼. 체중, 네가 알다시피. 어디서든 한 마디 빌어다 써야겠는데, 아 참 ‘도래떡이 안팎 없다’가 안성맞춤이겠네. 변명 하나 그럴싸하고 두루뭉술하네. 내일 운동화 끈을 매게 될지 모르니까.
그러나 그 가능성은 희박할 것 같아.
여전히 나는 눈코 뜰 새가 없어. 오늘 낮에도 부산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인 금곡동 1단지 공창 종합 복지회관에서, 함흥이 고향인 아흔 살이 다된 할머니 등 60명 노인 앞에서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르느라 목이 터질 뻔했잖니? 4시 반부터는 종빈이 어린이집에 상담하러 가야 하고. 내일은 요크셔테리어인 손녀 후로다 2세의 장례를 치러 주ㄹ었었던 애견 장례식장 파트라슈를 방문할 예정. 아 참, 12시부터 아이리스에서 결혼식 주례를 맡았으니 거기 두어 시간 매여야 하지 않겠어? 모레는 초량 시각 장애인 복지관 설립 기념일이라서 11시부터 오후 늦게까지 사회든지 심부름이든지 맡아야 하고, 도무지 틈을 찾을 수 있어야지.
이쯤에서 정답게 너를 부른다. 체중아! 너 ‘막춤’이라고 알지? 오래전, 어느 방송국의 ‘파랑새는 있다’는 인기 무술 드라마가 있었지. 나는 말이야. 나이트클럽인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 무대 위에서 댄서가 마구 흔들어대는 그 몸짓이 참 좋더라. 매료? 아니 그 정도로써는 안 되겠고, 섹스어필을 지나 거의 환상이라고 하자꾸나. 그 여자 탤런트를 화면에서 못 본 지 오래라, 섭섭하기 이를 데 없다. 내 격(格)은 그 정도밖에 안 된다.
이왕 버린 몸, 내 건강을 막춤에 맡기고 싶단 말이야. 나는 막춤과 27년여 동안 더불어 살아왔으니, 일가견이 있는 셈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노인 학교에서 학생들과 어울려 추던 그게 바로 그거야. 관광 춤과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오십보백보’! 좀 고급스럽게 표현해서 나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잇는 셈이지. 막춤 아니면 관광 춤에세.
며칠 전 인터넷을 통해 점찍어 놓은 메들 리가 있어. 30분짜리인데, 거의 다 아는 노래이고, 템포도 2/4박자 폴카 혹은 폭스트로트더라.
얘, 체중아. 오늘 밤 이슥해서 내가 불조차 꺼놓고 저급(低級)의, 하지만 찬란한 그 막춤의 진수를 보일 참이야. 도와주려무나. 땅바닥이 아닌 방바닥을 통해 네 스스로의 그 쓸모없는 덩치를 줄여주는 게기나 시발이 되었으면 해. 자, 너와 내가 반려자가 될 운명인 걸 어쩌겠냐. 체중아, 슬슬 시작해 볼까. 간편복 차림으로……. ‘청춘은 봉이요 봄은 꿈나라/ 언제나 명랑한 노래를 부릅시다/ 진달래가 쌩긋 웃는 봄봄/ 청춘은 싱글벙글 윙크하는 봄봄봄봄…….’
■약력 및 사진
이원우
수필가, 소설가
부산 명덕 초등학교 교장 정년 퇴임
한국 문인협회, 한국 수필가 협회 회원
전, 유네스코 부산시 협회 부회장 및 사무국장 엮임
부산 문인협회 초대 회장
대한 가수협회 회원, 덕성 토요 노인 대학장 엮임
초량 시각 장애인 복지관 웃음 치료 및 노래 지도 강사
저서 : 『죽어서 개가 될지라도』 외 1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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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 간사님께서 직접 타자하셨군요.
수고 많이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도 복 많이 지으시길요^^*